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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마탑주-235화 (235/337)

나 혼자만 마탑주 235화

나와 알베르는 다시 마주했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드르륵.

이번에도 안내원이 카트를 끌고 나타났다.

다양한 찻주전자와 다과들, 끌고 온 차만 해도 여섯 종류가 넘었다.

안내원은 이번엔 따뜻한 홍차를 나와 알베르에게 내어주었다.

"뭔가 알아냈나?"

알베르가 물었다. 나는 깍지를 끼고는 진지한 표정으로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네. 성주님이 보관하고 계신 자료들은 모두 조작됐습니다."

지금 당장 승부수를 던지기로 했다. 내가 가진 모든 카드들을 총동원해 그를 밀어붇일 것이다.

"조사 결과, 중요한 내용들이 빠졌거나 다른 말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몬스터화 약품의 주재료는 텔로스의 타액인데, 크롤로스의 타액으로 바뀌어 있더군요."

"그걸 자네가 어떻게 알지?"

"저는 성주님보다 앞서 두 개의 마인 연구소를 털었으니까요."

내가 어깨를 으쓱했다.

"두 연구소의 자료 모두 '텔로스의 타액'으로 만든 포션을 개발 중이더군요. 왜 성주님의 자료만 다를까요? 포션의 성분을 숨기고 싶은 누군가의 짓이라고 생각합니다."

알베르는 그저 안내원이 내어준 차를 한 모금 마셨을 뿐이다.

"그게 다인가?"

"글쎄요."

두근!

긴장감이 밀려들고, 심장이 뛴다.

나는 턱을 쓸며 고민스러운 표정을 꾸며냈다.

"여기서부터는 순전히 제 상상입니다만…… 천공성 4층에서 뭔가를 만들고 있던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드는데…… 그건 감염약인가요? 해독제인가요?"

"……."

두근!

알베르가 무표정한 얼굴로 등을 기댔다.

"무례하군."

"성주님을 의심하는 것처럼 들렸다면 죄송합니다."

그때 그의 손가락이 내 찻잔을 가리켰다.

"집주인이 내어준 차를 두 번이나 거절했군."

"네? 아하하! 차 말씀이십니까? 홍차는 제 입맛에 안 맞아서요."

"그런가."

그가 손짓하자 이번엔 안내원이 라이트한 느낌의 녹차를 나와 알베르에게 따라주었다.

"이번에도 거절할 텐가."

해석하자면, '끝까지 나를 의심할거냐?' 라는 소리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뭐, 마셔야죠."

내가 찻잔을 들며 눈을 찡긋했다.

두근!

긴장감이 목을 옥죈다.

집중력이 극한의 상황에 돌입하며 심장이 느리게 두근거린다. 시간도 느리게 흐르는 것만 같다.

알베르는 우아하게 잔을 들어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나도 찻잔을 입으로 가져간다. 차를 마시던 그의 시선이 내 쪽으로 향한다. 그리고 나는.

보란 듯이 손에 힘을 풀었다.

스륵.

찻잔은 그대로 떨어졌고, 사미아가 바닥에 열어둔 워프게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천공성주의 이마에 잔주름이 생겼다.

"……이게 무슨 짓이지?"

"우리 재미있는 게임 하나 하죠. 제가 지면 세계길드를 깔끔하게 관두겠습니다."

내가 손짓 했다. 카트 아래에도 워프가 열리더니 카트째로 그 안에 빨려 들어갔다. 안내원이 기겁하며 뒤로 물러났다.

"여기 있는 여섯 종류의 차 성분에 단 하나라도, 텔로스의 다액이 들어간게 있을까요? 없을까요?"

"……."

무표정하던 알베르의 입가에 처음으로 미소가 걸렸다.

"멋지군."

"……!"

내가 인지하는 것보다 빠르게, 무언가에 부딪힌 내 몸이 허공을 날아가 벽에 처박힌다.

뒤늦게 대형 트럭에 치인 것과 같은 충격이 온몸을 뒤흔든다.

"커헉!"

"하지만 역시 무례해."

알베르가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이제야 본색을 드러냈나.

그냥 무례해서 화를 내는 것치고는 살심이 담긴 공격이다.

고개를 숙여보니 내 가슴 한복판에 깃털이 박혀 있었다. 대비했는데도 뭘 할 틈도 없이 당했다.

