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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마탑주-257화 (257/337)

나 혼자만 마탑주 257화

조명이 꺼지고, 창문이 닫히고, 안전 셔터가 내려간다. 곳곳에서 투덜거리는 소리들이 들린다.

"아, 짜증 나."

"재앙 개 싫음."

"엄마! 나 몬스터 구경하면 안돼?"

투덜거리는 관람객들 사이로 안전요원들이 뛰어왔다.

"자, 자, 한 분도 빠짐없이 지하 2층으로 대피해 주십시오!"

"아저씨, 그냥 여기 숨어 있으면 안돼요?"

"절대 안 됩니다!"

균열도 서울 사람들에겐 일상. 다들 그다지 긴장하는 기색은 아니다.

마법사라는 새로운 직종의 출현으로 비전투계들도 전력이 되면서 대한민국의 헌터 숫자가 크게 늘었다.

적어도 서울에서 균열 몬스터가 떨어지면 분 단위로 정리된다.

길 가다가 머리 위에 몬스터가 뚝 떨어지는, 그런 벼락 맞을 가능성이 아니면 안전하겠지.

하지만 이번엔 뭔가 심상치 않다.

쿠쿠쿠쿵!

천장이 들썩이는 소리에 사람들이 소란스러워졌다.

"뭐야, 뭐야? 설마 박물관 위에 떨어진 거야?"

"야, 빨리 뛰어!"

그제야 상황파악을 마친 사람들이 신속히 지하로 빠져나간다.

위급한 상황이지만, 내게는 스펙터를 회수할 절호의 찬스다. 나는 팔짱을 낀 채 벽에 등을 댔다.

<물의 장막>

내 몸의 전면이 물로 뒤덮이며 벽처럼 변했다. 간단한 위장술이지만 바쁜 상황이니까 사람들이 알아보기 힘들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벽에 등을 댄 채 기다렸다.

콰콰쾅!

여기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벽이 뚫리는 폭음과 함께 몬스터의 울음 소리가 들린다.

"노, 놈이다!"

"쏴!"

함성과 총 소리가 연달아 울려 퍼지고, 이내 몬스터가 고통스러운 괴성을 지르며 도망치는 발소리가 들린다.

"피해가 커지기 전에 쫓아!"

"헌터 지원은?"

"오고 있습니다!"

경호원들이 우르르 몬스터들을 쫓아갔다. 비로소 주위가 조용해졌다.

'오케이, 그럼 이제 물건 챙겨서 빠져나갈까.'

물의 장막을 해제하고 몇 걸음 걸어가려는데, 깜짝 놀랐다. 아까 나랑 이야기했던 그 여학생이 기둥 뒤에 숨어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이건 뭐, 죽고 싶어서 환장했냐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너 여기서 뭐 해?"

내 목소리를 들은 그녀가 화들짝 놀라며 어깨를 떨었다.

"여긴 위험하니까 대피소로……"

그녀는 내 말을 다 듣지도 않고 등을 돌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뭐 이렇게 빨라?'

결코 일반인의 몸놀림이 아니다.

마력을 써서 달리는 게 플레이어인 모양이다.

숨을 헐떡이며 달리던 그녀는 박물관 출구로 향했다. 정문을 통해 밖으로 나가려는 듯했지만, 문은 몬스터 때문에 굳게 잠긴 상태였다.

"멈춰."

내가 그녀의 앞으로 튀어나왔다.

그녀가 놀란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질쳤다.

"데려다줄 테니까 같이 대피소로 가자."

"그, 그럴 순 없어요!"

그녀가 소리 질렀다.

"제가 가면 사람들이 위험해져요! 제가 여기 있어야……."

"대체 뭔 소릴 하는 거야?"

바로 그 순간, 측면으로 빠르게 파고드는 기척을 감지했다.

콰콰쾅!

"꺄아아악!"

벽이 박살 나며 파편들이 튀어 오른다. 나는 미리 펼쳐둔 쉴드로 잔해들을 막아냈다.

우리 말 소리를 들었는지 몬스터가 모습을 드러낸다. 온몸에 아가미가 덕지덕지 붙은 메기 형상의 몬스터.

마력량으로 추정하면 꽤 강해 보인다. 최소한으로 잡아도 헌터가 상대해야 할 5랭크 이상.

몬스터의 피부에 헌팅 디바이스가 박힌 모습이 보인다. 피가 튄 걸 보니 이미 경비 몇 명을 희생시키고 왔을지도 모른다.

"으, 으으으……!"

겁을 집어먹고 주춤거리던 그녀가 갑자기 몬스터를 겨누고 오른팔을 뻗었다.

손바닥에 푸르스름한 마법진이 펼쳐지더니 바람이 칼날처럼 소용돌이친다.

'마법?'

2서클 윈드커터다.

