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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마탑주-245화 (245/337)

나 혼자만 마탑주 245화

"하는 수 없지."

유신의 도발에, 샴은 더욱 자세를 낮추며 말했다.

"살고 싶다면 알아서 물러서게!"

촤르르르르르륵!

무수한 마력 촉수들이 유신과 마리에게로 뻗어 나갔다. 이에 유신은 손바닥에 펼쳐진 마법진을 발동시켰다.

<프로메테우스>

마법진에서 일어난 화염의 거인이 4층폭의 진'을 연달아 통과해 나아갔다.

거인의 몸뚱이 곳곳을 샴의 촉수들이 뚫고 들어갔고, 고열로 촉수들이 불타 사라졌지만 대신 프로메테우스도 형체가 무너져 지면으로 떨어진다.

그 모습은 마치 하늘에서 분화한 마그마와도 같았다.

"피해!"

지상에서 뒤엉켜 싸우던 양측 헌터들이 떨어지는 프로메테우스의 파편을 피하려 물러섰다.

화르르르르륵!

순식간에 지면 한복판에 용암의 강이 형성되는 모습에 다들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사이 유신은 발 빠르게 움직였다.

<데바스타>

검은 연기와 함께 유신의 몸이 등껍질을 짊어진 샴의 코앞으로 나타났다. 눈을 부릅뜨는 샴의 앞으로, 유신이 등에 멘 스펙터를 일직선으로 휘두른다.

까앙!

샴의 팔이 갑각화되어 스펙터를 막아냈다.

그러나 진짜는 이쪽. 스펙터의 겉면에 펼쳐진 마법진이 샴을 사정권안에 넣었다.

'다시 한번!'

<프로메테우스>

화아아아아악!

이번 화염 거인은 초근접거리에서 샴의 몸을 덮쳤다. 유신은 그녀가 집어삼켜지는 것을 보며 슬쩍 뒤로 물러났다.

'제대로 맞았어. 방어 효과도 안보였다.'

그녀가 입은 헌터 슈트가 얼마나 고성능인지는 모르겠지만, 저걸 맞고 무사하지는 못할 것이리라.

그렇게 생각하는 그때, 잠잠하던 70문의 포대가 아래를 향해 움직였다.

"……큭!"

유신이 몸을 날렸다. 70문의 물대포가 레이저처럼 발사되어 바닥을 파괴하며 지나갔다. 유신의 몸이 돌바닥을 구르며 멈춰섰다.

'설마 살아 있는 거야?'

꾸드득! 꾸득!

무수히 많은 소라 어딘가에서, 텁!하고 껍데기를 짚는 여자의 손이 보인다. 유신의 눈이 커졌다.

"거의 십여 년 만이구나."

온몸이 끈적한 액체로 뒤덮인 나체의 여인이 소라 껍데기에서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이 기술을 쓰는 건."

샴은 젊어져 있었다.

주름살 가득했던 얼굴은 온데간데 없고, 깨끗한 피부와 탄력 있는 몸까지. 완전히 새로 태어난 것만 같았다. 예전과 같은 건 하얗게 세어버린 머리카락뿐.

"빠르다 빠르다 말만 들었지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 나도 늙었는 걸."

많이 잡아도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성이 그렇게 말했다. 말투는 샴이었지만 목소리는 젊은 여인의 그것이었다.

"이제 방심은 없어."

그녀가 가느다란 손가락을 뻗어 유신을 가리켰다.

그것을 신호로 70문의 소라 껍데기에서 푸른 빛이 모여들더니 다시 한번 물줄기들이 쏟아졌다. 유신은 오른발을 접어 데바스타를 켠 다음 지면을 강하게 밟았다.

후우우웅!

그의 몸이 하늘로 솟구치고, 그가 있던 자리에 무수한 물줄기들이 쏟아져 주위의 나무와 바위 따위들을 초토화했다.

"흠."

샴이 웃는 얼굴로 턱을 괬다. 마치 야외 반신욕이라도 즐기러 나온 듯 여유로운 태도였다.

유신은 공중에서 당혹스러운 웃음을 흘렸다.

'……대체 뭐냐고, 저 능력.'

"숫자를 좀 더 늘려볼까?"

그녀가 그렇게 중얼거리며 소라 껍데기의 표면을 고요히 쓸었다. 70문이던 소라들이 부풀어 오르며 또 다른 소라들이 표면에 증식하기 시작했다.

말릴 수가 없었다. 소라는 100문을 넘어서, 처음에 두 배를 넘은 140문을 돌파하더니, 이내 200문까지 만들어졌다.

"김유신."

"?"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유신은 고개를 돌렸다.

