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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마탑주-216화 (216/337)

나 혼자만 마탑주 216화

웨인 존스는 한국에서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프로스트에게 정보와 PHC의 장비를 제공했을 뿐, 직접적으로 프로스트를 돕지는 않았다. 한국 정세가 어떻게 되든 그의 알 바가 아니었다.

웨인의 목적은 오로지 유신이었다.

무려 던전을 조작할 수 있는 헌터라는 점에서 마인들의 제1 척결대상. 물론 웨인의 개인적인 원한도 있었다.

유신이 러시아의 임모탈 던전에 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프로스트에게 러시아에 병력을 파견하라고 조언한 것도 웨인이었다.

그리고 유신이 임모탈 던전에 들어간 뒤에는, 던전을 조작할 수 있는 그가 돌아올 것을 대비해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자료들을 모았다.

유신이 재앙에 들어가 있는 동안에는 주로 그의 동료들을 미행했으며, 동시에 그들이 자주 줄 몰한다는 상계동에 숨어 들어가 집중 조사를 감행했다.

그런 웨인의 눈에 들어온 것이 서울의 흉물이라고 불리는 거대한 '탑'이었다.

사실 저런 이계의 구조물이야 오버레이 사태 이후 세계 곳곳에서 찾아 볼 수 있고, 서울에만 해도 몇 개 정도 더 있으니 이상할 건 없었다.

협회의 공문을 살펴봐도 마찬가지.

파괴되지 않는다는 점 외에는 아무런 특이사항이 없었기에 '가치 없음' 판정이 내려져 있었다. 이후 저탑은 한국 사람들의 관심에서 사라진 상태였다.

하지만 웨인은 유신과 그의 동료들의 움직임이 상계동에만 집중된 것을 수상하게 생각했다. 저 탑과 김유신의 상관관계는 조사해 볼 만한 가치가 있었다.

그렇게 긴 잠복 수사 끝에, 웨인은 유신의 동료 중 한 사람이 통제구역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포착하는 데 성공했다.

웨인은 바로 그 동료를 미행했지만, 짙은 안개가 흘러나오는 지점에서 놓쳐 버리고 말았다.

그는 몇 시간 동안 안개 속에서 헤매며 허탕을 쳤다.

'김유신의 마법이군.'

시간이 지날수록 탑에 대한 웨인의 의문은 점점 더 강해졌다.

왜 김유신은 아무것도 없는 흉물 주위에 마법을 쳤을까. 왜 그의 동료들은 마탑이 있는 통제구역을 뻔질나게 드나드는 걸까.

여러 의문들을 고찰하는 과정에서 웨인은 확신했다.

저 탑이 유신이 가진 힘의 원천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조금 더 추측해보자면 묘지기들이 보유한 '대무덤'이나 성기사단의 '공백의 신전' 같은 세계길드의 핵심 구조물인 '이계의 유적'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게 추측하면 그간 그가 보여왔던 불가사의한 힘들과 현상도 쉽게 설명이 된다.

'지금까지 이런 사실을 잘도 숨겨왔군.'

웨인은 바로 준비 작업에 착수했다.

중요한 연구시설들이 유신에게 연이어 격파당하며 상부와의 연락은 끊겼지만, 그동안 세계를 돌아다니며 활동했던 웨인의 독자적인 연락망이 어디 가는 건 아니었다.

웨인은 한국은 물론, 세계 곳곳에서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마인들을 끌어모았다.

'김유신의 본거지를 친다.'

유신에게 있어 가장 곤란한 상황은 탑의 정체를 사람들에게 까발려 버리는 것. 하지만 그건 마인의 입장에선 아무런 득도 없는 일이었다.

꼭 유신이 아니더라도, 그 누가 탑의 주인이 되든 위협적이다. 최악의 경우 새로운 '세계길드'가 탄생할 우려도 있었다.

그런 건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마인을 사냥하는 그 끔찍한 것들이 여섯으로 늘어난다는 건 결코 좋은 일이 아니었다.

저 유적으로 쳐들어가서 김유신을 죽이고, 다른 인간들이 쓰지 못하도록 유적을 완전히 무너뜨린다. 그것이 베스트.

그렇게 때를 기다리던 가운데 기회가 왔다.

웨인이 처음에 예상했던 대로, 유신은 알 수 없는 방법으로 던전에서 탈출해 홍율을 데리고 나타났다.

