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만 마탑주 233화
아이슬란드. 베스트만 제도.
이건 뭐 글로벌 영화 찍는 것도 아니고, 한국, 스위스, 몰타, 독일찍고 마침내 아이슬란드까지 왔다.
나는 바로 마인 연구소 현장으로 향했다.
'섬을 지키는 경비가 너무 적은 것 같은데.'
무려 인간을 몬스터로 만드는 약품이 발견된 현장이다.
이렇게 경비가 적다니, 마인들이 들어오면 막아낼 수 있기는 한 건가?
나는 그런 의문을 안고 현장으로 걸어갔다.
"정지!"
현장을 지키던 연맹군 병사들이 총을 겨누었다.
신분을 밝히라는 그들의 요구에, 나는 공인증을 제시했다.
"공인 2급 헌터 김유신입니다."
"시, 실례했습니다!"
총을 거두어들인 병사들이 일제히 경례했다.
최근 세계 좀 돌아다니면서 공인2급의 권력을 실감하고 있다.
평소 같았으면 바로 국적 물어보고 연맹과 당사국에 이야기는 된 파견인지 꼬치꼬치 캐물었을 텐데, 2급 신분을 밝히면 어지간한 곳은 그냥 프리패스다.
나는 군인들의 안내를 받아 연구시설 안으로 들어왔다.
'……끙.'
어쩐지 경비가 너무 적다 싶더니, 연구시설은 텅 비어 있었다. 이미 자료들은 다른 곳으로 옮겨진 뒤였다.
"볼 거 다 봤네요. 책임자와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예!"
잠시 후 중령 계급장의 연맹군 남자가 허겁지겁 내 앞으로 뛰어왔다.
나는 그와 악수를 하고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여기 있는 원본 자료들 다 어디로 옮겼어요?"
"연맹에서 회수했습니다."
그럴 리가. 당연히 연맹에 먼저 연락해 보고 온 거다.
복사본은 연맹에 있고, 원본은 다른 누군가가 옮겼다는 소리가 된다.
"연맹 본부는 아니던데요. 정확히 어디로 옮긴 겁니까?"
"위치는 보고 받지 못했습니다."
나는 중령을 따라온 간부들을 보며 물었다.
"혹시 아는 사람?"
"……."
묵묵부답이다. 나는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한숨을 쉬었다.
"혹시 여기서 지인 중에 감기약 먹은 사람 있어요?"
"……."
"수억 명의 생명이 달린 문제입니다. 늦게라도 위치가 생각나면 알케미아로 연락 주세요."
"헌터님!"
등을 돌려 돌아가려는데, 한 젊은 장교가 나를 불렀다.
"연맹에서 모든 조사를 마친 뒤, 프랑스 소속의 천공성주가 직접 자료들을 수거해 갔습니다."
"……천공성주가?"
나는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장교가 입술을 짓씹으며 말했다.
"제 약혼자가…… 약을 먹었습니다. 부디……"
"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연락처주시면 해독제를 얻는 대로 한 병 보내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장교의 연락처를 받고는 현장에서 빠져나왔다.
뭔가 사태가 묘하게 흘러가고 있다.
"에아. 천공성주면담 스케쥴 잡고 가면 얼마나 걸릴까?"
-쉽게 볼 수 없는 사람이라고 들었습니다. 스케쥴을 잡을 방법도 전무합니다.
"봉마의 재앙을 클리어하고 다시 세계길드 회의 잡는 것도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데."
나는 검지로 이마를 두들기며 고민에 빠졌다.
"그럼 천공성이 지금 어디 있는지 알 수 있을까?"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어쩌긴."
나는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쳐들어가야지."
* * *
나는 워프게이트를 타고 새로운 장소에 도착했다. 까마득한 높이의 상공이었다.
'으으, 얼마나 높은 거야?'
발아래로는 구름이 보이고, 그 아래로는 푸른 바다가 보인다.
윙골렘을 작동시키고 비행한 지 얼마 안 되어 구름 너머로 희끄무레한 성의 모습이 보인다.
'바다 위 상공을 떠다니는 성이라니. 운치 있네.'
천공성이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을 만큼, 크고 웅장한 성이었다.
비행하면서 이곳저곳을 살펴보니 두 명의 경비들이 보인다. 초대받은 손님은 아니지만 뭐, 정면돌파하기로 했다.
