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마탑주-219화 (219/337)

나 혼자만 마탑주 219화

웨인 존스와의 전투가 끝난 직후.

죽은 마인들의 소지품을 조사하던 나는 던전캠에서 동영상 파일과 사진을 보낸 기록을 발견했다.

에아가 바로 조사에 들어갔고, 자료를 받은 대상이 프로스트와 함께 일하던 안석호 비서라는 것까지 파악했다.

뻔했다. 놈의 목적은 날 엿 먹이기 위해 마탑의 정체를 세상에 공개하려는 거겠지.

그가 언제쯤 이 의혹을 발표할까 예상해 보았다.

프로스트 사건 이후, 각 헌터계 언론사들은 박쥐처럼 홍율 정권에 아양을 떨고 있는 중이다.

안 비서가 가진 자료가 완벽한 증거도 아니었으니, 어중간한 방법으로 터뜨리면 루머인 채로 묻힌다.

그렇기에 이 근래에 있는 가장 큰 행사인 '헌터의 날'에 터뜨릴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바로 대비에 들어갔고, 여러 사람들의 양해를 구해서 그가 속해 있는 던전 연구회의 앞선 차례에 연설을 잡았다.

뭐 사실대로 말하자면, 꼭 저 사람이 아니더라도 나는 조만간 마탑의 정체에 대해 대중에 발표할 생각이었다.

현재 마탑의 사업은 정체되어 있다. 미국 식약청인 FDA에서 포션에 대한 명확한 성분 자료와 제조 과정의 안정성에 대한 검증 자료를 요구했고, 이에 다른 국가들도 비슷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이제 포션 능력자라는 변명으로는 한계가 명확하다. 마법에 대한 검증문제도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말이 많다.

내가 차세대 사업으로 꼽고 있는 워프게이트 서비스나, 골렘 아이템서비스도 마찬가지.

그 외에도 마탑의 정체를 밝히지 않고 사업들을 운행하려니 걸리는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검열에 막힐곳은 막히고, 들어갈 수 있는 곳도 못 들어갔다.

영원히 숨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처음부터 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내 가장 큰 목표 중 하나인 '세계길드' 등극을 위해서 마탑의 정체를 밝히는 건 당연했다.

우선은 발표를 앞둔 일주일 전, 협회장과 약속을 잡았다. 나를 은인으로 생각하고 있는 이 타이밍이 바로 큰 딜을 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나는 그녀를 만나자마자 사과부터 했다.

-이렇게 늦게 말씀드리게 되어 죄송합니다!

사과 이후에는 마탑에 대해 사실대로 말했다.

물론, 세계를 배후에서 조종하는 '오라클'의 정체를 비롯해, 마탑의 세세한 정보와 과거에 대해서는 숨겼다.

그냥 '이계의 유적'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마탑이나 포션도 이계의 유적에서 나온 거다. 딱 그 정도 선이다.

나는 협회장과 적지 않은 시간을 함께했다. 끝까지 말하지 않고 속인 것에 대해, 그녀가 화를 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유신아아아아아앙!

과장 안하고, 그녀는 미친 듯이 좋아했다.

정체를 숨겼다는 서운한 감정 따위는, 내가 꺼낸 카드가 뒤덮고도 남았다.

그 카드는 바로, 마탑의 정체를 공개하는 김에 '마탑의 세계길드 도전'을 언론에 천명하는 것이다.

잠시 정세를 짚고 넘어가자면, 한국은 현재 중요한 갈래에서 있다.

헌터 연맹과는 별개로, 미국의 주도로 진행되는 M10(Member of Ten) 체제가 출범했다. 헌터 최강국으로 손꼽히는 10개국들의 정상회담이다.

기존 M5였던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이집트 5개국에서 5개국이 추가로 더해진다.

이 M10에 들 수 있느냐 못 드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국가적 위상과 영향력이 확 달라진다고 생각해도 좋다.

이 중에서 3개 국가는 거의 확정이고, 2개국 정도가 공석이다.

한국, 일본, 캐나다 등 사실상 전세계의 국가들이 단 두 개의 자리를 놓고 다투고 있다.

현재 한국은 홍율이라는 걸출한 공인 1급을 보유했지만, 딱 그 정도뿐이라고 평가받으며 경쟁국에 비해 평가가 밀리고 있었다.