그들은 프로스트를 축출하고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한국 사회는 격변했고, 그 사이 경찰과 헌터계의 마인 감지망이 느슨해졌다. 움직이기엔 지금보다 좋은 때가 없었다.

끼릭. 끼릭. 끼릭.

약속의 날이 다가왔다. 웨인은 상계동의 문 닫은 구멍가게에 앉아 의수 팔을 돌리고 있었다.

저벅. 저벅.

날이 어두워지며, 낡은 골목에서 마인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낸다.

회사원, 고등학생, 공사판 인부, 종업원, 외국인 노동자, 아르바이트생 등등 다들 평범한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이들의 진짜 정체는 마인이다.

그 수는 무려 207명. 공인 3급 둘과 그 외의 떨거지를 쳐내는 데에는 분에 넘치는 화력이었다.

"오랜만이야. 백익."

쩍 벌어진 어깨에 우람한 덩치의 남자가 다가와 말했다. 고개를 든웨인의 입가에 미소가 자리했다.

"먼 길 와줘서 고맙군. 클린트."

두 사람은 주먹을 부딪치며 어깨를 맞댔다.

"자네 부탁인데 당연히 와야지."

클린트는 지금까지 200명이 넘는 인간을 학살한, 마인 세계의 유명인사였다. 웨인의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그래, 그건 그렇고 자네를 애먹인 한국의 대마도사란 녀석은 어떤 놈이야?"

클린트의 물음에, 웨인은 씁쓸하게 웃으며 답했다.

"세상 영악한 놈이지."

시간이 됐다. 모이기로한 모든 마인들이 모두 집결하자 웨인이 몸을 일으켰다.

"가자."

200명이 넘는 마인들이 철조망을 넘어 통계구역 안으로 들어왔다. 수 풀이 울창하고 몬스터들이 우글거리는 숲이었다.

마탑 멤버들은 안전한 이동 루트가 정해져 있었지만, 마인들은 숲의 어디로 가든 상관없었다. 몬스터들은 마인들을 공격하지 않았으니까.

잠시 후, 마탑으로 가는 길을 막는 안개 결계가 출현했다.

물리적인 방법으로는 통과할 수 없는 이 안개 때문에 유신의 동료들을 놓치기도 했지만, 웨인은 이번엔 대책을 마련해 왔다.

웨인이 옆의 마인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세를 낮추었다.

뚜둑! 뚝!

마인의 몸이 부풀었다. 옷가지들이 찢어지며 발달된 어깨와 허벅지가 튀어나왔다.

주둥이가 길어지고 꼬리가 솟아난 그 모습은 늘씬한 개과 형상의 몬스터였다. 그가 바닥에 코를 박고 킁킁거리더니 따라오라며 손짓 했다.

그는 일주일이 지난 냄새도 추적할수 있었다. 그리고 길마다 인간의 냄새가 진득하게 퍼져 있었다. 모든 마인들이 그를 따라 이동했다.

그렇게 잠시 후.

"나왔다."

안개를 빠져나온 마인들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마탑의 모습이 보였다. 멀리서 볼때는 대단치 않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가까이 와서 보니 무척이나 크고 웅장하게 느껴졌다.

"작전은 미리 통보했던 대로 진행한다."

웨인이 마인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김유신의 척살이 1순위, 유적을 부수는 게 2순위다. 김유신 외에는 평범한 5급 수준이지만, 3급 헌터도 한 명 있으니 주의하도록."

마인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김유신은 영악한 놈이다. 발견하면 절대 혼자서 맞서지 말고 지원을 요청하……."

웨인은 놀라서 말을 멈추었다.

모두가 모여 있는 중앙에 검 한 자루가 떡하니 나타난 것이다.

"뭐야 이건?"

마인들이 의아한 반응을 보였다.

검면에 그려진 무수한 마법진을 본 웨인이 소리쳤다.

"공격이다! 피해!"

화아아아아아아아악!

검에서 무수히 많은 화염구들이 쏟아졌다.

순식간에 불길이 들판을 태우며 마인들에게 번져 나갔다. 피할 새도 없이 화염에 휘말린 마인들이 고통스럽게 바닥을 뒹굴었다.

"모두 침착해라! 연기에서 벗어나!"

으적!

웨인이 소리치는 옆으로, 한 마인의 얼굴이 찌그러지며 날아갔다. 마인들이 움찔하며 전투자세를 취했다.

콰득! 퍽!

