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만 마탑주 228화
"재밌는 말씀을 하시네요. 마탑주 김유신."
마르첼로가 싱글벙글 웃으며 끼어들었다.
"그 발언은 마치 마탑이 그 힘과 경쟁력을 우리에게 줄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은데요."
"네, 맞습니다."
마르첼로가 서류 한 장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저는 마탑이 그런 영향력을 가졌다는 사실엔 의구심을 품을 수밖에 없습니다. 어디 보자, 길드구성원이 공인 3급 한 명에, 공인 5급 여덟 명. 총인원 열 명……"
마르첼로가 서류를 내리며 나와 시선을 맞추었다.
"그리고 수장은 이제 막 공인 2급이 된 풋내기. 이런 전력으로 뭘 줄수 있다고요?"
"눈에 보이는 전력이 전부가 아닙니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이었다.
"비숍 마르첼로. 성기사단의 총인원이 몇 명이나 되죠?"
"현재 315명입니다."
"그렇군요. 그럼 다시 묻겠습니다."
나는 입꼬리를 올리며 말을 이었다.
"지금 전 세계에 마법을 배우고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음!"
"동영상 공유사이트에 올라간 서클 강의 조회수 62억, 마법 강의 웹사이트 회원 수 3억 2천만 명, BBC 통계 예상 추산 1서클 보유자 6천만 명. 이들 모두가 마탑이 가진 힘의 원천입니다."
나는 두 팔을 벌렸다.
"마법은 트렌드고 추세입니다. 앞으로 마법을 배우려는 사람들의 숫자는 폭발적으로 늘어납니다. 헌터연맹이요? M10, 유렵연합, APEC, ASEAN처럼 국제기구는 이 세상에 무수히 많습니다. 하지만 마법의 원천인 마탑은 대체 불가능한 조직입니다."
나는 열변을 토했다.
"마탑의 하위 조직인 알케미아는 12개 국가에 포션을 수출하고 있습니다. 골렘 사업과 워프 사업도 세계시장에 뛰어들 준비를 마쳤습니다. 마탑이 세계길드의 일원이 되면, 여러분은 그만한 숫자의 사람과 국가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결코 손해 보는 비즈니스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마르첼로가 등을 기대며 만족스럽게 미소 지었다. 다시 샴이 나섰다.
"그런 영향력은 아무래도 좋네. 쟁점은 마탑이 세계길드에 들어올 정도로 임무 수행 능력을 갖췄냐는 것이지. 그런 인원으로 제대로 마인들과 싸울 수 있겠나?"
"네, 간단히 저희 마인전 성과를 말씀드리자면…… 최근에 발견된 파괴된 마인들의 연구 기지. 그거 저희가 한 겁니다."
"……!"
마인들이 인간을 몬스터로 만드는 포션을 개발하던 연구 시설은 세개.
그중에 두 개를 내가 무너뜨렸다.
나머지 하나는 여기 있는 천공성주가 무너뜨렸고 말이다.
"그리고 이런 것도 있죠."
나는 품속에서 리스트 하나를 꺼내 펼쳤다.
"그게 뭔가?"
"최근에 제가 처단한 200명의 마인 리스트입니다."
그들의 눈이 커졌다.
마인들은 쉽게 정체를 드러내지 않아서, 한 명 한 명 붙잡는데 상당한 수사력이 동원되어야 한다. 그렇기에 200명이란 숫자는 사실 상당히 컸다.
"거기에 더해, 이 죽은 사람들의 주변 관계를 샅샅이 파헤쳐서 마인으로 의심되는 사람들을 추가로 발견해 냈습니다."
나는 여기에 새로운 리스트를 더 해샴에게 건넸다.
"……음."
"마탑이 세계길드가 된다면 수사권을 가지고 제대로 파헤치겠지만, 아직은 제게 그런 권한은 없네요."
리스트를 살피던 그녀의 눈이 커졌다.
"클린트……! 까다로운 마인인데 잘도 찾아냈군."
"운이 좋았죠."
마탑이 세계길드에 들어감으로 써얻을 수 있는 그들의 이익, 미래 가치, 그리고 성과까지 어필했다.
지금 단계에서 할 수 있는 건 다했다고 생각한다.
그때 가만히 앉아 있던 천공성주 알베르가 샴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도 보고 싶군."
샴이 의외라는 눈빛을 하며 리스트를 넘겼다. 알베르는 무표정한 얼굴로 리스트를 읽어 내려갔다.
뒤이어 한윤정과 마리가 한 가지씩 질문했지만 나는 어렵지 않게 대답했다.
"이야기는 잘 들었네. 마탑주 김유신."
샴이 서류를 내리며 말했다.
