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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마탑주-242화 (242/337)

나 혼자만 마탑주 242화

내 합류로 전세는 빠르게 바뀌었다. 카르텔의 숫자는 많았지만 어중이 떠중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내가 카르텔의 뒤에서 놈들을 흔들며 골렘을 뿌려 댔고, 지휘관들을 골라 쓰러뜨리자 지휘체계가 혼란에 빠졌다. 뒤이어 안정을 찾은 유령대의 반격이 시작되며 상황은 정리됐다.

전투는 끝났다. 결박된 카르텔 조직원들이 한쪽 구석에 옹기종기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정말 큰 신세를 졌습니다."

나는 처음에 유령대의 우두머리로 알고 있었던 남자와 악수하고 있었다.

이 사람의 이름은 '엑토르 마르케스'. 물론 담당하는 건 내정과 외교 정도일 뿐이고, 진짜 리더는 유령왕 마리다.

이 사람은 이인자 정도 되는 듯하다.

"서로 돕고 살아야죠. 뭐."

나는 그와 악수하며 주위를 슬쩍 살펴보았다. 유령대의 본부 건물 일부가 불타거나 박살나 있었다.

"간당간당 하네요."

"이젠 뭐…… 익숙합니다."

마르케스가 덤덤하게 말했다.

"마리님이 재앙을 막느라 자리를 비우고 나면, 카르텔의 대대적인 공세가 시작됩니다. 불공평한 싸움이죠. 우리는 드넓은 멕시코 전체를 책임져야 하는데, 카르텔은 아니니까요."

"그냥 날 잡아서 확 박멸해 버리면 안 됩니까?"

마르케스는 고개를 저었다.

"카르텔을 박멸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점조직으로 구성되어 있고, 선량한 일반 시민과 카르텔이 구분되지도 않으니까요. 물론 그들의 전력도 만만치 않아서 이쪽도 큰피해를 감수해야 합니다."

"……으음."

"뭣보다 우리가 섣불리 움직이면, 카르텔은 내분을 멈추고 힘을 합쳐 우리에게 대항할 겁니다. 카르텔의 돈을 먹은 상부도 우릴 방해하겠죠."

어휴, 이유도 참 많다. 어른의 사정이란 건 복잡하다 복잡해.

"그건 그렇고 유령왕님은 언제쯤 오나요?"

"마무리 단계입니다. 재앙이 끝나는 대로 이곳으로 돌아오실 겁니다."

유령대 쪽에 빚은 만들어놨다. 하지만 이걸로 마리를 움직일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다.

멕시코는 멕시코 내부의 문제로 정신없어 보인다. 재앙을 정리하고, 돌아와서 카르텔이랑 싸우고, 다시 재앙이 벌어지면 그거 정리하러 가고.

한윤정의 이집트도 나일강의 통제구역 몬스터들 때문에 애를 먹고 있다고는 들었는데, 애들은 훨씬 심한 것 같다.

"그럼 제가 정식으로 하나 제안할게요."

"예?"

"이건 도움이 아내라 거래입니다. 제가 여러분을 적대하는 가장 큰 카르텔 하나를 무너뜨릴게요. 대신 앞으로 있을 알베르와의 싸움에서 유령대가 우리를 도와주는 겁니다. 어때요?"

마르케스가 눈을 깜빡였다.

"자세한 사항은 마리 님과 이야기 해 봐야 알겠지만…… 그게 가능합니까?"

"불가능할 건 없죠. 유령대는 멕시코 내에서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것 같지만, 전 그딴 거 없으니까요."

마르케스는 마리와 상의해 보겠다며 바로 통화를 위해 떠났다.

'그럼 나는 나대로 움직여 볼까.'

* * *

유령대 본부의 지하시설.

"명령이니까 준비는 했지만 유령대 길드원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카르텔 놈들이 보통 독한 게 아니에요. 고문도 협박도 회유도 안 통합니다. 어지간해선 정보를 불지 않을 거예요."

지금 내 앞의 방에는 일곱 명의 카르텔 조직원들이 눈과 입도 가려진 채로 의자에 묶여 있다. 나는 손안에 쥔 포션을 바라보았다.

진보라가 만든 '자백 포션'.

