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만 마탑주 253화
유신이 데바스타를 사용해 달려 들었다. 알베르는 왼쪽 날개를 움직여가드 자세를 취했다.
투콰아아앙!
날개가 데바스타의 충격파로 젖혀지자마자 유신은 데바스타가 그려진 바닥에 발을 내려놓고 반대쪽 발을 뻗었다.
이번엔 오른쪽 날개가 데바스타의 위력을 받고 출렁인다.
"흐아아아아아아!"
폭주한 유신의 몸이 눈으로 좇기 힘들 정도로 격렬하게 움직였다.
왼발을 놓고 오른발, 오른발을 놓고 왼발.
다리가 무수한 잔상을 남기며 뻗어나간다. 알베르는 이카루스를 세워 일방적인 수비 태세로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1타. 2타. 3타. 4타. 5타까지.
모든 타격에 데바스타가 적용되어 있다.
"이 무슨……"
세상 그 어떤 금속보다 단단한 강도를 가진 이카루스의 깃털이 뽑히고 박살 나고 너덜너덜해져 간다.
이내 두 날개가 무력화되어 뒤로 젖혀지며 알베르의 몸이 활짝 열린다.
빈틈을 포착한 유신이 날아오른다.
알베르가 다급히 발차기의 범위에서 벗어나기 위해 물러나지만, 마지막 데바스타는 조금 달랐다.
<데바스타 - 커터>
유신의 다리가 사선으로 그어졌고, 알베르의 가슴에 똑같이 사선으로 베인 상처가 생기며 피가 튀어 오른다.
상처를 움켜쥔 알베르가 숨을 헐떡였다. 헌터 슈트의 역장을 찢고 제대로 타격이 들어왔다.
"아직!"
쿵!
바닥에 내려온 유신이 강하게 오른발을 짓밟고, 등에 멘 스펙터의 손잡이를 꽉 붙잡았다.
"아직 멀었어!"
이글거리는 그 모습은 마치 수라와도 같았다. 알베르마저 기세에 밀려 주춤했다.
유신이 다시 한번 양발에 데바스타를 켜고 뛰어들려는 순간.
덜컥.
유신의 자세가 무너져 내렸다. 결국 몸이 감당할 수 있는 암흑 마력의 한계치를 아득히 초월한 것이다.
마치 기름 위에 불을 붙인 것처럼, 유신의 몸 전체가 이글거리는 암흑마법으로 뒤덮였다.
어느새 그의 얼굴마저도 검은 불길에 덮여 보이지 않게 됐다.
-탑주!
[메샤라. 메샤라.]
-정신 차리십시오! 탑주!
유신의 귓가로 들리는 목소리들이 점점 더 멀어진다.
'집중하자.'
암흑 마력과 일반 마력의 비율 99:1.
이때를 기다렸다.
유신은 길게 숨을 내쉬며 정면을 응시한다.
그러고는 검게 타들어가는 팔을 들어 본인의 가슴 위에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한다.
기회는 단 한 번.
마법진의 구성이 너무나도 선명하게 잘 떠올랐다.
암흑 마력으로 마법진을 그리던 유신이 킥킥 웃는다.
'로이스트. 결국 당신 뜻대로 됐네요.'
본래는 이걸 인류 전체에 적용하려 했다는 건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이 연구에 희생당하는 건 나 혼자면 족하다.
유신은 마법진을 모두 그려 넣고, 암흑 마력으로 발동시킨다.
그리고 이제 암흑 마력의 비율이 100이 되었다.
키키키키기기기기기직!
마법진이 발동하며 소름 끼치는 괴음이 울려 퍼진다.
허공에 시커먼 공간이 열리고 그안에서 빠져나온 쇠사슬이 유신의 몸을 옭아맨 채 끌고 간다.
유신은 전신이 타오르는 고통에 발버둥쳤다. 마치 지옥으로 끌려들어가는 죄수와도 같았다.
이내 공간이 몇 차례나 일그러지며 새로운 형태 변화를 이어간다.
"대체……"
셀 수 없을 정도로 수 많은 이상현상과 몬스터들을 경험한 알베르조차 이런 상황은 처음이었다.
불길하게 새어 나오는 검은 마력에 전신이 거부반응을 일으키며 떨려왔다.
우우우우우우우!
유신의 몸을 빨아들인 공간은 '관' 의 형태로 변한다.
인간의 입장에서 봤을 때야 관이지, 정확히 저게 무슨 물건인지도 알 수 없었다.
콰득!
바로 그때, 사람의 팔이 관을 뚫고 나온다.
파직! 까득!
