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만 마탑주 255화
먼지와 잿더미가 눈처럼 흩날리는 회색의 지옥.
이 지옥의 마지막 장소인 커다란 문을 향해, 일곱 명의 모험가들이 발자국을 남기며 걸어간다.
뚝. 뚝.
물에 흠뻑 젖은 노파가 주름살 가득한 손바닥으로 문을 쓸어본다. 그녀의 손이 문 겉면에 새겨진 언어들을 해석해 나간다.
"이 문이 맞아."
그녀가 사람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여기가 최후의 종착지야."
몸통이 갈라진 남자가 환호했고.
피부에 풀이 자란 여인이 두 팔을 번쩍 들었다.
뚱뚱한 아기가 히죽 웃으며 고기를 씹었고.
목 없는 남자가 손에 든 머리에서 이빨을 딱딱거렸다.
"긴 여정,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환호하는 일행들 사이에서, 낡고 해묵은 갈색 망토를 뒤집어쓴 남자가 문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도 물에 젖은 노파가 한 것처럼 문을 쓰다듬어 보고는, 확신에 찬어조로 말했다.
"갑시다."
남자가 두 팔로 문을 붙잡고 힘주어 열었다. 동료들이 그 뒤를 따랐다.
그들의 앞에 펼쳐진 광경은 '성'의 내부였다. 주위를 슬쩍 살펴본 남자는 묘한 표정으로 눈썹을 긁적였다.
"뭔지 알 것 같네."
쿠르르르르릉!
천장이 들썩거리며 돌들이 떨어졌다. 진동이 점점 격해지면서 심상치않은 분위기가 흐른다. 모두가 불안한 얼굴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쿠웅!
심지어는 성의 문이 스스로 굳게 닫혀 버렸다. 목이 떨어진 남자가 얼른 달려가서 문을 두들겨 보았지만 열리지 않았다.
진동은 절정에 이르고, 뒤이어 천장이 완전히 무너져 내리며 그들에게 떨어진다.
<아이올로스>
로브를 입은 남자가 두 팔을 풍차처럼 휘둘렀다.
바람이 그물처럼 펼쳐지며 머리 위로 떨어지는 잔해들의 방향이 틀어진다. 간발의 차이로 다른 위치에 떨어진다.
"다들 괜찮아?"
"응! 고마워!"
그리고 완전히 천장이 무너진 곳에서는 별들이 반짝이는 자줏빛의 밤하늘이 드러났다. 천장과 함께 성을 유지하던 벽도 무너져 내리며 앙상한 철골만이 남았다.
그리고 밤하늘에서 내려와 천장의 철골에 두 다리를 올리고 있는 무언가가 있었다.
커다란 독수리의 몸통에, 얼굴은 인간. 몸집보다 큰 날개에서는 녹색빛 마력이 일렁거리고 있었다.
-키이이이이이이이!
몬스터가 포효했다.
동료들이 귀를 틀어막으며 두려워했지만, 갈색 로브의 남자는 기꺼이 웃으며 그 공포를 맞이했다.
그가 후드를 벗어 넘겼다. 길게 자란 검은 머리가 흐르듯 떨어지고, 한쪽만 밝은 푸른빛의 눈에서 연기가 스멀거리며 피어올랐다.
저쪽 세계에서는 세상을 구한 영웅으로 기려지고 있는 남자.
바로 마탑주 김유신이었다.
"덤벼."
독수리가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올랐다.
그러고는 상공에서 유신과 동료들을 포착하듯 천천히 비행했다. 겁에 질린 '목이 떨어진 남자'가 황급히 성 밖으로 뛰어나갔다.
"앗! 차거!"
그가 성 밖의 땅을 밟는 순간, 드넓은 평지가 사라지며 시퍼런 바다로 변했다.
그 효과를 적용받듯, 성도 배 위에 있는 것처럼 흔들거리기 시작했다.
