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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마탑주-210화 (210/337)

나 혼자만 마탑주 210화

강화도의 부속 섬 '석모도(席毛島)'군사 헬기장.

"망할! 망할! 망할! 망할!"

프로스트는 손에 잡히는 것들은 죄다 내팽개치며 극도의 분노를 표출하고 있었다.

텔레포트 능력자는 처음 보는 프로스트의 낯선 모습에 어쩔 줄 몰라 했고, 프로스트의 책사인 안 비서는 평소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숙인 채 물었다.

"협회장님.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프로스트가 시뻘게진 얼굴로 씩씩 거리다가 말했다.

"상황은 어떻게 흘러가고 있죠?"

"현재 비상 전시령을 내렸고, 현장의 기자들은 집행부가 나서서 건물에 감금했습니다. 홍율이 나타난 이사태는 마인의 소행이라고 발표했습니다."

"망할……!"

지시를 내린 프로스트 본인이 생각해도 구멍투성이였다. 과연 이 보도를 사람들이 믿어줄까?

사실 국민들이 자신을 밀어줬던 건, 홍율이 없는 혼란한 상황을 빠르게 수습하기 위함이라는 이유가 가장 컸다. 그런데 홍율이 다시 나타났으니 판 자체가 뒤집혀 버렸다.

여전히 많은 국민들이 홍율을 그리워하고 있다.

협회장이 된 후 며칠간 프로스트는, 자신이 홍율보다 몇 배는 더 잘 할 수 있을 거라는 우월감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쉽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외교적인 부분만 봐도, 그렇게 한국에 협조적이었던 몇몇 국가들은 협회장이 홍율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태도가 돌변했다.

인류의 대영웅. 적어도 세계에서는 한국 헌터협회라는 조직보다, 홍율이라는 단 한 사람의 이름값이 더 영향력 있었다.

'아니야, 아니야! 이대로 끝날 순 없어!'

홍율에게 명성이 있다면, 자신에게는 유닉스라는 뒷배와 자본이 있다.

그것으로 냉소적이던 몇몇 국가들을 잘 구슬렸다. 앞으로도 충분히 잘 할수 있었다.

'절대 이 권력을 포기할 순 없어!'

프로스트가 눈을 번뜩이며 안 비서를 바라보았다.

"계엄령 최고 단계로 격상해요! 언론이 뭐라 지껄이든 상관하지 말고 서울에 있는 모든 헌터들에게 문답무용 마인의 척결을 명령하십시오. 항명은 즉결 처형. 그 어떤 반문도 듣지 않겠습니다."

하늘에 두 개의 태양이 있을 순 없다. 홍율이 죽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

한국을 불바다로 만드는 한이 있더라도, 프로스트는 더욱 독해지기로 했다.

"그렇겐 안 되겠는데?"

갑자기 귓가로 파고든 목소리에, 프로스트는 인상을 굳히며 뒤를 돌아보았다.

"김유신……!"

유신이 웃는 얼굴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의 뒤에는 워프게이트와 함께 사미아의 모습이 보였다.

안 비서와 텔레포트 능력자는 일찌감치 유신이 '윈드포트' 마법으로 기절시킨 뒤였다.

프로스트의 눈이 시뻘게 졌다.

"이런 X발! 전부 니 새끼가 망쳤어! 앞으로 조금만 더 있으면 위대한 대한민국이……!"

"그냥 네 왕국이겠지. 병신아."

유신은 주위를 슥 둘러보았다. 헬기들이 많았다.

"높으신 분들의 패턴은 비슷비슷하단 말이야."

유신의 손가락이 움직였다.

"잠잠해질 때까지 해외에 가 계실 생각이었어?"

<아이언 캔서>

헬기 곳곳에 마법진이 펼쳐진다.

튀어나온 철근들이 헬기의 몸을 뱀처럼 휘감았다.

뒤이어 유신이 주먹을 불끈 쥐자, 철근이 헬기의 프로펠러를 감아서 부수거나 꼬리날개를 꺾었다.

헬기들이 모조리 고철이 되어버리는 건 눈 깜짝할 사이였다.