나는 날개에 마력을 부여하여 최고속도로 돌진했다.
후우우우우웅!
맹렬한 바람을 이끌고 천공성의 정문 앞으로 내려왔다. 두 명의 경비가 깜짝 놀라며 검을 세웠다.
"……."
"……."
어, 음.
그 대사가 없다. 명색이 경비라면 응당 물어봐 줘야 할 '누구냐!', '뭐하는 놈이냐!'같은 그런 말들 말이다.
끝까지 물어봐 주지 않으니 내가 먼저 밝혀야겠다.
"저는……"
순간, 경비의 신형이 빛살처럼 다가왔다. 나는 재빨리 스펙터를 전면으로 전이해서 두 손으로 붙잡았다.
까아앙!
부딪친 검 사이에서 불똥이 튀어올랐다. 내 몸이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아니, 잠깐만요! 나는 마탑주 김……"
"천공성의 룰을 모르나 보군."
경비가 검을 고쳐 세우며 말했다.
"가까이 오면 그게 누구든 적으로 간주하고 제거한다."
그의 등 뒤에 한 쌍의 이질적인 날개가 펼쳐졌다.
슈우욱!
두 번째 경비 또한 날개를 펼치고 측면으로 파고들어 헌팅 디바이스를 휘둘러 왔다.
허리를 숙여 피했지만, 잘린 머리카락 몇 가닥이 바람에 휘날려 날아갔다.
'……와, 이것들 진짜 죽일 생각으로 덤비는데?'
바닥에 내려온 두 사람이 검을 정자세로 쥐고 한 걸음씩 딛는다.
저 날개의 추진력의 상당하다. 발을 지면에 붙이고 있지만 돌진은 데바스타처럼 한 순간에 이루어진다.
"음."
나는 옆머리를 긁적였다.
"남의 진형이니까 격식을 차리려고 했는데, 자꾸 이러시면……"
주먹을 꽉 쥐고 옆으로 세웠다.
쩍! 소리와 함께 피가 튀어 오르며 측면에서 달려든 경비 한 명이 코피를 뿌리며 나자빠진다.
"이쪽도 기분 나빠지는데요."
"……!"
순식간에 정신을 잃고 바닥을 나뒹구는 동료를 본 남자가 바짝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천공성주를 만나고 싶습니다. 니들 같은 송사리는 상대할 기분 아니에요."
"이런 건방진!"
경비가 발을 크게 두르며 뛰어든다. 그의 검이 휘둘러 지려는 순간 나는 발을 뻗었다.
터업!
검을 발끝으로 받아내고 몸을 띄우며 왼발을 뻗었다. 그가 아슬아슬하게 가드하며 뒤로 밀려났지만, 동시에 발사된 레피드 에로우가 놈의 몸을 덮친다.
콰콰콰콱!
경비가 날개로 몸을 감쌌다. 쇄도 한 황금빛 화살들이 날개를 뚫지 못하고 바닥에 후두둑 떨어졌다.
'저게 바로 천공성 길드원들의 능력인 이카루스.'
간단히 말해 날개가 생기는 능력이다.
마력원천계 능력을 얻는 성기사단과 묘지기에 비해 혜택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도 많았지만, 이카루스 능력의 유용함은 이미 수 많은 전투를 통해 검증됐다.
최고의 속도, 최고의 무기, 최고의 방패.
게다가 저 능력만으로 '공인 1급'이 된 케이스가 떡 하니 현역으로 뛰고 있으니 수 많은 헌터들이 천공성에 들어가기를 희망하고 있다.
그 어떤 세계길드도 아직 공인 1급을 배출하진 못했다.
'얼마나 빠른 지 한번 볼까.'
<아이스 자벨린>
2공정의 얼음창을 연달아 꺼내 발사했다. 경비는 즉각 날개를 펼치고 날아올라 회피기동했다.
에아의 정교한 조작에도 단 한 발도 맞지 않았다.
확실히 빠르긴 빠르다.
저 사람이 천공성 내의 평균인지 평균 이상의 실력자인지는 모르겠지만, 천공성을 적으로 돌리면 상당히 까다로울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그럼 살짝 기출 변형.'
나는 손가락을 움직여 허공에 아이스 자벨린 마법진 하나를 직접 그렸다. 그것을 정면에 놓고, 그 앞에 6공정 '가속 마법진' 다섯 장을 일열로 펼쳤다.
