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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마탑주-249화 (249/337)

나 혼자만 마탑주 249화

꽈아아앙!

갑자기 2층에서 폭발이 일어나며 샴이 바닥에 떨어졌다. 그녀의 몸곳곳에 깃털이 박혀 있는 게 보였다.

모두가 고개를 들어 2층을 바라보았다.

"놀랍군."

저벅. 저벅.

구멍 뚫린 벽으로 걸어 나온 알베르가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았다.

"이런 쇼를 준비했을 줄이야."

그러고는 천공성 아무 벽면에 손바닥을 짚었다. 그의 손바닥에서부터 벽면에 혈관이 이어진 것처럼 푸른선이 번뜩였다.

쿠르르르르릉!

"우왓!"

"큭!"

주위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모두들자세를 낮추거나 근처에 잡을 만한 것들을 붙들었다. 천공성이 비행을 시작했다.

유신은 이어마이크를 작동시키며 말했다.

"사미아. 준비해요."

-알겠다.

여차하면 바로 마탑을 떨어뜨려 가라앉힐 생각이다.

그때, 몸에 깃털이 박힌 샴이 휘청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까득!

그녀가 깃털을 뽑아 바닥에 떨어뜨릴 때마다 큰 소리가 나며 바닥이 찌그러졌다.

"항복하게. 성주."

그녀가 말했다.

"아무리 자네라고 해도, 4:1은 이길 수 없어."

마탑, 유령대, 성기사단, 사자선단 모두가 천공성에 있다. 수장들도 한 자리에 모였다.

아무리 공인 1급이라고 해도 이 상황은 가혹해 보였다.

"글쎄."

알베르의 날개가 눈부신 빛을 발하며 부풀었다.

"승패는 마지막까지 모르는 법이지."

펼쳐진 한 쌍의 날개가 알베르의 몸을 빈틈없이 감쌌다. 마치 웅크린 달걀과도 같은 모습이 되었다.

"……뭐 하는 거야?"

"뭔진 모르겠지만 가만히 둘 수 없죠."

마르첼로가 십자가를 붙잡았다.

"천벌을 내리겠습니다."

알베르의 몸통 위로 거대한 십자가가 드리워졌다. 이질적인 충격음과 함께 화려한 빛의 산란이 사방에 흩날렸다.

카지지지지지직!

십자가와 알베르가 맞닿은 부분에서 연신 불똥이 튀어 올랐다. 하지만 알베르는 뚫리지 않았다.

"비켜."

샴이 자세를 낮추었다. 그녀의 등이 갑각화되며 등껍질로 변하더니, 순식간에 증식하여 수십 문의 포문이 열렸다.

이내 그녀는 3층의 등껍질을 짊어진 형태가 되었다.

<맹포>

일흔 문이 넘는 화포에서 일제히 물줄기가 발사되어 알베르의 몸통에 쏟아졌다.

위에는 마르첼로의 십자가, 정면에는 샴의 화력이 퍼부어지고 있었지만 알베르가 유지하고 있는 저 형태는 멀쩡했다.

"준비해 마리. 다음엔 우리 차례야."

"응."

유신과 마리가 준비했다.

시간이 지나 십자가와 물줄기의 화력이 줄어 들어버린 그때, 알베르를 감싼 날개가 순간적으로 확 펼쳐졌다.

"……!"

녹색의 돌풍의 일어나 알베르를 중심으로 퍼져 나갔다.

말도 안 되는 위력이었다. 가공할만한 압력에 유신의 몸이 뒤로 밀려난다.

유신은 다급히 발에 마력을 집중한 다음, 글루 마법을 사용해 버텼다.

마리도 소울오러를 자신의 몸에 둘러 화력을 약화시켰다.

"이런…!"

주위의 헌터들이 천공성 밖으로 날아갔다. 거기에 샴 또한 등껍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밖으로 떨어져 버렸다.

돌풍은 천공성의 모든 유리창을 깨트리고 벽마저 무너뜨렸다. 천공성은 어느새 아름다운 모습을 잃고 앙상한 철골만 남은 형태로 바뀌었다.

성을 완벽히 장악했던 4개 세력의 헌터들은 대부분 날아가 버린 상황이었다. 소수의 인원만 풍압을 버텨냈다.

'망할!'

천공성주의 전략을 파악한 유신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모두가 날아간 뒤, 하늘에 떠오른 천공성에 올라탈 수 있는 건 날개가 있는 이카루스의 헌터들뿐이었다.

주위가 날개 달린 헌터들로 하나둘 채워졌다. 압도적 우위를 점하던 병력 수가 순식간에 열세로 변했다.

"날 궁지에 몰았다고 생각했나?"

알베르가 말했다.

"그대들이 내 본거지에 기어들어온 것부터가 승부는 난 싸움이다."

표정을 굳힌 유신은 이어마이크에 손을 올리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사미아. 마탑 전이 준비는요?"

