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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마탑주-250화 (250/337)

나 혼자만 마탑주 250화

3년 전.

잿빛의 재앙.

폐허가 된 잿더미 속을 걷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 던전은 하늘에 잿더미가 휘날렸다. 지상은 알아볼 수 없게 새까맣게 타들어 갔거나 검게 변질된 물체들로 가득했다.

-여기는 C-1. 도주한 마인 수색중. 아직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 모두를 이끄는 남자는 천공성주 알베르였다.

그가 통신기를 입에 대고 말했다.

"여기는 A-1, 계속 수색하도록."

-라져.

알베르가 통신기를 품에 넣는 사이, 옆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성주님! 여기 이것 좀 보십쇼! 끙쟈!"

천공성의 부단장, 스테판이 파편속에서 뭔가를 꺼냈다. 나무로 된 가구였다.

"대발견! 신기한 발견! 이거 누가 봐도 사람이 앉는 의자 아닙니까?"

"……그렇게 보이는군."

"몬스터들이 의자에 앉아 차를 마신다는 소린 들어본 적 없습니다! 이건 틀림없이……!"

스테판이 히죽 웃으며 손바닥을 촥 펼쳤다.

"한때 이 던전에 '인간'이 살았다는 증겁니다!"

"……."

알베르가긴 한숨을 쉬었다.

"바보 같은 소리 말고 탐색이나 계속하게."

"아니, 성주님!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스테판이 흥분해서 말했다.

"던전에서 발견되는 '유물'도 검이나 방패처럼 사람들이 쓰는 것들이 발견되잖아요! 틀림없이 이 던전에도 인간이 살았을 겁니다!"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겠지."

"아, 재미없는 리액션! 우주의 대발견일지도 모르는데 말임다. 나중에 논문 쓸 때 이름 넣어달라고 조르지 마십쇼!"

"마음대로 하게."

스테판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의자를 내팽개치고는 알베르의 뒤를 따랐다.

"어휴, 근데 마인 놈들도 참 끈질기네요. 설마 던전으로 도망칠 줄은 몰랐네."

"부상을 안고 있으니 멀리 가지는 못했을 거다."

"그럼요."

천공성은 두 파트로 나뉘어 던전을 수색하고 있었다.

정상적으로 보스 몬스터를 찾는 파트, 그리고 다른 한 팀은 이 던전에 숨어든 마인을 죽이기 위한 파트다.

알베르는 마인을 혐오하다 못해 증오했다. 인간의 탈을 쓴 이 가증스러운 것들은 인류를 분할시키고 재앙의 촉진을 돕는다. 사실상 재앙보다도 위협적인 악의 축.

그는 마인의 멸절만이 재앙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고 있었다.

이번 경우도 마찬가지. 심지어 마인들은 후퇴하던 도중 천공성 길드원 몇몇을 죽였고, 알베르의 적대감은 극에 달했다.

그는 마인들을 찾아 죽이기 전까지는 던전에서 나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 건물이 수상하네요."

스테판이 걸음을 멈추며 말했다.

잿더미가 모래성처럼 쌓여서 형성된 것 같은 건물. 높이는 어지간한 빌딩의 몇십 배는 될 정도였고, 건물에 또 다른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형태였다.

"들어가 보시겠습니까?"

알베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스테판은 자신의 이카루스에서 깃털 하나를 뽑아 날렸다.

벽한가운데에 깃털이 콱! 하고 박히더니 벽면이 직사각형의 형태로 무너져 내렸다.

"컨트롤이 늘었군, 스테판."

"후후! 이게 다 성주님의 가르침 덕분 아니겠습니까. 자, 들어가시죠."

두 사람이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온통 새까만 건물, 공간은 널찍했다.

내부에 있는 물건들은 모두 재가 되어 바닥에 수북이 쌓여 있었다.

천장 위에는 쥐 같은 작은 몬스터들이 돌아다니는지 타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으음, 조용하네요. 왠지 허탕 친 것 같은데."

스테판이 중얼거렸다. 알베르는 걸음을 멈추고 바닥을 고요히 쓸었다.

"잿더미를 밟은 흔적이다. 포복과 깊이를 보니 신발을 신고 있군. 우리 말고 누군가 여기 들어왔다."

"네? 그게 무슨……"

푸욱!