"경거망동하지 마, 프로스트. 함부로 움직일수록 우리가 불리해져."
목이 떨어진 남자는 달달 떨며 기둥에 찰싹 달라붙었다.
날개 달린 괴물이 창공에서 두 날개를 펼친다. 무수히 많은 깃털들이 끝을 세우며 떨어져 나올 준비를 했다.
'후우우.'
유신의 눈빛이 가라앉는다. 그의 몸에서 마력이 꿈틀거리며 흘러나왔다.
케일 (Cheir).
소마 (Soma).
옵스 (Ops).
카디아 (Cardia).
흘러나온 마력들이 허공에서 회전하는 네 개의 금속판으로 변모했다.
"가자. 7공정들."
유신이 두 팔을 세웠다.
네 개의 금속판이 빛을 뿜으며 흩어지더니 유신의 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내 그의 등 뒤에도 찬란한 한 쌍의 날개가 펼쳐진다.
괴물이 날개를 휘둘러 깃털들을 발사했고 유신 또한 날개에서 깃털을 날려 보냈다. 섬광이 된 깃털들은 허공에서 무수히 부딪히며 연달아굉음을 터뜨렸다.
"드디어 완성했구나!"
"할 수 있어!"
동료들이 열렬히 응원을 보냈다.
그중에서 몇몇은 유신을 돕기 위해 직접 움직이기도 했다.
피부에 풀이 자라난 여인이 마력을 일으키자, 바닥에서 넝쿨이 솟아나 독수리를 휘감았다.
뚱뚱한 아기가 입을 쩍 벌리자, 독수리의 몸 곳곳에서 아기와 똑같은 얼굴들이 튀어나와 이빨로 살갗을 짓씹었다.
몸통이 두 갈래인 남자가 입안에서 심장을 꺼내 손으로 꾹 쥐자, 피와 같은 붉은 십자가가 독수리의 가슴에 틀어박힌다.
-끼이이이이이이이이이!
독수리가 비명을 지른다. 유신과의 전투에서 화력이 점점 밀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유신의 깃털들이 독수리의 몸뚱이에 박힌다.
즉각 오른팔을 뻗은 유신이 주먹을 꽉 쥐었다. 모든 깃털들이 거대한 불꽃으로 변하며 괴수를 불태웠다.
불타는 괴수는 잿더미가 되어 하늘에서 추락해 바다로 떨어졌다.
"이겼다!"
"와아아아아!"
동료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유신도 안도의 한숨을 쉬며 오른팔을 내렸다.
[축하합니다! 시련을 클리어했습니다.]
[마탑 제7층 '마도공방'이 해금됩니다.]
['마도공학자'의 일부 특성을 획득합니다.]
유신은 기쁘게 웃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얼굴 없는 여인이 두 팔을 벌리고 있었다.
"고생 많았다. 유신아."
"엄마!"
유신이 그녀의 품속으로 뛰어들었다.
"정말 자랑스럽구나, 아들."
"고마워요, 엄마. 엄마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요."
얼굴 없는 여인이 유신의 등을 토닥였다. 동료들은 뒤에서 박수갈채를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유신은 알고 있었다. 이제 이별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으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면, 뭘 할거니?"
그녀의 물음에, 유신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엄마를 죽인 마인과 재앙을 세상에서 몰아내겠어요. 세상의 모든 불합리를 제 손으로 끝낼 거예요."
"그래, 그렇구나."
그녀의 몸이 하얗게 변해 허공에 흩어지기 시작한다. 얼굴은 없었지만, 유신의 눈에 보이는 여인은 미소 짓고 있었다.
"끝까지 응원할게. 내 아들."
그녀의 몸이 완전히 사라졌다. 동료들도 사라졌다. 이내 다시, 유신은 처음에 왔던 아무것도 없는 순백의 공간에 와 있었다.
짝짝짝!
박수 소리가 들린다.
소리 난 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유신을 의식세계로 안내한 백발의 소년이 박수를 치고 있었다.