"김유시이이이인!"

쩌적! 쩍!

주위의 온도가 급격히 내려갔다.

프로스트의 다리 아래로 빙판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이제야 해볼 생각이 든 거야?"

유신이 삐딱하게 웃었다.

"……개장수가 품위 없이 개랑 치고 받고 싸우지는 않아. 하지만."

그가 두 팔을 들어 올리자 빙판위로 얼음 기둥들이 쭉쭉 올라왔다.

"바짓가랑이를 무는 개가 있으면 기꺼이 몽둥이를 들어야지."

"사미아. 물러나 있어요."

프로스트가 팔을 움직였다. 손아귀에서 부풀던 얼음이 거칠게 확산하더니, 길쭉한 용의 형상이 되어 유신에게 들이닥친다.

<빙룡 질주>

유신은 즉시 리프부츠를 밟고 옆으로 뛰어올랐다.

얼음의 용이 지나가며, 그가 방금자리한 곳으로부터 일직선으로 수백미터까지 얼음으로 뒤덮였다.

"휘유."

뻗어 나가는 얼음의 영역을 보며 휘파람을 부는 유신의 머리 위로, 또 다른 얼음 용이 아가리를 벌린 채 떨어져 내린다.

<데바스타>

유신이 검은 연기와 함께 사라졌다.

빙룡이 지면에 머리를 처박자 얼음의 첨탑이 세워지고, 그것으로 모자라 수백 미터 반경까지 뻗어 나가 갈퀴와도 같은 빙하가 삐쭉삐쭉 솟아올랐다.

그사이 유신의 몸은 프로스트가 보고 있는 반대 방향에서 나타났다.

<파이어 캐논>

가속 시전된 화염구들이 날아오자 프로스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팔을 올렸다.

촤르르르르륵!

군더더기 없는 얼음벽이 솟구쳐 화염구들을 가로막았다.

뒤이어 벽 너머로 빙룡 두 마리가 꿈틀거리며 일어나 다시 유신의 뒤를 쫓는다. 유신은 데바스타를 켜고 들이닥치는 빙룡들을 피해냈다.

'역시, 공인 2급이라는 건 논란의 여지가 없네.'

아까부터 계속 도망만 치길래, 실제로는 약한 게 아닐까도 생각해 봤지만 괜한 망상에 불과했다.

그저 본인의 가치관이 헌터들의 싸움을 천하다고 여길 뿐, 실력은 확실했다. 괜히 협회장 자리에 오른헌터가 아니다.

유신은 적의 강함을 인정하고, 숙지했던 정보들을 하나씩 머릿속에 떠올렸다.

'프로스트의 강점은 수비.'

일반적으로 빙결계 능력자들은 몬스터들을 얼려 죽이기 위한 극한의 냉기를 내뿜는 것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프로스트의 얼음은 방향성이 조금 다르다.

프로스트의 얼음은 '강도'에 특화되어 있다.

어지간한 헌팅 디바이스로는 제대로 자르지도 못할 정도. 한번 붙잡히면 빠져나갈 방법은 요원하다.

그래서 2급 파티에서 프로스트의 역할군은 속박계, 수비계에 속해 있

'그나마 불을 다룰 수 있어서 다행이야.'

4속성 엘리멘탈 마스터라는 점이 이렇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없었다.

유신은 프로스트의 주위를 원을 그리 듯 내달리며 파이어 캐논을 쏟아냈다. 극강의 강도를 자랑하는 프로스트의 얼음벽이라고 해도 화염 마법에 연이어 닿자 크게 녹아내렸다.

프로스트는 앞에 벽을 보강하거나 하나 새로운 벽을 더 세우는 식으로 대처했다.

-탑주! 뒤에서 옵니다!

유신이 땅을 딛고 점프했다.

즉각 빙룡의 몸체가 초고속 열차처럼 지나가며 반경 수백 미터까지 삐쭉삐쭉한 얼음의 벽이 세워졌다. 바닥을 구르며 넘어지던 유신이 손바닥으로 강하게 지면을 짚었다.

