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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마탑주-246화 (246/337)

나 혼자만 마탑주 246화

환자가 볼만한 내용은 아니지만 뭐…… 세계길드의 수장이 보고 싶다니까.

나는 동영상을 재생해서 그녀에게 내밀었다.

그녀는 심각한 표정으로 내 스마트폰을 보았다.

'OUT! OUT!' 하는 외침들이 스피커에서 쏟아진다.

"난리가 났네."

"그래."

"해독제를 못 찾으면 더 난리 나는 거야?"

그녀의 물음에 나는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아마도 그렇겠지."

가족, 친척, 친구, 애인, 소중한 사람들을 잃게 된 사람들의 분노는 여과 없이 연맹에 쏠릴 것이다.

과연 연맹은 그 어마어마한 양의 분노를 감당할 수 있을까? 이 사태가 파국으로 끝나도, 연맹은 계속 '인류의 대표'라는 타이틀을 지킬수 있을까?

대답은 NO.

파국이 일어나기 전에, 나는 반드시 유령대의 도움을 끌어내야 했다.

마리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가운데,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가 들렸다.

"일어나셨습니까? 마리 님."

"응."

유령대의 2인자 마르케스. 마리가 깨어났다는 소식에 바로 들어온 것 같았다.

그때 마리가 손가락을 뻗었다.

"마르케스, 새까매."

"……."

그는 목까지 올라오는 감색 터틀넥을 입었지만, 턱밑까지 검은 혈관이 보일 정도로 발달해 있었다. 그가 애써 웃어 보이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그보다 마리 님이 몸을 추스르셔야 합니다. 재앙에 이어 사자선단과의 전투까지. 많이 지치셨습니다."

"응."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대충 상황이 정리됐을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내가 마르케스를 돌아보며 말했다.

"사자선단에서 그쪽 유령대를 공격한 이유. 아직도 알아내지 못한 겁니까?"

마르케스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예, 사자선단에서는 어떤 통보도 없었고, 어떤 이유도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정식으로 연맹에 항의 문헌을 보냈지만 지금 그쪽에서 우리 일을 중재해 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렇네요. 지금 미친 듯이 바쁠테니까요."

조직의 존속이 걸린 문제에 당면 한 연맹은 길드 간의 분쟁에 중재할 여력이 없다.

물론 그전에 연맹 최상층부가 해독제를 가진 알베르에게 묶여 있으니까 외부 헌터 파견도 기대할 수 없다.

우리끼리 해결해야 한다.

"짐작 가는 건 있어."

마리가 말했다. 나와 마르케스가 동시에 그녀를 바라보았다.

"뭔데?"

"알베르가 내게 연락했었어."

……욕 나올 정도로 빠르다. 그렇게 서둘렀는데 이번에도 한발 늦은 거 였다니.

"자기 쪽으로 들어오라는 내용이었지?"

"응."

"어떻게 대답했는데?"

"마리 님은 거절하셨습니다."

마르케스가 대신 대답했다.

"우린 그 문제에 신경 쓸 겨를이 없으니 그쪽 일은 그쪽끼리 알아서 하라고 하셨죠. 알베르는 탐탁지 않아 하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리고 마리 님이 돌아오기 전, 사자선단이 알베르에게 붙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자선단이 나타나서 유령대를 공격했다는 거네요."

냄새가 난다.

내가 샴에게 공격의 명분을 밝히라고 요구하자, '너는 알 거 없다'라는 식으로 일축했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쉩터에서 샴을 만났을 때, 그녀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샴은 누구보다 해독제가 절실한 인물이었습니다. 알베르는 그 점을 파고들었고, 해독제를 대가로 사자선단을 움직여 자신이 적이 될 지도 모를 유령대를 공격하도록 했다. 지금은 그렇게 해석하는 게 최선이겠네요."

마르케스가 팔짱을 끼며 내 말을 이어나갔다.

"타이밍도 절묘했습니다. 재앙의 규모를 생각하면 이틀은 더 걸리는 일정이었습니다. 본진이 카르텔의 공격을 받고 있다는 소식에, 마리님이 조금 무리해서 계획보다 빠르게 클리어한 겁니다. 만약 예상시간대로 진행됐다면, 유령대는 지금 쯤 유물을 빼앗기고 해체의 위기를 맞았겠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마리를 보았다.

"마리. 약속은 기억하지?"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했겠지만, 내 부탁은 함께 알베르와 싸워달란 거야. 알베르는 이번 일의 흑막이고 원흉이야. 마인일 가능성도 있지. 나도 내 동료의 목숨이 걸려 있지만 그런 놈과 협상할수는 없어."