"클리어 축하해. 김유신."
"고맙다."
유신은 눈을 감고 깊게 숨을 들이 마셨다.
"이제 다 끝난 거야?"
"그래. 레퀴엠의 의식 줍기와 7층 시련이 합쳐진 의식세계를 7, 512회만에 클리어! 훌륭했어."
"……너 지금 나 약 올리는 거지?"
유신이 의식세계를 자유롭게 떠돌아다닐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레퀴엠 마법의 효과다.
레퀴엠 마법의 대상자는 본인 스스로가 만들어낸 공포, 슬픔, 분노 등과 대면하며 자신을 찾기 위한 여행을 하게 된다.
하지만 여기서 '그'가 간섭했다. 의식세계의 들어가기 직전, 그는 이렇게 물었다.
-역시 7공정은 배우고 가는 게 좋겠지?
그는 기왕 의식세계에서 활동할 거면 '7층 시련'도 함께 클리어할 것을 권했다. 처음 그런 제안을 받았을 때 유신은 어리둥절했다.
-그 두 가지를 한꺼번에 할 수 있는 거야?
-응! 사실 7층 시련도 내면세계에 들어가는 거라서 무대가 겹치거든. 7층 시련을 만들어 낸 나라면 쉽게 재현할 수 있어. 어쩔래?
유신은 이 소년에 대해 계속 궁금해했다.
사실 그 정체는 재앙에 대항하기 위해 마탑이라는 노아의 방주를 만든 장본인.
그렇다. 바로 이 소년이 '초대 마탑주'였다.
그렇게 초대 마탑주의 도움으로, 유신은 의식을 되찾으며 7공정 마법까지 익히게 됐다.
"그건 그렇고."
유신이 초대를 바라보며 말했다.
"최종보스가 '천공성주 알베르'라니, 너무 상투적인 거 아냐?"
"그것도 네 무의식이 만들어 낸 산물이야."
초대가 어깨를 으쓱했다.
"널 한번 죽였던 천공성주에게 가장 큰 위협을 느낀 거겠지?"
"걔가 날 죽인 게 아니라, 그냥 내 힘이 다했을 뿐이거든."
"그거나 그거나."
두 사람은 소리 내어 웃었다.
"이제 작별이네."
"응."
"네게 걸어뒀던 마법의 지속시간도 끝났어. 이제 다시는 네 앞에 나타날 일이 없을 거야."
"그래."
그와 눈을 마주한 유신은 진심으로 말했다.
"정말 고마웠어."
"별말씀을."
"아, 그런데…… 지금 밖에 나가면 얼마나 시간이 흐른 거야?"
초대가 다섯 손가락을 펼쳤다.
"5 년."
"이런 망…… 아직 네메시스가 오거나 하진 않았지?"
유신이 걱정스럽게 묻자 그가 킬킬웃었다.
"네메시스까지는 아직 시간이 좀 남았어. 자세한 건 네가 돌아가서 알아내."
"쩝, 알았어."
그렇게 대답하기 무섭게, 유신의 몸이 흐릿하게 변했다.
"음! 레퀴엠의 효과가 제대로 적용됐네."
초대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얼른 돌아가 봐. 다들 널 미치도록 그리워하고 있을 테니까."
"그런가? 5년이면 기억이 가물가물해졌을 것 같은데."
"흐흐, 넌 절대 사람들에게 잊혀질 수 없는 운명이야."
팔짱을 끼며 이야기하던 초대가 검지를 착 펼쳤다.
"5년 만에 아무 정보 없이 돌아가는 건 너무 대책 없는 것 같으니까, 한 가지 힌트를 줄게."
"힌트?"
"응. 사실 '룰'을 어기는 행위긴 하지만 이 정도는 알려줘도 괜찮겠지."
초대가 사뭇 진지해진 얼굴로 말했다.
"네 지인들 중에 마인이 된 사람이 있어."
"……!"
