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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마탑주-231화 (231/337)

나 혼자만 마탑주 231화

독일 베를린.

"도착했습니다."

운전기사가 문을 열어주었다. 나는 검은색 프리미엄 세단에서 내리며 버릇처럼 넥타이를 고쳐맸다.

인생 첫 독일 방문이었지만 주위를 둘러볼 여유도 없었다.

그린케어의 임원들과 직원들이 일렬로 도열한 채 마중 나와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김유신 대표님!"

임원급으로 보이는 머리가 벗겨진 남자가 다가왔다. 나는 그와 악수를 하며 말했다.

"반겨주셔서 감사합니다."

"하하하! 대표님의 연락을 듣고 기절하는 줄 알았습니다! 한국에 갈 비행기를 취소하고 부랴부랴 다시 회사로 돌아왔지 뭡니까!"

순간 사고가 멈췄다.

어, 잠깐. 이게 무슨 소리지? 왜 갑자기 아는 척이야? 내가 아는 사람인가?

짧은 시간 동안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린 끝에, 나는 어떤 기억을 끄집어 냈다.

'설마 이 사람……!'

틀림없다. 어쩐지 낯이 익다 했더니 스위스 호텔에서 나와 계약해 달라며 몰려든 사람들 중 한 명 이었다!

일이 또 이렇게 이어지는구나. 그린케어는 제약회사라고 했으니까 알케미아의 포션 유통권에 군침을 흘릴 만도 하다.

나는 빙그레 비즈니스 미소를 꾸며 내며 말했다.

"알케미아가 독일 최고의 제약회사에 관심을 가지는 건 당연한 일이죠."

그 말에 임원은 물론, 뒤에 있는 직원들까지 입가가 헤벌레 벌어졌다.

만년 2위 업체 그린케어. 독일 최고라는 말은 그들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칭찬일 터였다.

"스위스에서 있었던 일은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런 저런 날파리들이 많이 꼬여서 일부러 엄한 척을 했었거든요."

"하하! 하하하하! 그랬있군요! 자, 자, 이쪽으로."

자신을 '막스'라고 소개한 이 남자는 전무이사 계급의 거물이었다.

그는 내가 단독으로 그린케어에 방문했다는 사실에 무척 기분이 좋아 보였다.

하긴 신약 투자 유치에, 포션 유통권까지 한 번에 따낼 수 있는 기회니까 당연한 반응이다. 나는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잠시 후, 강당에서는 나 하나를 위한 투자 설명회가 펼쳐졌다.

'…졸려.'

처음엔 흥미 깊게 감상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지루해졌다. 미래가치니 투자환경이니 육성정책이니 나와는 별 상관없는 이야기들뿐이었다.

그래서 이야기했다.

"알케미아 건 이전에, 저는 신약개발을 투자하러 온 사람입니다. 연구시설을 직접 견학하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죄송하지만 연구시설은 극비라서……"

"이사님. 저는 제 눈에 보이는 것만 믿습니다."

내가 딱 잘라 말했다.

"미래가치니, 우위를 점한 첨단 사입이니, 피부에 와닿지 않아요. PPT 화면에 나오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니라 생생한 현실이 필요합니다. 제품이 정확히 어떤 시설에서, 어떤 공정으로 만들어지고 있는지 제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습니다."

"그, 그러시군요.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회장님의 허가가 필요한 부분이라서요."

막스는 밖으로 나가 통화를 했다.

생각보다 통화가 길어지고 있었다.

'자, 이제 어떻게 나오려나.'

나는 대접받은 루왁커피를 홀짝이며 기다렸다.

만약 그 회장이란 사람과 마인이 연결되어 있다면, 무조건 극비 핑계로 거절할 것이다. 뭐, 거절하면 거절하는 대로 다음 단계로 넘어가…….

"회장님의 허가가 떨어졌습니다!"

어, 진짜로?

이렇게 쉽게 승낙받을 줄은 몰라서 조금 당혹스럽다.

진짜 마인이랑 상관없는 조직 아냐? 여섯 명이나 연결된 건 우연의 일치일 뿐이고?

아니, 직접 가서 내 눈으로 확인하고 결론을 내려도 늦지 않다.

우리는 가타부타할 것 없이 차를 타고 연구시설로 이동했다.

시설은 수도 베를린의 외곽지역에 있었는데, 지하층을 개발한 건물이었다.

