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만 마탑주 217화
"놈을 죽여!"
주위의 마인들이 웨인을 보호하러 달려 들었다.
유신은 무심한 얼굴로 손가락을 휙휙 움직였다. 그의 손길에 따라 지면이 올라오고, 불길이 휘몰아쳤으며, 대기가 얼어붙었다.
마치 이곳의 대자연 전체가 유신의 지시에 따르는 것만 같았다.
"김유신……!"
웨인이 이를 악물었다.
탄자니아에서 봤던 때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잠시 못 본 사이에 그는 더욱 완성되어 있었다.
그 짧은 시간 내에 이렇게까지 달라질 수가 있단 말인가?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그동안 신세 많이 졌어 백익. 아니, 웨인 존스."
유신이 쓰러진 마인의 목뼈를 발로 밟아 부수며 말했다.
"탄자니아에서 한국까지, 우리 악연도 참 질기다. 그렇지?"
대답하려던 웨인이 기겁하며 물러났다. 언제 펼쳐졌는지 그의 머리 위에서 나타난 네 개의 워프에서 폭발 포션들이 날아온 것이다.
유신이 킬킬 웃었다.
"조심해. 우리 쪽 '흑익'이 널 죽이고 싶어 하나 봐."
"……사미아."
웨인이 진땀을 흘렸다. 평소 그녀가 쓰는 텔레포트 능력이 아니다.
뭔가 달라졌다.
설마 그녀 또한 김유신에게 마법을 배운 건가?
"너도 참 대단해."
유신이 비아냥거렸다.
"탄자니아에서 훌리안 장군을 죽이고, 또 최근에 들은 말로는 어거스틴 장군까지 죽였다며? 참 징하다 징해."
웨인이 비틀린 미소를 지었다.
"그들을 죽인 건 내가 아니야. 진실을 알려 줄까? 사실 훌리안을 죽인건……!"
퍼억
웨인은 다리가 으스러지는 고통과 함께 뒤를 돌아보았다. 어느새 지면에서 솟아난 골렘의 팔이 그의 그두 다리를 강하게 붙잡고 있었다.
"솔아 나이스!"
이걸로 피하지 못한다.
슈슉! 하고 사미아의 텔레포트의 소리가 났다. 고문의 후유증으로 사라진 주특기 대신 생겨난 돌연변이 같은 기술.
"커헉!"
생체 내 텔레포트. 웨인의 오른쪽 가슴 한복판에 금속 봉 하나가 직접 텔레포트 되었다.
그것은 정확히 심장을 통과하여 가슴에서 등까지 이어져 있었다.
웨인은 입에서 피를 왈칵 쏟으며 몸을 떨었다. 그의 두 손이 봉을 덥석 붙잡았지만 빼내지 못하고 팔에서 힘이 떨어졌다.
'이제 변신한다.'
하지만 유신은 방심하지 않고 집중력을 끌어올리고 있었다.
샤아아아아아!
급격한 생체 변화를 동반하는 일반적인 마인들과는 다르게, 웨인의 몸에서는 불타는 보랏빛 마력이 솟구쳤다. 그의 몸 전체가 불길에 집어삼켜졌다.
툭하고, 그의 오른팔에 달려 있던 금속 의수가 떨어진다.
-피하십시오 탑주!
화아아아아악!
보랏빛의 팔이 번뜩이며 날아든다.
유신은 다급히 뒤로 물러났지만 다리에 길게 상처가 생겼다.
에아가 방어를 위해 펼친 쉴드들은 흔적도 없이 깨져 있었다. 빠르고 위력까지 있다.
[김유신.]
마인이 된 웨인이 온전히 모습을 드러냈다.
인간의 몸 자체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온몸이 마력으로 불타듯 넘실거렸다.
긴 주둥이, 채찍 같은 꼬리, 벌어진 입에는 삼각형으로 솟은 수 많은 이빨이 드러났다.
그리고 한 쪽밖에 없는 몸집보다 비정상적으로 큰 팔은 아까 의수가 떨어진 오른쪽에 붙어 있었다.
[이번에는 실수 없이 죽이겠다.]
외팔의 괴물이 달려든다.
그의 팔이 불가능한 각도로 꺾이면서 다가오자 유신은 데바스타를 켜고 달아났다.
후우우우웅!
팔이 휘어지고, 그 궤적에 들어온 나무들이 수수깡처럼 날아오른다.
공중에 물러나 있는 유신의 이마에서 땀방울이 떨어졌다.
"쉽지 않겠네."
스피드 타입의 마인. 두 발로 지면을 광인처럼 뛰어다니며 거대한 외팔을 풍차처럼 훙훙 휘두르는 모습이 퍽 위협적이다.