마시면 무조건 자백하는 그런 편리한 물건은 아니다.

조건이 엄청 까다롭다. 항마력이 있는 플레이어는 통하지 않고, 대상자가 양심의 가책을 받고 있어야 효과가 적용된다고 한다.

'이게 진짜 먹힐까?'

그래도 밑져야 본전. 한번 시도해보기로 했다.

나는 그들의 눈을 가린 끈을 먼저 풀어준 다음, 앞에 보이는 스크린에 다큐멘터리를 틀었다.

멕시코 정부의 지원으로 만들어진 카르텔 다큐멘터리다.

'범죄와의 전쟁'을 홍보하고 여론을 진정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었지만, 방영 하루 만에 영상 제작자들이 킬러들에게 무참히 썰려 죽고, 카르텔의 지원을 받는 정치인과 주민들까지 들고일어나며 결국 방영이 정지됐다.

나는 영상을 틀어놓고는 뒤에서 놈들의 반응을 살폈다.

뭐, 역시 별 반응이 없다. 녀석들은 고개를 돌리거나 하품을 하거나 막힌 입으로 '읍읍'거리며 악을 지르고 있다.

'……다 좋은데, 내가 봐도 영상이구려.'

공영방송에서 만들었다는데, 너무 교육적인 측면을 강조하다 보니 재미가 없다. 마약은 나쁘다는 소리를 너무 오랜 시간 풀어서 설명하는 것 같다.

그러던 중, 영상이 피해자 인터뷰로 넘어갔다.

부모를 잃고 굶주린 아이들의 이야기, 남편을 잃은 미망인, 마약에 취한 아들을 돌보는 어머니 등의 일화가 나온다.

'오?'

여전히 콧방귀를 뀌는 조직원들도 보였지만, 심적으로 흔들리는 사람들도 보인다.

'그래도 아주 희망이 없는 건 아니네.'

잠시 후 영상이 모두 끝났다. 나는 친절하게 한 명 한 명 입을 벌리게 해서 자백 포션을 처넣어 먹였다.

일곱 명 모두 먹이자 그들은 술에 취한 것처럼 해롱거리며 늘어졌다.

상태를 확인한 나는 유령대 헌터들을 시켜 한 명 씩 좁은 방에 들어오도록 했다.

"그럼 물을게."

나는 모두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보안은 확실히 지켜줄 테니까 걱정할 것 없고, 보스의 위치를 말해."

심문이 이어졌다. 몇 명은 욕을 내뱉으며 발광했고, 몇 명은 망설이는 모습을 보였으나 보복당할 두려움에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리고 한 명.

"바야돌리드에 있는 중앙 대저택이 우리의 본진이다. 지금 보스가 거기와 있다."

……너무 쉽게 술술 불어버리니까 오히려 의심스러운데?

"왜 순순히 알려주는 거지?"

그는 눈을 감으며 한숨을 쉬었다.

"나는 원래 농부다. 카르텔의 총격에 아들을 잃었지만, 멕시코 농업계전체가 폭삭 망하는 바람에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카르텔이 됐다."

"……음."

들은 적 있다. 마약을 재배하는 사람들은 그것 말고는 먹고살 길이 마땅치 못하니까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위선은 아니다. 속죄하는 건 더더욱 아니다. 이런다고 내 죄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시간 좀 지나면 다시 개 버릇 못 버리고 사람 쏘고 다니겠지."

……무척 자기 자신에 대해 잘 아는 친구네.

"난 쓰레기다. 나도 언젠간 내가 죽인 누군가처럼 비참한 최후를 맞을 거다. 하지만……"

그가 눈을 꾹 감았다. 죽은 아들을 떠올리는 것 같았다.

"그저 지금 느끼고 있는 이 찰나의 감정에 충실하고 싶다. 단지 그뿐이다."

"협조 고마워."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다. 나는 포션에 취한 이 친구를 유령대에게 보내고는 몸을 일으켰다.

'에아. 들었지? 그 장소가 어디쯤이야?'

-그리 멀지 않습니다. 바로 표시해드리겠습니다.

나는 창밖의 하늘을 보았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간만에 그 마법을 쓰겠네.

* * *

멕시코의 마약왕 '알바레즈'.