나는 옷 위에 전신이 새하얀 방진복을 입고 마스크까지 써야 했다.

"지금부터는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방진복을 입은 여성 안내원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나는 막스가 슬쩍 그녀의 눈치를 보는 것을 캐치했다.

그녀의 설명을 들으며 시설을 쭉 둘러보았다. 건물 전체가 먼지 하나없을 만큼 하얗고 청결했다.

"이쪽 공정에서 제품을 세척합니다. 저희 그린케어는 0.0001%의 불순물도 제거하는……"

그러나 진짜 딱 '견학' 정도의 느낌.

아쉽게도 약품 개발 파트에는 들어가지 못했고, 그것만은 그린케어에서도 적극적으로 거부 의사를 표현했다.

이대로는 그냥 시설을 겉핥기식으로 훑어보고 지나갈 뿐이었다.

데바의 눈을 겨서 벽 너머로 제한 된 시야 정도는 확보할 수 있었지만, 역시 시각적 정보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탑주.

그때 에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응. 왜 그래?'

-그린케어의 방화벽 무력화 성공. 관련 자료들을 조사한 결과, 충격적인 내용을 발견했습니다.

에아의 이야기를 들은 나는 바로 다음 지시를 내렸다.

'봉마의 씨앗을 지키는 솔이랑 보라를 제외하고 전원 전투태세로 넘어올 준비하라고 해.'

-알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들어 한참 설명 중인안내원을 바라보았다.

"그만, 설명은 이제 됐습니다."

"네?"

"솔직히 말씀드리죠. 사실 저는 알케미아의 대표가 아니라 공인 헌터로서 여기 방문한 겁니다."

눈에 띄게 당황한 얼굴의 두 사람을 보며 나는 말을 이었다.

"아이슬란드에서 발견된 인간을 몬스터로 변이시키는 약물에 대해선 들어본 적 있으시죠? 그 약물이 이회사에서 연구 중이라는 제보를 받았습니다."

막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고, 안내원의 표정은 무섭게 일그러졌다.

막스가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

"죄, 죄송하지만 그 제보는 어디서……"

"정보원의 신상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그, 그건 틀림없이 모함일 겁니다! 경쟁 기업에서 우리를 위기에 빠트리기 위한……! 아니, 그전에 수사권은 가지고 오신 거겠지요? 아무리 공인 2급 헌터라지만 외국인 헌터가 이러는 건 심각한 월권행위입니다!"

그렇겠지.

자, 이제 내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첫째는 확실한 정보를 입수해서 연맹과 독일 정부에 허가를 받고 들이 닥치는 것. 그리고 둘째는.

"뭐 어때?"

그냥 막 나가는 거다.

"내가 확실한 증거도 없이 이럴 것 같아?"

계속 저 안내원을 관찰했다.

시종일관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려 노력하고 있었지만, 그녀는 틀림없이 불안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심장이 가장 빠르게 뛰던 바로 이 방.

"상황이 급박하니 어쩔 수 없어요. 증거가 안 나오면 고소하든 연맹에 따지든 알아서 하십쇼."

나는 주먹에 건틀릿을 두르고는 비밀번호가 있는 잠금장치를 강타했다.

쾅! 소리와 함께 잠금장치가 박살나며 문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나는 문을 잡고 열어젖혔다.

"멈춰."

철컥!

뒤통수에 총구가 닿는 것이 느껴진다. 막스는 비명을 지르며 엉덩방아를 찧었고, 나는 비릿하게 웃으며 그녀를 돌아보았다.

"쏴보던가."

탕!

그녀는 정말로 방아쇠를 당겼다.

발사된 총알은 총구 바로 앞에 펼쳐진 푸른 막에 막히며 제자리에서 회전했다.

나는 그녀가 총을 쏘든 말든 무시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허, 허억!"

"당신 누구야?"

"방금 총성은……?"

방진복을 입은 연구원들이 주춤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공인 2급 김유신입니다. 수사에 좀 협조해 주십쇼."

"허, 헌터?"

나는 그들이 연구하고 있던 유리병들을 뒤적거렸다. 그중에서 바로 눈에 가는 게 있다. 남극에서 본 것과 비슷한, 혼탁한 색깔의 점성 있는 액체. 나는 그 병을 들어 올렸다.

"와, 이걸 어디서 봤더라?"

나는 말을 멈추고 고개를 숙였다.