사실 뭐, 객관적으로 봐도 한국 헌터계의 전력이 크게 꿀리는 건 아니다.

하지만 해외 파견은 등한시하고 국내에서의 활동에만 지나치게 열을 올리는 성향 때문에, 글로벌한 영향력이 크게 떨어져 있는 것이 발목을 잡았다.

러시아의 그리즐리가 프로스트를 '듣보잡'이라고 칭한 것도 이유가 있고, 프로스트가 큰 리스크를 안고도 홍연을 자신의 휘하로 끌어들이려 한 것도 같은 이유다.

즉, 협회장과 한국 정부는 어떻게든 M10에 들어가려고 기를 쓰고 있는데, 갑자기 내가 '마탑'을 보유했으며 이 힘으로 세계길드에 도전한다는 소식을 들고 온 것이다.

협회장과 정부가 쌍수를 들고 환영할만 했다.

만약에 한국이 '세계길드' 보유국이 되면, M10은 무조건 확정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누나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넌 세계길드 심사나 준비하고 있어.

프로스트 때문에 한국 헌터계 전체가 과도기를 겪고 있는 게 다행이었다. 그녀는 빠르게 정책을 개정하고 마탑이 길드 조직으로서 인정받도록 절차를 밟게 해줬다.

그녀의 협력으로 나는 마탑의 확실한 소유권을 국가 차원에서 인정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 발표 이전에, 그동안 사실을 숨기고 있었던 내 지인들에게 먼저 사실을 밝혔다. 그게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했다.

-세상에! 그 탑이 이계 유적이었다고요?

신나라는 기겁하다 못해 놀라 자빠졌다. 뭔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내가 이계의 유적을 보유하고 있었다는 건 상상도 못했다는 눈치였다.

놀라는 것도 잠시, 그녀는 사업가 답게 빠르게 계산기를 두드렸다.

이제 곧 상계동의 신사옥이 완공되고, 우리의 글로벌 마법사 육성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마탑이 세계길드로 인정받으면 핵심사업 파트너인 가람의 입장에서도 더할 나위 없이 큰 호재였다.

그리고 내가 끝까지 정체를 숨긴 것에 대해서는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말해주면서도, 개인적으로는 좀 아쉬워 하는 목소리였다.

-와, 이 치사한 새끼! 어쩜 나한테도 말 안 할 수 있냐?

한윤정은 바로 격렬한 반응이 튀어나았다. 하지만 왁왁 화를 내다가도, 은근히 좋아하는 눈치였다.

사실 그럴 것 같았다면서 내가 세계길드에 들어오는 것에 무조건 도와주겠다고 나섰다.

-역시 그랬군요.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김유신 헌터.

최근 성기사단의 일인자가 된 '아크 비숍' 마르첼로는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이제 약속을 지킬 때가 왔다며 웃었다. 조만간 연맹 본부에서 보자고 말했다.

당연히 홍연에게도 연락했지만, 그녀는 남극 기지에서 바쁜 모양인지 연락이 되지 않았다.

나중에 한국에 돌아올 때쯤 난리가 나지 않을까 예상한다.

자, 이제 모든 준비는 끝났다.

나는 회상을 끝내고, 눈을 떴다.

내 충격 발표 이후, 당황한 관중들이 떠들썩하게 웅성거리는 모습이 보인다.

"이계의 유적이라고?"

"우리나라에 그런 게 있었나?"

"지금 저 사람 제정신인 거 맞지?"

물론 제정신이다. 나는 빙그레 웃으며 말을 이었다.

"상계동에 있는 서울의 흉물, 그 어떤 군사 공격에도 무너지지 않고, 그 누구도 출입하지 못해 소문만 무성했던 그 탑이 바로 이계 유적의 정체입니다."

사람들의 당황한 표정을 보며, 나는 평이한 어조로 말을 이어나갔다.

"저도 탑의 선택을 받은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제 고유 능력의 변화도 탑에 들어간 뒤에 이루어졌죠."

몇몇 기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고유 능력 변화가 이루어진 국내 첫 사례다. 꽤 유명해서 헌터계쪽 취재일을 하는 기자라면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국민 여러분께 바로 알리지 못해 대단히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는 제 판단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칼람을 비롯해, 낌새를 눈치챈 수 많은 길드들이 탑을 노렸습니다. 최근에만 해도 전 협회장 프로스트와 유닉스까지. 정체를 숨긴 건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프로스트라는 말에 좌중에 웅성거렸다.