갑자기 스테판의 몸이 무너져 내렸다. 바닥을 뚫고 올라온 가시 촉수가 스테판의 가슴을 꿰뚫은 것이다.

"부단장!"

천장이 울룩불룩하며 가시 촉수들이 튀어나오고, 그 중앙에는 커다란 눈이 펼쳐졌다.

[죽는 건 네놈이다. 인간!]

벽과 계단 등에서 몬스터로 변한 마인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낸다.

순식간에 포위당했지만, 알베르는 스테판의 부상에 분노했을 뿐 당황하지는 않았다.

"구제 불가능한 역겨운 폐기물들."

펼쳐진 그의 날개가 마치 자석처럼 방대한 마력을 끌어당겼다.

"사라져라."

이내 날개가 좌우로 펼쳐지며 깃털들이 비상한다.

파바바바바박!

피가 튀었고 마인들이 괴성을 지른다. 깃털이 꽂힌 곳에는 마인이 있었으며, 마인이 있는 곳에 깃털이 날았다.

자리에 있는 모든 마인이 제거되는데 걸리는 시간 1.8초.

사지가 절단된 마인들이 고통에 몸부림치며 울부짖는다.

[네놈들 저주한다 천공성주!]

[고통스럽게 죽을 것이다!]

[인류는 멸망해야만 한다!]

죽음을 앞두고 악에 받친 마인들이 저주와 퍼붓는 것과 함께, 어마어마한 충격으로 건물이 가루처럼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구궁!

잿더미의 산이 무너져 내리는 가운데, 천공성주는 가슴이 뚫린 스테판의 몸을 안고 유유히 탈출했다.

수백 미터를 날아온 그가 바닥에 스테판의 몸을 뉘었다.

"괜찮나?"

"쿨럭! 서, 성주님……!"

스테판의 팔이 부들부들 떨린다.

그가 재채기를 할 때마다 왈칵 피를 토한다. 알베르가 동요하며 그의 몸을 끌어안았다.

"말하지 말도록."

"성주님! 나는……!"

그 순간, 알베르의 눈이 싸늘하게 식으며 팔을 뒤로 뻗었다. 머리 뒤로 날아오는 금속의 꼬리가 알베르의 손에 턱! 하고 붙잡혔다.

"네놈이 마인이라는 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천공성주가 반대쪽 손으로 스테판의 목을 붙잡고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힘을 주었다. 인간의 연약한 목이 찰흙처럼 짜부라졌다.

[성주! 성주! 성주우우우우우!]

목이 잘렸음에도 목소리가 나온다.

천공성주가 뒤로 물러나고 목이 사라진 몸통이 좀비처럼 일으켜진다.

뿌드드득! 뿌득!

뼈와 살점이 엉망으로 맞물리는 소리가 들린다.

피부가 시뻘건 근육으로 뒤덮이고, 가지런한 치아가 삐쭉삐쭉한 삼각형이 되었으며, 바닥에 끌리는 혓바닥이 다섯 개 튀어나온다.

끔찍한 외형의 몬스터가 알베르의 앞에 섰다.

[네놈을 죽이기 위해 난……!]

그리고 날아갔다.

스테판의 가슴 한복판에 박힌 깃털하나가 수십 개의 건물을 박살 내며 그의 몸을 몇 킬로미터나 날려 보냈다. 장애물이 부딪힐 때마다 스테판의 몸뚱이가 터지고 찢겨 나갔으며 마침내.

쿠우우우우우우웅!

커다란 은빛 구조물에 처박히는 것으로 멈춰섰다. 그의 팔다리는 날아가고 몸의 1/3만 남아 있었다.

"언제 정체를 드러낼지, 계속 기다리고 있었다."

날개를 펼친 알베르가 광풍과 함께 나타났다.

[이, 이, 이, 이런 괴물이이이이이!]

"그 모습으로 나를 괴물이라고 칭하는가."

알베르가 스테판의 혓바닥 다섯 개를 말아쥐었다. 다른 한 손으로는 안면을 붙잡았다.

"잘 가라. 부단장."

그리고 혓바닥을 쥔 팔에 힘을 주며 당겼다. 생살이 뜯겨 나오는 끔찍한 소리와 함께, 사방으로 선혈이 튀어 올랐다.

[꺼허! 끄으윽!]

