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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마탑주-258화 (258/337)

나 혼자만 마탑주 258화

"어서 오세요 아저씨!"

"실례할게."

돌직구가 통했다.

너무 잘 통해서 이쪽이 당황스러울 지경이다.

그냥 밖에서 외식이나 한 끼 하려고 했는데, 그녀가 목숨을 구해준 보답을 하고 싶다며 집으로 초대해 주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낡은 기름때가 거뭇거뭇 묻어 있는 오래된 빌라. 벽지는 누렇게 변색됐고 장판은 벗겨져 있다.

나는 신발을 벗어서 가지런히 구석에 놓았다.

"크흠, 실례하겠습니다. 어머님."

"우리 엄마 없는데요?"

앞치마에 반바지 차림인 그녀가 내쪽을 돌아보며 말했다.

"일 가신 거야?"

"여기 그냥 제 자취방이에요."

"……어? 그럼 우리 둘밖에 없단거야?"

"네."

……요즘 고등학생들은 당돌하다고 해야 하나? 이래도 되나 싶기도 하다.

그때 그녀의 시선이 내가 가져온 봉투로 향했다.

"어머, 뭘 이런 걸 다 사 오셨어요?"

그녀는 빼앗듯 내 손에서 봉투를 낚아챘다. 생각보다 무거운 무게였는지 '헉'하는 소리를 내며 얼른 두 손으로 봉투를 들었다.

"그냥 밥만 얻어먹기엔 미안해서."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구해준 보답을 하는 거니까 괜찮…… 어?"

봉투의 내용물을 확인한 그녀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녀는 봉투 안에서 묵직한 종이상자를 꺼냈다.

"이, 이게 뭐예요? 흑염소 엑기스?"

"무려 지리산 흑염소야."

내가 엄지손가락을 세우며 말했다.

"생강, 대추, 도라지, 당귀, 천궁, 황기, 백출 등 12개 재료를 넣고 흑염소 한 마리를 솥 안에 통째로 푹달인 건데, 100팩짜리니까 하루에 한 팩씩 널널하게 먹……"

"이, 이걸 어떻게 먹어요!"

이상한 것이라도 보는 그녀의 반응에 나는 팔짱을 꼈다.

"음, 흑염소는 별로야? 그냥 무난하게 붕어즙으로 할 걸 그랬나."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요!"

그녀가 얼굴을 붉히며 나를 흘겨보았다.

"생긴 건 멀쩡한데 입맛은 완전 할배……"

"안타까울 따름이야. 요즘 애들도 건강원의 매력을 알아야 하는데."

내가 팩을 한 봉 꺼내서 흔들자 그녀가 만지기도 싫다는 듯 파바박 물러났다. 발 앞으로 던지기만 해도 하예린은 비명을 지르며 벽에 착 달라붙었다.

"저리 치워요!"

"흑염소는 기력 회복에 탁월한 효능이 있어. 성장기 발육과 빈혈 예방에도 좋지."

"무슨 건강원 직원이세요?"

그녀는 한숨을 푹푹 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튼,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금방 만들어 올게요."

"알았어."

그녀가 주방으로 들어갔다. 어쩐지 칼칼한 김치찌개 냄새가 난다 했더니 한참 요리를 만드는 중이었다.

그녀가 프라이팬을 움직이자 야채와 면이 공중에서 들썩거렸다.

'자, 잘 하는데?'

일부러 초대한 이유가 있는 것 같다. 나는 테이블 세팅을 마쳐놓고 기다렸다. TV에서는 여전히 김유신 박물관 사건에 대해 떠들고 있었다.

"다 됐습니다!"

오래 기다리지 않아 그녀가 상을 내왔다. 김치찌개와 해물 볶음면, 고등어조림을 메인으로, 각종 집 반찬들이 보였다.

"차린 건 없지만 맛있게 드세요."

"진수성찬이네! 잘 먹을게."

이게 얼마 만에 먹는 집밥인가 싶다. 찌개도, 볶음면도, 전부 맛있었다. 먹다 보니 자연스럽게 말이 줄어들고 먹는 데에만 집중하게 됐다.

내가 허겁지겁 먹어치우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후후, 좀 치사하죠? 목숨 구해준걸 야매 요리로 퉁쳐서."

"에이, 그런 말이 어딨어? 사람 구하는 걸 답례 바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역시 아저씨는 헌터인가 봐요."

나는 김치찌개로 칼칼해진 목을 물 한 잔으로 비워내며 말했다.

"예전엔 그랬지."

"그럼 지금은 아니에요?"

