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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마탑주-236화 (236/337)

나 혼자만 마탑주 236화

쿠우우우웅!

다시 한번 들리는 굉음에 모두가 깜짝 놀라며 몸을 움츠렸다.

나는 부스스한 앞머리를 쓸어넘겼다. 알베르 이 자식, 한 방 먹었다고 바로 본진을 치러오다니.

"근데 상황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왜 아무도 날 안 깨운 거야?"

모두가 움찔 하는 가운데, 차도연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대표님 부상이 심하셔서……"

"하아."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헌터 슈트가 걸려 있는 옷걸이 쪽으로 걸어갔다.

어지러웠다. 중간에 한 번 휘청하자 곳곳에서 놀란 소리들이 튀어나왔다.

나는 다시 균형을 잡고 헌터 슈트를 걸쳤다.

"자, 다들 준비합시다."

내가 잠 덜 깬 목소리로 말했다.

"저쪽에서 걸어온 전쟁이니 받아줘야죠."

"어, 어떻게 하면 좋겠슴까! 사방이 공인 4급 이상의 이카루스 능력자들로 쫙 깔렸습니다! 탑 밖으로 나가면 그냥 순삭입니다!"

"걱정 마세요. 대용 씨."

내가 부스스한 앞머리를 넘기며 말을 이었다.

"탑 밖으로 나가지 않고 싸우면 되죠 뭐."

* * *

"전탄 퍼부어!"

"계속 쏴!"

고조 섬의 하늘에는 하얀 날개를 단 헌터들이 새떼처럼 날아다니며 포탄을 발사하고 있었다.

원래는 마탑 주변에 몰타군도 함께 있었지만, 공인 1급인 알베르가 유신의 지휘권을 빼앗아 그들을 섬에서 내보내 버렸다.

이제 이 섬에 있는 건 마탑과 천공성, 그리고 몬스터들뿐이었다.

꽈아아앙!

쿠쿵!

귀청이 떨어질 만큼 요란한 폭발음이 연달아 터져 나왔다. 마탑은 온통 시커먼 연기로 뒤덮였지만, 어떤 공격에도 무너지지 않았다.

"더럽게 튼튼하네 저 탑!"

포격을 가하던 헌터들이 볼멘 소리를 냈다.

"저것도 마법의 효과인가?"

"그래도 무적은 아닐 거다. 계속 쏴!"

천공성의 헌터들이 끊임없이 화력을 퍼붓고 있는 그때, 거대한 탑 전체가 번쩍이며 눈부신 섬광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마탑에서 또 이상한 짓을 꾸미고 있을지도 모른다. 초조해진 천공성 헌터들이 화력을 아낌없이 쏟아부었지만 탑 전체를 감싼 빛의 커튼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마탑의 모습이 그림자처럼 검게 변하더니 흔적도 없이 자리에서 사라져 버렸다.

남은 건 탑이 있었던 자리의 둥근 흔적뿐이었다.

"세상에……"

다들 그 큰 건축물이 눈 깜짝할 사이에 이동했다는 사실에 경악했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쿠우우우우웅!

하늘에서 터져 나오는 굉음에 모두가 귀를 틀어막으며 위를 올려다보았다.

"이런 미친 놈들이……!"

어느새 마탑은 상공에 떠 있는 천공성 위에 떡하니 나타났다.

천공성에 마탑의 무게까지 더해지자 섬이 서서히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한다.

"천공성이 추락한다아아!"

천공성 내부는 난리가 났고, 이틈을 타 마탑의 반격이 시작됐다.

탑의 몸체에서 대형 마법진 하나가 펼쳐졌다.

<디스트로이어>

사실상 제로 거리에서의 발사되는 마탑의 포격.

능히 천공성을 박살을 낼 만한 화력이 마법진으로 집중되고 있었다.

콰악!

그때 마법진 한복판에 깃털이 박혔다. 뒤따른 수백 개의 깃털들이 파바박 소리를 내며 틀어박히자, 마법진이 쩌적 금이 가며 파괴되었다.

"아!"

"성주님이 왔다!"

하늘에서 알베르가 모습을 드러내자 천공성 헌터들이 열렬히 환호했다. 그가 이어마이크를 터치하며 말했다.

"주둔팀, 추락에 대비하도록."

-예!

하지만 마탑의 공세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탑의 표면에 펼쳐진 마법진에서 골렘들이 우르르 튀어나와 천공성으로 돌격해 들어갔다.

하늘에서는 사미아의 워프가 열리고, 그 안에서 몬스터들이 봇물터지듯 쏟아져 내렸다.

제6층 마나 광산의 몬스터들을 이용한 공격이었다.

"모, 몬스터까지 동원하다니!"

마탑의 파격적인 전술이 이어지자 천공성 헌터들은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대체 마법이란 힘은 어디까지 할 수 있는 건가? 미지의 힘에 대한 공포가 모두의 머릿속에 싹텄다.

물론 그 공포마저도 마탑의 '필드마법'이 일으킨 효과였지만.

한쪽에는 골렘들이, 다른 한쪽에는 몬스터들이 천공성을 공격했다.