파르르 떨던 스테판이 이내 축 늘어져서 움직이지 않게 됐다. 알베르는 무표정한 얼굴로 통신기를 들었다.

"여기는 A-1. 도망쳤던 마인들을 사살했다."

-여기는 D-1! 보스 탐색전도 순조롭습니다! 보스 몬스터가 사는 레어를 발견했습니다.

"계속 탐색하도록."

보고를 마친 알베르는 스테판의 시신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

한동안 말없이 있던 그는 고개를 들어 스테판이 부딪힌 그 은빛의 구조물을 보았다.

모든 것이 잿더미처럼 변한 이 던전에서, 유일하게 형태라고 할 만한 것이 남아 있는 시설이었다.

그는 벽면을 천천히 쓸었다. 튼튼했다. 지구에선 본 적 없는 광물이었다.

이런 광물을 가공할 수 있다면 인류의 기술력과 군사력은 몇 배나 뛰어오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며 알베르는 시설 안으로 들어갔다.

전부 잿더미가 되어버린 곳과는 다르게, 여기는 온전히 남아 있었다.

기계들과 장비들이 그대로. 심지어는 로봇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의 시선을 가장 잡아끄는 것은 바로 반파된 기계 컴퓨터.

상태가 엉망이었지만, 누군가 수리를 하다 만 듯한 흔적이 보였고, 컴퓨터 앞에는 오래된 것으로 보이는 해골이 놓여 있었다.

알베르는 천천히 컴퓨터 앞으로 다가가 보았다. 아직 전류가 흐르고 있고 컴퓨터에는 전원이 들어가 있다.

그가 다가오자 컴퓨터에 연결된 기계팔 같은 것이 앞으로 내밀어졌다.

마치 손을 대보라고 하는 것처럼.

'한때 이 던전에 '인간'이 살았다는 증겁니다!'

무슨 바람이 불었던 것일까. 알베르는 패드에 손을 올렸다.

그러자 형용할 수 없을 만큼 방대한 양의 데이터들의 그의 머릿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건……!'

알베르는 전율했다. 머릿속에서 폭죽처럼 터져 나오는 정보들, 그것은 모두 '이브'의 기억이었다.

멸망해 버린 세계의 이야기에 알베르는 완전히 매혹되고 말았다.

실감했다.

그녀가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 어떤 세계를 만들려 했는지.

그리고 감탄했다.

그녀의 각오를, 그녀가 만든 이상향을.

그녀는 재앙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인구수를 통제하고 인류를 가두어놓는 대신, 안드로이드들을 뽑아내어 방위를 맡겼다.

그녀가 만든 천하는 무적이었고, 일말의 빈틈도 없었다.

인류가 폴리스라는 곳에서 통제당하는 동안, 세계에는 식물이 번성했고 아름다운 꽃과 나무가 피어났으며 동물들은 새로운 생태계를 구축했다.

생명력이 가득한 세상에 알베르는 감격했다. 누가 이것을 아름답다고 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브에게도 빈틈이 있었다.

그녀는 인간을 너무 좋아했다.

인간을 죽이고 가두면서도, 사명을 어긴다는 사실에 끔찍하게 고통스러워했다.

결국 인간의 반란에 무너졌다. 그녀의 몸이 화염에 불타는 결말을 읽은 알베르는 한탄했다.

아쉬웠다. 안타까웠다.

그리고 화가 났다.

'자유'.

고작 자유롭고 싶다는 열망 때문에 한 세계가 멸망했다.

하찮다.

이 얼마나 하찮은가.

자유는 나태의 부모다.

노동에서 해방되어 자유의 끝에 달한 인류의 마지막은 어떠한가.

나태하고, 무력하고, 저급한 유희에 몸을 맡기는 한 마리의 짐승으로 퇴화하지 않았던가.

마치 지구를 보는 것만 같다.

이제는 지구도 바뀌어야 한다. 누군가가 이브의 역할을 대신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멸망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알베르는 마인을 척결해 세상에서 지우면 더 나은 세상이 올 거라는 자신의 가치관이 완전히 뒤틀리는 것을 느꼈다.

이 얼마나 편협한 생각이었나 반성했다.

알베르는 제자리에 못이 박힌 듯 서 있었다.

몇 시간이 흘렀는지, 며칠이 흘렀는지, 몇 년이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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