섬광이 번뜩이며, 내 앞에 있던 유리창이 깔끔한 단면을 보이며 갈라졌다.

내게 총을 쐈던 안내원의 팔이 칼날처럼 바뀌어 있었다.

팔뿐만이 아니다. 그녀의 옷이 다찢어지고 눈이 수백 개 달린 곤충 몬스터로 변해 있었다.

"히익!"

"몬스터! 몬스터가 나타났다!"

기겁한 연구원들이 헐레벌떡 연구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키기긱!]

사마귀 형상의 마인이 날개를 펼치고 달려들어 날카로운 두 팔을 휘둘러 댔다.

나는 어깨를 옆으로 틀고, 고개를 젖히며 간단히 피해냈다.

"이제야 본색을 드러냈네, 마인."

대각선으로 휘둘러지는 공격을 살짝 뛰어서 피한 내가 손가락을 움직였다. 사마귀의 몸통에 6공정 마법진 세 장이 펼쳐진다.

<플레임 타우로스>

꽈아아아아앙!

마법진이 폭발하며 괴수가 고통에 부르짖는다.

그사이 나는 번거로운 방진복을 벗어 던지고 소중한 증거품을 아공간주머니 속에 넣었다.

[케레레레렉!]

껍질이 시커멓게 그을리고 피를 줄줄 흘리면서도, 마인은 끈덕지게 달려 들었다.

부우웅!

마인이 휘두른 오른팔이 바닥에 박히는 순간, 나는 놈의 팔 위에 스펙터를 전이시켰다.

그리고 그대로 다리를 내려 스펙터를 밟았다.

서걱!

마인의 팔이 깔끔하게 반으로 갈라졌다.

[키이이이이이!]

"말해. 너 말고 이 시설에 마인이 얼마나 있지?"

[캬륵! 키이이!]

"응, 알았어. 잘 가."

사방을 포위한 얼음 창들이 마인의 몸을 꿰뚫었다.

나는 뺨에 묻은 녹색 액체를 닦아내고는 이곳의 연구 자료들을 전부 챙겼다.

[키에에!]

[크륵!]

도망치는 연구원들 사이로 몬스터로 변한 마인들이 우르르 달려든다.

마인들의 몸 곳곳에 흰 방진복 조각이 있는 걸 보니 연구원으로 잠입해 있던 모양이다. 나는 손뼉을 짝쳤다.

"여러분! 일할 시간입니다."

내 뒤로 사미아의 워프게이트가 열리고 번쩍이는 전격의 창이 마인의 몸에 꽂혔다.

"4층팀! 도착했습니다!"

나대용을 필두로 한 4층팀이 워프에서 나타나 마인들을 상대했다. 물의 마법, 빛의 마법, 독의 마법이 연구실 곳곳에 작렬했다.

쿠우우우웅!

특히 안드라스로 변한 소심희의 완력은 막강했다.

육탄전차 같은 돌진으로 마인들을 밀어내 넓은 공간을 확보한 다음, 양팔로 마인들을 붙잡아 반으로 찢어 죽이기도 했다.

[너였구나! 김유신!]

나는 고개를 돌려 달려드는 오크마인을 바라보았다.

마인이 휘두르는 커다란 도끼가 손에 턱! 하고 잡혔다.

"그레이 오크의 약점은……"

정서진이 반대쪽 주먹을 당기며 말을 이었다.

"음, 공략할 필요도 없겠군요."

쩌어억! 마인의 얼굴에 커다란 흠집이 생기머 날아갔다. 물 만난 고기처럼 마인들을 제거하는 4층팀을 보며 정서진이 말했다.

"여러분, 싸우는 건 좋지만 시설피해는 최대한 없도록 해주십시오."

"예!"

4층팀에게 지시를 내린 그가 나를 돌아보았다.

"탑주님. 증거는 확보하셨습니까?"

"당연하지. 아공간 주머니에 넣어놨어."

나는 오줌을 지린 채 주저앉아 있는 막스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막스 전무. 당신도 마인이에요?"

막스가 미친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으으음, 여기 마인이 한둘이 아니라서 못 믿겠는데."

나는 3공정 윈드 포트를 시전했다.

바닥에 떨어져 있던 권총에 대기가 휘감기더니 그대로 내 손안에 착 들어왔다.

"몸에 구멍 몇 개쯤 내보면 몬스터로 변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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