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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마탑주-229화 (229/337)

나 혼자만 마탑주 229화

몰타 공화국 영지의 한복판, 그곳에 우뚝 솟은 탑이 나타났다.

"대령님! 몬스터들이 몰려옵니다!"

봉마의 씨앗을 깨기 위해 몬스터들이 몰려 들었다. 당황한 병사들이 웅성거렸지만 유신의 태도는 여유가 넘쳤다.

-마탑 방어체계 발동. 침입자를 격추합니다.

이제는 에아도 싸울 수 있다. 탑의 한복판에 커다란 마법진이 펼쳐지더니 빛의 기둥이 레이저처럼 쏘아져 나간다.

섬광이 바닥에 닿아 몬스터들을 일순 소멸시키더니, 펜으로 선을 긋듯 일직선으로 쭉 내달린다.

그 반경에 들어온 무수한 몬스터떼가 일제히 잿더미가 되어 휘날린다.

"오오오오오!"

병사들이 눈이 시뻘개져서 환호했다. 뒤이어 탑의 벽면 곳곳에 펼쳐진 마법진 안에서 골렘들이 우수수수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평소의 값비싼 골렘볼 상태로 사용하는 게 아닌, 이미 완성품의 골렘들이 몸으로 방어진을 구축한다.

달려드는 몬스터들은 골렘의 단단한 주먹에 짓이겨진다.

"선배님! 저희 왔어요!"

그리고 마탑의 정문에서 마탑 멤버들이 하나둘씩 등장한다.

진보라, 정서진, 은솔, 사미아, 그리고 나대용을 위시한 4층 멤버 전원. 각자의 헌터 슈트를 입은 전투태세 모습이다.

"기, 김유신 헌터! 이건 대체……!"

놀라움 반, 환희 반의 조지프 대령이 씰룩이는 입꼬리를 진정시키며 말했다.

"보시는 대롭니다. 이번 재앙은 저희 마탑 전체가 책임지고 막겠습니다."

"오, 신이시여!"

조지프 대령이 감격한 표정으로 주먹을 꾹 쥐었다.

"선배니임!"

진보라가 경쾌하게 깡충거리는 발걸음으로 다가왔다.

"와! 진짜 신기한 거 있죠? 안에선 아무 느낌도 못 받았는데 밖에 나가니까 상계동이 아니라 외국이 짠!"

진보라는 새로운 헌터 슈트를 입고 있었다.

몸에 착 달라붙는 스파이 복상 같은 검정 슈트, 그 아래로 늘어뜨린 연보랏빛 머리카락이 자유롭게 휘날리고 있다.

"새 옷 예쁘죠?"

유신의 시선을 느꼈는지 그녀가 모델처럼 제자리에서 한 바퀴 턴했다. 유신은 헛웃음을 흘렸다.

"바보야. 긴장 좀 해."

"후후, 당연히 긴장하고 있죠!"

"김유신 헌터."

사미아가 텔레포트로 나타났다.

"당분간은 여기서 지내면서 시련을 막는 건가?"

"네. 그럴 생각이에요."

유신은 사미아의 차림도 위아래로 살피더니 웃었다.

"좋아 보이시네요."

"고맙다."

사미아는 휠체어에 탄 게 아니라 서 있었다.

은솔이 그녀를 위해 헌터 슈트안에 하체에 외골격을 더 한 형태로 만들어주었다. 뛰는 건 아직 힘들지만 서거나 살짝 걷는 것 정도는 가능하다.

"첫 마탑 전이는 어땠나?"

"말할 것도 없이 최고네요."

사미아의 워프 마법 숙련도는 가파른 성장을 보였다. 이번 '마탑전이' 도 사미아가 있는 5층 차원관의 작품이다.

원래는 마나 소모량이 너무 거대해서 엄두를 못 내고 있었는데, 이번에 6층 마나광산이 얼리면서 한번 시도해 보기로 했다.

천공성주 알베르가 제안한 이번 재앙의 클리어는 마탑주 혼자가 아닌, 마탑의 임무 수행 능력을 평가하는 게 의도다. 알베르는 물론 많은 사람들이 이번 미션을 지켜 보고 있다.

그래서 마탑이 이 정도라는 걸 강조하기 위한, 어느 정도 쇼맨십의 성향도 있었다.

"스승님!"

나대용이 다가왔다. 그의 뒤에 4층팀이 일렬로 착 섰다.

"보고드립니다! 나대용 외 4명! 피난 임무 지원을 수행하러 가겠습니다!"

"너무 무리하지는 마시고요."

"예! 다녀오겠습니다!"

나대용과 4층 팀원들이 경례를 하고는 빠르게 흩어졌다.

물론 봉마의 씨앗을 지키는 게 가장 중요하지만, 한참 피난이 진행중이라 헌터가 필요한 곳이 많을 것이다.

4층팀도 이제 각자의 전공 마법은 전문가 수준으로 구사하니 어딜 보내도 걱정 없다.

유신은 고개를 돌려 조지프 대령을 바라보았다.