그녀가 힘껏 팔을 휘둘러 윈드커터를 날렸지만, 메기 괴수가 수염을 채찍처럼 휘둘러 마법을 흩뜨렸다.

-쿠루룩!

공격을 받고 화가 난 몬스터가 입을 쩍 벌리며 달려 들었다.

어쩔 수 없지. 나는 천천히 그녀의 앞으로 걸어 나오며 말했다.

"지금부터 보는 건 비밀로 해줘."

"……네?"

터어어어엉!

메기의 거대한 몸뚱이가 쉴드에 부딪혀 튕겨 나간다.

나는 이어서 손가락을 튕겼다. 박물관 곳곳에 설치되어 있던 카메라들이 큰 소리로 폭발하며 터졌다.

-고고고고고!

격분한 메기 괴수가 네 개의 다리를 쿵광거리며 달려든다.

나는 손으로 권총 모양을 말아쥐어 놈을 조준했다. 내 손가락이 향하는 지점으로 마법진들이 빠르게 겹쳐진다.

<미네르바 오리지널 - 오버 슈팅>

터어어어어어엉!

메기의 몸이 크게 출렁이더니 사방으로 녹색 피를 뿌리며 육편이 갈라진다.

뼈와 살이 그대로 분리된다. 앙상한 뼈가 드러나고, 살덩이들은 창문과 바닥에 철썩 소리를 내며 떨어지고 있다.

"아."

그녀가 털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6랭크 골고르를 일격에……"

믿기지 않는다는 눈으로 몬스터와 나를 번갈아 보던 그녀가 마침내 물었다.

"아저씨는 대체 누구예요?"

나는 오른 눈에서 흘러나오는 푸른아지랑이를 숨기며 그녀를 보았다.

"그건 이쪽에서 하고 싶은 질문이야."

이름 : 하예린

고유 능력 : 정착자.

개인 특성 : [마나의 아이 Lv.1] [진지강화 Lv.4] [토주 Lv.2]

주요 능력치 : [마력 107] [순발22] [체력 15] [근력 8]

특수 능력치 : [의지 25] [집중13]

능력치 총합 : [190]

그녀는 무려 새로운 마나의 아이였다.

평정을 가장 했지만 온몸이 떨릴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원석을 여기서 발견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예린아!"

그때 한 여자가 경비원들과 함께 뛰어왔다.

"위험하다니까 왜 여기 혼자 있어? 정말, 왜 이렇게 말썽이야!"

"선생님!"

두 사람이 서로를 와락 끌어안았다. 한편 경비원들은 박살 난 몬스터의 잔해를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하, 학생! 이거 누가 한 겁니까?"

"네? 그야……"

그녀는 대답하려다가 말을 멈추고는 주위를 훑어보았다.

"저, 저도 모르겠어요. 제가 오니까 이렇게 되어 있었어요."

"음? 지원 헌터가 와준 건가?"

적당히 둘러댄 그녀는 나를 찾으러고개를 계속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나는 천장에 붙어 몸을 숨기고 있었다.

'곧 다시 만나자.'

소란을 틈타 조용히 스펙터가 있는 D 관으로 넘어왔다.

이제 내 물건을 돌려받을 차례다.

우선 아까처럼 6공정 플레임 타우로스로 카메라를 부순 다음, 2층 진열대에 있는 스펙터를 향해 팔을 뻗었다.

슈슉 소리와 함께 대검이 내 손 안으로 들어왔다. 바로 이 그립감이 그리웠다.

나는 허공에 몇 번 휘둘러 본 다음, 아공간 주머니에 검을 집어넣었다.

이제 탈출할 차례다.

물의 장막으로 온몸을 투명하게 뒤집어쓰고는 느긋한 걸음으로 밖으로 걸어 나왔다.

마나의 아이는 이름도 알았고, 교복도 기억해 뒀으니 조사해 보면 금방 찾아 낼 수 있을 것 같다.

박물관 밖으로 나오자 사람들이 허겁지겁 도망치는 모습이 보였다.

헌터들과 군인들은 서둘러 무기를 들고 박물관 안으로 뛰어들어가고 있었다.

'아.'

나는 순간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익숙한 얼굴이 있었다.

보라색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달려가는 헌터 슈트 차림의 여성.

나는 그녀가 누군지 한눈에 알아볼수 있었다.

전보다 머리가 더 길어지고 성숙한 매력이 풍겼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녀의 팔에 차고 있는 수수해 보이는 풀팔찌.

그녀의 얼굴에는 다급함이 가득했다. 구두도 벗어 던지고 맨발로 마력을 일으킨 채 달리고 있다.

나는 그녀를 볼 수 있지만, 그녀는 나를 보지 못한다.

나는 지나가는 그녀를 향해, 아주 조용히 말했다.

"나중에 봐."

달려나가던 그녀가 우뚝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가슴 아팠다. 당장에라도 그녀와 말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다.

'미안해. 보라야.'