"비켜."

두 팔을 뻗은 마리의 위로, 회색빛태양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초대량의 소울오러를 본 유신은 마법사로서 본능적으로 몸서리쳐지는 것을 느꼈다.

"하아아아아아앗!"

마리가 소울오러로 만든 태양을 내던졌다. 샴은 여전히 턱을 괸 채로 팔을 뻗었다.

그녀의 명령에 200문의 뿔소라 껍질에서 물대포와 촉수 따위가 하늘로 쏟아져 나갔다.

쿠구구구구구구구구!

순수한 힘의 격돌.

그로 파생된 거대한 후폭풍에 헌터들은 날아가지 않도록 온갖 애를 써야 했다. 하늘에서 지켜보던 유신도 혀를 찼다.

'역시 세계길드의 수장들은 달라. 공인 2급이라도 다 같은 공인 2급이 아니구나.'

마리의 소울오러는 샴의 공격을 태워 나가며 크기가 점점 줄어들었지만 착실히 전진해 나갔다.

이제는 샴의 코앞까지 왔다. 샴도 위기감을 느꼈는지 포문의 수를 300문까지 늘려 총공세로 대응했다.

콰아아아아아!

결국 소울오러는 샴의 바로 정면에서 증발했다.

"마리!"

정신을 잃은 마리가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었다. 유신이 날아가 그녀의 몸을 받아냈다.

빈틈을 보였지만, 샴 또한 피로가 역력한 표정으로 이마를 짚고 있는 것이 다시 공격을 할 여력은 없어 보였다.

"힘내세요 제독."

이런 기회를 썩힐 유신이 아니다.

그가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오른팔을 뻗었다.

"2 :1이잖아요?"

스펙터의 손잡이가 손 안으로 들어왔다.

오늘 하루만 두 번의 5공정.

여유 있게 말했지만 유신도 슬슬 한계였다. 기절을 피하긴 힘들 것 같지만 어쩔 수 없다. 조금은 무리해서라도 확실히 샴을 쓰러뜨려야했다.

웅성웅성.

"……뭐야?"

"눈?"

하늘에서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구름 사이로 초대형 마법진이 드러난다.

<블리자드 그라운드>

주위의 기온이 뚝 떨어지고, 칼바람과 함께 눈보라가 몰아친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못한 샴은 추위를 느끼는 듯 어깨를 쓸었다.

"소용없네. 마탑주."

그녀가 말했다.

"그 마법의 영상은 본 적 있어. 내가 여기서 움직이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나?"

"아니겠죠."

유신이 손가락으로 옆을 가리켰다.

"하지만 저 친구는 어떨까요?"

유신은 처음부터 샴을 노리지 않았다. 눈보라는 괴수 '쉘터'에게로 휘몰아치고 있었다.

-키이이이이이이!

절지류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딱봐도 추위에 약하게 생겼다. 유신은 쉘터를 통째로 공략할 생각이었다.

괴수가 고통스럽게 울부짖었다. 몸곳곳에 눈이 쌓이기 시작한다.

빠져나가려고 했지만 워낙 몸이 무겁고 커서 여의치 않았다. 마력과 체온을 빼앗는 눈의 마법은 서서히 괴물의 숨통을 조여가고 있었다.

눈보라가 점점 더 힘을 받아 거세지려는 순간.

"알겠네, 알겠어."

샴이 두 팔을 들었다.

"항복이야."

"……."

유신이 그녀를 돌아보았다.

"제독과 선단의 명예를 걸고, 이 이상의 공격 없이 물러나겠네. 그러니 우리 아기를 못살게 구는 저 눈보라를 거두어줬으면 좋겠군."

"……음."

"그게 아니라면 멸망전을 원하는겐가? 그런 결말도 나쁘지 않지."

쉘터를 죽이는 건 어렵지 않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샴과 선단은 어떻게든 끝장을 볼 생각으로 덤벼들 것이다.

어디까지나 메인은 천공성주.

감정에 치우쳐서는 안 된다. 여기서 피차 괴멸하는 건 천공성주가 가장 바라는 시나리오일 터.

더 이상 그의 뜻대로 놀아날 순 없다.

"좋아요. 대신 저도 조건이 있습니다."

"말하게."

"알베르에 붙으면서 차단했던 저희쪽 통신 루트, 열어놓아 주세요."

"……."

유신의 진정한 목적은 이쪽이었다.

샴이 미간을 구기며 유신을 올려다보았다. 무슨 의도인지 가늠해 보려는 것 같지만, 유신은 그저 웃는 얼굴로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알겠네, 제안을 받아들이지."

