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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마탑주-221화 (221/337)

나 혼자만 마탑주 221화

"다시 한번 내 앞에서 씨불여 봐, 왜 유신이는 안 된다는 건지."

"그건으로 찾아 올 줄 알았지."

시선을 거둔 콜린스가 피곤한 얼굴로 서류들을 뒤적였다. 그중에 한 장을 꺼내 펼쳤다.

"대마도사…… 아니, 마탑주 김유신 헌터의 현재 공적으로는 2급 헌터는 이르다고 판단했소. 괜찮은 공적 하나 정도만 더 올리고 다시 승급을 신청하면……"

"그래, 그래. M10 심사랑 한국의 세계길드 심사 다 끝난 뒤에 말이지?"

협회장이 빙긋 웃었다.

진심으로 화날 때, 그녀는 웃었다.

"내가 이딴 수작질 당하고 가만 있을 것 같아?"

"홍율 헌터! 비약이 지나치십니다!"

"듣보는 좀 싸 물어."

그녀가 눈을 부릅뜨자 한 심사위원이 움찔하며 시선을 피했다.

"지금 개빡쳤으니까 낄 데 껴라. X발 다 죽여 버리기 전에."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권력자들을 기세만으로 찍어누른 그녀가 다시 콜린스를 바라보았다.

"그럼 내가 물어볼게, 콜린스 위원? 수년간 2급으로 승급한 공인 3급들 중에서 대륙 하나를 해방시켰거나 그에 준하는 커리어 가진 새끼있어?"

"……."

"지금 승급한 새끼들 한 트럭을 가져와도 얘가 세계에 기여한 공헌은 못 따라와! 니들이 얘 덕분에 한숨 돌린 거 벌써 잊었냐? 아프리카 파견에 아프리카 포기자를 책임자로 보내는 일 처리는 진짜 기적이었지."

그녀가 역린을 긁자, 의원들의 표정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홍율 헌터! 더 이상의 무례는……!"

"응. 무례 저지른 김에 계속 할게. 그래, 그냥 숫자로만 따지면 크든 작든 해외 파견 커리어 '한 건 성공'으로 치는 게 맞지. 근데 X발 니들 대가리는 이진법밖에 모르는 컴퓨터가 아니잖아? 굳이 그런 억지를 우겨가면서 사람 차별하는데 내가 안 빡돌게 생겼어?"

깊은 정적이 흘렀다.

가장 난처함을 느끼고 있는 건 나였다.

이걸 말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수 백 번은 고민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낄 자리는 아닌 것 같았다.

"……후후."

콜린스 의원이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좋소. 홍율 헌터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내 재고해 보도록 하지."

"코, 콜린스 의원!"

곳곳에서 의원들이 다급히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콜린스는 주위를 진정시키며 협회장에게 말했다.

"김유신 3급의 공적의 가짓수는 적으나, 확실히 커리어의 질로만 따지만 최상위. 그는 앞으로도 더 좋은 공적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2급 승급의 여지는 있소."

"이제야 좀 말이 통하네."

"하지만 큰 커리어 하나가 실력을 증명했다고는 할 수 없지. 헌터의 실력을 증명하기 위한 가장 좋은 건 누가 뭐래도 커리어의 숫자요. 어떤 업적을 얼마나 많이 쌓았는가. 얼마나 많이 던전에서 살아 돌아왔는가. 그게 아니라면 좀 더 직관적인 방법도 있지."

콜린스 의원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모두의 앞에서 김유신 헌터와 현역 공인 2급 헌터와의 대련을 하는 거요. 여기서 괜찮은 성과를 낸다면 내 심사를 재고해 보도록 하지."

웅성웅성.

이번에는 협회장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제 2급으로 올라서려는 3급에게 공인 2급 현역과 싸움을 붙인다니.

말도 안 되는 제안이었다.

하지만.

"하겠습니다."

이미 프로스트와도 싸워봤다. 못할 건 없다.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실력을 증명할 자리를 만들어주신다면 당연히 해야죠."

나는 그들을 보며 웃었다.

"저는 지금 당장에라도 가능합니다."

* * *

콜린스 의원은 바로 공인 2급 헌터와의 대련 자리를 마련하기로 했다.