-준비는 마쳤지만 문제가 있다.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마탑 전이는 워프 좌표를 지정하고, 그 자리에 마탑을 소환하는 형식이다. 마탑이 소환되는 데는 3분 정도가 소모된다.

"네,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천공성은 의도적으로 속도와 방향을 바꿔가며 비행 중이다.

"아……"

저번에 몰타 공화국에서 마탑을 떨어뜨렸을 때는 천공성의 위치가 고정되어 있어서 쉬웠다.

위아래 Y축 방향으로 움직이는 정도야 마탑을 해당 좌표에 소환해서 떨어뜨리면 그만이지만, 문제는 천공성이 좌우 X축으로도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좌표를 지정해도, 지금 천공성의 속도로 보면 그냥 좌표를 지나쳐 버릴 가능성이 높다.

천공성의 방향이 일정하다면 속도를 계산해 떨어뜨릴 수 있겠지만, 천공성은 의도적으로 속도와 방향을 바꾸고 있다.

'틀림없이 마탑 전이를 신경 쓰고 있는 거야. 두 번은 안 당한다는 거지?'

이렇게 되면 해결책은 두 가지다.

현재 천공성을 움직이고 있는 알베르를 쓰러뜨리거나, 혹은 천공성의 비행에 신경 쓰지 못할 정도로 그를 한계까지 몰아붙이거나.

"쳐라."

알베르의 명령에 모든 천공성의 헌터들이 날개를 펼치며 달려든다.

부우웅!

칼날이 유신의 머리 몇 가닥을 자르며 지나간다. 가뿐히 고개를 꺾어피한 유신은 발을 앞으로 내디디며 허리를 비튼다.

쩌어어엉

건틀릿을 두른 주먹이 정확히 적의 안면에 틀어박힌다.

"네놈!"

하늘에 떠오른 천공성 헌터가 유신에게 총구를 겨누었다.

유신은 재빨리 쉴드를 펼쳐 날아오는 총탄을 막고는 상대를 향해 손바닥을 펼친다.

"……?"

그대로 힘주어 주먹을 쥐자, 헌터의 날개 뒤편이 폭발하며 추락한다.

"저기 마탑주가 있다!"

"또 무슨 수를 쓸지 몰라! 놈부터 잡아!"

하지만 한두 명 잡는 것으로는 끝도 없다. 하늘에서 천공성 헌터들이 계속 내려오고 있는 그때, 마리가 이어마이크에 손을 올랐다.

"들어와."

쩌적!

허공이 유리 파편처럼 금이 가며 갈라졌다.

난전이 펼쳐지며 아무도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는 사이, 하늘이 깨져나가며 투명한 선박 하나가 천공성으로 돌진했다.

'저게 유령선이구나!'

유신이 입꼬리를 올렸다. 진입 시점을 맞추며 기다리고 있던 게 좋은 판단이었다.

쿠쿠쿠쿠쿠쿠쿠쿵!

유령선이 천공성에 들이박으며 지면이 거칠게 떨렸다. 유령대의 헌터들이 갑판에서 도약해 각자의 포인트에 자리 잡는다.

-쏴라.

유령선에 장착된 대포가 올라오더니 맹렬한 포성을 터뜨리며 사방을 초토화시킨다.

혼령화된 헌터들이 원거리 공격으로 날아오는 헌터들을 격추시켰다.

소울오러가 닿자 이카루스 날개가 밀랍처럼 녹아내린다.

"김유신! 놈이 도망쳐!"

마리가 소리쳤다.

전황이 팽팽해지자 알베르가 위층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아까 전의 그 돌풍 때문에 벽과 유리창 등이 무너지고 앙상한 철골만 남았지만, 꼭대기 층만큼은 멀쩡했다. 저곳만 유난히 튼튼해 보였다.

"여기는 유령대에게 맡기고, 우리는 조금 서두르죠."

마르첼로가 십자가 목걸이를 붙잡았다. 사방으로 백색의 섬광이 몰아치는 듯한 효과가 지나가더니, 전면의 천공성 헌터들이 비처럼 후두둑 떨어졌다.

'역시 아크 비숍.'

마르첼로, 한윤정, 샴, 마리. 세계길드를 다스리는 공인 2급들의 화력은 대단한 수준이었다.

차세대 공인 1급이라고 불리며, 사실상 그 경지에 가장 가까운 최정상의 2급들이다.

같은 공인 2급이라는 카테고리 안이라도 실력 차는 크다. 나이트 워커를 상대하게 됐을 때 유신은 자신만만 했지만, 과연 이 사람들까지 이길 수 있을까?

지금은 같은 편이라는 사실이 더 없이 다행스럽게 여겨질 뿐이었다.

"가시죠. 김유신 헌터."

"네."

상대가 아무리 공인 1급이라도, 이쪽은 정상급 공인 2급 두 명에 자신까지 있다.

해볼 만하다. 유신은 자신감이 붙는 것을 느끼며 올라갔다.

