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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마탑주-227화 (227/337)

나 혼자만 마탑주 227화

사태는 빠르게 정리됐다.

알프스에서 거의 준 재앙급으로 발전할 뻔한 이 사태는 우연히 스키타러 놀러 온…… 아니, 우연히 지나가던 공인 2급 세 명에 의해 조기 차단된 것으로 상부에 보고됐다.

인명피해는 전무. 남아 있던 잔당 몬스터 몇 마리도 한윤정이 가볍게 처리했다.

"덕분에 큰 사고를 면했습니다! 헌터 여러분의 지원에 감사드립니다."

스키장을 운영하는 CEO가 단걸음에 달려왔다.

그는 소속 길드를 통해 공식직으로 의뢰 보상금을 주겠다고 말했으며, 그와 별개로 우리에게 VVIP 평생 스키장 이용권을 선물했다.

"이걸 어디다 써……"

나는 금빛으로 반짝이는 카드를 보며 쓰게 웃었다. 여기에 또 올 일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반면 한윤정은 평생 이용권이란 소리에 너무나도 좋아했다.

"공짜니까 좋잖아! 이제 니들도 2급이니까 스위스에 올 일 많을 걸?"

스위스에 와도 여긴 안 올 것 같아서 그렇다.

적어도 너희들이랑은 죽어도 안와. 이 재능충들.

"그럼 이 괴물 시체는 가져도 괜찮지?"

"맘대로 해."

"저도 좋아요."

마정석 수익은 두 사람이 나눠 가지로 했고, 나는 이 시체를 통으로 챙기기로 했다.

"사미아. 시작해 주세요."

내 말이 떨어지는 순간, 죽은 몬스터의 몸 아래로 흐물거리는 워프게이트가 나타났다.

몬스터의 몸이 늪에 잠기듯 서서히 내려가다가 이내 완전히 사라졌다.

이걸로 다음 신골렘의 중요 파츠를 손에 넣었다. 탑에 돌아가면 은솔의 뽀뽀를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저 기술은 봐도 봐도 신기하단 말이야."

한윤정이 팔짱을 끼며 중얼거렸다.

"워프게이트도 머지 않아서 공항처럼 상용화될 거야. 지금 개발 중이거든."

"어, 진짜? 이집트에도 깔아줄 거지?"

"500억만 투자해."

"이 수전노! 뭐만 하면 돈! 돈! 이 돈 귀신아!"

한윤정이 분개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낄낄 웃었다.

"워프 담당자라면 사미아 님이군요."

홍인이 말했다.

"응, 맞아."

"그래서 그렇게 탄자니아에서 스카우트하려고 애를 쓰셨던 거였네요."

"말도 마. 은퇴하려는 사람 붙잡고 애원해서 힘들게 모셔온 거야. 텔레포트 능력자 엄청 귀하잖아."

어깨를 툭툭 두들기며 이야기하던 나는 문득 생각나서 말했다.

"혹시 넌 이쪽 일 생각 없어? 관리자 자리 하나 남았는데."

홍연 정도의 전력이라면 절이라도 해서 데려오고 싶다.

그러나 홍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전 협회 소속이에요."

"아 참, 안 되는구나."

협회 소속의 헌터는 공무원이라 이중 소속이나 겸업 불가다.

예전이면 모를까, 이제 마탑은 하나의 '길드'로 등록되어 있다. 그녀가 마탑에 들어오려면 협회를 포기 해야 한다.

하지만 그녀는 홍율의 뒤를 이어다음 헌터 협회장이 되는 게 목적이다. 아쉽게도 나와는 가는 길이 다르다.

나도 뭐, 내게 우호적인 지인이 협회장 해주는 편이 좋지. 다시는 그망할 프로스트 사태 같은 일을 겪고 싶지 않다.

"자, 이제 돌아가자."

"네!"

홍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내일이 세계길드 심사 아닌가요? 이렇게 힘 빼셔도 괜찮아요?"

"심사라고 해봐야 기존 세계길드의 찬반 투표 정도뿐이니까."

나는 그렇게 말하며 한윤정을 바라보았다.

"넌 어떻게 될 것 같아?"

"글쎄다."

한윤정이 고민스러운 표정으로 입술에 손을 올렸다.

"일단 난 찬성할 생각인데, 나머지 넷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네. 워낙 속을 모를 사람들이라서."

"음."

계산이 안 서는 건 이쪽도 마찬가지다.