주위가 번뜩일 때마다 마인들의 몸뚱이가 하늘을 날아다녔다. 누군가에게 공격당하고 있지만 너무 빨라서 잘 보이지도 않았다.

"기다리고 있었어. 백익."

까득!

번뜩이는 섬광과 함께 나타난 유신이 또 다른 마인의 목을 발차기로 꺾으며 말했다.

"얼마나 왔나 했더니 200명 정도야? 가뿐하네."

"……김유신!"

"저놈이 대마도사다! 잡아!"

유신을 포위한 마인들이 사방에서 달려 들었다. 유신은 제자리에서 몸을 한 바퀴 회전했다.

헌터 슈트가 바람에 펄럭이며 서리의 창들이 그림처럼 펼쳐지더니 정면으로 쏘아져 나갔다.

"크아아악!"

"끄윽!"

창에 틀어박혀 괴로워하던 마인들의 몸이 부풀며 몬스터로 변했다.

인간 상태에서 치명상을 입어도 몬스터로 변신할 수 있는 마인들은 목숨이 두 개가 있는 셈이었다. 몇몇 마인들은 헌팅 디바이스를 내려놓고 처음부터 몬스터로 변해 유신에게 달려들기도 했다.

"알 만 하네."

유신이 지면을 강하게 밟았다.

<가이아>

그의 오른발을 중심으로, 지면이 파도처럼 일어나 마인들의 몸을 밀어냈다. 장벽이 세워져 후면을 틀어막고, 재차 달려드는 마인들은 다리가 움푹 빠지며 구덩이에 파묻었다.

콰득!

마인들의 시체를 짓밟으며, 마탑의 주인이 악몽처럼 전장에 군림했다.

팔을 휘두를 때마다 곳곳에서 철근이 올라와 마인들의 목을 졸랐고, 손가락이 위로 올라갈 때마다 지면 검이 마인들의 몸을 반으로 갈라놓았다.

<파이어 캐논>×100

그리고 하늘에서는 쉴 새 없이 화염구가 지상으로 퍼부어지고 있었다. 단 한 사람의 화력에 마인들은 압도당하고 있었다.

"이게 전부 저놈 혼자서 하는 건가?"

처음 보는 마법사의 화력에 머뭇거리고 있는 그때, 뒤에서 소리 없이 다가온 그림자가 마인들의 목에 날카로운 송곳니를 꽂아 넣었다.

"모, 몬스터다!"

안개 숲에서 시뻘게진 눈의 몬스터들이 우르르 뛰쳐나와 마인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최약체인 1랭크 몬스터 구르마는 물론, 대형 몬스터도 있었다.

"몬스터? 저것들이 우릴 왜 공격하는 거야?!"

콰득!

두 다리로 선 악어 형상의 대형 몬스터가 마인들을 통째로 씹어 삼켰다. 마인들은 기겁하며 도망쳤다.

몬스터들이 마인들을 공격하는 이유, 그 비밀은 물론.

-핫하하하! 지원 왔습니다! 스승님!

나대용의 필드 마법이었다. 몬스터를 흥분시키고 공격성을 극도로 부풀리는 '광폭'이라는 필드 마법이 이 숲에 펼쳐져 있다.

-골렘 온라인. 컨트롤을 시작합니다.

이번엔 에아의 목소리가 유신의 귓가에 들렸다.

덥석! 덥석!

바닥에서 골렘의 팔이 솟아 나와 달려드는 마인들의 다리를 붙잡았다.

"응?"

꾸우웅!

마인들이 다리가 그대로 바닥에 박히고 뒤이어 지면에서 상체를 일어난 머드 골렘이 커다란 주먹으로 마인들을 강타했다.

지형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숲 전역에서 골렘들이 나타나 마인들을 때려눕히기 시작했다.

"대체 적이 얼마나 있는 거야!"

전면에는 유신과 골렘, 후방에는 몬스터까지. 마인들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앞뒤의 공격으로 순식간에 무너져가는 전선을 보며, 웨인이 소리쳤다.

"몬스터들을 내버려 둬! 적은 하나다! 김유신! 김유신을 잡아!"

-크르릉!

늑대로 변신한 마인들이 달려 들었지만, 유신의 태도는 느긋했다.

-김유신 헌터. 지원하겠다.

허공에서 연이어 워프게이트들이 열리고, 그 안에서 날아간 거대한 포션들이 바닥에 떨어지자 맹렬한 불의 기둥이 휘몰아쳤다.

-깨갱! 깽!