은솔의 골렘들이 달려 들었지만 웨인의 팔에 닿는 족족 가뿐히 박살나서 모래로 돌아갔다.
촤아아악!
바닥을 긁으며 내려온 유신이 바로 오른팔을 뻗는다. 화염구들이 연달아 날아갔지만 두 발의 움직임만으로 간단히 피해낸 웨인이 거대한 팔을 채찍처럼 휘둘렀다.
후우우웅!
다가오는 웨인의 팔과 멈춰있는 유신의 사이로, 스펙터가 바닥에 박힌 채 나타난다. 웨인의 팔이 검을 강타했다.
꽈아앙!
지면이 산산조각이 나며 스펙터가 하늘로 날아갔다. 웨인의 팔 또한 반대 방향으로 튕겨 나왔다.
유신이 스펙터의 칼끝에 '글루' 마법을 써서 바닥에 고정시킨 것이다.
안전하게 거리를 벌린 유신이 다시 허공에 파이어 캐논 마법진을 깔자 웨인도 신속히 우회했다.
'좋아. 슬슬 움직임이 눈에 익는다.'
감이 잡혀간다. 유신은 이번에도 파이어 캐논을 날려 보냈고, 웨인은 코웃음을 치며 경쾌한 몸놀림으로 피해 냈다.
그러다 순간적으로 방향을 비틀고 속력을 내어, 바로 유신의 앞까지 치고 들어왔다.
꽈앙!
[……?!]
화염구에 맞은 웨인의 몸이 주르륵 밀려났다. 타격 당한 부분이 이글거리며 통증을 유발했다.
이상했다. 피하지 못할 공격이 아니었다.
웨인이 고개를 들자, 몇몇 파이어캐논 마법진 앞에 녹색의 마법진이 펼쳐져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거 만드는데 오래 걸렸지.'
유신은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8대 마탑주 미네르바가 그렇게 강조한 '6공정의 버프 마법'.
그녀가 말하길, 6공정의 진가는 사실 공격마법이 아니라 버프 마법이라고 했다.
적색, 증폭의 진.
청색, 수호의 진.
녹색, 가속의 진.
6공정답게 허공에 깔자마자 바로 효과가 적용되며, 마법진을 통과하는 모든 마법들에 적용된다.
1층 시련의 보스 몬스터, 바포메트가 썼던 다색의 마법진들도 바로 이 마법들의 열화판이었다.
"이제부터는 좀 다를 거야."
<파이어 캐논>×100.
허공에 백 개의 불꽃이 피어났다.
웨인은 기겁하며 몸을 날렸고 뒤이어 화염들이 어둠을 밝히며 쏘아져나갔다.
쿠웅! 퍼어어엉!
화염구가 떨어져 바닥이 폭발하고 수풀이 불타기를 반복한다. 웨인은 요리조리 미꾸라지처럼 잘 피해내고 있었지만.
[큭!]
날아오는 화염구 중에 속도가 2~3배로 빠른 것들이 있다.
처음부터 빠른 투사체만으로 공격한다면 어떻게든 대처하겠지만, 느린 투사체 사이로 갑자기 날아오는 빠른 투사체를 피하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
<플레임 타우로스>
거기에 유신은 허공에 6공정 마법까지 섞었다.
3가지의 패턴을 자유자재로 조합해적을 궁지로 몰아놓는 유신의 솜씨는 누가 봐도 감탄이 나올 수준이었다.
파이어 캐논 몇 발에 연달아 얻어맞은 웨인의 속도는 점점 떨어지고 있었다.
'여기까지는 블랙잭을 상대한 수준이지.'
유신은 만족하지 않고 손바닥을 펼쳤다.
"잽만 있으니까 심심하지?"
화르르르르륵!
손바닥으로 펼쳐진 마법진에서 마그마처럼 이글거리는 화염의 거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4공정의 프로메테우스였다.
[그 큰 걸 내게 맞추겠다고?]
웨인이 이를 드러냈다. 저렇게 대놓고 던지는 마법에는 죽어도 맞을 일이 없다.
"그럼, 다들 처음엔 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유신이 스펙터를 손 안으로 불러들였다. 그러곤 마법진을 스펙터의 칼날에 갖다 대자, 마치 스며들듯 마법진이 검에 빨려들어갔다.
유신은 가볍게 스펙터를 휘둘러 보았다. 마치 불타는 검처럼, 불의 꼬리가 검을 따라 움직인다.
"간다."
슈슉!
유신의 손에 들린 스펙터가 즉시 웨인의 등 뒤에서 나타났다. 웨인은 대경실색하며 옆으로 뛰었다.
화르르르르르륵!
