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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마탑주-256화 (256/337)

나 혼자만 마탑주 256화

내가 큰 소리로 콜록거리자 사람들이 뭔 일인가 싶어 바라본다.

나는 얼른 휴지로 입과 바닥을 닦고 시선을 TV로 고정했다.

'차기 마탑주는 나대용인가.'

내 개인적으로는 정서진이 마탑주가 됐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아니었다.

하긴, 그 녀석은 2층 관리자와 마탑의 사업 파트를 전부 도맡고 있다. 마탑주가 되어버리면 정서진의 역할을 대신해 줄 사람이 없다.

진보라도 성격상 직접적인 마탑주자리에는 별 관심 없을 것 같고.

반면 나대용은 4층팀에서 가장 실력이 뛰어난 것은 물론, 리더 쉽과 인망이 있고, 으쌰으쌰 하려는 의욕으로 똘똘 뭉쳐 있는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과몰입' 특성 보유자라서 은근히 내 후계자라는 이야기들이 많이 돌기도 했고.

'근데 도연 씨랑 대용 씨는 별로 사이 안 좋아 보이는데……'

나는 다시 식혜 빨대를 입에 물었다. 그렇게 쿵짝이 잘 맞아서 관리자 자격을 준다고 해도 4층에 남겠다던 사람들이 서로 언론전을 벌이는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다.

마법부장관과 마탑주라는 직책의 입장 견해일까? 아니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어느 쪽이든 5년이라는 시간이 길긴 길었던 모양이다.

'다들 뭐 하고 있으려나…….'

다들 소식이 궁금했다. 마음 같아선당장에라도 마탑에 찾아 가서 직접 얼굴도 보고 목소리를 듣고 싶다. 하지만 이들 중에 '마인'이 있다는 점이 걸린다. 이 사실을 아는 건 오로지 나뿐, 마인이 누군지 알아내기 전에는 정체를 드러내는 건 자제해야 한다.

'물론 지금 누리는 이 자유가 좋기도 하고.'

나는 바닥에 벌러덩 누웠다.

마탑주 시절의 고된 일정을 생각하면 정신이 아찔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피할 생각은 없다. 힘에는 책임이 따르고, 내가 앞으로 어떤 역할을 맡아야 하는지도 알고 있다.

다만 당분간은, 며칠 동안만큼은 내게 주어진이 짧은 자유를 누리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해보고 싶다.

'원래라면 이 타이밍에 에아의 잔소리가 들려야 할 텐데.'

여기 오면서 계속 그녀와 연락을 시도해 보았지만 묵묵부답이었다.

혹시 몰라서 영지창을 열어서 확인해 보니 그녀가 무사한 건 확실해보였다. 그녀와 연결할 방법도 찾아 내야 한다.

'성급하게 굴지 말고 하나씩 차근차근 해결해 나가자.'

나는 TV에서 열변을 토하며 기자들에게 설명하고 있는 마법부장관 차도연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알까? 내가 찜질방 구석에 드러누워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 * *

"안녕하십니까!"

"좋은 아침입니다!"

사람들의 깍듯한 인사를 받으며 계단을 오르는 여자가 있었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보랏빛 머리카락에 가벼운 옷차림, 한 손에는 물수건과 각종 향수들이 든 담긴 바구니를 들고 있었다.

그녀가 바로 세계를 움직이는 마탑 제1층 관리자. 포션의 근원이라고도 불리는 진보라였다.

"오셨습니까! 관리자님!"

경비들이 일제히 경례를 올려붙였다. 그녀가 향한 곳은 제2층 봉인된서재. 마탑주와 관리자에게만 출입이 허용되어 있는, 마탑의 그 어떤 곳보다 경비가 삼엄한 공간이었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걸어가 문겉면에 새겨진 마법진에 손바닥을 댔다.

우우웅!

보안 마법진이 출입자의 신원을 확인하고 스스로 해제된다. 그녀는 서재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선배님, 저 왔어요."

그녀가 바구니를 뒤적거리며 말했다.

"오늘은 이걸로 할까요? 체리향 나는 건데 이제 품이 보습에 좋데요. 저번 주에는 피부가 건조해지신 것 같아서요."

그녀가 중얼거리며 자리에 앉아 수건을 펼쳤다.

"선배님은 또 뭐, 이상한 한방 바디워시 쓰라고 하셨겠죠? 가끔은 새로운 것도 써보고 그러면 좋은……."

유신을 씻기려던 그녀의 팔이 우뚝 멈췄다.

지난 5년간, 언제나 그 자리에 있던 유신의 몸이,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있었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악!"

진보라의 소름 끼치는 비명에 경비들이 화들짝 놀라며 서재 안으로 들어왔다.

"관리자님!"

"무슨 일이십……! 허억!"