"캬, 고민의 여지도 없이 바로 덥석 받아먹는구나. 이래야 내 새끼지!"

협회장이 깔깔 웃으며 소리쳤다.

"기회를 준다는데 안 할 순 없잖아요."

"고럼, 고럼."

속 시원하다는 듯 이야기하던 협회장이 조금은 진지한 표정이 되어서 말했다.

"그래도 조심해. 콜린스 그 능구렁이가 그냥 하는 이야기일 리 없어. 말도 안 되는 매치가 될 지도 몰라."

"괜찮습니다. 상대가 빡세면 오히려 원하던 바예요."

내가 가뿐하게 팔을 돌리며 말했다.

"진짜는 제 공인 2급 자격이 아니라, 마탑의 세계길드 심사잖아요? 세계길드의 수장 후보란 사람이 막 2급에 도전하는 뉴비라는 게 가장 큰 선입견이에요. 그 인식을 바꿀 기횝니다. 실력에 왈가왈부 못하도록 딱 임팩트를 줘놓고 시작하겠습니다."

"고럼! 그런 패기가 있어야지!"

그녀가 내 등을 사정없이 두들기며 웃었다.

등짝 스매싱이 아니라 등짝 파괴술이다.

생각보다 내 차례는 빨리 다가왔다. 연맹 직원이 바로 대련 장소로 와달라고 통보했다.

'협회장 앞에서 자신 있게 말은 했는데 긴장되네.'

쉽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협회장의 말마따나 내 승급은 여러 가지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문제고, 거기에 더해 연합에서도 나를 그리 좋게 보진 않고 있다. 저번에 탄자니아에서 살짝 갈등이 있었으니까.

게다가 아직도 연맹 내에 잔존하고 있을 아프리카 포기 주의자들, 그리고 혹시나 여기 잠복해 있을지 모를 마인들도 나를 보면 거품을 물겠지.

내가 이번 심사에는 떨어지기를 원하는 사람이 많다. 그건 명백한 사실이다.

-그래도 탑주는 6공정을 장착하셨습니다. 누가 상대로 나오든 해볼만한 싸움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마워 에아.'

우리는 바로 연맹 부지에 있는 대련장으로 향했다.

'와.'

과연 세계 연맹.

헌터 육성 시설도 미친 수준이었다.

콜로세움을 연상케 하는 이 거대한 훈련장의 규모를 보니, 아카데미에서 결투할 때 썼던 체육관은 그냥 유소년 센터로 보일 지경이다.

관중석에도 이미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소문 참 빠르네.'

어떤 매치업이 되든, 헌터들 간의 대련은 최고의 볼거리다. 그리고 소문만 무성했던 최초의 마법사이자 세계길드 후보자를 제대로 평가할 기회이기도 하고.

나로서는 정말로 중요한 연맹 데뷔전인 셈이다.

절대로 이 사람들 앞에서 실수할수는 없다.

공인 2급과 세계길드문제를 넘어서, 첫인상이 어떠냐에 따라 평생 연맹에 호구 잡히고 말고가 결정 난다.

"매치업은 20분 후에 진행됩니다."

"상대는 정해졌나요?"

"지금 본부에 와 있는 2급 헌터들중에서 일정을 잡고 있습니다. 경기 시작 전에 확인할 수 있으십니다."

나는 곧 전투가 벌어질 대련장 구석구석을 눈으로 훑은 다음, 협회장과 함께 대기실로 들어갔다.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풀고 있는데 그녀가 일어나서 말했다.

"좀 도와줄까?"

"네?"

그녀가 내 뒤에서 다가와 어깨를 붙잡았다. 다른 한쪽 팔로는 내 오른팔을 붙잡고는, 팔을 뒤로 당기며 힘을 주었다.

몸에서 우드득! 하는 소리가 나자 나는 기겁하며 비명을 질렀다.

"아악! 아파요!"

"또, 또 엄살 부린다. 진짜로 아파?"

"……응?"

소리는 컸는데 이상하게 통증은 없었다.

그녀는 바로 반대쪽 팔도 풀어주었다. 이번에도 소리는 요란하게 났지만 아프진 않았다.

오히려 근육이 풀린 것처럼 시원했다.