한윤정은 처음부터 내 편이고, 마르첼로는 이전의 약속이 있다. 두 사람이 찬성해 준다면 나머지 셋 중단 한 표만 있으면 된다.

하지만 워낙 만나기도 힘든 사람들이라서, 밑 작업을 따로 해둔 건 없다.

"일단 부딪혀 보지 뭐. 이번에 거절당해도 기회가 한 번만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그때, 허공에 사미아의 워프게이트가 열렸다. 바로 연맹 본사로 돌아갈 수 있는 워프였다.

"자, 돌아가서 좀 쉬자."

"두 분 다 수고하셨습니다."

"가서 한잔 더 콜?"

"잠 좀 자자! 잠 좀!"

* * *

드디어 세계길드 심사 일이 다가왔다. 나는 정장에 헌터 슈트를 걸치고 걸음을 옮겼다.

'…으악.'

엘리베이터를 타고 호텔 로비로 내려오자마자 무수한 촬영 인파와 마주했다.

나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표정을 꾸며내며 앞으로 걸어나갔다. 가람에서 보내온 경호원들이 내 주위를 감쌌다.

"김유신 헌터! 오늘 세계길드 심사의 승산은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시나요?"

"다른 세계길드에 비해 마탑이 가지는 경쟁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제는 꽤 익숙해진 얼굴의 기자들이 마이크를 들이밀며 질문 공세를 퍼붓는다.

여러 질문 중에, 나는 저 마지막 질문만 대답하기로 했다.

"마탑의 경쟁력이요? 음……"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역시 대중성이죠."

"……예?"

"그럼 전 이만."

"잠시만요 김유신 헌터! 설명을 좀!"

나는 촬영 인파를 빠져나와 가람 매니지먼트의 차량에 탑승했다.

중앙 건물까지 걸어서 가도 충분하지만, 취재 열기가 뜨거워서 차를 타고 가는 게 정답일 듯했다.

'어?'

그런데 앞 좌석에 누가 타고 있다.

"짠!"

조수석에 탄 신나라가 불쑥 뒤를 돌아보며 V자를 그렸다.

"대, 대표님! 스위스는 언제 오셨어요? 바쁘시다고 들었는데."

"어제 왔죠! 대한민국의 미래가 걸린 이런 중대한 사안에 저희 헌터가 가는데 빠질 수 있나요!"

대한민국의 미래 정도는 아닌데…….

그때 신나라가 내 앞으로 뭔가를 촤르륵 꺼내 보였다.

"우황청심환 드실래요? 메틸페니데이트? 카페인 캡슐? 아님 헌터용 각성제?"

"……청심환은 신 대표님이 드셔야 할 것 같은데."

실제로 내 쪽으로 영양제들을 들이 민 신나라는 잔뜩 긴장한 얼굴로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으으, 그 사람들 텃세 장난 아닐텐데…… 세계길드가 5인 체제로 굳어진 지 시간이 많이 지났다고요. 어쩌죠? 어쩌죠?"

"승산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가벼운 홍삼 스틱 하나를 골라서 윗부분을 뜯고 내용물을 쪽 빨아 마셨다.

"다섯 명중에 두 명 정도는 잡아놨습니다."

그 말을 들은 신나라의 동공이 확 커지더니, 갑자기 영양제들로 얼굴을 가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으으! 또 그렇게 막 기대하게 하지 마세요! 김 헌터님이 바람 넣으면 진짜로 될 것 같다고요!"

"……하하."

정확한 건 만나봐야 알겠지만, 사실 승산은 반반 정도라고 생각한다.

차는 매끄럽게 움직여 목적지에 도착했다.

신 대표는 보안 구역 앞까지 나를 안내해 주었다. 여기서부터는 관계자만 출입할 수 있다.

"화이티이이이잉!"

보안 구역 밖에서 그녀가 두 팔을 번쩍 들머 응원했다. 얼마나 목소리가 큰지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쳐다보았다.

나는 그녀에게 팔을 흔들어주며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연맹 중앙 본부 90층.

엘리베이더에서 내리자 기다리고 있던 직원들이 안내해 주었다.

"김유신 헌터님. 이 방입니다."

"후우우."

나는 가볍게 숨을 내뱉으며 정신을 가다듬은 후, 직원이 열어준 방 안으로 들어왔다.

통유리 너머로 눈부신 빛이 들어오는 방안에, 다섯 명의 사람들이 각자의 개성대로 앉아 있다. 하나같이 대단한 위압감을 풍겼다.