불길에 휘말린 마인들의 몸이 한 줌의 재로 변했다. 다름 아닌 진보라의 신작인 프로메테우스 엘릭서였다.

"다들 비켜!"

보다 못한 백익의 히든카드, 클린트가 나섰다.

그의 몸집이 비대하게 커지며 입고 있던 흰 티가 찢어졌다. 전신이 천산갑을 연상케 하는 비늘로 빈틈없이 뒤덮였다.

긴 꼬리와 일그러진 얼굴, 그리고 입에 보이는 거대한 어금니가 번뜩이는 빛을 발했다.

"흠."

유신은 별 감흥 없다는 듯, 팔을 뻗어 파이어 캐논부터 날렸다.

꽈아앙!

클린트의 몸에 연이어 화염구가 적중했지만, 그는 멀쩡했다.

[죽음으로 대가를 치르게 해주마!]

비늘 곳곳이 보랏빛 마력으로 코팅되어 칼날처럼 날아갔다.

허공에 에아의 쉴드가 펼쳐졌지만, 클린트의 비늘 칼날은 그것을 가볍게 찢어버렸다.

유신은 직접 몸을 움직여 피하면서 말했다.

"전부 약골들만 있는 건 아니었네?"

[건방진!]

유신은 날아오는 비늘들을 요리조리 피하면서 파이어 캐논, 아이스자벨린, 플레임 타우로스를 시전했다.

하지만 클린트에겐 전혀 먹히지 않았다.

클린트의 공격 또한 유신의 '예측회피'를 기반으로 한 교묘한 움직임에 좀 처럼 맞질 않고 있었다.

클린트가 결심하고 마력을 크게 끌어올렸다. 그의 몸에서 솟아난 수 천개의 비늘 칼날이 회전하며 회오리처럼 변했다.

그야말로 칼날 폭풍. 통제구역의 몬스터들이 클린트에게 달려들다 그대로 믹서기에 갈아진 고깃덩이가 됐다.

[사라져라!]

클린트가 칼날 폭풍을 날려 보냈다. 이에 대응하는 유신도 가이아를 활용해 거대한 지면의 파도를 일으켜 보냈다.

비늘 칼날과 지면의 파도가 부딪히는 순간, 칼날이 지면을 갈가리 부수고 지나가 유신이 있는 곳까지 도달했다.

콰드드드드득!

갈기갈기 찢어진 유신의 몸뚱이를 상상하며 클린트가 입꼬리를 올렸다.

"클린트! 위!"

웨인의 외침에 그가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유신은 하늘 위에서 마법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클린트는 여유가 있었다.

[하하하! 무슨 마법을 써도 소용없다! 내 장갑은 무적인……!]

슈슉!

클린트의 어깨 위에 스펙터가 날을 세운 채로 나타났다. 그와 동시에 하늘에 떠 있는 유신이 검은 꼬리를 이끌며 혜성처럼 내려왔다.

<데바스타>

꾸드드드드드드드드드득!

어깨에 올려진 스펙터의 위로 어마어마한 압력이 가해진다. 스펙터의 칼날이 그대로 클린트의 비늘을 뚫고 상체의 2/3까지 파고들었다.

[끄, 끄아아아아아아악!]

클린트가 절규했다. 유신은 스펙터의 한쪽 면과 칼자루를 밟고 선 채로 팔짱을 꼈다.

"무적 뭐라고?"

[으으, 끄으으으!]

입에 거품을 문 클린트는 제대로 말도 잇지 못했다. 유신은 스펙터의 칼날에 마법 하나를 준비했다.

<프로즌 하트>

"클린트! 빨리 칼을 뽑아내!"

웨인이 외쳤다. 유신은 씩 웃으며 검지와 중지를 모았다.

"이미 늦었어."

쩌저저 저저 저저정!

클린트의 몸 깊숙한 곳으로부터 솟아난 고드름들이 클린트의 장기를 헤집고 뼈를 부수며 뚫고 나왔다.

어깨의 1/3이 갈라져 있던 클린트의 몸이 V자로 쩌어억 벌어졌다.

몇몇 마인들은 눈을 질끈 감기도 했다.

쿠웅!

클린트는 눈도 뜨지 못한 채 절명했다. 바닥에 사뿐히 내려온 유신이 오른팔을 들자, 스펙터가 슈슉! 소리와 함께 돌아왔다.

"이제 어쩔래? 백익."

유신이 슈트 자락을 휘날리며 웨인에게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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