정면으로 발사된 화염의 거인이 웨인의 등을 뒤쫓는 동시에, 유신의 지시만을 기다리고 있던 파이어 캐논들이 사방에서 쏟아져 내린다.
단순히 쏟아붓는 게 아니다. 그동안 유신의 머릿속에서 쌓인 웨인에 대한 데이터들이 피할 수 없는 각도를 이루고 있었다.
결국 웨인은 팔로 몸을 가린 채 하늘로 뛰어올랐다. 화염구 몇 발에 얻어맞아야 했지만, 힘으로 뚫고 올라왔다.
뒤를 돌아보니 무수한 불길들이 지면을 초토화시키고 있었다.
우웅!
그리고 공중에 멈춰있는 웨인이 머리 위로, 푸른 문이 열렸다.
[……설마!]
유신과 사미아가 준비한 워프게이트는 두 개. 웨인의 머리 위와 프로메테우스의 정면이다.
워프를 통과한 프로메테우스가 체공중인 웨인의 머리 위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거기에 유신은 워프의 앞에 추가 마법진을 펼쳤다.
<가속의 진>
<증폭의 진>
프로메테우스가 가공할 만한 속도로 떨어져 내리며 공중에 있는 웨인의 몸을 덮쳤다.
콰아아아앙!
거대한 폭음과 함께 나뭇잎들이 정신없이 휘날린다. 후끈한 열기를 머금은 후폭풍에 유신은 얼굴을 가리며 물러났다.
[끄, 아아아아아아악!]
웨인이 불구덩이에서 울부짖는 소리가 들린다. 그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한번 달라붙은 프로메테우스는 떨어지지 않고 끈질기게 웨인의 몸을 불태웠다.
'에아. 남은 파이어 캐논 다 때려부어!'
-네, 탑주.
사방에서 화염구들이 쏟아져 내린다. 화염구를 먹고 자란 화염의 거인은 점점 더 덩치가 불어나며 고열의 불길을 뿜어냈다.
[끄윽! 큭!]
화염속에서 불타 죽어가는 마인이 유신을 노려보았다. 유신도 시선을 피하지 않고 그를 마주 보았다.
[이대로 끝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웨인이 부르짖었다.
[세상엔 네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수 많은 마인들이 있다! 마인은 반드시 인류를 멸할 것이다! 반드시!]
유신은 무심한 얼굴로 귀를 후비는 시늉을 했다.
그러고는 스펙터를 손안에 불러들여 웨인을 향해 똑바로 겨눈 다음, 손잡이 앞에 <원드 사지타리우스>를 시전했다.
"지겹다. 이제 죽어."
유신이 손가락을 튕기자 마법이 발동한다.
쏜살처럼 날아간 스펙터의 몸체가 그대로 웨인의 가슴에 처박힌다.
[커허어어어억!]
불타고, 가슴 뚫린 마인이 비틀거리다가 이내 쿵! 소리를 내며 쓰러진다.
그의 녹색 눈동자에 빛이 완전히 사라졌다.
-생명 반응이 사라졌습니다. 탑주.
"후우우우."
탄자니아에서부터 이어진 질긴 인연도 이걸로 끝이다.
유신은 숨을 크게 내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른 마인들도 거의 다 골렘들의 손에 정리된 뒤였다.
"다들 수고했습니다."
유신이 손뼉을 짝짝 쳤다. 이어마이크로 연이어 '수고했습니다!' 하는 관리자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들 돌아가서 쉬세요. 저도 뒷정리만 하고 돌아가겠습니다."
* * *
[…….]
쓰러진 마인이 바닥에서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김유신을 상대하다 당한 것도 아니고, 숲의 몬스터에게 목이 물어뜯겨죽다니, 이렇게 보잘것 없는 최후가 또 있을까.
원통했다.
백익도, 클린트도 모두가 무참히 대마도사의 손에 살해당했다.
하지만 그의 임무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마인은 품속에 숨겨두었던 던전캠을 꺼내서 조작했다.
김유신을 척살하고 마탑을 파괴하는 '첫 번째 플랜'이 실패했을 때의 방법이었지만, 이제는 이 방법밖에 없다.
이 방법 또한 김유신에게는 치명적으로 작용하리라.
시야가 흐릿해지고 몸이 무거워지는 와중에도, 마인은 필사적으로 던전캠의 영상을 업로드하고 전송 버튼을 눌렀다.
이걸로, 됐다.
파앗!
하늘에서 마법진 하나가 나타났다.
들켰다. 비록 자신은 여기서 죽겠지만, 고매한 뜻은 계속 이어지리라.
[반드시 인류는 파멸해야만 하……!]
푸욱!
허공에서 날아온 얼음창이 그의 가슴을 꿰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