그녀는 한숨을 쉬더니 선단의 헌터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퇴각한다. 바다로 돌아가자."

"예!"

사자선단이 퇴각을 시작했다. 유신도 순순히 블리자드를 마법을 중지했다. 눈보라가 걷히고 기진맥진한 쉘터가 바닥에 퍼질러졌다.

선단의 헌터들이 다가와 괴수에게 마력을 불어 넣어주고 체온을 높이려 애를 쓰는 모습이 보인다.

유령대 헌터들도 무기를 내리고 부상자 치료에 전념했다. 다들 분해하는 표정이었지만, 이미 체력적으로 기진맥진한 상태라 더 싸울 여유는 없었다.

유신은 품에 안겨 쓰러진 마리를 데리고 윙골렘의 고도를 낮추었다.

전쟁은 끝났다.

* * *

햇살 잘 비치는 창가의 침대에 소녀가 잠들어 있다.

유령왕이라고 불리는 멕시코 헌터협회의 실세이자 유령대의 수장, 마리 골드.

이렇게 어린 나이부터 몬스터들과 어른들의 전쟁에 휘말리게 된 그녀의 운명이 안타깝기도 하고, 그녀에게 목매고 의지할 수밖에 없는 멕시코의 현실이 씁쓸하기도 하다.

'새삼스럽게 뭘, 세상은 비극이지.'

나는 의자에 앉아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가끔 마리의 이마에 올려둔 물수건을 새 걸로 바꾸어주기도 했다.

그녀가 '으음' 소리를 내며 몸을 뒤척이더니 이내 새근새근 고른 숨 소리를 내며 잠들었다. 나는 다시 스마트폰으로 시선을 옮겼다.

세상은 난리가 났다.

사람들의 몸 곳곳에 검은 혈관이 두드러지게 발달했다. 학자들은 검은 혈관에서 추출한 성분을 분석해 몬스터의 '변이 세포'가 존재한다는 연구 결과를 밝혔고, 세계는 다시 한번 충격에 휩싸였다.

GOT의 협박을 허무맹랑 한 이야기로 알던 사람들, 그냥 감기처럼 혈관이 까매졌다가 다시 되돌아올 거라며 낙관적이던 사람들도 전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검은 혈관이 발현된 이후에는 바로 그 '변이 현상'이 나타난다.

빠른 사람은 일주일만 지나도 증상이 나타난다고 하니까, 여유 시간을 어림잡아 계산해 봐도 4~5일 정도 밖에 안 남았다.

나는 인터넷에 올라온 여러 영상을 넘겨 보고 있었다.

폴란드의 헌터 협회가 불타는 모습이 보인다. 격분한 시위대가 깃발을 휘날리며 목청껏 구호를 외친다.

폴란 드어라서 잘 모르겠지만, 간간이 들리는 영어를 들어보면 'GOT 와 협상해라!' 라는 뜻 같았다.

다음 영상을 보았다.

해독제를 개발 중이인 미국의 연구단지에는 사람들이 담벼락을 넘거나 철조망을 찢으며 단지 내로 침입하려 하고 있다.

여자들은 검은 혈관이 두드러지게 난 아이를 앞세우며 제발 우리 애를 살려달라며 울부짖고 있다.

다음 영상은 내가 몇 주 전에 방문했던 스위스의 연맹 본사의 상황이다. 본사 입구에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사람들이 새까맣게 몰려 들었다.

경비들은 굳은 얼굴로 마력소총을 겨누고 있고, 그 옆으로는 'OUT!

OUT!'을 외치는 성난 시위대의 목소리가 들린다. 곳곳에서 흰 연기가 피어오른다.

그 밖에도 GOT가 언급한 각 이슈들도 불이 붙었다. 성소수자들의 행진, 이슬람 여성들의 시위, 금융단지의 거대 은행에 기관총을 갈기는 사람들 등등.

세계는 더 없이 혼란스럽다. 머리가 지끈거렸던 나는 잠시 스마트폰에서 시선을 떼서 창밖을 보았다.

"……하아아."

창가로 기분 좋은 바람이 불었다.

스마트폰에서 시선을 떼기만 해도 세상은 이렇게 평온한데. 현실감이 점점 사라지는 기분이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침대에 누워 있는 마리가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김유신?"

마리는 경계하는 눈빛으로 이불을 끌어당겼다. 나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응, 나야. 언제 깼어?"

"……방금."

"이제 샴은 물러 갔어. 네 동료들도 무사하니까 걱정 안 해도 돼."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 곤고사리 같은 작은 손가락으로 내 스마트폰을 가리켰다.

"……그거."

"응?"

"보여줘. 아까 네가 보던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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