마치 활시위를 당기고 표적을 겨누는 것처럼, 나는 이 마법진들을 한꺼번에 움직여서 조준하고는 발사했다.
콰악!
바람이 휘몰아친다. 내 손에서 발사된 아이스 자벨린이 다섯 장의 가속의 진을 통과하는 순간, 이미 경비의 가슴에 틀어박혀 있다.
"커헉!"
그의 몸이 뒤쪽의 벽에 큰 소리를 내며 부딪혔다. 이내 힘을 잃고 주르륵 바닥으로 쓰러졌다.
"번거롭게 하긴."
나는 마법진들을 모두 해제하고는 정문으로 걸어갔다. 여전히 정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나는 스읍 숨을 들이마시고는 큰 소리로 외쳤다.
"천공성주! 저 김유신입니다! 잠시 이야기 좀 해요!"
쿵!
내 말에 반응하듯 성의 정문이 좌우로 벌어지며 열렸다.
드디어 내 이야기를 들어주려는 건가?
하지만 내 기대와는 달리, 열린 성문 내부에는 하얀 날개를 단 헌터들이 무기를 든 채 바글거리고 있었다.
"침입자다!"
"전부 나와!"
나는 얼른 옆으로 비켜섰다. 날개를 단 수 많은 헌터들이 무수한 새떼치럼 정문을 빠져나와 공중에서 선회하며 나를 포위했다.
스릉!
철컥!
그들이 일제히 헌팅 디바이스를 겨누었다. 나는 두 팔을 들었다.
"천공성이랑 전쟁을 할 생각으로 온 건 아닌데."
화아아악!
라운드 쉴드가 내 몸을 둘러싸고, 그 주위로 25개의 가속의 진이 포탑처럼 공중의 헌터들을 겨누었다.
포탄이 될 아이스 자벨린들이 발사준비를 하며 마법진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싸우겠다면 어쩔 수 없죠."
"전원 공격준비!"
지휘관으로 보이는 중년의 헌터가 소리쳤다. 모든 천공성 길드원들의 날개가 한계치까지 끌어모은 푸른빛으로 번쩍인다.
나 또한 입꼬리를 올리며 모든 마력을 개방했다.
[그만.]
허공에서 메아리처럼 울려 퍼지는 목소리에 모두의 동작이 멈췄다.
[들여보내라.]
천공성주의 목소리였다. 지휘관 헌터가 이를 꽉 악물더니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모두 무기를 내려라."
천공성 길드원들이 분한 얼굴로 무기를 집어넣는 모습이 보인다. 그제야 나도 미소를 지으며 마력을 거두어들이고 방어막을 해제했다.
"그렇게 나오셔야지."
* * *
나는 천공성 길드원의 안내를 받아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는 특별히 튈것 없이 평범한 성의 구조였다.
"이쪽입니다."
살벌하게 덤벼들 때는 언제고, 이곳의 길드원들은 깍듯한 태도로 나를 대했다.
그들의 웅성거리는 소리 몇몇이 귓가에 든린다.
"저 사람이 마탑주? 생각보다 훨씬 젊네."
"새로운 세계길드 후보라는데."
여러 소리를 한 귀로 흘리며, 나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오.'
고풍스러운 방안에 다리를 꼬고 앉아 있는 절세 미남이 보였다.
흰 정장과 목도리, 가을 낙엽을 연상케 하는 갈색 머리카락은 뭐라 형언하기 힘든 분위기를 풍겼다.
협회장 홍율의 위압감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종류의 카리스마다.
"앉도록."
"감사합니다."
드디어 이 사람과 마주 앉을 기회를 손에 넣었다.
길드원 한 명이 카트를 끌고 나타나 나와 알베르의 잔에 차를 따라주었다.
"자네에겐 몰타에서 일어난 재앙을 맡겼었는데."
그가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말을 이었다.
"벌써 포기한 건가?"
"그럴 리가요. 그쪽은 그쪽대로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평가대상은 제가 아니라 마탑의 임무 수행 능력이니까요."
"그렇군."
내가 어떻게 말을 꺼낼지 고민하고 있는데 알베르가 먼저 물음을 던졌다.
"용무는?"
"아이슬란드의 마인 연구소에서 회수한 자료들을 이 성에 옮겨왔다고 들었습니다."
그는 차를 마셨을 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나는 바로 승부수를 던졌다.
"혹시 그 자료들을 열람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