나는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움직여, 그녀를 지나쳐 걸었다.

* * *

무기를 회수한 나는 본거지로 돌아왔다.

"엄마! 저 오빠 또 왔어!"

"쉿!"

찜질방이다.

이제는 익숙해진 찜질방 주인 딸내미에게 반갑게 손을 흔들어주고는, 컵라면 뚜껑을 접시처럼 말아서 꼬들꼬들한 면 한 젓가락 올려 두었다.

그리고 후후 불어가며 한 입.

'크으으, 정말 질리지 않는 맛이라니까.'

[속보입니다! 김유신 박물관에 균열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다행히 민간인 피해는 없었지만, 국보로 등록된 SS급 무구 '스펙터'를 도둑맞았습니다. 경찰은 마인이 관여했을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주위에서 찜질방 터줏대감 아저씨들이 쯧쯧 혀를 찼다.

"당연히 마인들 짓이겠지. 고얀 것들!"

"마탑에서 또 한바탕하겠구만."

"다 죽여야 해!"

사실 이번 사태의 원흉은 바로 댁들 옆에 있지만 말입니다.

아저씨들이 쑥덕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휴대전화를 켰다.

하예린이 어디 학교인지는 간단히 찾아냈다. 박물관 뉴스에서 그쪽 학생들이 인터뷰하는 장면이 있었다.

한국 마법 기술원, 통칭 카임(KAIM).

간단히 말해 마법사를 육성하는 국가 교육 시설이다. 고교와 대학 과정으로 나뉘는데, 교복을 입은 그녀는 고교 과정인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 그녀는 무려 마법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실제로 몬스터가 나타났을 때 윈드커터를 시전하기도 했고.

'마나의 아이라……'

그냥 그런 특성이 아니다. 그녀는 마탑주가 될 수 있는 최소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꼭 마탑주가 아니더라도 마법계에서 대단한 변혁을 일으킬만한 저력을 가졌으리라. 반드시 내 편으로 끌어들여야 했다.

'그건 그렇고 마탑은 뭘 하는 건지 모르겠네.'

여러 의문이 머릿속에 올라온다.

왜 마나의 아이를 마법학교에 처박아놨지? 당연히 마탑에서 데리고 와서 직접 훈련해야 하는 거 아닌가?

아니면, 마탑에서 아직 그녀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마나의 아이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극소수였으니까. 내가 마나의 아이에 대해 언급한 것도 기껏해야 관리자들 정도고.

어쨌든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자마자 마나의 아이를 만난 건 운이 좋다.

힘 빡 줘서 제대로 키워놓으면, 네메시스 사태 이전에 제 몫을 할 마법사로 성장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여기 와서 새롭게 할 일이 추가 됐네.'

나는 펜을 꺼내서 동네 문구점에서 사온 메모장에 슥슥 적어나갔다.

1. 내 동료들 중 누가 마인이 됐는지 찾아 낼 것. 그들이 내가 돌아왔는지 모르고 있는 지금의 상황을 최대한 이용해야 한다.

2. 마나의 아이 키우기.

나는 볼펜을 끄적이며 턱을 쓸었다. 일단 마나의 아이와 확실히 연결고리를 만들어놓는 게 우선순위일것 같다.

학교에 연락해서 학생 연락처를 물어보면, 요즘은 프라이버시 이슈 때문에 쉽게 알려주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SNS 웹사이트에 들어갔다.

"카임. 하예린."

액정 패드로 검색어를 입력하고 확인 버튼을 눌렀다.

바로 하예린의 계정을 찾아냈고, 휴대전화 번호까지 확보했다.

프라이버시, 프라이버시 말이 많지만 아이러니하게도 SNS는 어떻게든 자기 자신을 알리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천국이다.

나는 그녀의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었다. 잠시 감미로운 발라드 선율이 들린다.

-걷다 보면 항상 네가 그리워져. 마음에도 없던 상냥한 너의 한마디에 잠 못 들던…….

달칵!

-여보세요?

그녀가 맞다. 나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말했다.

"안녕. 박물관에서 널 구해준 그 아저…… 오빠야. 다친 곳은 없지?"

소화기에서 그녀의 숨 삼키는 소리가 들린다.

-와, 소름! 내 번호는 어떻게 알았어요? 스토커?

"내가 미쳤……!"

나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졌다.

고개를 돌리자 옆에서 TV를 보던 영감님이 노려보고 있었다. 나는 얼른 '죄송합니다, 어르신'하고 사과하며 자리를 옮겼다.

"SNS 계정에 전화번호를 공개로 등록한 게 너잖아. 까먹은 거야?"

-아, 아! 그랬던 거구나.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살았어요.

이제 어떻게 하면 여고생과의 만남이 자연스러울까 고민했지만,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사실 내겐 그런 무드는 전무하기도 했고, 그냥 돌직구로 가기로 했다.

"너 오늘 저녁 먹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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