진보라는 금방이라도 무너져 버릴듯한 표정으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어디 있어요?"

그녀가 목소리를 파르르 떨며 말했다.

"선배님 어디 있냐고!"

경비들이 다급히 서재 안을 수색해보았지만, 아무리 뒤져도 유신의 몸은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그야말로 밀실에서 사라져 버렸다는 표현이 적절했다.

경비책임자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부, 분명히 저희가 계속 밖에서 지키고 있었습니다! 최근 한 달 동안 들어온 건 조제관님뿐입니다! 그 누구도 들어가지 못한……!"

"입 다물어!"

그녀가 살벌한 목소리로 소리치자 경비들은 빳빳하게 굳어졌다.

"어떻게 이딴 식으로 일하고 돈 받아가? 니들 다 해고야!"

그녀의 눈에 쉴 새 없이 눈물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유신을 보러 가려고 준비했던 화장과 마스카라가 사방으로 번져 나갔다.

"찾아! 당장 찾아! 마탑, 서울, 세계를 다 뒤지는 한이 있더라도 선배님을 찾아 내!"

"예, 옛!"

경비들이 헐레벌떡 뛰어가며 무전으로 김유신의 실종 사실을 전파했다.

진보라는 허망한 얼굴로 비틀거리다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선배님……."

* * *

찜질방 탐험을 마치고 나는 재미있는 곳에 와 있다.

바로 '김유신 박물관'.

혹시나 해서 미리 말해두는 거지만, 신라시대 김유신 장군의 업적을 기록한 박물관이 아니다.

정말로 나 김유신의 박물관이다.

'……미치겠네 진짜.'

천공성주와의 전투를 마치고 사망한 나는, 세상을 구하고 명예롭게 죽은 영웅이자 전설이 되어 있었다.

깔끔하게 정돈된 정원과, 서울 금싸라기 땅에 우뚝 서 있는 현대적 디자인 건물의 간판에 대뜸 '김유신 박물관'이라니. 믿을 수가 없다.

지금 이 얼굴로 여기 들어갔다간 꼼짝없이 들킬 것 같으니까 일단은 물의 장막으로 얼굴을 바꾸고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입장료는 2천 원. 티켓에는 내가 근엄한 표정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내 얼굴이 다 화끈거렸다.

"받아라 블랙킥!"

입구 앞에서부터 내 코스프레를 한 꼬마들이 날뛰고 있었다. 남색 로브를 티셔츠 위에 걸치고, 등에는 대검까지 맸다.

"그럼 나는 볼케이노 그라운드!"

"블랙킥이 볼케이노보다 더 빠름!"

"아니거든! 볼케이노에서 나오는 불 때문에 블랙킥 못 쓰거든!"

갑자기 머리가 지끈거린다. 다른건 둘째 치더라도 아직도 블랙킥이라고 부르는 거냐.

"너희들! 자꾸 싸우면 우리 반만 박물관 안 들어간다?"

"안돼요!"

선생님이 나타나 두 아이의 손을 잡고 끌고 갔다. 나도 한숨을 쉬며 걸음을 옮겼다.

'내가 내 박물관에 방문하는 건 무슨 기분일까.'

일단 아무나 할 수 없는 경험이긴할 것이다. 잘 정돈된 정원을 지나 건물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아이들이 많았다. 서울에 교통이 좋은 곳에 있어서 그런지 초등학생이나 유치원생의 인기 소풍코스인 모양이다.

각 영상관에서는 내 기록들을 상영하고 있다. 내가 보고 있는 건 블랙잭과의 전투 장면이다.

"아, 이거."

"500번은 돌려봤지."

그렇게 말하는 20대 초반 남자들의 티셔츠에는 내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까 성인들도 매달 바뀌는 김유신 한정판 굿즈를 구매하기 위해 이곳에 자주 드나드는 모양이다.

내가 덕질 콘텐츠로 소모되고 있다니…… 정말로 세기말 시대다.

최대한 표정관리를 하며 박물관을 거닐었다. 뜬금없이 움푹 들어간 벽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선명한 해골마크가 그려져 있다.

김유신이 실제로 데바스타를 사용해 찬 벽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반대편에는 내가 공부했던 참고서 등이 유리 진열관 안에 쭉 나열되어 있었다. 내가 기숙사에 나올 때 두고 온 것들이다.

'아니, 뭘 이런 걸 전시해……'

이 괴리감을 어쩌면 좋을까. 나는 아직 멀쩡히 잘 살아 있는데, 이 박물관은 내 일생을 대단한 영웅담처럼 펼쳐놓고 있었다.

더는 항마력이 견딜 수가 없어서 볼일만 보고 빠져나가기로 했다.

나는 박물관 지도를 보고 목적지를 찾았다.