암흑으로 구성된 공간의 이물, 관의 크기일지라도 하나의 소우주가 담긴 공간을 찢고,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낸다.
<인체 시술 - 타이탄>
그것은 틀림없이 유신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풍기는 분위기가 원천적으로 틀리다.
완전히 다른 인종,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라는 느낌이 들었다.
[…….]
유신의 입이 길게 찢어지며 새하얀 이빨을 보인다.
그것은 인간의 입이 벌어질 수 있는 한계를 넘어 찢어져 있었다. 괴기하기까지 했다.
"이성을 잃고 폭주한 건가."
알베르가 혀를 차며 마력을 개방했다.
쿠구구구구구구!
알베르의 몸에서도 막대한 마력이 흘러나왔다. 그의 등 뒤에 솟아나 있던 날개가 서서히 퇴화하더니 몸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어서 등으로부터 전신에 깃털이 퍼져 나간다.
솟아난 깃털은 꽈배기처럼 배배 꼬이며 압축되었고, 그 현상이 온몸에서 진행되었다. 어느새 알베르의 전신이 촘촘한 털로 뒤덮이며 기이한 무늬가 생겼다.
고대의 이카루스 능력자들은 신을 섬기는 신관들이었다.
날개 또한 그들이 떠받드는 '신'의 모습을 따라 하기 위함.
그리고 이카루스 능력의 극의라고 일컬어진 알베르의 모습은, 그야말로 그들이 섬기는 신 그 자체였다.
<현신화 - 가루다>
"안타깝구나. 젊은 헌터여."
온몸에 깃털이 난 알베르가 팔을 들어 올렸다.
"이성을 잃고 폭주해 날뛰는 건 스스로의 강함이라 할 수 없……"
순간, 그의 시야로 새까만 다섯 개의 줄이 확! 다가왔다. 그대로 알베르의 몸이 기울어지며 뒤통수가 바닥을 향한다.
기척도 없이 다가온 유신의 손바닥이 그의 얼굴을 우악스럽게 틀어막은 것이다.
[누가 뭘 잃었다고?]
꾸우우우우우우우웅!
천공성 전체가 들썩이며, 알베르의 몸이 깊은 구덩이를 만들며 처박혔다.
알베르는 자신의 시야를 덮은 유신의 손가락 사이로 목도 했다.
그가 짓는 끔찍한 미소와, 손바닥 너머로 보이는 검은 파장을.
<데바스타>
격렬한 폭음성과 함께 알베르의 머리가 지면에 틀어박힌다.
<데바스타>
<데바스타>
<데바스타>
<데바스타>
<데바스타>
<데바스타>
유신은 알베르의 머리를 쥔 채로 미친 듯이 데바스타를 발동했다.
알베르는 뇌가 뒤흔들리는 충격에 비명을 질렀다. 동시에 오른팔을 뻗어 돌풍을 일으켜 유신의 몸을 튕겨냈다.
"크으윽!"
구덩이에서 빠져나온 알베르가 신음을 흘리며 마력을 일으켰다.
그의 몸에 난 깃털들이 곤두서며 주위로 녹색의 돌풍들을 만들어냈다.
[하찮아.]
그 모습을 본 유신이 삐딱한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을 튕겼다.
하늘에 구멍이 숭숭 뚫리며 새까만 블랙홀들이 연이어 만들어졌다.
알베르의 주위를 완전히 포위한 블랙홀에서 철그렁하는 소리와 함께 사슬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흐읍!"
알베르가 사방에 시전해 둔 녹색의 돌풍들을 동시에 날려 보냈다.
유신이 팔을 뻗자 사슬이 거친 쇳음을 터뜨리며 날아가 돌풍들과 충돌한다.
힘 싸움도 되지 않았다.
사슬들이 순식간에 돌풍을 흩뜨리며 돌파해 왔고, 알베르는 다급히 발을 구르며 위로 비행했다.
촤르르르르르르륵!
검은 사슬들도 알베르를 뒤쫓아오며 초고속 비행전이 시작된다.
알베르는 전신에서 녹색 궤적을 그리며 음속을 돌파한 속도로 비행했다. 이를 뒤따르는 흑의 강선들이 마찬가지로 검고 긴 궤적을 남기며 다가왔다.
'길이의 한계가 없는 건가!'
수천 미터 상공을 날아도 사슬들은 계속 날아온다.
그때 음속을 돌파한 알베르의 옆으로 섬찟한 살기가 느껴졌다. 그가 고개를 돌렸다.
"!!!"
쇠사슬에 올라탄 채 쪼그려 앉아 있는 유신이 무심한 눈으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끝을 알 수 없는 깊이의 눈과 마주하는 순간, 알베르는 형언할 수 없는 공포감을 느꼈다.