"……."

"놈에게 굴복하고 해독제를 받는다면, 이번 한 번은 어떻게든 넘어갈수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그다음은? 어떤 경우에도 인류가 마인에게 굴복하는 선례를 남겨선 안 된다고 생각해. 놈들은 우리 약점을 잡고 죽을 때까지 휘두를 거야."

내가 진지하게 그녀의 눈을 보았다.

"나와 함께해 줘. 마리."

그녀는 심경이 복잡한 듯 고개를 숙였다.

"크흠, 흠! 마탑의 입장은 알겠습니다."

"……."

마르케스가 말했다.

"죄송하지만 잠시 자리를 비워주시겠습니까? 마리 님과 이야기를 해봐야……"

"할게."

마리가 이불을 치우며 말했다. 상의 없이 튀어나온 대답에 마르케스의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마, 마리 님!"

"약속은 약속이야. 그리고."

그녀가 시선을 돌려 내 스마트폰을 바라보았다.

"세계길드로서 이번 사태를 계속 못 본척할 수는 없어."

"마리 님! 하지만……"

"미안해, 마르케스. '우리'는 결정했어."

그녀가 마르케스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해독제는 반드시 구해올 테니까 걱정 마."

"마, 마리 님. 그런 문제가 아닌……"

입을 달싹이던 마르케스가 이내 체념한 듯 고개를 숙였다.

"……예, 알겠습니다."

나는 미소 지었다. 이걸로 우리 측에 유령대가 정식으로 합류했다.

'이제 알베르가 어디로 도망쳤는지만 알아내면 되겠네.'

결전의 매치업이 정해졌다.

마탑, 묘지기, 성기사단, 유령대가 한 팀.

천공성과 사자선단의 연합을 상대한다.

* * *

수억 명의 목숨이 걸린 감염 사태가 진행되는 중이지만, 그와는 별개로 세계엔 다시 한번 새로운 재앙이 내려왔다.

남아메리카에서는 대륙 범위의 재앙이, 파푸아뉴기니에서는 8랭크 재앙이 열렸다.

특히 남아메리카 재앙의 예상 사상자는 약 2억 6천만 명. 협회장과 홍연도 연맹 지원에 차출되어 그쪽으로 갔다.

전 세계로 퍼져 나간 '반 연맹 시위'도 여전히 골치 아픈 문제였다.

현재는 무장폭동으로 까지 발전했는데, 마인들이 뒤에서 폭동을 주도하고 있다는 정황이 발견됐다.

그동안 잠잠하던 마인들은 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틈타 각국의 주요 헌터 시설들을 타격하기 시작했다. 전세계에 마인 경계령이 내려졌고, 모든 헌터들은 비상이 걸렸다.

외부 지원은 더더욱 기대할 수 없는 상황. 그래도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은 모두 다 해놨다.

우선 오라클을 동원해서 잘못된 사실을 바로잡았다. 이제 감염약의 주재료가 크롤로스의 타액이 아니라 텔로스의 타액이라는 사실을 전 세계가 알게 됐다.

현재는 제약 업계뿐만 아니라 각국정부에서 직접 시설을 만들고 해독제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사람들에게 빠르게 전달할 유통 루트도 마련해 둔 상황, 이제 누가 해독제의 레시피를 발표하기만 하면 되는데…….

해독제는 좀 처럼 만들어질 기미가 없었다. 기다리다 지친 사람들은 GOT와의 협상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부르짖고 있다.

그 외에도, 마탑의 마나는 마법사 후보생들을 동원해 충분히 채웠다.

나대용의 보고에 의하면 후보생들 전원이 눈이 돌아가서 1~2구역 몬스터의 씨를 말려 버렸다고 한다.

덕분에 마탑 전이를 여유 있게 쓸 수 있게 됐다.

정서진과 알케미아도 정부의 '해독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막대한 지원금을 받으며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다들 앞으로의 전투를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나도 6층 마나 광산에서 콤보를 연습하고 돌아오는 길이다.

그리고.

"보라야, 쉬엄쉬엄하라니까."

꽤 진행된 듯 피부에 검은 혈관이 선명히 드러난 진보라가 마법 솥 앞에서 포션을 만들고 있었다. 그녀가 국자를 휘저으며 대답했다.

"전 괜찮아요."

"……안 괜찮아 보이는데."

"진짜예요. 그냥 좀 피곤하고 몸이 무거울 뿐이지, 움직이는 건 문제없어요."

