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만 마탑주 222화
심판의 외침과 동시에 나이트워커가 달려온다.
그의 오른팔이 검은 액체로 뒤덮이더니 길이 2m가 넘는 대검의 형태로 변했다.
저게 바로 나이트워커의 고유 능력 '플루토'.
간단히 말해 몸을 액체화하는 변형계 능력이다.
나이트워커의 경우, 액체화를 넘어선 '경화'의 경지까지 이르렀다. 액체고 고체고 자유자재로 몸을 뒤바꿀 수 있다.
'역시 접근전으로 오나.'
간단히 접근을 허용할 순 없지. 우선 파이어 캐논을 스무 발 정도 만들어서 날려 보냈다.
"흠."
나이트워커는 조금 놀란 표정이 다가도 기꺼이 화염 세례 속으로 몸을 던졌다.
공인 2급답게 신출귀몰한 움직임으로 회피하면서, 팔로는 화염구들을 베어 넘기며 나와의 거리를 좁혀왔다.
<플레임 타우로스>
다가오는 그의 옆으로 즉발 마법진을 펼쳤다. 다급히 멈춰 서려는 나이트워커를 보며, 나는 그대로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꽈아아아앙!
나이트워커의 몸이 폭발에 휘말렸다.
-탑주! 제대로 포착했습니다.
'다 쏟아부어!'
나는 파이어 캐논의 물량을 세 배로 늘려 폭발 속으로 무작정 꽂아넣었다.
귀청이 떨어질 만한 폭음이 연달아터져 나왔다.
퍼어엉!
쿠구구구구궁!
폭음으로 요란한 경기장과는 달리, 관중석은 한없이 조용했다.
"……괴, 굉장한데."
"저 정도면 어지간한 화염계 능력자의 상위호환 아닌가?"
관중석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이제 보니 여기서 내 편은 별로 없다. 헌터계의 기득권들, 그러니까 전투계 능력자들은 사실 마법의 출현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내 화염 마법이 어지간한 화염계 능력자들보다 우수하다. 그리고 나는 화염뿐만이 아니라 수 많은 다른 기술들도 보유하고 있다.
이에 어떤 헌터들은 자신들의 고유한 영역이 대체 당할까 봐 우려 하고 있으리라.
그래서 더더욱 마법사의 총수인 나를, 고유 능력을 사용하는 기존 헌터의 대표 격인 나이트워커가 꺾어주길 원할 것이다.
'물론 당해줄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지.'
나는 방심하지 않고 앞을 바라보았다. 폭발 연기 속에서, 검은 액체로 이루어진 소용돌이가 휘몰아치고 있다.
이내 소용돌이가 멈추며 나이트워커가 검을 휘두르는 자세로 나타난다.
그는 상처 하나 없이 멀쩡했다.
"오오오오오오!"
관중석에서 탄성이 쏟아진다.
다시 나이트워커가 움직였다.
그의 몸이 액체처럼 변하며 탄력있는 고무처럼 뒤로 젖혀지더니, 앞으로 나오면서 검은 창들이 쏟아진다.
천장으로 발사된 창들은 최대 높이에서 창끝을 돌려 내게 떨어져 내린다.
-탑주! 저 공격은 빠릅니다.
에아가 경고했다. 나는 다리에 마력을 집중시킨 채 몸을 날렸다.
내가 피하는 자리마다 창들이 파바박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후웅!
이 틈에 한 줄기 섬광처럼 돌진해온 나이트워커가 검을 휘둘러 온다.
검이 코앞까지 다가온 순간, 허공에 스펙터가 나타나 가로막는다. 스펙터의 뒷면에 있는 세 개의 사지타리우스가 발동한다.
카아아아아앙!
검과 검이 충돌했고, 그 찰나의 시간에 나는 재빨리 뒤로 빠져나갔다.
나이트워커도 내가 태세를 갖춘 모습을 보고는 혀를 차며 물러났고, 스펙터는 다시 내 등 뒤로 슉! 소리를 내며 자리했다.
"와아아아아!"
한 수씩을 주고 받았을 뿐인데 관중석의 열기가 장난이 아니다.
"언제까지 탐색전만 벌일 셈이지?"
나이트워커가 검을 허공에 한 번 휘두르며 말했다.
나는 빙그레 웃으며 제자리에서 크게 발을 굴렀다.
"당분간은요."
<가이아>
쿠구구구구구!
주위의 바닥이 뜯겨 나오며 암벽들이 위로 올라온다.
