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만 마탑주 212화
홍율의 무차별 폭행은 계속 되었다.
프로스트의 코는 부러져서 덜렁거리고 얼굴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피범벅이 되었다.
그의 눈에서 빛이 흐려지려는 순간, 홍율은 품에서 포션을 꺼내 그의 입에 강제로 처넣었다.
프로스트가 꼴딱거리며 괴로운 듯 몸을 비틀었지만 홍율은 포션을 잡은 손에서 힘을 풀지 않았다.
"벌써 기절하면 안 되지."
포션을 먹이고, 남은 양은 망가진 얼굴에도 조금 부은 홍율이 빈 병을 뒤로 던졌다. 프로스트는 바닥에 엎드려 목을 잡고 켁켁거리고 있었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랬지만 넌 진짜 답이 없는 폐기물 수준이야."
그녀가 차갑게 식은 눈으로 말했다.
"그렇게 처맞고도 정신 못 차리고, 약점 좀 잡았다 싶으니까 뭐가 어째?"
"사, 사죄드립니다! 제 머리가 잠시 어떻게 됐나 봅니다! 바보가 정신 놓고 한 소리라고 생각하시고 제발……!"
프로스트가 주먹으로 본인 얼굴을 마구 때렸다. 세상 모든 불쌍함이란 불쌍함은 다 끌어모아 손이 닳도록 빌기도 했다.
저 남자가 사실은 유닉스 그룹의 후계자 중 한 사람이자, 대한민국의 협회장인 프로스트라고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그럼 다음 시작할게."
하지만 홍율에게는 아무런 감흥도 없었다. 그녀는 다시 프로스트의 멱살을 붙잡고 일으켜 세웠다.
"자, 잠깐만……!"
쩌억! 쩌억! 쩌억! 쩌억! 쩌억!
살벌한 파열음이 터져 나온다. 회복된 프로스트의 몸이 다시 쥐어 터지길 반복했다. 프로스트는 몸도 마음도 넝마가 되어가고 있었다.
"X발! 차라리 죽여어어어!"
쩌억! 쩍!
"그냥 죽이라 고오오! 쫌! 제바아아알 이러언 씨이이입!"
빠악!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자신의 목숨을 무엇보다 아끼는 프로스트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달라고 간청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녀는 보란 듯이 얼굴을 으깨 입을 다물게 하고 그를 바닥에 넘어뜨렸다.
"우리 유신이가 나 스트레스 풀라고 포션을 잔뜩 준비해 놨더라."
바닥에 엎어져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이 쓰러진 프로스트 앞에 그녀가 쪼그려 앉았다.
그러고는 그가 보는 앞에서 아공간 주머니 속의 포션을 꺼냈다.
"자, 한 병. 두 병……"
포션들이 바닥에 차곡차곡 쌓여갔다. 그때마다 프로스트의 눈이 점점 더 커졌다. 지금까지 이 모든 게 고작 두 병치 고통이었다.
"열하나, 열둘. 열셋……."
포션들이 수북하게 쌓여갔고 마침내.
"쉰일곱. 끝!"
그녀가 프로스트의 멱살을 붙잡고 일으켜 세워 다시 포션 한 병을 강제로 먹였다.
"오늘 누나랑 밤새도록 놀아보자. 하진이도 좋지?"
그녀가 빈 명을 뒤로 던지며 웃었다.
프로스트의 소리 없는 절규가 이어졌다.
* * *
이렇게 실타래처럼 꼬였던 모든 일이 마무리됐다.
홍율은 협회장 노릇 그만두게 된 김에 조용한 곳에서 몇 달 정도 잠적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전 국민이 이 사태에 대해서 궁금해하고 있는 지라 기자회견을 열도록 그녀를 설득했다.
그녀는 기자회견은 시끄러워서 질색이라고 했고, 결국 언론사 하나 잡아서 인터뷰하는 정도만 허락했다. 그녀는 그 인터뷰에서 여러 사실들을 밝혔다.
첫째, 모든 건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프로스트의 계략이었다.
그녀는 프로스트에게 배신당해 던전에 갇혔으며, 블랙가드와 NIX의 길드원들을 죽인 것도 모두 프로스트의 짓이다.
둘째, 프로스트의 새로운 정책은 헌터들을 유닉스 그룹의 사병으로 만들기 위한 게 목적이었다.
방해되는 임남진과 홍연을 해외로 보낸 것도, 알케미아를 구속 수사한 것도, 모두 방해되는 사람들을 배제하기 위한 프로스트의 소행이다.