"흐으으으읍!"
알베르가 다시 반대쪽으로 방향을 틀며 속도를 더 높였다.
그러나 그보다 더 빠르게, 허리에 격렬한 통증이 치밀며 몸이 아래로 꺾여 내려간다.
<데바스타>×10
알베르를 짓밟은 유신의 몸이 검은 혜성이 되어 일직선으로 내려와 천공성 섬에 내리꽂힌다.
섬에 있는 모든 것이 하늘로 솟구치고, 섬 전체가 오뚝이처럼 출렁출렁 한다.
"꺄아아악!"
"이, 이게 대체 무슨 싸움이야?"
지켜보던 헌터들과 4층팀은 경악할수밖에 없었다.
이건 이미, 인간들의 싸움이 아니었다.
퍼어어어어엉!
거대한 구덩이 속에서 녹색의 회오리가 폭발한다. 뒤이어 허공이 번뜩이더니 두 인형이 엉키며 팔과 다리를 주고 받았다.
알베르는 유신의 공격을 받아내며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이 정도면 공인 1급, 아니, 등급 따위는 의미가 없을 정도의 강력함이다.
마법진을 까는 제약을 초월해 버린 유신은 그냥 온몸에서 데바스타를 일으켰다.
걸음걸음마다, 팔다리를 펼 때마다, 심지어 손가락 마디를 꺾거나 관절이 돌아가는 것에도 데바스타는 발동한다.
인간의 움직임이 아니다.
상대가 되지 않는다.
바닥으로 내려온 알베르가 숨을 헐떡였다. 저 멀리 떨어진 유신의 등뒤로 데바스타가 발동한다.
한 번, 두 번, 세 번의.
세 걸음 만에, 따라 잡히다 못해 등 뒤를 빼앗긴다.
"크으윽!"
깃털들을 날려 보냈지만 유신의 몸을 감싼 검은 마력에 닿자 가볍게 불살라진다.
경악한 그의 동공으로 유신의 오른 다리가 다가오는 게 보인다.
즉시 팔을 들어가드 자세를 취하는데 머리를 향해 오던 유신의 다리에 검은 파장이 일어나며 밑으로 내려간다.
"……!"
그대로 유신의 허리와 어깨에도 파장이 일어나며 회전, 상단차기가 하단차기로 변모했다.
알베르는 다리가 꺾인 채 허공에 붕 떠올랐다. 도저히 물리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움직임이었다.
"크으으! 이건 싸움도 뭣도 아니야!"
공중에서 유신의 몸이 번뜩이며 나타나더니 다시 한번 알베르의 몸을 짓밟았다.
<데바스타>×20
또 한 번, 유신의 몸이 알베르를 짓밟은 채 구덩이를 파고든다.
정신없이 지면을 뚫고 내려가던 두 사람은 결국 천공성에 구멍을 내고 밑바닥으로 빠져나왔다.
"쿨럭! 큭!"
떨어져 내려가는 알베르가 시선을 밑으로 향했다.
바다가 보인다. 터키와 루마니아 등에 둘러싸여 있는 흑해다.
스윽.
그때 유신이 오른팔을 드는 모습이 보인다. 스펙터가 손안에 들어온다.
[끝내자.]
<데바스타 - 체인홀>
스펙터의 검면에 솟아오른 거대한 검은 구체가 형성되었다. 유신이 처음에 썼던 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컸다.
유신은 검을 휘둘러 그 대형 블랙홀을 날려 보냈다.
"망할!"
알베르가 속도를 올려 도주하려 했지만, 속도가 나지 않았다.
아니, 날아가는 것보다 빠르게 끌려 들어가고 있었다.
저 검은 구체는 주위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결국 도망치는 알베르마저 집어삼킨 체인홀은 계속해서 아래로 내려갔다.
휘몰아치는 바닷물이 용오름이 되어 구체에 빨려 들어가다가, 이내 바다에 닿자 근방의 바닷물이 모조리 체인홀 안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바다의 구멍이 뚫리고, 하나의 블루홀이 형성되었다.
유신이 두 팔을 벌렸다.
쏴아아아아아아아아!
바다에 구멍을 내고 파고들어 간 체인홀이 빅뱅을 일으킨다.
안에 들어갔던 바닷물이 사방으로 밀려나며 주위의 바닷물들을 밀어내고 더 큰 구멍을 만든다.
마치 운석이 떨어진 듯한 거대한 흠집이 지구 한 부분에 생겨났다.
손짓 하나로 대자연을 조롱하는 행위를, 유신은 버젓이 행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