그 말을 듣는 순간, 유신은 모든 사고가 정지해 버리는 것을 느꼈다.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세게 맞은 것 같다.
"그게 무슨 소리야!"
유신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소년의 몸을 흔들었다.
"마인? 마인이 됐다고? 진짜로 내가 아는 사람이야?"
"그래."
혼란스러운 와중에 정말로 묻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하지만 유신은 딱 이렇게만 물었다.
"……원인은?"
"네 죽음."
유신의 표정이 더 없이 고통스럽게 일그러졌다.
결국 그렇게 된 건가. 인간이 마인으로 타락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정신적 문제였다.
"일단 돌아가면, 마인이 된 그 사람을 찾아내는 게 우선순위일 거야. 아직도 정체를 들키지 않은 것 같거든."
"……알았어."
소년에게 뭐라고 해도 소용없었다.
그는 사실을 전했을 뿐이었으니까.
"알려줘서 고맙다."
진심이었다. 이 사실을 모르고 현실로 갔다면 정말 큰일 날 뻔했다.
"아직 그 마인이 움직이기까지는 시간이 있으니까 성급하게 굴진 마. 모든 건 네 하기 나름이야."
유신의 몸이 점점 흐릿해져 갔다.
초대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 김유신 제2 인생 개막! 재밌게 살아봐!"
잠시 후, 유신의 몸이 완전히 의식세계에서 사라졌다.
* * *
눈을 뜨자마자 싱그러운 햇살이 내려왔다.
정말로 돌아온 걸까?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의식세계에서는 줄곧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었는데, 육체의 묵직한 무게감은 오랜만이다.
눈이 햇빛에 적응할 때까지 잠시 기다렸다가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
나도 모르게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토록 그리워했던 풍경들이 펼쳐져 있었다.
여긴 서울 광장 분수대다.
잔디밭을 자유롭게 뛰노는 아이들, 벤치에 앉아 입을 맞추는 젊은 커플, 정장 겉옷을 어깨에 올리고 전화를 받으며 뛰어가는 샐러리맨까지.
시내 쪽으로 시선을 돌려보면 익숙한 서울 간판들이 보인다.
도로에선 차량들이 경적을 울리며 지나가고, 무선 이어폰을 꽂고 횡단보도를 지나는 사람들도 보인다. 그리고 특유의 텁텁한 미세먼지까지, 이 모든 광경에서 서울의 느낌이 물씬 흘러나온다.
그렇다. 나는 돌아왔다.
그 사실이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감격스럽다.
'5년 뒤라고 했지?'
우선은 내 차림을 살펴보았다. 무난한 청바지와 후드티 차림이었다.
뭐가 더 있지 않을까 하고 바지 주머니를 뒤져 보니 이제는 구형이 된 내 휴대전화와, 꼬깃꼬깃한 지폐 몇 장, 그리고 내가 헌터 시절 사용하던 아공간 주머니도 있었다.
그 안에는 딱 하나, 안톤의 유물인 '물의 장막' 마법이 걸려 있는 목걸이가 있었다.
'친절하기도 하네.'
원래라면 병원이나 마탑에 누워 있어야 할 텐데, 초대가 특별히 신경써서 나를 밖으로 빼돌려준 모양이다.
내 입장에선 무척 좋은 스타트다.
사람들 곁에서 눈을 뜨면 이런 저런 설명할 부분이 많아지니까.
'자, 이제 뭐부터 해야 하지?'
의식세계에서는 돌아오는 것만을 생각하며 힘겨운 시련들을 버텨냈다. 그런데 막상 돌아오니 조금은 막막한 기분이었다.
그래도 일단, 내 첫 번째 목표는 확실히 정해져 있다.
'……내가 아는 지인들 중에서 마인이 된 사람이 있다고 했지.'
이 세상의 그 누구도 내가 살아났다는 사실을 모른다. 동료들 중 누가 마인인지 밝혀내려면 지금 이 절호의 기회.