"대령님도 씨앗 방어는 우리에게 맡겨주시고, 피난민 보호 쪽에 더 전력을 쏟아주세요."

"알겠습니다!"

조지프 대령이 바로 무전을 했고, 병사들이 차를 타고 흩어졌다. 몰려드는 몬스터들은 골렘들이 문제없이 막고 있었다.

은솔은 비행 골렘들을 조종해 곳곳에 포탑과 안전 펜스를 설치하고 있었다.

'준비는 완벽해.'

이번 미션만 성공적으로 클리어하면 마탑은 드디어 세계길드 자격을 얻게 된다. 유신은 천천히 오른팔을 들며 마력을 일으켰다.

'별일 없었으면 좋겠는데.'

하늘에서 불의 비가 내려 몬스터들을 불태웠다.

* * *

마탑의 합류로, 몰타 공화국의 상황은 빠르게 나아졌다.

봉마의 씨앗은 은솔이 골렘들로 완벽하게 방어진을 구축했기 때문에 안전하다.

은솔이 쉴 때는 마탑의 에아가 직접 컨트롤하니 만에 하나의 빈틈도 없다.

전세가 안정화되자, 4층팀에 더해 나와 진보라도 피난 작전에 합류했다.

가끔 뭐, 몬스터들이 선내에 침입하거나, 배의 엔진이 고장 나버리거나, 지하실에 숨어 있는 사람들이 자택이 몬스터가 왔다며 구조요청을 하는 등 쉽지 않은 상황들도 있었지만, 모두 잘 극복해 냈다.

이제 신경 쓸 민간인들도 없다.

고조 섬에는 우리 마탑과 조지프 대령이 이끄는 몰타군이 있을 뿐이다.

몬스터들은 봉마의 씨앗으로 돌격해왔고, 우리도 완벽한 방어체계로 몬스터들을 정리했다.

'……너무 할 일이 없는 것도 좀 그러네.'

나는 1층 로비에 들어와 에아가 타준 따뜻한 코코아를 마시고 있었다.

결코 쉬운 재앙은 아니었지만, 전체적으로 기량이 오른 우리 수준을 고려하면 간단했다.

"엣취!"

옆에서는 담요를 덮은 진보라가 재채기를 했다. 그녀가 티슈로 코주위를 닦으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괜찮아?"

"아, 네! 전 괜찮아요."

그러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활짝 웃어 보이는 그녀.

피난선에 침입한 몬스터들을 격퇴하러 갔을 때, 진보라는 너무 열심히 싸우다가 그만 바다에 빠졌었다.

내가 가서 구해줬지만 물에 젖은 채로 다시 전투가 이어져서 감기에 걸린 듯했다. 에아가 마탑의 온도를 따뜻하게 바꾸었고, 뜨끈한 대추생강차를 내왔다.

내가 자주 마시는 거라서 구비하고 있던 게 다행이다.

"으."

그녀가 생강차 냄새를 맡고는 어깨를 파르르 떨었다. 나는 웃는 얼굴로 말했다.

"한 모금도 남기지 말고 다 마셔."

"……네."

"그리고 당분간은 밖에 나가지 말고 푹 쉬어. 골렘들이 있으니까 임무 걱정은 하지 말고."

아무튼 최대 부상자는 진보라의 감기 정도. 이번 재앙은 너무나 쉽게 흘러가고 있다.

'이래도 되나 몰라.'

그래도 방심은 금물이다. 이건 무려 공인 1급 천공성주가 내준 과제고, 아직 재앙을 클리어한 것도 아니다.

수비 태세는 완벽하니, 이제 재앙의 실마리를 찾아서 원인을 제거해 비리는 일만 남았다.

정서진이 대서재에서 재앙에 대한 자료들을 뒤지고 있다. 과연 어떤 몬스터를 상대하게 될까?

"탑주님."

마침 정서진이 마법진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왔다.

"찾아냈습니다."

"… 역시 빨라."

정서진이 에렌델의 고서를 펼쳤다. 책장이 바스락하고 넘어갈 때 마다 오래된 책 냄새가 물씬 풍겼다.

"바로 이겁니다."

이 페이지에 실려 있는 삽화에는 지금 밖에 우리가 지키고 있는 봉마의 씨앗과 완전히 똑같이 생긴꽃이 그려져 있었다.

"꽃의 무늬와 모양, 보석의 생김새, 몬스터들이 몰려드는 이상현상, 몰려드는 몬스터의 종류까지 100% 일치합니다."

"수고했어. 어떻게 하면 클리어할수 있대?"

"여기 나와 있군요."

정서진이 아랫부분의 문장을 손가락으로 훑으며 말을 이었다.

"재앙 발생일로부터 66일 동안 봉마의 보석을 지키면 재앙이 클리어됩니다."

"……."

나는 정서진의 얼굴을 보았다.

"그것뿐이야?"

"예, 그것뿐입니다."

나도 모르게 허탈한 웃음이 튀어나왔다.