"이런 마시지 기술 같은 건 어디서 배우셨어요?"

"배우고 말 것도 없어. 간단한 요령이지."

그녀는 10분 정도 내 몸을 풀어주었다. 제자리에서 가볍게 뛰어보니 몸이 날아갈 듯 가벼웠다. 기분이 훨씬 개운해졌다.

이제는 마력의 컨디션을 끌어올리면서 대기실의 모니터를 보았다.

실내 상황을 실시간으로 보여주고 있었는데, 잠깐 안 본 사이 대련장 관중석 1층이 거의 꽉 차가고 있었다.

'아니, 뭐 이리 많아?'

보는 눈도 많고 카메라도 많다. 대박 아니면 쪽박일 것 같다는 예감이 강하게 든다.

그때 정중한 노크 소리와 함께 대기실 문이 열렸다.

"김유신 헌터, 이제 입장해 주셔야 합니다."

"파이팅이다 김유신! 누가 오든 발라 버려!"

"다녀올게요."

나는 협회장의 응원을 받으며 대기실을 나섰다.

복도를 빠져나와 문을 열고 나오자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사방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가끔 작은 환호성들도 들을 수 있었다.

심판복을 입은, 경기장 중앙에서 있는 남자가 다가왔다. 그는 옷을 두 벌 들고 있었다.

"슈트 룰이다. 이걸로 갈아입도록."

"네."

나는 시키는 대로 내 전용 슈트를 벗고, 두 벌의 슈트 중 하나를 골라입었다.

경기장 중앙의 스크린에는 1, 000이라는 숫자를 표시하는 게이지가 떠올랐다. 아카데미에서 많이 해봤던 거라서 어색하지는 않다.

"상대는요?"

심판은 시계를 보더니 말했다.

"이제 도착하겠군."

심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내 앞의 바닥에서 검은 액체가 촤르르르륵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올라왔다.

'…설마.'

회오리치는 검은 액체가 사람의 형상으로 변했다.

드라큘라 백작을 연상케 하는 검은 망토로 몸을 가리고, 얼굴에는 무도회 가면을 쓰고 있다.

여기서 이 사람을 만나게 될 줄이야.

"오랜만이군 대마도사. 아니, 이제는 마탑주였던가?"

나도 입꼬리를 올렸다.

"또 뵙습니다. 나이트워커."

나이트워커의 등장에 관중석에서 격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헌터계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누구나 알고 있는, 헝가리 출신의 거물급 헌터다.

나와는 탄자니아에서 아프리카 포기 주의자 '하칸'의 압송을 놓고 갈등이 있었다.

"혹시 저번에 있었던 일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어요?"

"이미 지난 일이다."

망토를 벗고 심판이 건넨 슈트를 몸에 걸친 그가 비릿하게 웃었다.

"하지만 자네가 고통스럽게 바닥을 뒹구는 모습을 보면 즐거울 것 같군."

마음에 잔뜩 담아두고 계셨구만.

아주.

심판의 지시에 따라 악수를 하고, 서로 간의 거리를 벌리면서 생각했다.

당시 탄자니아에서는 저 나이트워커라는 헌터는 큰 장벽처럼 보였다.

정치적 수단으로 무력화했을 뿐이지, 그가 막무가내로 나올 상황이 두렵기도 했다.

그때의 나와 비교해, 지금의 나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아니, 이 미친 새끼들이! 2급 심사받는 애 상대로 저런 현역을 붙여?"

"지, 진정하십시오! 홍율 헌터!"

"심사는 승패로 갈리는 게 아니니까 진정을……"

벤치 쪽에서 협회장이 길길이 날뛰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뭐, 예상했던 대로 적당한 상대로 해줄 리가 없다. 이것도 기꺼이 내가 넘어야 할 산이다.

협회장과 시선이 마주치자, 나는 괜찮다는 뜻으로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그녀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양측 헌터 준비."

룰 설명을 마치고, 심판이 준비 사인을 보냈다. 나와 나이트워커가 동시에 자세를 낮추었다.

'준비됐지? 에아.'

-네, 얼마든지요.

나는 마력을 끌어올리며 미소 지었다. 연맹에 내 진가를 보여줄 때가 왔다.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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