달려드는 천공성 헌터들을 쓰러뜨리며 유신 일행은 꼭대기 층으로 들어왔다. 벽면이나 바닥이나, 여기는 건물의 재질부터가 다른 것 같았다.

이 천공성을 구동시키는 핵심구역이라 단단한 게 아닐까, 유신은 생각했다.

-이 재질, 아다만티움이로군요.

에아가 말했다.

'마나 광산에 나오는 그 엄청 튼튼한 광물 맞지?'

-네, 천공성에서 이 광물의 가공기술을 보유했다니 놀랍군요.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끼며 유신은 걸어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알베르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이런 와중에도 의자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잠시."

알베르가 팔을 들어 막았다.

"이것만 마시고 시작하지."

"……."

이런 차 중독자 새끼…….

유신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당신의 계획은 모두 막혔습니다. 이제 전 세계에 해독제가 공급되고 있어요. 지금이라도 포기하고 체포에 응하세요."

"내가 말했지 않나. 이번 계획은 시작에 불과하다고."

알베르가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이어 말했다.

"천공성은 현재 파키스탄의 카라치와 인도의 델리로 향하고 있다."

"……?"

"세계에서 손꼽히는, 인구수가 많은 도시들이지. 이곳에 텔로스 감염성분으로 이루어진 탄두를 직접 떨어뜨릴 것이다."

이야기를 들은 모두의 얼굴에 핏기가 싹 가셨다.

"헌터라면 모르겠지만, 항마력 없는 일반인이라면 버티기 힘들겠지. 탄두가 남는다면 가는 길에 상하이, 서울, 도쿄 정도에도 떨어뜨리면 괜찮겠군."

"대체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야?"

마리가 버럭 소리 질렀다.

"이건 그냥 일방적 학살이야! 이런 게 정말로 인류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소용없습니다, 마리."

마르첼로가 말했다.

"이미 엇나간 사람입니다. 사실상 마인이라고 생각하는 게 맞겠죠."

"……."

알베르는 묘한 미소를 흘리며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러곤 유신을 보았다.

"그럼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나? 마탑주."

모두의 시선에 유신에게로 향했다.

유신은 눈썹을 긁적이며 헛웃음을 흘렸다.

"난 당신과 같은 사람을 하나 알아."

"……?"

"모든 걸 혼자 짊어지려 하다가 세계 하나를 통째로 말아먹은 사람이 있어. 본인도 정말 후회하고 괴로워했지. 그런데 이상한 게 뭔 줄 알아? 자기 독단으로 세계를 망쳐놓고도 그 미련을 못 버리는 거야."

유신이 어깨를 으쓱했다.

"나는 틀리지 않았어. 변수 때문이야. 여기서 이게 이렇게 됐으면 어땠을까? 그냥 자기가 한 결과물이 폭망이란 걸 알아도 고집을 꺾지 않더라고."

유신은 자신에게 암흑 마법을 가르쳐 준 남자를 떠올리며 웃었다.

"사람의 마음이란 게 참 웃기단 말이야. 사실 지들도 알거든. 이게 나쁜 짓이고, 미친 일이고, 실패할게 뻔한 거란 걸. 그런데도 미련을 못버려.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해. 아 진짜 이유가 뭘까?"

알베르의 표정이 서늘하게 변했지만 유신은 계속 말했다.

"병적인 아집이라고 해야 하나? 뭐, 답이 안 나오더라고. 이런 상태에 들어간 인간에게 진실이란 건 중요치 않아.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보고 싶은 것만 보지."

"우습군. 마탑주."

알베르가 찻잔을 내려놓았다.

"내가 지금의 결론을 내리는 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을 거라고 생각하나? 자네는 상상하기도 힘든 긴 시간 동안, 나는 인간성과 감정을 배제한 채 고찰하고 계산하고 고뇌하고 사색했다. 인류가 살아남는 길은 이제 이 방법밖에 없어."

"생각의 양은 중요하지 않아. 그무수한 생각들이 네 주장의 근거와 변명만 채워줄 테니까. 다만 확실한건 인류는 하나 되어 부딪혀야 해. 싸우는 사람도 필요하지만, 싸우지 않는 사람도 필요해. 그들이 사회를 구성하고 생산활동을 하면서 우리는 헌터로서 생활을 유지할 수 있고, 싸울 희망과 이유를 얻는 거야."

"생활 따위를 유지하는 건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아. 이제는 인류도 생사가 걸린 문제다."

유신은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대화가 통하지 않음을 느꼈다. 두번이나 시도했고, 이 정도면 충분히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알베르는 찻잔을 마저 비우고는 내려놓았다. 그러곤 카트에 힘을 주어밀었다. 굴러 가던 카트가 벽에 툭하고 부딪혔다.

"오래 기다리게 했군."

자리에서 알베르가 눈을 번뜩였다.

"간단하다. 내가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면, 천공성이 파키스탄에 도착하기 전에 나를 막아라."

유신이 오른발에 데바스타를 켜고는 바닥에 붙이고 몸을 숙였다.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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