그 외에 여러 가지 이야기들.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 프로스트가 해안가에 발견된 게 그녀가 한 짓이 아니냐는 의혹에는, 홍율은 그냥 프로스트 본인에게 물어보란 소리로 일축했다.
그리고 감옥에 구속된 프로스트는 홍율에게 저지른 모든 혐의를 인정했다. 들은 바에 의하면 정신이 살짝 망가져서, 홍율의 이름만 나와도 반사적으로 경련하며 오줌부터 지리게 됐을 정도라고 한다.
사실 프로스트의 처분에 대해서는 나와 협회장의 의견이 갈렸다.
나는 깔끔하게 프로스트를 죽이자는 입장이었고.
-미쳤냐? 걔가 뭘 잘 했다고 죽여?
홍율은 펄쩍 뛰며 반대했다.
-그 새끼는 앞으로도 더 고통받아야 해. 내가 던전에 갇혀 있던 것처럼, 그 새끼도 감방에 처넣고 죽을 때까지 썩게 만들 거야. 걔가 그렇게 강조하던 게 시스템이잖아? 그 시스템에 구속당해 영원히 고통받는 게 최고의 복수 아니겠어?
-그건 그렇지만 프로스트가 협회장님에게 불리한 진술을 하면……
-아, 그런 건 걱정 마.
대체 하룻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으면 프로스트처럼 자의식 강한 사람이 저렇게 돼버린 걸까.
나는 프로스트가 폭력에 꺾이지 않을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협회장은 내 상상 이상으로 사람 패는 기술이 뛰어났던 모양이다.
아무튼 그렇게 프로스트의 실체가 만천하에 드러났고 대한민국은 큰충격에 휩싸이게 됐다.
[자, 프로스트 빨아 재끼던 분들 다 튀어나오세요.]
[선동당한 냄비들 글 찍 싸고 잠수타는 건 과학이지.]
[소름 돋지 않음? 그렇게 막 홍율의 죽음을 믿을 수 없다면서 눈물흘리고 하던 게 다 연기고 생쇼였다니.]
[정치인 눈물은 믿는 거 아니다.]
[미쳤다, 미쳤어. 자기가 협회장 하려고 홍율 뒤통수 치고 대국민 사기 극을 벌인 거야?]
[NIX랑 블랙가드 애들도 이 새끼가 죽임. 쓰레기라는 말도 아깝다.]
상황은 완전히 역전되었다.
그동안 정권의 눈치만 보던 검찰은 발 빠르게 프로스트의 구속 수사를 발표했다.
현재 프로스트에게 걸린 혐의만 어마어마했다.
대국가 반역행위, 58명의 헌터 살인 행위, 뇌물 파문, 언론 조작, 기업 유착, 특수 협박죄, 친인척 채용 등등.
하나하나가 묵직한 죄들이었다.
그리고 이걸 다 알고 있었으면서도 프로스트 정권 내내 침묵하고 있던 사법계도 참…… 할 말이 없다.
이에 검찰도 자기들의 생사가 달린 문제라고 생각했는지 수사 진도를 팍팍 나갔다.
유닉스 길드, 헌터 협히, 프로스트에 협력한 Top 10 길드들, 그리고 성역이라 불리던 유닉스 그룹 본사까지 싸그리 압수 수색이 들어갔다.
이걸로 알케미아의 의혹은 완전히 해소됐고 수사도 정식 종료됐다. 정권이 바뀐다는 게 이렇게 무섭다.
"으으, 돌아왔다아."
프로스트와의 결전을 치른 나는 1층 황금 로비에 쓰러져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다들 이곳저곳 불려 다니느라 마탑은 조용했다.
소파에 누워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데, 정문이 번쩍이며 누군가 들어왔다. 나는 고개를 움직였다.
"오! 보라야… 응?"
"헤헤, 충성!"
무려 군복 차림의 진보라가 눈썹에 손끝을 붙이고 경례하며 귀엽게 윙크했다.
그러는 것도 잠시, 입술이 달달 떨리면서 눈에 급격히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보라야. 너 차림이 왜……"
"으아아앙! 선배니이임!"
왈칵 울음을 터뜨린 그녀가 우다다다 달려와서 몸통 박치기하듯 내게 부딪혀 왔다.
"저 힘들었어요!"
그녀는 펑펑 울면서 일러바치듯 그간 있었던 썰들을 풀었다.
진보라는 트레이닝을 빙자한 군기 교육소에 가서 이래저래 고생했다는 것 같았다.
'……프로스트가 헌터들을 군기교육대에 굴렸다는 소문이 사실이었다니.'