나는 가이아 마법으로 암벽을 송곳처럼 깎은 다음, 그 암벽 뒤편에 사지타리우스를 새겨넣었다.
"가라."
암벽들이 매서운 파공음을 일으키며 쏟아진다.
정직하지만 강력한 물리 공격, 나이트워커는 바위를 베지 않고 몸을 날려 공격들을 피한다.
스륵.
나이트워커는 회피와 동시에 손을 올린다. 바닥에 떨어진 창들이 다시 하늘로 솟구치더니 나를 향해 쏟아진다.
우리는 공격과 방어를 동시에 주고 받으며 치열하게 싸웠다.
흥분한 관중들이 벌떡벌떡 일어나 팔을 들어 올린다.
"놈을 죽여! 나이트워커!"
"나이트워커와 호각이라니!"
"힘내라 김유신!"
가끔 나를 응원하는 소리도 들린다.
나는 다양한 방식으로 나이트워커를 공략했다. 그 또한 내가 마법으로 하는 일을 자신도 할 수 있다는 듯, 보란 듯이 되갚아주고 있다.
화염을 날리면 창이 날아왔고, 지면을 일으키면 검은 파도가 쏟아졌다.
나는 진지하게 4공정의 프로메테우스까지 동원해 봤지만, 그때마다 회오리로 변해 버리는 나이트워커를 어쩔 수 없었다.
저 상태에서는 고열도, 물리 공격도 통하지 않는다.
카아아앙
"훌륭하다."
내 공격마법을 쳐낸 나이트워커가 말했다.
"컨트롤, 밸런스, 심리전까지. 그나이 때의 헌터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능숙하군."
"칭찬 감사히 받을게요."
"그럼, 일은 이 정도로만 하고."
그의 등이 부풀어 올랐다. 뒤이어서 솟구친 다섯 개의 팔들이 각기 다른 형태의 무기들을 들었다.
"지금부터는 공격에 내 사심이 담길 수도 있다."
"……."
나이트워커가 자세를 극도로 낮추었다.
"포기할 거라면 지금 뿐이다. 자네가 지금 보여준 퍼포먼스만으로도 공인 2급 자격을 따낼 수 있어. 하지만 여기서 더 하겠다면 다칠지도 모른다."
"에이, 재미없게 뭔 소릴 하십니까."
나는 두 발꿈치를 들고 신발 밑창을 훑었다. 검은 연기가 흘러나왔다.
"심사위원까지 잡아야 100점이지."
훈련장이 점점 더 뜨거워진다.
열렬한 환호성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마주 보았다.
"갑니다."
나는 등 뒤로 손을 돌려서 스펙터의 손잡이를 쥐고 앞으로 가져왔다. 스펙터의 칼날에는 커다란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다.
나이트워커는 긴장한 얼굴로 그것을 바라본다.
어떻게 공격할지 필사적으로 간파해 보려는 것 같지만, 무의미하다.
나는 나이트워커의 등 뒤로 스펙터를 보냈다.
"……!"
그의 눈동자가 움직여 뒤쪽으로 향한다.
스펙터의 마법진이 빛을 발하며 발동을 준비하는 동시에, 나는 무릎을 굽히며 돌진 자세를 취한다.
앞뒤에서의 동시 공격.
지금 이 상황에서 나이트워커가 취할 수 있는 움직임은 하나다.
촤르르르르륵!
그의 몸이 회전하며 맹렬한 검은 회오리로 변한다.
그 어떤 공격도 무력화하고 찢어발기는 일종의 '무적기'.
하지만 그의 몸은 제자리에서 고정되고, 나는 뒤쪽의 마법진이 발동할 시간을 벌었다.
<데바스타 - 체인홀>
스펙터의 검면에서 암흑구체가 드러나며 제자리에서 회오리를 일으키고 있는 나이트워커의 몸을 빨아들인다. 무적기고 뭐고 공간마법에는 무의미하다.
"흠!"
그가 다급히 회오리를 멈추고 암흑구체에서 빠져나가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어느새 이질적이고도 검은 쇠사슬이 그의 몸을 묶고 있다.
'제대로 걸려 들었어!'
나이트워커 공략에 대한 해답은 자신의 기술에 대한 '자부심'. 그리고 스스로 무적이라고 생각하는 오만이다. 실제로 저 공방일체의 기술은 정말 대단하고, 지금껏 나도 공략해내지 못했다.
아니, 정확히는 공략하지 못한 척한 거지만.
