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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마탑주-241화 (241/337)

나 혼자만 마탑주 241화

"샴이 배신했다고? 그게 무슨 소리야?"

"알베르가 해독제를 제공해 주겠다는 조건을 걸었고, 이에 사자선단이 천공성에 붙은 것 같습니다. 그쪽에서도 어쩔 수 없었다면서……"

나는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쉬었다. 어쩐지 그 할머니 불안 불안하더니…….

충격을 받으니 오히려 머리가 냉정해지는 것 같다.

그렇다면 상황은 3:2.

마탑, 묘지기, 성기사단과 천공성, 사자선단의 싸움이다.

숫자는 이쪽이 우세지만 알베르가 다 씹어먹는 공인 1급이라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이제 우리가 우위라고 볼 수 없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내가 에아를 보며 말했다.

"이렇게 된 이상, 중립을 유지하고 있는 유령대를 설득해서 이쪽으로 끌어들여야 해."

"저도 동의합니다."

"사미아에게 워프를 준비하라고 전해줘. 알베르보다 먼저 유령대에 접촉해야 해!"

"알겠습니다."

* * *

멕시코 유카탄(YucatAn).

열대 기후에 속한 무더운 지역이다. 수풀이 울창하고 습한 이곳은 한때 마야 문명이 번성한 곳이기도 했다.

바로 여기에 '유령대'의 본거지가 있다.

'멕시코는 또 처음이네.'

나는 길거리에서 산 브리또를 입에 넣으며 간만에 관광객 기분으로 걸어 다녔다.

"음, 이쪽이라고 들었는데……"

지도 앱을 켜고 주위를 돌아다니고 있었지만, 도통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옆에 보이는 과일 진열대에는 누가 훔쳐가라고 광고를 하듯 주위에 아무도 없었다. 몇몇 가게는 튼튼해보이는 금속 셔터가 내려가 있다.

'무슨 일 있나?'

타앙!

그런 의문을 품기 무섭게 총성이 들린다. 나는 반쯤 남은 브리또를 입안에 넣으며 소리가 난 방향으로 걸었다.

가까이 갈수록 더 많은 총성이 빗발치고 끔찍한 비명이 들린다.

더 이상 앞으로 가면 휘말릴지도 모르기에, 나는 건물 뒤에 몸을 숨기고 데바의 눈을 활성화했다.

-전투 중이군요.

'그러게.'

무장한 한 무리의 남자들이 마을을 공격하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마을이 아니라 유령대 본부 쪽으로 공세를 퍼붓고 있었다.

"유령왕이 없는 지금 이 기회다!"

"유적을 탈취해!"

장난 아니다. 몸 곳곳에 총알을 매고, 어깨에는 박격포까지 짊어진 사람들이 살벌하게 뛰어다니고 있다.

-저들이 바로 멕시코 카르텔입니다, 탑주.

'아하.'

멕시코의 마약 카르텔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멕시코 헌터계가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 바로 각성한 플레이어들이 헌터가 되는 게 아니라 카르텔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협회에 소속된 공인 헌터들도 카르텔에서 억대 연봉을 제의하며 스카우트해 가기 일쑤다.

그렇게 멕시코의 재앙을 막아야 할 플레이어들 대부분이 넘어가고, 멕시코 카르텔은 어느새 세계 최대 규모의 '무장 헌터 범죄집단'이 되었다.

[카르텔과의 전쟁은 무의미하다. 우리는 평화를 원한다.]

멕시코의 정규군과 헌터 협회를 통솔하는 대통령마저도 백기를 들 정도로 카르텔의 세력은 막강했다.

브레이크가 사라진 카르텔은 미쳐 날뛰었고 한 달 동안 기록된 '살인'만 5천 건이 넘을 정도로 상황은 심각했다.

'그런 녀석들이 이제 유령대의 유적을 가로채겠다 이거군?'

세계길드의 힘은 바로 이계의 유적에서 나온다.

이계 유적은 플레이어들의 고유 능력을 완전히 바꿔 버리는 힘을 가지고 있다. 유령대 또한 유적의 힘으로 특별한 능력을 얻은 헌터 집단이다.

만약 카르텔에서 유령대의 유적을 손에 넣는 순간, 우리가 아는 멕시코의 모습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최악의 상황에는 무정부 상태가 될 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에 유령왕 꼬맹이는 뭘 하는 거야?'