펄럭!

알베르의 날개가 펼쳐졌다. 오른쪽만 펼쳐진 날개, 다른 이카루스 능력자들과는 그 크기와 화려함이 비교가 되지 않는다.

"……궁금한게 있습니다."

내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

"당신 정도 되는 헌터가 왜 이런 짓을 하는 겁니까?"

알베르는 대답 없이 날개를 휘둘렀다. 깃털들이 섬광처럼 날아왔고 나는 전면에 중첩 쉴드를 펼쳤다.

까득!

쇄도한 깃털들이 쉴드를 종잇장처럼 구기며 내 몸에 틀어박힌다. 그 충격으로 다시 벽까지 날아갔다.

머리가 새하얗게 되는 충격에 정식이 아득해진다.

'무게가……'

깃털의 무게가 웬만한 쇳덩이보다 더 무겁다.

깃털이 아닌 자동차 하나를 통째로 내 몸에 박아넣은 것 같다. 상처를 찢으며 내려가는 깃털을 마나로 틀어막고, 오른발에 데바스타를 켰다.

<데바스타>

즉시 뒤로 몸을 날렸다.

데바스타를 발동하며 인지가 늘어지는 순간, 육감적으로 섬찟한 느낌이 들었다.

시선을 올리자 알베르가 바로 내위에서 날고 있었다.

'데바스타보다 빠르…!'

꽈앙!

알베르가 내 머리를 붙잡아 바닥에 처 브았다.

"크으!"

그대로 정신을 놓을 것 같은 충격속에서 본능적으로 몸이 움직였다.

바닥을 강하게 짚고 발을 차올렸다.

알베르의 손에 간단히 막혔지만, 협공으로 대기하던 에아의 마법진이 일제히 발동하여 파이어캐논과 윈드커터를 쏟아냈다.

알베르가 뒤로 물러나며 피했고 그사이 나는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탑주! 부상이 심합니다!

"허억! 허억!"

알베르가 특별히 대단한 뭔가를 한건 아니었다.

이카루스의 깃털을 던지거나, 발을 한번 구른 정도. 그런데도 나는 죽기 직전의 위기에 처해 있다.

괜히 공인 1급, 공인 1급하는 게 아니었다. 그냥 레벨이 다르다.

"도망칠 생각이라면 포기해라."

알베르가 손바닥을 펼쳤다. 날개에서 날아온 깃털들이 그의 손을 중심으로 뻗어 올라 검의 형상으로 변했다.

침착. 침착하자.

나는 팔을 뒤로 돌려 스펙터의 손잡이를 쥐었다. 다른 한 손은 신발 밑창을 훑어 데바스타 한 발을 장전했다.

우리는 시선을 마주한 채 움직이지 않았다.

탓.

부드러운 돌진음과 함께 알베르의 몸이 데바스타를 웃도는 속도로 다가온다.

그가 쥔 깃털검이 직선의 궤적을 그리며 내려왔고 나 또한 스펙터를 횡으로 휘둘렀다.

데바의 눈으로 포착한 깃털검은 휘두르는 도중에 갈라지고 있었다.

알고 있다. 검의 형상은 페이크.

내가 검을 들어 방어하는 순간 깃털검은 분해될 테고, 도합 500개 이상의 깃털이 내 몸이 틀어박히겠지.

하지만 그렇게는 안 되겠다.

<데바스타 - 체인홀>

스펙터의 겉면에 블랙홀이 튀어나온다. 휘두른 깃털검이 모조리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가고, 놀란 알베르가 뒤로 물러서려 한다.

'전이!'

스펙터를 내 등으로 되돌리자 블랙홀이 곧바로 보인다. 나는 젖먹던 힘까지 다해 발을 뻗었다.

투콰아아아앙!

포성과 함께 날아간 블랙홀이 검은 사슬들을 토해내며 알베르에게 날아간다.

성공이다.

하지만 이걸로 이겼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결과를 볼 여유 따윈 없이, 즉각 데바스타를 켜고 사미아가 열어둔 워프게이트로 몸을 던진다.

내가 가진 최고의 필승 마법을 시선 끌기로 사용하는 건 좋은 기분은 아니지만, 어쩔 수 없다.

가속하여 날아간 내 몸이 그대로 워프게이트를 통과한다.