'D관 오른쪽 끝에 있네.'

서울 가볼 만한 곳 상위권에 랭크된 명소가 된 만큼, 박물관은 꽤 컸다. 그리고 이 박물관의 하이라이트인 D관은 확실히 다른 곳보다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고개를 들고 2층 높이의 비석 꼭대기 유리 벽에 전시관 대검을 바라보았다.

[김유신이 애용한 마검, SS급 유물판정. 김유신 외에는 누구도 다룰수 없다.]

스펙터가 올려다보이는 곳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존'도 있다.

사람들은 내 검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고,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잘 있었어?'

나는 천천히 스펙터를 향해서 손을 뻗었다. 이대로 확 회수할까 하다가 슬그머니 손을 내렸다.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다. 괜한 문제 없이 스펙터를 회수하려면 사람들이 좀 더 빠지기를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잠시 쉬기로 한 나는 자판기로 걸어갔다.

'아싸, 솔잎의 눈도 있다!'

고증 제법인데? 김유신 박물관을 아주 조금은 사랑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솔잎의 눈 한 캔을 뽑은 나는 근처의 벤치에 털썩 주저앉아 한 모금 마셨다. 바로 이 상쾌한 자연의 맛이 몸서리치게 그리웠다.

"……."

옆에 앉은 여학생이 이쪽을 힐긋쳐다보더니 다시 본인의 휴대전화로 시선을 옮긴다.

나는 한 캔을 전부 비운 후 일어나 자판기로 갔다. 그리고 추가로 한 캔을 더 뽑아서 돌아왔다.

내가 두 캔째 솔잎의 눈을 마시는 모습을 여학생이 힐끔 바라본다.

'이거 먹는 사람 처음 보나?'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시선을 들어 스펙터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같은 교복의 학생들을 바라본다.

그러곤 한심하다는 듯 한숨을 푹쉰다.

갑자기 말이 걸고 싶어졌다.

"넌 가서 안 찍어?"

그녀가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그러곤 대답 없이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왜?"

"전 김유신 싫어해서요."

"……."

윽, 갑자기 가슴 아프다.

여기 와서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을 보는 게 나쁜 기분은 아니었는데, 나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구나.

갑자기 이유가 궁금해졌다.

몰입된다.

'왜 날 싫어해?' 라고 물으면 좀 그러니까.

"나도 그래."

일단은 공감하기로 했다. 그러자 그녀가 호기심 어린 눈이 되어 나를 돌아본다.

"왜요?"

"얘가 좀 싸가지없어 보이잖아."

그녀가 눈을 가늘게 뜨며 입술을 삐쭉인다. '뭐야, 그게'하는 표정이다.

"그럼 넌 왜 싫어하는데?"

"……글쎄요."

그녀가 묘한 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또래 나이답지 않게 깊이 있는 눈이었다.

"처음 보는 아저씨한테 말할 사연은 아닌 듯."

……오늘 하루만 두 번이나 상처를 받았다.

인생 처음으로 아저씨 소리를 내 박물관에서 듣게 되다니.

"내가 그렇게 나이 들어 보이냐?"

"아뇨, 그런 것보단……"

그녀가 가느다란 손가락을 뻗어 내손에 쥔 '솔잎의 눈' 캔을 가리켰다.

"그 입맛이면 아저씨 맞죠."

……솔잎의 눈이 어때서! 차라리 나를 욕하는 게 낫겠네!

"세상만사는 업보로 돌아오는 법이야. 너도 언젠가 애들한테 아줌마 소리 듣는 날 온다?"

그녀가 소리 내어 웃었다.

하기야 아직 그런 걸 걱정할 나이는 아니지.

나도 쓴웃음을 흘리며 솔잎의 눈을 한 모금 마셨다. 그녀가 계속 쳐다보고 있어서 장난스럽게 물었다.

"한 캔 뽑아줄 테니까 새로운 맛에 도전해 볼래?"

"어떤 이상한 아저씨가 자꾸 말 걸면서 수상한 액체를 먹이려고 한다고 선생님한테 말해볼까요?"

"……야."

"아하하! 농담이에요!"

5년 만에 돌아오자마자 미성년자 희롱으로 경찰서에 잡혀가는 건 죽어도 싫다.

두 캔을 연달아 마셨더니 소변이 보고 싶어졌다. 화장실로 가서 볼일보고 돌아오는데.

쿠쿠쿵!

건물이 충격에 흔들리는 소리가 났다. 마력의 여파를 느낀 나는 한숨을 쉬며 눈썹을 긁적였다.

'예나 지금이나 근본 없이 튀어나오는 건 여전하네.'

[비상! 비상! 인근 지역에 균열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본 건물 지하 2층의 방공호로 대피해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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