나는 데바스타를 밟고 나이트워커의 후방에서 나타났다. 그리고 몸을 빠르게 한 바퀴 돌리며 힘껏 암흑구체를 걷어찼다.
<데바스타>
터어어어어어엉!
암흑 마법을 움직일 수 있는 건 같은 암흑 마법뿐.
나이트워커의 몸을 빨아들인 구체가 내 발에 부딪히자 맹렬한 속도로 정면을 향해 날아간다.
'에아. 위력은 최대한 줄여.'
-네, 탑주.
그리고 체인볼이 관중석의 펜스에 닿기 직전.
쿠구구구구구구!
검은 폭발이 터져 나온다. 충격파가 주위로 퍼져나가며 관중석에 설치된 자기망을 찢어발긴다. 마치 괴조가 부르짖는 소리와도 같다.
"크윽!"
"꺄아아아아아악!"
사람들은 기겁하며 엎드리거나 팔로 머리를 감쌌다. 나는 다리를 내리며 미소 지었다.
'위력을 약하게 해도 이 정도라니.'
흉악하긴 위력이긴 하지만 내 몸에도 부작용이 왔다.
나는 몸에 흐르고 있는 암흑 마력을 갈무리했다. 데바스타 몇 발을 연달아 쓴 정도의 부작용 수준.
다음 전투가 없어서 망정이지 실전이라면 위험했다. 이건 '암흑 친화'특성의 레벨이 더 오르기 전까지는, 진짜 필요할 때나 결정적일 때에만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고개를 돌려 앞을 바라보자, 커다란 구멍이 생긴 펜스에 나이트워커가 처박혀 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가 쓰고 있는 무도회 가면이 반으로 갈라지며 투둑 툭 떨어진다.
생각보다는 나이가 젊어 보였다.
[김유신 : 1, 000/1, 000]
[나이트워커 : 0/1, 000]
심판이 다가왔다.
"승자는……"
"잠깐."
심판의 말을 끊고 누군가 다가왔다. 이 테스트를 제안한 장본인인 콜린스 의원이 다가오고 있었다.
"내가 직접 하겠네."
"아, 알겠습니다!"
심판은 절도 있게 고개를 숙이며 뛰어 내려갔다.
어쩐지 불안한데. 이 사람이 이번엔 또 무슨 소릴 하려고.
"그럼 테스트 결과를 발표하겠습니다."
콜린스가 관중을 둘러보며 말했다.
바로 이 자리에서 한다고?
"본 헌터 등급 심사위원회는 그간 김유신 헌터가 쌓아온 공적이 공인2급 헌터로 승급하기에는 부족하다고 판단, 승급을 보류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쌓은 공적, 특히 재앙 타베스로부터의 아프리카 해방은 그간 어떤 공인 3급들도 해내지 못한 업적인 것은 자명하니, 이를 감안해줄 것을 대한민국 헌터 협회가 요청했습니다."
사람들은 숨도 쉬지 않고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간의 커리어를 봐도, 앞으로 김유신 헌터가 펼칠 활약에 대한 기댓값은 논란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3급 이후에 보여준 세 개의 공적으로는 실력에 대한 확실한 검증을 기대할 수 없었기에, 본 헌터등급 심사위원회는 현역 공인 2급 헌터와의 대결을 추진했습니다. 그결과는 여러분이 보시는 대로입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나이트워커가 이를 갈았다.
"잠깐, 난 아직 쓰러진 게……!"
"자네가 졌네. 나이트워커."
그를 노려보며 조용히 말한 콜린스가 다시 마이크를 들었다.
"따라서 본 헌터 승급 심사위원회의 판단은 다음과 같습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뛴다.
바늘 떨어지는 소리마저 들릴 정도의 정적.
부스럭거리며 서류를 펼친 그가 입가에 호선이 그려진다.
"지금 이 순간, 우리 헌터계에 새로운 공인 2급 헌터 식구가 탄생했음을 공포합니다."
그가 서류를 내리며 나를 보았다.
"축하합니다. 김유신 2급."
폭발적인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뭐가 됐든 새로운 2급 헌터의 등장은 축하할 만한 일인지, 관중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쳐주었다.
저기 끝에 보이는 협회장도 큰 소리로 웃으면서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마탑주 김유신, 앞으로도 인류를 위해 힘써주길 바라네."
콜린스가 다가와 내 가슴에 직접 훈장을 달아주었다. 내 가슴에 빛나는 숫자 '2'가 보인다.
"기대에 부응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전력외에서 시작한 내 커리어가, 드디어 여기까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