1. 성기사단 / 바티칸 / 공인 2급 '아크 비숍' 마르첼로.

2. 묘지기 / 이집트 / 공인 2급 '파라오' 메네스.

3. 천공성 / 프랑스 / 공인 1급 '천공성주' 알베르 클로스테르망.

4. 유령대 / 멕시코! 공인 2급 '정령왕' 마리 골드.

5. 사자선단 / 싱가포르 / 공인 2급 '제독' 샴.

각기 다른 분위기의 다섯 명이 나를 보고 있다. 나는 그들이 앉아 있는 좌석의 중간으로 걸어왔다.

한윤정의 모습이 보인다.

오랜만에 보는 그 황금 파라오 슈트를 입고 있다. 다리를 꼬고 팔짱을 낀 채 도도한 표정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지만, 눈이 마주치자 살짝 윙크를 해 보였다.

오랜만인 아크 비숍 마르첼로의 모습도 보인다. 그는 나를 향해 부드럽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우연히 호텔에서 마주쳤던 유령대의 마리는 품에 끌어안은 인형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내게는 큰 관심을 표하지 않았다.

제독 샴. 제독이라는 이명답게 훈장을 주렁주렁 매단 해군 정복을 빼입었다.

세계길드의 수장들 중에서 가장 연장자. 하얗게 머리가 세어버린 60대여인이 제복을 입은 모습은 무척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바로 이 사람.

세계길드 중 유일한 공인 1급. 그리고 구성원 모두가 평등한 세계길드에서 사실상 리더격인 인물.

알베르 클로스테르망.

흰 정장에 순백의 목도리를 두른, 조각 같은 외모의 남자였다.

그의 외모에 대해서는 소문만 무성했는데, 직접 보니 소문이 전혀 과장된 게 아니었다. 순정만화에서 튀어나온 고결한 꽃미남이 따로 없었다.

그는 현대인이 소화하기 쉽지 않은 외눈 안경을 낀 채,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찻잔을 들어 홍차를 맛보고 있었다.

이 사람을 설득하는 건 만만치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그럼 지금부터 마탑의 세계길드심사를 시작하지."

샴이 입을 열었다. 나는 모두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마탑주 김유신이라고 합니다."

"마탑에 대해서는 우리도 보고 받아 잘 알고 있네. 자기소개 같은 뻔한 절차는 넘어가지. 질문이 있다면 해보게."

바로 질문이라니, 뭘 어필해 볼 기회도 없다.

일주일을 준비해 온 길드 소개가 스킵됐지만, 나는 침착함을 유지하며 질문을 기다렸다.

"……."

주위가 조용해지자 샴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내가 먼저 하겠다."

"예, 영광입니다."

"세계길드는 이미 5개 체제로 충분한 성과를 내고 있네. 연맹도, 그리고 우리들도 지금의 체제에 만족하고 있지. 굳이 이제 와서 마탑을 포함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이유는 간단합니다."

나는 그녀와 눈을 마주하며 대답했다.

"힘 때문이죠."

"……힘?"

"네, 세계길드가 지금까지 이룩한 업적들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무수히 많은 마인들과 재앙을 파괴했죠. 그래서 각국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거고요. 하지만……."

나는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고일 뿐인 물은 결국 썩게 마련이죠."

"……표현이 자극적이군."

"사실이 그렇습니다. 현재 세계정세는 국수주의, 자국 우선주의가 대세입니다. 심지어 M10이라는 헌터강대국 연합까지 출범했죠. 이런 일련의 상황들이 무엇을 뜻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계속하게."

"연맹의 영향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겁니다. 최근의 아프리카 사건만 해도, 연맹의 과도한 가맹국 지원압박으로 '아프리카 포기 주의자'들이 등장했고, 그들이 일으킨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연맹의 신뢰는 크게 떨어졌죠."

나는 모두를 둘러보며, 또박또박 말을 이어나갔다.

"마지막 세계급 재앙이 출현한 지 벌써 7년이 넘었습니다. 연맹의 파워가 점점 떨어지고 있다는 건 명백한 사실이죠. 그리고 연맹의 파워로부터 권력이 창출되는 세계길드라는 조직의 특성상, 그 위상이 줄어들 염려가 있습니다. 해결책은 단 하나, 연맹만 믿고 있을 게 아니라 세계길드가 스스로 힘과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는 겁니다."

바로 그때.

"재밌는 말씀을 하시네요. 마탑주 김유신."

마르첼로가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끼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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