"혹시 66일 동안 좀 더 강한 몬스터가 나온다거나, 다른 재앙이 겹친다거나, 뮈 그런 이벤트는 없어?"

"그런 언급은 없습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몰려드는 몬스터의 숫자가 점점 더 줄어든다고 나와 있습니다. 봉마의 씨앗이 깨지면 문제가 생기겠지만, 무사히 지키고 있으면 아무 문제 없는 유형의 재앙입니다."

"……음."

시간이 해결해 주는, 그냥 이대로 끝나 버리는 재앙이었나.

김이 새다가도 갑자기 의아함이 든다.

천공성주 알베르가 찬성표를 던져주는 조건은, 몰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 재앙의 클리어였다.

명목은 마탑의 임무 수행 능력을 평가하기 위해.

쉬운 재앙은 아니었지만, 이게 세계길드가 나설 재앙인가? 이걸로 진짜 제대로 우리 임무 수행 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 건가?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탑주님. 천공성주가 말을 바꿀 가능성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정서진도 나와 같은 의문에 도달한 모양이었다.

"거의 없지. 공적인 자리에서 나온 이야기고, 지금은 연맹 내에서도 소문이 쫙 퍼졌어. 이제 와서 무르면 그 사람 꼴만 우습게 되는 거야."

"……음."

나는 소파에 앉아 뒷머리를 받치고 이어마이크를 켜보았다.

"여기는 김유신, 지원 필요한 곳 있습니까?"

잠시 정적이 흘렀다가, 현장에 나가 있는 4층팀 전원에게 '없습니다!' 하는 보고가 들어왔다.

-잡몹 처리는 저희에게 맡기시고 푹 쉬세요! 진짜 별일 없어요.

-이런 것까지 부하들 일 뺏는 거 아니겠죠?

목소리에 여유가 느껴진다.

4층팀 쪽도 정말로 널널한 모양.

긴장감이 확 풀어진다.

"이렇게 몰타 파견이 끝이라니."

나는 황금 소파에 벌렁 드러누웠다.

"두 달 동안 뭐 하고 지내지?"

"세계길드 자축 파티 하는 건 어때요?"

담요로 몸을 감싸고 있는 진보라가 코를 훌쩍이며 물었다.

"자축은 무슨, 아직된 것도 아니잖아. 임무 중에 음주하는 것도 좀 그렇고……. 아! 7층 시련이나 깨러 갈까?"

이번엔 정서진이 고개를 저었다.

"너무 이릅니다. 6공정 마법을 확실히 마스터하신 것도 아니고, 작전 도중에 무리한 일정을 수행하다가 부상이라도 당하시면 비상사태에 대처할 수 없습니다."

"그건 그래."

어디까지나 이번 원정의 1순위 목표는 마탑의 세계길드 승격이다.

주객이 전도 되어서는 안 된다.

"선배님. 그냥 두 달간은 휴가 얻었다고 생각하시고 푹 쉬세요.'전력외'에서 공인 2급 헌터까지 정말 쉴 새 없이 달려왔잖아요."

"……그래야 하나."

쉬는 건 좋다. 그런데 심심한 건 둘째치고, 불안하다.

두 달 시간 죽이고 있는 걸로 진짜 세계길드가 되는 거야? 사실은 알베르에게 다른 의도가 있던 거라면?

"……뭐라도 하자."

내가 상체를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에아. 전에 우리 마탑 침입했던 마인들 신상 파본 거 리스트 있지? 그것 좀 가져와 줘."

-네, 탑주.

잠시 후 에아가 나타나서 서류를 건네주었다.

소파에 기대어 차분히 리스트를 살피고 있는데 진보라가 킥킥 웃었다.

"정말 일을 사서 하는 타입이시네요."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몸이 되어버렸다.

"천공성주가 말을 바꿀 위인은 아닌 것 같지만…… 대비해서 나쁠 건 없잖아? 이 기간에 마인 관련 일하나만 더 해놓으려고."

불안해할 바엔 움직이는 게 낫다.

본래 세계길드의 가장 중요한 임무중 하나가 '마인 소탕'이다. 여유있을 때 겸사겸사 이쪽 일도 해두면 좀 더 어필할 부분이 생기리라.

"에아, 서진아. 너희도 자료 조사 좀 도와줘."

"네, 탑주."

"알겠습니다."

"선배니임- 저도오!"

진보라가 끼어들자 나는 휘휘 손을 흔들었다.

"넌 여기서 이러지 말고 안에 들어가서 푹 쉬어. 회복에 전념해야지."

"히잉, 나만 따돌리…… 앗취!"

"……일단 근처 병원이라도 좀 가보자."

나는 한숨을 쉬며 이어마이크를 켰다.

"여기는 김유신. 몰타 섬에 갈 이동수단 좀 알아봐 줘요."

말하지 얼마 되지 않아 바로 지직! 소리가 나며 답변이 돌아왔다.

-여기는 무스카트 상사! 10분후 헬기로 모시겠습니다!

아, 권력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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