"지금은 좀 쉬고 있거든."

"하긴, 평일 낮부터 박물관 기웃거리는 게 영락없는 백수라고 생각했…… 농담이에요."

……은근히 사람 디스하네. 그래도 찌개가 맛있으니 봐준다.

"하나 물어볼게 있는데."

"뭔데요?"

"혹시 마탑에서 연락 온 적 있어? 널 채용하고 싶다거나 하는……."

나름 진지하게 물어본 건데, 그녀는 농담으로 받아들였는지 웃으며 팔을 휘저었다.

"설마요! 그런 대단한 곳에서 저같은 열등생을 왜 찾겠어요?"

"열등생?"

"네. 쫌 부끄럽지만 학교 성적이 평균 이하거든요."

의외였다. 윈드커터를 쓸 정도의 2서클 마법사가 평균 이하라니.

"적성이 바람계열인 것만 해도 말다했죠, 뭐."

"바람계 마법이 뭐 어때서?"

"까놓고 말하면 쫌…… 약하다고 생각해요."

이건 또 재미있는 화제가 아닐 수 없다.

나는 5년 후의 마법에 대해서는 처음 듣는다. 학생들 사이에선 대세인 속성이 있고, 그렇지 않은 속성이 있는 모양이다.

"그럼 제일 인기 많은 속성은 뭐야?"

내 물음에 그녀가 눈을 반짝이며 손가락을 세웠다.

"누가 뭐래도 전격 마법이 짱이죠! 현역 마탑주의 전공 마법!"

나대용인가. 역시 대세를 따라가는구나.

"전격 마법이 무조건 1티어! 선생님들도 그쪽에 적성 있으면 마법사 인생 반은 폈다고 생각하래요. 2티어는 빛, 물, 독성 마법 정도네요."

"차도연, 김사랑, 조용희네."

"네! 다섯 마도사의 전공 마법과 같으면 훨씬 유리해요."

학생들 사이에서 4층팀 멤버들의 속성이 선호되는 이유는, 그들이 닦아놓은 길을 따라가며 다양한 마법을 습득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었다.

3티어는 그 밖의 마법들이었다.

불, 얼음, 대지 같은 것들. 그리고 하예린의 바람계 마법은 4티어에 불과했다.

"바람계 적성이 70%가 넘는 애들도 전격계 적성 10%만 뜨면 그쪽으로 간대요. 바람계 마법은 살상력이 너무 떨어지거든요. 4서클이 되어도 계속 윈드커터나 써야 한다나봐요."

"……으음."

이런 것도 언젠가 내가 바로잡아야 할 부분이다.

한참 서클 마법을 개발하던 중에 잠적해 버리는 꼴이 됐으니까 내게도 책임이 있는 셈이다.

"너무 그렇게 비관할 필요 없어."

내가 우엉조림을 집어 먹으며 말했다.

"박물관에서 내가 몬스터를 잡은 거 기억나지? 그것도 바람계 마법으로 한 거야."

"에이이, 뻥 치지 마세요!"

"진짠데."

말이 트인 김에 우리는 정신없이 마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같은 세대의 마법을 배운 건 아니지만 나나 그녀나 마법사다. 마법이라는 학문에 대한 열정은 같았고, 이야기도 무척이나 잘 통했다.

"요즘은 고유 능력이 애매한 전투계 능력자들은 마법사로 빠지는 게 대세래요."

"오, 그래?"

또 한편으로는 뿌듯하기도 했다.

지금의 대한민국을 이루고 있는 마법의 문화와 교육 시스템은 모두 나와 동료들의 노력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내가 뿌린 마법이라는 씨앗이 이렇게나 커져 있는 걸 보니 수확하는 농부의 기분을 느끼고 있다.

대한민국은 현재 M10에 포함된헌터 강국이자, 최강의 마법대국이었다.

"아, 간만에 잘 먹었다."

내가 부른 배를 퉁퉁 두들기며 말했다.

"설거지는 내가 할게."

"괘, 괜찮아요! 손님한테 무슨 설거지……"

나는 그 말을 무시하고 상을 번쩍 들어 주방으로 옮겼다.

남은 반찬은 뚜껑을 닫아 냉장고에 넣어두고 다 먹은 식기는 싱크대에 쌓아둔 다음 고무장갑을 꼈다.

수세미에 세제를 묻히고 뽀득뽀득 소리가 나게 접시를 닦았다.

"참, 한 가지 궁금한게 있어."

"뭔데요?"

그녀는 내 옆에서 접시의 물기를 닦고 있었다.