-정부의 요청에 따라 멕시코 최서단에서 재앙을 막고 있습니다. 8랭크 몬스터까지 나타나 유령대의 전력이 대부분 쏠려 있는 상황입니다.

'중립이니 어쩌니 하는 이유가 있었네.'

납득이 된다. 유령대는 그간 무척 바빴던 모양이다.

전 세계가 감기약 공포와 씨름하고 있었지만, 멕시코는 그리 와닿지 못했을 것이다. 여기는 카르텔과의 전쟁으로 날마다 사망자가 나오는 게 일상이니까.

'에아. 책임자와 연결할 수 있을까?'

-저쪽도 바쁠 텐데요. 일단 탑주의 이름을 팔아서 시도해 보겠습니다.

'부탁할게.'

그때 철컥! 하는 소리가 들리며 누군가 총구를 내 이마에 가져다 댄다.

"뭐야 너."

들켰다. 카르텔 조직원이 흉흉한 눈빛으로 내게 총을 겨누고 있었다.

-탑주. 유령대가 응답했습니다. 그쪽에서 먼저 탑주에게로 연락이 올겁니다.

'오케이.'

나는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들었다. 잠시 후 통화 연결음과 함께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린다.

-……당신 누굽니까?

"이 미친 새끼가! 죽고 싶어? 누구냐고 물었다!"

두 사람이 동시에 묻는다. 나는 카르텔 조직원을 보며, 수화기 목소리의 물음에 대답했다.

"저는 마탑주 김유신이라고 합니다."

-……예?

"뭐, 뭐?"

두 사람의 목소리에 당혹스러움이 느껴진다.

"유령왕님을 뵈러 왔는데 자리에 안 계신 모양이더라고요. 그건 그렇고, 위험한 분들에게 공격받고 있는 것 같은데 도와드릴까요?"

-…….

"이 미친 놈이 낮술했어? 너 뭐 하는 새끼냐고!"

잠시 후 스마트폰 스피커에서 대답이 돌아왔다.

-유령대는 귀하의 도움을 잊지 않을 겁니다.

"좋아요. 그 대답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나는 통화를 끊고 내 관자놀이에 대고 있는 총구를 손가락으로 툭툭 쳤다.

"이거 치워."

"이 새끼가……!"

나는 카르텔이 방아쇠를 당기는 것보다 빠르게 총을 붙잡아 내리며 건틀릿을 두른 주먹을 뻗었다.

쩌어어어어엉!

놈의 몸이 수십 미터를 붕 날아가 판잣집에 부딪혔다. 집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무너져 내렸다.

"응?"

"무슨 일이야?"

소란을 들은 카르텔들이 우르르 몰려 들었다.

"저놈이 우고 두목을 쓰러뜨렸습니다!"

"유령대의 청부를 받고 온 헌터인가."

내게 총을 겨눈 사람들 가운데, 나이가 꽤 많이 보이는 카르텔 남자가 까끌거리는 턱수염을 슥슥 문질렀다.

"이보게, 외국인. 방해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뭔 능력을 가졌는지 몰라도 지금 널 둘러싸고 있는 전원이 각성한 플레이어다."

"오, 그래?"

나는 하늘에 6공정 <미러쉴드>를 여러 장 펼치고 파이어 캐논을 띄워올렸다. 화염구들이 일제히 하늘로 날아간다.

"그거 무섭네."

슈화아아아아아악!

발사되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하늘에서 떨어진 수십 개의 화염구들이 피할 틈도 없이 카르텔들을 덮쳤다.

"끄아아아악!"

"화, 화염계 능력?"

실전에서 바로 써봤다. 가속의 진과 증폭의 진을 더한 파이어 캐논을 미러쉴드에 부딪혀 정확한 방향으로 내리꽂았다.

불붙은 카르텔 조직원들이 나가떨어지고 나는 유령대 본부를 향해 걷는다.

"적이다! 쏴!"

뒤이어 사방에서 총알이 빗발치지만, 에아가 펼친 푸른 막을 뚫지 못하고 바닥에 툭툭 떨어진다.

나는 손목의 장비를 작동시켰다.

철컥! 소리가 나며 불이 들어온다.

"니들도 일해."

그대로 팔을 한 바퀴 돌리자, 소매에서 튀어나온 골렘볼들이 하늘을 비상한다.

이내 바닥에 떨어지고, 골렘 도면 과 마정석이 튀어나오며 순식간에 머드 골렘이 만들어진다.

"이건 또 뭐야!"