"끄으윽!"

롤러코스터를 타며 시공이 흔들리는 느낌과 함께, 내 몸이 마탑 안으로 내동댕이쳐졌다.

워프게이트가 있는 5층이었다.

"김유신 헌터!"

"탑주!"

사미아가 헐레벌떡 다가왔고 에아도 허공에서 빛무리와 함께 나타났다. 나는 버럭 소리쳤다.

"워프부터 닫아요! 빨리!"

알베르가 마탑에 들어오기라도 하면 진짜 답 없다. 한 사람에게 마탑전체가 장악당해 버릴 것이다.

사미아는 베테랑 답게 빠르게 상황을 파악하고 워프의 공간을 좁혔다.

슈슈슈슉!

사미아가 몸을 틀었다. 워프에서 날아온 깃털들이 그녀의 뺨과 어깨에 상처를 내며 날아가 벽에 박혔다.

그 튼튼한 마탑의 벽이 깃털이 꽂힌 곳을 중심으로 움푹 파였다.

'망할, 진짜 괴물 같은 새끼……'

마침내 워프의 공간이 완전히 닫혔다. 나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김유신 헌터!"

사미아가 내게 다가와 소리쳤다.

"괜찮은가? 상처가 심하다!"

"……괘, 괜찮습니다. 마탑에 회복기능이 있어서 조금 지나면, 쿨럭!"

사실 괜찮지 않았다. 마나로 붙잡아두고 있던 무거운 깃털들이 살을 찢고 내려가 장기를 찌르고 있다.

"기다려라."

사미아가 나를 끌어당겨 무릎을 베도록 하고는, 몸에 박힌 깃털들을 조심스럽게 붙잡았다.

텔레포트가 발동되며 피 묻은 깃털들이 바닥에 차곡차곡 쌓였다.

그렇게 모든 깃털을 제거한 뒤, 에아가 최상급 레드 엘릭서를 상처에 마구 들이부었다.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아팠다. 나도 모르게 신음이 튀어나오며 고통에 몸서리쳐졌다.

"에, 에아. 그거 비싼……"

에아가 차갑게 눈을 부릅떴다.

"바닥에 7병 연달아 던진 탑주가 할 말은 아니라고 사료됩니다."

할 말 없네.

엘릭서에 의해 상처가 회복되고 출혈이 사라졌다. 마탑의 회복 효과도 제대로 발휘되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한고비 넘기자 에아는 나를 9층의 침대에 데려가 눕혔다.

"이 세상 누구도 탑주의 무모함에는 따를 사람이 없을 겁니다."

내 이마를 짚어보던 에아가 토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덩달아 올라온 사미아도 한숨을 쉬었다.

"공인 1급의 본진에서 그런 짓을, 살아 돌아온 게 기적이다."

"하하, 환자 앞에서 잔소리는 조금만 참아주…… 쿨럭!"

서서히 시야가 흐릿해진다. 기절하기 직전의 상황인 것 같지만 아직 확인할게 있다.

"……사미아. 제가 보낸 그 찻잔들은요?"

"무사히 받았다. 정서진 헌터에게 보내서 성분을 분석하도록 시켰다."

"…… 잘 했어요. 에아. 슈트 안에 내폰 좀 꺼내줄래?"

"이제 쉬셔야 합니다!"

"딱 한 통화만……"

에아는 마지못해 스마트폰을 건네 주었다.

나는 힘을 쥐어짜 내 빠르게 전화한 통을 하고는 완전히 정신을 잃었다.

* * *

달그닥. 달그닥.

나는 마탑에서 포션 조제를 도와주고 있었다.

재료들을 잘게 썰어서 마력으로 코팅한 다음, 끓고 있는 마법 솥 안에 살살 집어넣었다.

"어머, 가르쳐 준 대로 곧장 잘 따라 하네?"

나는 고개를 들었다. 연보랏빛 머리카락의 소녀가 활짝 웃는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보, 보라야?"

"……뭐? 자꾸어떤 여자랑 헷갈리는 거야? 머저리 잰스."

그녀가 심통 난 얼굴로 내 이마를 툭 눌렀다.

나는 묘하게 진보라와는 다른 그녀의 얼굴을 보고 깨달았다.

"……벨리카?"

"그래 나야. 시간 없으니까 빨리 이거 배합물 비율 좀 맞춰줘."