정체를 숨긴 채로 그들과 접촉해 생각을 떠보면, 괜찮은 실마리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나는 두 팔을 벌리며 내리쬐는 햇빛을 만끽했다.
돌이켜보면, 마탑주 생활은 눈코뜰 새도 없이 바빴다. 다시 그 생활로 돌아가기 전에 이 자유를 조금 더 누려보고 싶었다.
나는 한국에 돌아오면 가장 가고 싶었던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으어어어."
내 첫 행선지는 찜질방이었다. 후끈후끈한 사우나에 들어가 땀을 쭉빼니 기분이 노곤해졌다. 온몸이 살살 녹는 것만 같다.
'아, 여기 진짜 오고 싶었어.'
5년 뒤라고 세상이 특별히 달라진건 없었다. 일단은 5년 전이나 지금이나 찜질방은 있지 않은가. 그건 안도 할 만한 사실이다.
사우나실에서 빠져나온 나는 바로 매점으로 직행했다.
의식세계에서 그렇게 그리워하던 음식들이 쭉 진열되어 있었다.
"육개장 사발면이랑 맥반석 달걀이랑 고구마랑 식혜요."
구매한 간식들을 쟁반에 한껏 담아서 TV가 보이는 적당한 곳에 자리잡았다. 먼저 은박지를 벗기고 고구마를 꺼냈다.
"으뜨뜨."
껍질을 벗기려는 시도를 몇 번 하다가 고구마를 반으로 갈랐다.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며 껍질 속황금빛 자태가 먹음직스럽게 드러난다. 그대로 들고 한 입 깨물어 먹었다.
"어후우우!"
뜨겁지만 농밀한 단맛이 뇌를 강타한다.
행복하다. 눈물이 나온다.
나는 바로 옆에 있는 대용량 식혜를 붙잡고 빨대로 쭉쭉 빨았다. 살얼음 떠 있는 식혜의 찬 맛이 달구어진 입천장을 식혔다.
식혜를 내려놓고 바로 먹음직스러운 갈색을 띠는 맥반석 달걀을 한 입 베어 먹었다.
입안 가득한 고소함에 몸서리치게 된다. 촉촉하고 쫀득쫀득한 노른자의 맛이 일품이다.
계란을 내려놓고 컵라면의 껍질을 완전히 벗긴 다음, 나무젓가락으로 잘 익은 면을 빠르게 한번 휘젓고 입으로 직행했다.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천국의 맛이다.
"엄마! 저 오빠 울어."
"쉿."
크흠, 흠. 부끄럽진 않다.
체감 30년 만의 첫 한식인데 누가 이런 반응이 아닐까.
아무도 날 말릴 수 없다. 입천장이 까지는 고통을 감수하며 국물을 쭉쭉 들이켰다.
'아, 좋다. 이게 사람 사는 거지.'
[네, 다음 소식입니다!]
어떤 영감님이 리모컨을 잡고 누워서 뉴스를 보고 있다.
예능 프로를 보고 싶은 아이들이 기웃거리고 있었지만, 감히 온몸으로 터줏대감 포스를 풍기는 저 영감님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마법부의 차도연 장관이 새로운 마법사 육성 정책을 발표했습니다.]
나는 킬킬 웃으며 맥반석 달걀을 꿀꺽 삼켰다.
'잘 나가시네. 도연 씨.'
정장 쫙 빼입고 머리를 묶은 차도연이 기자들 앞에서 질문을 받고 있었다. 4층팀 시절과는 완전히 딴판이다.
나는 뜨거운 입안을 식힐 겸 대용량 식혜를 들었다. 기자들이 질문을 던지자 그녀가 눈을 날카롭게 뜨며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마탑주 나대용은 막무가내의 언동을 그만두고, 협회의 지시에 따를 것을 엄숙히 권고합니다.]
"푸춥!"
나는 그만 마시던 식혜를 뿜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