프로스트가 알케미아를 쥐락펴락하며 포션 능력자와 포션 레시피를 손에 넣으려고 했다는 건 이제 전 국민이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리고 나는 모두가 알고 있는 요소를 원인으로 채택했다.

"마탑을 노리던 가장 방대한 세력이 무너졌으니, 저는 비로소 국민여러분들 앞에서 제 비밀을 알려 드리게 됐습니다. 그리고 좋은 소식이 하나 더 있습니다."

이제 사과 페이스는 끝, 나는 자신만만한 태도로 돌아와 말한다.

협회장과 했던 바로 그 약속.

"저희 마탑은 이제, 세계길드에 도전합니다."

이 발언으로 연회장은 초토화됐다.

파장으로만 따지자면 그동안 다른 인사들이 해왔던 말들이 전부 머릿속에서 까맣게 지워질 정도. 지정된 =장소에서 촬영하던 기자들과 카메라맨들이 우르르 앞으로 몰려 들었다.

헌터의 날 행사는, 어느새 내 기자 회견으로 바뀌었다.

"마탑은 협회에서 마련한 정식 절차를 밟아 한국 국적의 '이계유적보유길드'로서 인정을 받았으며, 모든 서류상 절차를 마무리했습니다. 뒤이어 세계 연맹에 심사를 제안했고. 바로 오늘."

나는 긴장한 기자들을 보며 말을 이었다.

"심사를 받으러 와도 좋다는 연맹의 허가까지 받아냈습니다."

"오오오오오오오!"

곳곳에서 격렬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세계길드'라는 초대형 떡밥이 제대로 어그로를 끌어주고 있다.

나는 고개를 돌려 안 비서 쪽을 보았다.

그야말로 똥 씹은 표정이었다.

'뛰어봐야 내 손바닥 안이야. 프로스트의 비서.'

"김유신 헌터! 그럼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나는 가볍게 헛기침을 하고는 말을 이었다.

"지금은 세계길드 등록에 총력을 기울일 생각입니다만, 마탑은 앞으로도 다양한 프로젝트들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더 저렴한 양산형 포션개발, 서클 마법 개편, 골렘 아이템 판매, 워프게이트 서비스, 신던전 운영 등등 마법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전 세계에 공개할 생각입니다. 기대해 주시길 바랍니다."

연회장이 웅성거림으로 가득 찼다.

그때 또 다른 기자가 손을 들었다.

"마탑에서 새로운 마법사를 뽑을 생각은 없습니까?"

"물론 있습니다."

내가 즉각 대답했다.

"가람 매니지먼트와 함께 마법사들의 길드를 만들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저희 역량이 부족해 많은 인원을 뽑지 않았지만, 이제 최소 200명의 채용이 예정된 대규모 면접을 진행할 생각입니다."

신나라 대표를 위한 어필까지.

기왕 이렇게 알려지게 된 이상 확실히 밀고 나가주마.

"저는 지금 이 순간부터 대마도사가 아니라, 헌터 네이밍 '마탑주'로 활동하려고 합니다. 마법은 각성자라면 누구도 다룰 수 있는 힘입니다. 전투계든, 비전투계든 전력외든 상관없습니다. 많은 마법사 후보생 여러분들의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성기사단이나 묘지기들처럼 극소수의 헌터만 누릴 수 있는 게 아닌, 마나를 쓸 수 있는 자라면 누구나이계 유적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이것이 가장 큰 어필 포인트다.

"앞으로 기대해 주십시오."

내가 카메라를 보며 말했다.

"세계길드 보유국, M10 소속국, 그리고 마법사 최강국 지위까지. 전부 저희 마탑에서 이뤄내겠습니다!"

"오오오오오!"

열광의 도가니였다. 기다렸다는 듯 격렬한 환호성이 터져 나오고, 사람들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갈채를 보냈다.

내가 마탑을 숨기고 국민을 기만 했다는 논란은 일절 없었다. 현재 주어진 재료들을 최대한 활용해 어필했고, 논란은 찬사로 바뀌었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무대 뒤편으로, 고개를 떨군 채 조용히 빠져나가는 안 비서의 모습이 보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