"아, 알았어."

그녀의 재촉에, 나는 병에 채워진 두 용액을 들고 솥 앞으로 다가갔다.

"벨리카."

"응?"

"나 아직도 마키나티오에 있었어?"

그녀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까부터 자꾸 뭔 소릴 하는 거야? 너 아침 잘못 먹……"

촤악!

붉은 물감이 카메라에 뿌려지듯, 그녀의 선혈이 내 얼굴에 확 튀어오른다.

나는 떨리는 눈으로 아래를 응시한다. 벨리카의 가슴 한가운데에 칼날이 삐져나와 있었다.

"……."

그녀는 피투성이가 된 자신의 가슴을 한번 보고는, 나를 올려다보았다.

"미안."

그녀의 몸이 실 끊긴 인형처럼 쓰러져 내린다. 나는 완전히 굳은 채 제자리에서 있었다.

배경이 바뀐다.

건물이 불타고 자욱한 연기가 하늘을 뒤덮는다.

"으아아아아악!"

"제발 그만!"

공포에 질린 사람들이 피투성이가 된 채로 도망친다.

몬스터들은 악착같이 달려들어 민간인들을 학살하고 있다.

[전부 당신 때문이야.]

소름 끼치는 목소리에, 나는 몸을 떨었다. 가슴에 구멍이 나 죽었던 벨리카가 좀비처럼 일어서고 있었다.

아니, 벨리카가 아니었다.

온몸이 기계, 얼굴만 소름 끼칠 정도로 인간과 똑같은 안드로이드.

나는 어쩐지 그녀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이브……"

쿠우우웅!

검은 탑 하나가 하늘에서 떨어진다.

[이 세상은 안전했어. 다른 세계의 불순물인 당신 하나 때문에 마키나티오가 멸망한 거야.]

"아니야! 난……!"

쿠우웅!

내 옆으로 또 다른 검은 탑이 떨어졌다.

[인간의 생존을 위해, 인간의 자유는 통제되어야만 해. 나라고 사랑하는 창조주들을 학살한 게 행복했을 거라고 생각해? 스스로 감염 재앙에 몸을 맡긴 내 각오를, 당신은 천만 분의 일이라도 이해할 수 있어?]

"그만, 그만!"

쿠우우웅!

쿠웅!

쿵!

검은 탑들이 나를 둘러싸듯 주위로 떨어진다. 마치 쇠창살처럼, 나는 탑사이에 갇혔다.

[당신이 내 각오를 물거품으로 만들었어. 당신이 모두를 죽인 거야.]

이브의 눈에서 피눈물이 흘러내렸다.

"아냐! 내 말을 들어봐! 나는 주위에 그늘이 드리워졌다. 고개를 들자 내 머리 위로 검은 탑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그마아아아아안!"

나는 온몸에 식은 땀을 흘리며 상체를 일으켰다.

"허억! 허억! 헉!"

놀란 가슴을 가라앉히며 주위를 둘러 보았다.

나는 마탑주의 방 침대에 누워 있었다.

끔찍한 악몽. 아직도 온몸이 벌벌 떨린다. 이마를 덮으며 깊게 한숨을 쉬었다.

'……괜한 걸 봐버려서.'

쿠우우웅!

"으허억!"

뭐야, 꿈이 아니었나?

마탑이 들썩이면서 책상 위의 서류나 과자 따위가 떨어지고 있었다.

내가 아끼던 캐릭터 시계도 떨어져서 바닥을 뒹굴었다.

그와 동시에 9층에 있는 마법진 엘리베이터에서 빛이 일어났다.

"탑주님! 큰일 났습니다!"

"오빠야!"

"김유신 헌터!"

"스승님!"

에아와 정서진이 들이닥쳤고, 뒤이어은솔과 사미아, 나대용도 달려왔다.

전부 헌터 슈트차림에 풀무장이다.

"으아앙! 오빠야!"

은솔이 오들오들 떨며 내 이불 안으로 들어왔다.

"뭐야 다들? 무슨 일 있어?"

"화면을 출력하겠습니다."

에아는 바깥 상황을 비추는 홀로그램 화면을 띄워주었다.

날개 달린 헌터들이 마탑을 포위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탑의 위로는 알베르의 천공성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천공성이 전쟁을 걸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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