"지금부터 투표하겠다."
자, 드디어 결정의 순간이 왔다.
다섯 표 중에서 세 표가 찬성을 표하면, 나는 세계길드의 새로운 수장이 된다.
"마탑의 세계길드에 찬성하는 자는 거수하도록."
팔이 올라간다.
한윤정과 마르첼로가 찬성.
그리고 샴, 마리, 알베르는 아무런 반응도 없다.
'끙, 부족했나……!'
아깝다.
내 이야기가 그들의 마음에 온전히 와닿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그들이 찬성하지 않은 건 내 설득력이 부족했을 뿐, 왜 반대했냐고 따질 이유는 없다.
아쉽지만 결과를 인정해야지 뭐.
나는 그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잠깐."
그때였다.
"제안을 하나 하지."
알베르가 입을 열었다. 목소리마저 소름 끼치는 미성이다.
"마탑의 미래 가치는 흥미롭지만, 임무 수행 능력에는 의문점이 있다. 그러니 증명할 기회를 주겠다."
그의 푸른 눈동자가 이채를 발했다.
"내가 지목하는 재앙 하나를 해결한다면, 나와 천공성은 기꺼이 찬성표를 던지도록 하지."
"……아!"
세 표가 확보되면 다른 두 사람은 찬반을 볼 것도 없이 마탑의 세계길드가 확정된다.
이야기가 되지 않은 부분인지, 샴은 굳은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
"이보게 성주……!"
"제안을 받아들이겠나?"
밑져야 본전이지. 나는 씩 웃으며 대답했다.
"받아들이겠습니다."
* * *
몰타 공화국, 고조(Gozo) 섬.
이곳은 아비규환이었다. 끊임없이 몰려드는 몬스터들의 공세에 수비라인이 무너지고, 도시의 시민들은 배에 올라타거나 구조 헬기의 사다리에 매달려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대령님! 몬스터들이 몰려듭니다! 서둘러 안전한 몰타 섬으로 피난하셔야 합니다!"
"끙."
조지프 대령은 분한 얼굴로 주먹을 꽉 쥐었다. 이곳 고조 섬까지 무너져 몬스터 소굴이 된다면, 본섬의 안전도 보장할 수 없다.
"적어도 시민들이 모두 피난할 때 까지는 이곳을 사수해야 해! 지원군
"북쪽의 주둔 연맹군들은 모두 당했습니다! 스페인에서 온 지원병력은 완전히 연락이 끊겼습니다."
"헌터, 헌터가 필요해! 대체 연맹은 뭘 하는 거야!"
조지프 대령은 분노에 몸을 떨었다.
재앙이 발견되자마자 서둘러 각국에 지원을 요청했지만, 우방 이탈리아는 묵묵부답이고, 그리스와 스페인도 형식적인 파병을 보낸 정도에 그쳤다.
'이게 세계의 흐름인가.'
다들 자신의 영토에 일어난 재앙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지, 이웃 나라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듯 행동하고 있었다.
-키이이익!
모든 몬스터들이 이곳으로 몰려들고 있다. 앞서 설치한 차단선들도 무너지기 직전이다.
"대, 대령님!"
참모가 말을 걸었다.
"아, 자꾸 뭐야? 바빠죽겠는데!"
"헌터 한 명이 구원 요청을 받아들였습니다! 무려 공인 2급! 곧 이쪽으로 온답니다!"
그 말에 조지프 대령이 화색이 되어 물었다.
"2급? 2급 헌터가 이런 곳까지 와준다고? 누구야?"
"마탑주 김유신이라고 합니다!"
조지프 대령이 멈칫했다.
"어? 김유신? 그 사람 동양인 아니었나?"
"예, 사우스 코리아……"
조지프 대령이 짜증스럽게 머리를 벅벅 긁었다.
"망할! 그쪽에서 언제 몰타까지 오냔 말이다! 가증스러운 연맹 놈들! 이런 식으로 생색만 내고 섬이 다 파괴된 뒤에 어쩔 수 없었다면서 시늉만……!"
우우우웅!
조지프 대령의 말이 뚝 끊겼다. 갑자기 허공에 워프게이트가 열리고, 그 안에서 남색 슈트를 입은 남자가 걸어 나왔다.
"안녕하세요."
유신이 빙글빙글 웃는 얼굴로 말했다.
"연락받으셨죠? 김유신입니다."
"……아, 마탑주 김유신!"
잠시 얼이 빠져 있던 조지프 대령은 다급히 정신을 차리고 경례를 올려붙였다.
"몰타군 고조 섬 책임자 조지프 대령입니다!"
"잘 부탁해요."
유신이 손을 내밀자 조지프 대령은 깍듯한 태도로 악수를 받았다.