맞다. 그 군기 교육대. 콧대 높은 헌터들을 군인화하기 위한 프로스트의 정책으로, 5급 헌터들은 4급들이, 4급 헌터들은 3급들이 직접 교관으로 참가해서 살벌하게 굴렸다는 모양이다.
진보라는 여군 헌터들이 담당하는 곳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프로스트의 언질을 받았는지, 아니면 그냥 찍힌 건지, 진보라는 3일 치 일정을 다 끝내고도 퇴소를 못하고 계속 훈련을 받고 있었다고 한다.
군대라니, 그녀에게는 정말로 안맞는 환경에서 고생한 셈이다.
"진짜 쓰레기들이었어요."
그녀가 분노로 어깨를 파르르 떨었다.
"저한테 막! 포션 능력자가 누군지 이야기해 주면 퇴소시켜 준다고 그러고! 훌쩍! 교관들이 이상한 협박까지 하고! 괴롭히고!"
"협박까지 했어?"
……이거 갑자기 빡치는데.
"미안해. 네가 그렇게 고생할 일이 아니었는데."
"아니에요! 아니에요! 선배님이 사과하지 마세요. 이렇게 무사히 돌아오신 게 어디에요?"
나는 한숨을 쉬었다. 내가 없는 동안 관리자들이 더 고생했다는 사실이 화난다.
나중에 한 번 본보기를 만들긴 해야겠다. 왜 자꾸 내 주위 사람들을 건드리냐고. 사람 빡돌게.
나는 그렇게 한참을 달라붙어서 칭얼거리는 진보라를 달래주었다. 지은 죄가 있어서 며칠간은 찍 소리도 못하고 지내야 할 것 같다.
"아, 그래도 마지막 날은 통쾌했어요."
"왜?"
그녀가 쿡쿡 웃었다.
"갑자기 훈련 내내 괴롭혔던 교관들이 절 부르는 거예요. 가보니까 막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굽신거리고 먹을 거 사주고, 나도 명령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 거라면서 고사 성사하고, 울고불고…….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뉴스를 보니까 던전에서 선배님이랑 협회장이 돌아왔다는 거예요!"
나는 쓴웃음을 흘렸다.
그래서 교관들은 상황이 바뀐 걸 캐치하고 재빨리 진보라한테 용서를 빈 모양이다. 보복이 두려웠겠지.
다시 느끼지만 권력이란 게 참 무섭다.
"그래서, 그 사람들 다 용서해 준거야?"
"후후후후. 제가요?"
그녀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흘렸다.
"그딴 사탕발림에 흔들리면 제가 아니죠!"
"어떻게 했는데?"
"거기 교관들 싹 다 집합시켜서, 제가 고생했던 그대로 굴렸어요."
"푸하하하하!"
나는 배를 잡고 소리 내어 웃었다.
얘도 참 보통이 아니다. 지금 4급 선배들을 얼차려 줬다는 거야?
"진짜 그 언니들이 했던 대사, 했던 행동, 시켰던 훈련, 다 똑같이 돌려줬죠 뭐. 그래야 묵힌 감정이 좀 사그라들 것 같아서요."
그녀가 흠흠 헛기침을 하더니 교관의 목소리를 흉내 냈다.
"본 교관은 여러분에게 많은 걸 바라지 않습니다! 의욕과 목소리!"
나는 배를 잡고 웃었다.
역시 얘도 정상은 아니라니까.
나는 몇 분 동안 실컷 웃고 난 뒤에 진보라에게 물었다.
"그래서 분은 다 푼 거야? 아님 내가 한 번 더 손봐줘?"
"에이, 됐어요. 이제는 기분 다 풀렸어요. 미운 정이라도 정이라고 하잖아요. 그 사람들도 위에서 시키니까 어쩔 수 없이 한 거고."
그렇게 대답한 그녀가 내 팔에 매달렸다.
"대신 주말에 저랑 같이 백화점에 쇼핑하러 가요! 오케이?"
"콜. 뭐든 사줄게."
"약속한 거예요?"
진보라가 내 팔뚝에 기대어 편안하게 눈을 감았다.
"……."
그녀의 얼굴을 보고 있는 그때, 갑자기 잊고 있던 기억 저편에서 누군가의 모습이 떠올랐다.
기분이 무척 뒤숭숭해졌다.
"선배님?"
진보라가 눈을 뜨고 물었다.
"제 얼굴에 뭐라도 묻었어요?"
"……."
벨리카와 진보라의 얼굴이 겹쳐 보인다.
"보라야."
"네, 선배님."
"잠깐 손 내밀어볼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