그녀가 선반에서 포션병을 꺼내 이리저리 살피며 말을 이었다.

"감염됐다고 침대에 틀어박혀 세상 다 산 사람처럼 구는 건…… 너무 바보 같잖아요. 죽기 직전까지 발버둥 칠 거예요. 내 힘으로 해독제를 만들어내고 말겠어요."

그녀는 1층 관리자로서 알케미아의 정서진과 협력해 해독제 개발에 착수하고 있었다. 미약하지만 어느 정도 성과도 있다고 들었다.

"……보라야."

"네."

"알베르 건 말인데."

"필요 없어요~ 그런 해독약은."

나는 놀란 얼굴로 그녀를 보았다.

그녀는 손에 든 병의 재료를 흔들다가 솥 안으로 집어넣었다. 솥에서 파란색 연기가 피어올랐다.

"알베르가 정말로 해독약을 가졌는 지도, 군말 없이 줄지도 확실하지 않다면서요. 옳지만 불확실한 가능성과, 옳지 않고 불확실한 가능성. 어느 쪽이 더 좋을지는 뻔하잖아요? 저 때문에 선배님이 신념을 꺾는 건 싫어요."

나는 잠시 벙찐 얼굴로 있다가 웃었다.

"자존심 상하네."

"응? 뭐가요?"

"그동안 네가 나보다 몇 배는 더 철든 것 같아서."

"헤헤, 그런가요? 음, 침대에 누워질질 짜다가도 막상 죽을 때가 가까워지니까 그냥 기분이 차분해지는 거 있죠?"

힘주어 국자를 젓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나도 머리를 식혔다.

사실 이쯤 되면 과몰입 때문에 멘탈이 나가야 하는데, 지금 내가 이런 컨디션을 내는 건 순전히 진보라가 신경 써준 덕분이었다.

그녀는 정말로 아무렇지 않다는 듯 편하게 나를 대해주고 있었다.

"탑주!"

허공에서 빛무리와 함께 에아가 나타났다.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무슨 일인데?"

"알베르의 위치를 알아냈습니다."

……드디어! 나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서진이랑 보라 제외하고 전원 전투 준비해서 내려오라고 해."

"알겠습니다."

"선배님! 이쪽도 전화 왔어요!"

진보라가 진동이 울리는 내 스마트폰을 가져다주었다.

정서진의 연락이었다.

"응, 무슨 일이야?"

정서진의 이야기에 나는 입꼬리를 올렸다.

참고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좋은 소식들이 연달아 터져 나오고 있다.

* * *

"자, 자, 서두릅시다!"

"에아 언니야! 3층에 골렘들 옮겨줘!"

"내 고글 본 사람?"

전투 가능한 마탑 멤버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모두들 헌터슈트를 착용하고 장비를 점검했다. 나 또한 스펙터를 꺼내 들고 준비를 마쳤다.

"에아, 천공성의 위치는?"

"핀란드의 카이텔입니다."

"이번엔 핀란드구나."

짧은 시간 동안 세계 여행 한번원 없이 하는 것 같다.

이번 핀란드가 마지막 출장이 됐으면 좋겠다. 실타래처럼 엉켜 있는 이 모든 사태를 다 끝내 버리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한국에 돌아가고 싶다.

"자, 주목."

내가 손뼉을 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두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이번 마나 광산 이벤트로 '마탑전이'가 가능한 만큼 마나를 보았습니다. 그래도 전이할 기회는 사실상 딱 한 번이에요."

4층팀이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은 제가 핀란드에 가서 상황을 보고, 마탑이 내려 올 위치 좌표를 사미아에게 전송하겠습니다. 여러분은 마탑이 핀란드에 도착한 뒤에 전투에 돌입하면 됩니다."

"네!"

모두가 일제히 대답했다.

"미리 말해두겠지만 상대는 몬스터가 아니라 인간입니다. 정말로 위험한 전투가 될 거예요. 대다수가 공인 4급 이상의 실력자들이니까 공격보다는 생존에 집중하세요."

"알겠습니다!"

그래도 4층팀 다섯 명이 똘똘 뭉치면 어중간한 공인 4급한두 명이 달려들어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차하면 3급인 사미아도 있다.

그녀를 정면승부로 이길 수 있는 헌터는 천공성에서도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내가 워프게이트를 타러 나가자 나대용이 경례를 올려붙였다.

"다녀오십쇼 스승님! 핀란드에서 뵙겠습니다!"

"네."

나는 씩 웃으며 소매를 당겨 헌터슈트를 입었다.

"한 방 먹여주러 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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