난전이 펼쳐지며 천공성 곳곳에 불이 나고 역한 연기가 올라왔다.

이 와중에도 마탑은 단 한 명의 인원도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천공성만 일방적인 피해를 입고 있었다.

그렇게 치열한 난전이 이어지는 동안, 어느새 높은 상공에 떠 있던 천공성은 해수면과의 거리가 수백 미터도 채 남지 않게 되었다.

-부양 시스템 작동!

-시작해!

천공성의 가장 아래, 암벽으로 이루어진 부분이 갈라지며 프로펠러가 나타났다.

프로펠러가 격렬하게 회전하기 시작하고, 이내 천공성이 지중해 해안에 처박혔다.

쏴아아아아아아!

바닷물이 출렁이며 하얀 물방울이 비처럼 떨어져 내렸다.

그러나 천공성은 바닷물에 빠지지 않고 성공적으로 떠오르는데 성공했다.

"좋아!"

"버텼어!"

골렘을 막고 있던 길드원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이봐, 뒤! 뒤를 봐!"

환호하는 길드원들의 뒤로 산더미만 한 선홍빛의 집게가 들이닥쳤다.

콰콰쾅!

그 거대한 집게가 한번 휘둘러지자 사람들이 먼지처럼 쓸려 내려갔다.

이내 두 개의 집게가 천공성의 지면을 덥석 붙잡았다.

"어, 어어어?"

수면 위에 떠 있던 천공성이 집게가 붙잡힌 부분을 중심으로 균형이 기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꼬로로로로록!

그대로 천공성과 마탑이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그 위에 있던 길드원들과 골렘, 몬스터들도 모조리 바닷속에 빠졌다.

그리고 그들은 목격했다.

천공성 끝을 붙잡고 있는 껍데기를 짊어진, 초대형 집게 괴물을.

"틀림없어! 저 괴물은……!"

"사, 사자선단이다!"

사자선단이 '함선'으로 사용하는 바로 그 괴수였다.

다행히 천공성 측은 빠른 대처로 마나벽을 작동시켜 실내가 물이 차는 건 막았지만, 이대로는 위험했다.

"하필이면 바다라니!"

기본적으로 이카루스 능력자들은 물속에서 상당히 무력했다.

날개가 물에 젖어서 비행이 불가능하고, 깃털을 날리는 투사체 공격도 약해진다.

"어, 어떻게 합니까?"

"어쩌긴! 선단 측에서 선제 공격했다. 당장 저 몬스터를 격추해!"

"사격 개시!"

천공성측의 화력이 괴수에게로 퍼부어졌다. 몸에 폭발이 연달아 일어났지만 괴수는 집게를 놓지 않았다.

사자선단도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괴수가 짊어진 소라 껍데기 안에서 한 무리의 헌터들이 쏟아져 나왔다.

마치 어뢰처럼 물살을 가르고 나타난 이들은 모두 잠수복을 연상케 하는 헌터슈트를 입고 등에는 수중 엔진을 메고 있었다. 발에는 물갈퀴도 착용했다.

-최우선 목표는 '해독제'의 탈취다.

-방해하면 그 누구든 사살해도 좋다.

-카피.

방어를 위해 천공성 측의 헌팅 디바이스가 불을 뿜었다.

그러나 수중에서 총탄이나 포탄 등은 물의 저항 때문에 본래 속도의 절반도 내지 못하고 중간에 고꾸라지기 바빴다.

반면에 사자선단의 헌터들은 수중전에 특화되어 있다. 그들이 짊어진 보병용 어뢰를 발사하자 천공성의 한 귀퉁이가 무너져 내리며 바닷물이 밀려 들어왔다.

"격벽을 내려라!"

"버텨!"

천공성 헌터들이 물살에 휩쓸려 혼란에 빠진 사이, 사자선단 헌터들은 가뿐히 성내로 들어왔다.

작살 형태의 헌팅 디바이스를 꺼내 무력화된 헌터들을 하나둘씩 쓰러뜨려 갔다.

"제독인가."

알베르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김유신이 사자선단을 끌어들였다.

처음부터 2:1 상황.

'제독' 샴이 이끄는 사자선단이 바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어쩔 수 없지."

알베르가 이어마이크를 붙잡고 지시를 내렸다.

"공간전이 준비."

"공간전이를 준비하라!"

성주의 지시를 복명복창하며 천공성의 헌터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천공성 내의 마력이 폭발하듯 솟구쳤다.

-천공성 놈들이 도망치려 한다!

-막아! 모든 화력을 꼭대기에 퍼부어!

사자선단 헌터들의 어뢰가 천공성의 꼭대기인 5층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 순간, 물살을 가르며 모두의 앞에 나타난 남자가 있었다.

-천공성주다!

알베르의 등 뒤에서 현란한 한 쌍의 날개가 펼쳐지더니, 무수히 많은 깃털이 사방으로 쏟아져 나갔다.

깃털은 물살을 베어 넘기면서 어뢰들을 파괴하고 뒤쪽의 사자선단 헌터들까지 쓰러뜨렸다.