쿵! 쿵 쿵! 쿠

머드 골렘이 총알을 그대로 몸으로 받으면서 달려가 카르텔 조직원의 얼굴을 주먹으로 뭉갰다.

"에아, 골렘을 조종해 줘. 주위에 잔챙이 정리는 맡길게."

-네, 탑주.

골렘들과 조직원들의 육탄전이 벌어지는 사이, 나는 여유롭게 유령대본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멈춰."

철컥!

나무 뒤에 숨어 있던, 긴 챙의 모자를 비스듬하게 쓴 남자가 장총을 겨누었다.

"진짜로 네가 그 마탑주냐?"

나는 시선을 움직여 그를 보았다.

마력의 흐름만 봐도 알 수 있다. 이 녀석 제법 강하다.

"그렇다면?"

"협상을 하자. 유령대를 돕는 목적이 뭐지?"

오, 이 동네도 제법 말이 통하는 사람이 있네.

하지만 이미 협상이라면 끝났다.

"니가 뭔데 내 앞에서 협상을 지껄여? 정말로 생각이 있으면 대가리를 데려와."

"아쉽군, 나도 제법 권한은 있는 몸인데."

남자는 시가 담배에 불을 붙이며 말했다.

"보스는 여기 없다."

"그럼 협상결렬이야."

그가 내게 겨눈 장총을 거두어 어깨에 툭 올렸다.

"유령대를 동맹으로 끌어들일 셈인가? 아니면 마탑이 세계길드에 들어가기 위한 밑 작업?"

나는 흥미로운 눈으로 그를 보았다. 일개 범죄집단치고는 제법 정세에 훤한 녀석이다.

"이계 유물을 차지하면 우리가 다음 유령대가 된다. 네가 원하는 것그 이상을 들어줄 수 있어."

"……음."

공인 2급 유령왕이 이끄는 세력의 유령대와, 일개 범죄집단의 유령대라.

"별로 땡기진 않네."

"그렇담 어쩔 수 없지."

치익!

남자가 시가를 나무에 비벼 끄며 말했다.

"해보는 수밖에."

그렇게 말한 남자가 발을 한 번 구르더니, 순식간에 내 뒤를 잡았다.

어깨에 짊어진 장총은 눈 깜짝할 사이에 내 머리를 겨누고 있었다.

타앙!

고개를 돌리고 데바의 눈이 총알을 포착한다.

에아의 정밀도 높은 쉴드가 연달아 펼쳐지지만, 이 총알 한 발은 그것들을 판자처럼 꿰뚫고 들이닥친다.

쉴드로 총알의 속도를 줄인 뒤, 나는 <예측 회피>를 활성화하며 고개를 젖혀 피해냈다.

"……뭐야, 어떻게 한 거야?"

그의 입장에선 날아가던 총알에 푸른 부스러기들이 떨어지면서 속도가 느려진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가 다시 바닥을 강하게 밟았다.

제자리에서 사라졌고, 나는 놈을 쫓아 시선을 움직였다. 수풀에서 발사된 총알이 내 이마를 노리고 날아온다.

그뿐만이 아니다.

수풀, 자동차 뒤, 창가, 건물 옥상, 빠르게 위치와 자세를 바꿔가며 총을 쏘고 있다. 마치 저격수가 여러명 잠복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런 수준의 헌터가 동네 양아치짓이나 하고 있단 말이야?'

나는 허리를 숙여 총알을 피해내고는 오른발에 데바스타를 걸었다. 놈은 또 자리를 옮길 것이다.

정답이다. 놈이 발을 디뎠고, 나도 발을 디뎠다.

공터 쪽으로 빠르게 이동하는 놈의 얼굴이 딱 내 손안에 잡힌다.

"……?!"

이동 중에 얼굴이 붙잡힌 놈이 경악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나는 팔에 힘을 주어 그대로 뒤쪽 돌벽에 놈의 얼굴을 처박았다.

꽈아앙!

벽돌로 만든 벽이 그대로 박살이 나고 놈의 몸이 축 늘어졌다. 나는 손을 탈탈 털며 상체를 일으켰다.

"크, 크으으윽!"

흐려지는 의식 속에서도 놈이 내게 총을 겨눈다.

"이대로…… 끝이 아니……"

"응, 끝이야."

빠악!

나는 녀석의 얼굴을 걷어차 쓰러뜨리곤 걸음을 옮겼다.

방금 잡은 이 녀석이 이번 공격대의 대장이라는 건 한 시간 뒤에나 알게 된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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