대부분 점조직화된 멕시코의 마약카르텔 중에서도 그는 독보적인 세력을 갖추고 있었다.

수 많은 중소 카르텔들을 흡수하여 세력을 키웠으며 경찰, 검찰, 헌터협회, 심지어는 정치계까지 자신의 인물들을 앉혀놓고 마수를 뻗치고 있었다.

거기에 그가 다스리는 지방에는 병원이나 학교를 세워주는 등, 기반사업에도 힘을 쏟아 주민들에게도 호의를 얻으며 뿌리 깊게 멕시코에 자리 잡은 괴물이었다.

사실상 멕시코 대통령이 항복 선언을 한 가장 큰 이유도 바로 알바레즈의 세력 때문이었다.

다만 알바레즈는 오늘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

"블랑코의 공략팀이 전부 당했다고?"

"예, 죄송합니다. 마탑주라는 헌터가 갑자기 방해를 해서……"

알바레즈가 미간을 찌푸렸다.

"마탑주? 그런 놈도 있었나?"

"최근에 바꾼 헌터 네임입니다. 이전까지는 대마도사라고……"

"아, 그 세계에 마법을 뿌렸다는 꼬맹이군."

그가 고민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책상을 툭툭 두들겼다.

"외부 헌터라, 귀찮게 됐는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래도 외부인보다 까다로운 게 내분이야. 이대로 우리가 꼬리 말고 물러나면 아랫놈들이 얕본다. 헌터암살팀 보내서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반드시 죽여."

"알겠습니다."

알바레즈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를 바라보았다.

밖은 바람이 센지 나무들이 흔들리고 있었다. 아니, 좀 심하게 흔들렸다.

'뭐야?'

나무가 뿌리째로 뽑혀 날아가고 있다.

자세히 보니 바람이 아니었다. 형용할 수 없이 거대한 수증기 덩어리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토, 토네이도?"

콰르릉!

구름 내부에서는 번개가 몰아쳤다.

번개가 번뜩일 때마다 회색 구름내부가 푸른 형광빛으로 빛나는 모습은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소용돌이치는 구름은 길목에 있는 모든 것을 분쇄하며 전진했다.

알바레즈는 직감했다. 결코 그냥 자연현상이 아니다.

"온다!"

"피, 피해!"

알바레즈는 그대로 창문을 깨고 밖으로 뛰쳐나갔고, 다른 조직원들도 뒤따라 탈출했다.

고오오오오오오오오!

이 거대한 현상을 그 누구도 막을 수가 없었다. 구름 기둥이 통과하자 콘크리트 건축물마저도 잔해로 변해 무너져 내렸다.

바람의 반경에 휩쓸린 조직원들은 비명을 지르며 정신없이 회전하고 있었다.

이내 푸른 번개가 번뜩이며 그들의 목소리가 묻혔다. 간발의 차이로 탈출한 알바레즈와 조직원들은 넋을 놓은 채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

알바레즈는 뒤늦게 구름이 향하는 방향을 깨달았다.

"이런 망할! 안돼! 저기는 안돼애애애애애!"

저택을 통째로 박살 내며 지나간 구름의 징벌이 뒤편의 마약창고까지 덮쳤다. 온갖 마약 잎과 완제품 가루가 토네이도에 휩쓸려 사라진다.

알바레즈가 털썩 무릎을 꿇었다.

"저, 저게 얼마짜리인……"

토네이도는 멈추지 않고 알바레즈의 저택을 모조리 초토화했다.

무기들도, 경비들도 모조리 무력화되어 주위를 뒹굴고 있었다.

"난리도 아니네."

휑해진 저택 안으로 누군가 들어오고 있었다.

남색의 슈트를 걸치고, 등 뒤로 길이가 짧은 대검을 맨 남자.

조직원들이 다급히 그에게 총을 겨누었다.

"……누구냐."

알바레즈가 힘 빠진 목소리로 물었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초토화된 자신의 저택으로 향해 있었다.

"마탑주 김유신이라고 하면 알려나?"

그 말에 고개를 홱 돌린 알바레즈가 눈을 부릅떴다.

"네놈이 마탑주라고? 그럼 설마 저게……!"

유신은 방긋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응. 내가 한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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