헌터라니! 그것도 공인 2급 헌터라니!
"재앙에 대한 브리핑은 듣고 왔습니다. 상황은요?"
"고조 섬의 모든 방향에서 수중 몬스터들이 상륙해 도시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적의 숫자는 집계된 것만 최소 3천! 피난 상태는 70%입니다! 본부에서는 민간인 피난에 전력을 쏟도록 하고, 저희도 이 섬을 버리고 몰타 섬으로 이동하라는 지침입니다."
"아뇨, 전 이 섬을 버리지 않겠습니다."
유신이 딱 잘라 말했다.
"작전 최고 책임자는 누굽니까?"
"실비오 준장입니다. 헌터들 중에서는 마테라 공인 4급이 통제하고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통신 채널 공유해 주세요."
"예!"
조지프 대령으로부터 채널을 들은 유신은 바로 이어마이크를 켜고 말했다.
"저는 공인 2급 김유신 헌터입니다. 지금부터 제가 현장을 통제하겠습니다."
사방에서 떠들썩한 환호성이 들렸다.
"당장 크게 바뀌는 지침은 없습니다. 지금처럼 피난 유도가 1순위. 중심으로 몰려드는 몬스터는 제가 맡을 테니 주 전력은 피난민 보호에 집중해 주십시오."
곳곳에서 알았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유신은 통화를 종료한 다음 옆을 보았다.
'이게 재앙의 핵이란 거지?'
지금 유신의 눈앞에는, 누가 봐도 수상하게 생긴 커다란 꽃이 보였다.
꽃잎은 뱀의 무늬처럼 난해했고, 중앙에는 꽃봉오리 대신 검은 수정이 피어올라 있다.
고조 섬은 이 꽃이 피어오른 뒤에 몬스터들의 공격을 받게 된 것이다.
정확히는 모든 몬스터들이 이 꽃의 수정을 깨려고 달려온다.
'봉마의 씨앗.'
통칭 봉마계 재앙이라고 불린다.
오버레이 초창기에는 헌터들이 멋도 모르고 이 수정을 직접 깼다가, 그야말로 지옥을 맛봤다.
당장에 보스 몬스터급이 들이닥쳤고, 몰려드는 몬스터들의 개체 수도 몇 배로 늘어났다.
그렇게 몇 번의 시행착오를 겪은 후, 봉마계 재앙에 대한 연맹의 지침이 정해졌다.
제일 먼저 전력을 집중시켜 몬스터들이 봉마의 씨앗을 깨지 못하도록 보호한다.
이것을 안전하게 확보한 이후에, 다른 단서들을 조사하며 재앙 클리어의 실마리를 잡아가는 게 기본이다.
몰타 측도 지침대로 잘 해놨다. 대 몬스터용 펜스를 널찍하게 몇 겹으로 둘러쌓았고 군 전력을 집중시켰다.
본부에서는 씨앗이 몬스터들에게 파괴되도록 내버려 두고 다른 섬으로 도망치려 했던 것 같지만, 조지 프 대령의 고집이 이 섬을 살렸다.
자,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대부분의 군인들이 공인 2급 헌터를 처음 본다. 모두의 시선이 유신에게 집중되고 있었다.
그리고 유신은 빈 공터를 보며 거리를 재는 듯 팔을 들거나 손가락을 세워 보이고 있었다.
"좋아."
마침내 그가 팔을 내리며 조지프 대령에게 말했다.
"잠깐 거기서 비켜주실래요?"
"예? 아, 옙!"
조지프 대령이 물러나자 유신은 두팔을 뻗으며 마력을 끌어올렸다. 공터에서 마력이 거칠게 소용돌이치기 시작한다.
"오오!"
"무슨 마법을 쓰려는 거지?"
소용돌이는 점점 더 크기를 불려나가다가 이내 바람에 흩어지며 잠잠해졌다.
그 자리에는 초대형 마법진이 하나 펼쳐져 있었다.
-좌표 계산 완료. 지면 상태 양호. 마탑 내 마나량 충족 확인.
"사미아. 준비됐습니까?"
-언제든 준비되어 있다. 김유신 헌터.
유신은 좌표 유도를 멈추고 뒤로 멀찍이 물러났다. 그러곤 두 팔을 위로 세게 쳐올렸다.
우우우우우우웅!
마법진의 위로 광채가 일렁거리며 거대한 뭔가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허억!"
모두가 놀라다 못해 입이 딱 벌어졌다. 조지프 대령은 아예 헛웃음을 흘리며 머리를 쓸어 올리고 있었다.
몰타 공화국 영지의 한복판, 그곳에 우뚝 솟은 탑이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