이카루스 능력자들이 수중에서 무력하다는 사실은, 그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사실처럼 보였다.

-성주님! 전이 준비가 끝났습니다!

"알겠다."

한 번의 움직임으로 바다를 피로 물들인 알베르가 성내로 돌아갔다.

이후 천공성의 마력이 폭발하며 방대한 섬광이 터져 나오더니, 천공성은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끙, 놓쳤네.'

유신은 마탑 안에서 에아의 홀로그램 화면으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탑주. 고조 섬에 있는 천공성의 헌터들도 모두 퇴각했습니다.

"알겠어. 다들 수고했습니다."

이어마이크에서 마탑 멤버들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다들 보셨슴까! 하하하하! 우리가 공인 1급을 물리쳤습니다!

-하아아, 진짜 어떻게 되는 줄 알았어요.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일단은 살았다.

그 사실엔 안도감이 밀려 들었지만, 해독제를 손에 넣지 못했다는 사실이 못내 아쉬웠다.

유신은 고개를 돌려 9층 창 너머의 광경을 바라보았다.

언제나 상계동과 서울의 모습을 비추고 있던 그 모습이, 지금은 바닷속 세계를 보여주고 있었다.

마탑이 지금 바다에 가라앉고 있다는 것도 실감 나지 않았다.

"이거 물이 새진 않겠지?"

"안 샙니다."

에아가 나타나서 말했다.

"사자선단 측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각자 상황을 정리한 뒤 만나자고 하더군요."

"그렇게 할게."

유신은 그대로 침대에 드러누웠다.

"일단 못 잤던 잠 좀 마저 자고."

"고생하셨습니다."

그녀가 이불을 가슴까지 덮어주었다. 유신은 몇 초 만에 곯아떨어졌다.

* * *

이번 전투로 마탑의 마력은 바닥을 보였다.

워프게이트 난발, 두 번의 마탑전이 사용이 결정적이었다. 당분간은 지중해 밑바닥에 처박혀 있어야 할 듯했다.

그래도 여기 있으면 천공성 측에서도 우릴 공격할 수 없다는 장점이 있다. 완벽한 피난처다.

상황이 틀어지긴 했지만, 일단은 내가 맡은 재앙은 책임져야겠다는 생각에 가람에 연락해 두었다.

곧 가람의 해외파견 병력이 나 대신 '봉마의 씨앗'을 지키러 와줄 것이다. 그때까지는 샴의 사자선단이 보호하기로 했다.

"터무니없는 일에 휘말렸군."

나와 정서진, 사미아는 1층 로비에서 커피를 마시며 회의를 하고 있었다.

"이제 상황을 한번 쭉 정리해 보겠습니다."

정서진이 화이트 보드판에 글자를 슥슥 써 내려 갔다.

"마인들은 인간을 몬스터로 만드는 '감염 약물'을 연구하고 있었습니다. 연구소는 총 세 곳이었는데, 두 곳은 탑주님이 나서서 파괴했고, 남은 한 곳은 오라클을 이용했죠. 연구소의 위치를 연맹과 각국 협회에 알렸고, 이에 천공성주가 직접 나서서 연구소를 장악했습니다."

"으음."

이야기를 듣던 사미아가 팔짱을 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천공성주가 직접 이 일을 맡아 연구소를 공격했다는 점부터가 의심스럽군."

"동의합니다. 천공성주는 이렇게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헌터가 아니었죠."

정서진이 보드판에 '알베르'라는 글자를 써 내려 갔다.

"이후, 연구소를 장악한 천공성주는 자료들을 조작했습니다. 연맹에서는 그 사실을 모른 채 조작된 자료를 수거했고요. 가장 중요한 감염약물과 해독제는 여전히 천공성에 남아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맞아. 나도 천공성에서 해독제로 추측되는 약물을 봤어."

정서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나갔다.

"천공성주는 '그린케어'와도 모종의 관계가 있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결국 그린케어는 연구를 완성했고, 자신들의 히트약품인 감기약에 이 감염 약물을 섞어 전 세계에 유통했습니다."

하필이면 진보라도 감기약을 먹어버렸고 말이다.

"이후 탑주님은 해독제의 행방을 뒤쫓다가 천공성까지 들어가게 됐고, 그곳에서 해독제로 보이는 다량의 약품들을 발견했습니다. 탑주님은 천공성주를 떠봤고, 천공성주는 본색을 드러냈죠. 이후 우리가 있는 몰타까지 나타나서 기습 공세를 퍼부었지만, 사자선단의 지원으로 무사히 버텨냈습니다."

"아, 참! 내가 보낸 찻잔은 검사해봤어?"

"예. 방금 검사결과가 나왔습니다."

정서진이 서류를 펼쳐 들었다.

"여섯 개의 찻잔 중, 하나에 감염약물이 섞여 있었습니다."

…… 역시나.

알베르에 대한 마지막 믿음까지 떨어지는 기분이다.

이걸로 천공성과의 전쟁은 피할 수 없게 됐다.

아니, 피하지 않겠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천공성을 무너뜨려 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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