"어제 박물관에서 몬스터가 습격했을 때 말이야. 왜 대피소에 안 가고 근처에 숨어 있었던 거야? 데려다주겠다니까 도망쳐 버리고."

"……."

그녀는 그때 이런 식으로 말했었다.'내가 가면 사람들이 위험해진다. 내가 여기 있어야 한다'라고.

이번 질문만큼은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다시 설거짓거리에 집중했다.

"말하기 싫으면 굳이 말 안 해도……"

"저는."

그녀가 결심한 듯 내 눈을 바라보았다.

"몬스터를 끌어모으는 체질이에요."

"……."

순간 얼이 빠져서 씻던 냄비를 떨어뜨릴 뻔했다.

"세상에 그런 게 어딨냐?"

"저, 정말이에요!"

그녀가 목소리를 높였다.

"각성하고 플레이어가 된 뒤로 계속 그랬어요! 제가 있는 곳에는 항상 몬스터가 출몰한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몬스터가 박물관을 공격한 것도 사실은 네 체질 때문이다?"

"네, 맞아요!"

그래서 대피소로 내려가지 않고 버텼던 건가? 친구들이나 다른 사람들이 위험에 빠질까 봐?

"그뿐만인 줄 알아요? 소풍이나 야외수업이 있는 날이면 꼭 몬스터들이 나타나서 친구들이 다쳐요! 수업끝나고 귀가할 때도 계속 몬스터가 나타난다고요!"

나는 프라이팬에 묻은 양념을 벅벅 벗겨내며 생각에 잠겼다. 그녀의 스테이터스에서 몬스터를 불러 모을 만한 특성은 없었다.

마나의 아이라서 그런 걸까? 아니다. 나도 가지고 있는 특성이지만 그런 일은 겪지 못했다.

"혹시 우연의 연속 같은 거 아냐? 막 그런 거 있잖아. 심리적 문제에서 비롯된……."

"저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녀가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하지만 명확한 데이터도 있다구요! 제가 카임에 입학한 해부터 카임을 향한 몬스터들의 공격이 17배나 늘었다는 기사를 봤어요! 이사가는 동네마다 몬스터 공격 사태가 급증했……!"

이런, 잠시 방심했다.

"고개 숙여!"

나는 그녀를 끌어안고 몸을 날렸다.

와장창!

난데 없이 창가의 유리창이 박살나며, 거대한 매의 발톱 같은 것이 튀어나와 주위를 박박 긁어댄다.

-케에에에에!

갑작스러운 비행형 몬스터의 공격에 벽지와 바닥이 날카로운 발톱에 찢어지고 엉망이 된다. 겁먹은 하예린이 비명을 질렀다.

"위험하니까 거기 엎드려 있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손가락을 움직였다.

<아이언 캔서>

벽에 설치한 마법진에서 철사들이 솟아올라 몬스터의 목과 관절 부위를 휘감았다.

내가 그대로 주먹을 꾹 쥐자, 철사들이 몬스터의 전신을 강하게 조였다. 거칠게 비명을 내지르며 버둥거리던 녀석은 이내 몸속의 뭔가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축 늘어진다.

목뼈까지 박살 낸 것을 확인한 나는 마법을 해제했다. 떨어지는 몬스터의 몸뚱이가 창가로 잠시 지나갔다.

쿠우우우웅!

살덩이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마을 전체에 들릴 만큼 크게 울려퍼졌다.

나는 손을 탁탁 털었다.

"다 끝났어. 혹시 다친 데는?"

머리를 감싼 채 엎드려 있던 하예린이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아저씨."

무서워서 그렇다기보단, 참고 있던 서러움이 한 번에 폭발한 듯했다.

"저 이래서 어떻게 살죠?"

목소리에서 진한 괴로움이 느껴진다.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이제 여기 주인아줌마도 알아차릴거예요. 올해로 이사만 벌써 다섯번째예요."

"……."

"엄마랑 헤어져서 사는 이유도, 가족들을 위험에 빠뜨리고 싶지 않아서예요. 학교에 있어도 사람들 고생시키고, 야외수업이 있을 때마다 친구들이 다쳐요. 어쩜 좋죠? 저는 그냥 존재 자체가…… 민폐인 건가요?"

나는 뚝뚝 눈물을 떨어뜨리는 그녀의 앞으로 다가왔다.

"바보야. 그런 소리 함부로 하는 거 아니야."

"……."

나는 절망한 얼굴로 울고 있는 소녀를 보며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내가 마법을 가르쳐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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