<어스 클레이모어>

'벽 너머의 프로스트를 바로 친다.'

유신은 프로스트의 발밑에 지면검을 일으켰다.

'……응?'

반응이 없다. 최대출력의 어스 클레이모어였음에도 불구하고, 지면이 돌부리처럼 올라오는데 그쳤다.

프로스트가 깔아놓은 빙판이 너무 단단해서 대지계 마법이 원천 봉쇄된 것이다.

"잔재주를 부려도 소용없다."

프로스트가 컨트롤하는 빙룡의 수를 네 개로 늘렸다. 유신도 어쩔 수 없이 부작용을 각오하고 데바스타를 두 발에 켠 채로 달렸다.

'데바스타를 쓰면 회피 자체는 어렵지 않아. 그런데.'

유신은 걸음을 멈추고 이를 악물었다.

'벌써 여기까지!'

프로스트가 일으키는 빙판은 이 섬을 통째로 뒤덮을 기세로 빠르게 발달하고 있었다. 유신은 시험 삼아 빙판을 밟아 보았다.

"……!"

어쩔 도리 없이 그냥 다리가 휙하고 미끄러진다. 능력으로 특수한 처리가 된 건지 심하게 미끄러웠다.

"무슨 생각으로 날 쫓아왔나! 김유신!"

프로스트의 몸에서 냉기가 휘몰아친다.

"네놈도 알겠지만 4급과 3급 헌터간에는 커다란 격차가 있다! 대부분의 헌터들은 평생 3급에 도달하지 못한 채 은퇴하지."

빙룡들이 하늘에서 춤을 추며 유신을 노린다.

바닥을 밟을 권리를 잃은 유신은 어쩔 수 없이 허공에 쉴드를 만들어 딛고 달렸다.

"하지만 3급과 2급의 격차는 그보다 더 크다. 재능이니 뭐니 하는 수준이 아니야! 블랙잭을 잡았다고 해서 네가 이쪽 레벨에 이르렀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빙룡이 다섯 개까지 늘어난다. 바닥은 빙판이 진행 중이라 실수라도 미끄러졌다간 끝장이다.

섬의 온도는 점점 내려가고 유신의 컨디션도 떨어진다.

게다가 프로스트는 이제 벽을 치지 않았다. 초고강도의 얼음으로 이루어진 코트를 몸에 둘렀다.

저 코트 한 자락이 얼음벽 하나와 맞먹어서, 파이어 캐논을 발사해도 빙판장을 성냥불로 지지듯 꿈쩍도 하지 않았다. 모든 공격이 저 코트에 너무나도 간단히 막히고 있다.

완벽한 수비로 모든 공격을 무력화시키며, 자신에게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고, 서서히 상대방의 숨통을 조여나가는 프로스트의 승리 공식에는 빈틈이 없다.

하지만.

"세상이 네 생각대로만 돌아가면 얼마나 재미없겠냐?"

"……뭐?"

유신이 등 뒤에서 스펙터를 뽑아들었다.

도망만 다닌 건 아니었다. 시간을 벌면서 스펙터의 검면에 계속 마법진을 완성시키고 있었다.

"나한테 웨이브 마스터를 보낸 대가는 치러야지."

유신이 스펙터를 바닥 깊은 곳까지 박아 넣었다. 뒤이어 스펙터에 새겨진 네 개의 마법진들이 공진을 시작한다. 검이 울부짖는 것처럼 부르르 떨린다.

쿠구구구구구구구구!

검과 함께 지면도 흔들린다. 아니, 이 섬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지반이 급격히 융기되며 순식간에 산을 이루었다.

"…… 무슨 짓을!"

"이제 제대로 시작하자."

유신이 웃으며 두 팔을 뻗었다.

<볼케이노 그라운드>

쿠르르르르르릉!

강화군에 화산이 분화했다.

불타는 암석들이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고, 무시무시한 불의 홍수가 급류처럼 산비탈을 흘러내려온다.

나무, 얼음, 산언덕에 지어진 집따위가 마그마에 닿는 순간 쓰러졌다.

치이이이이익!

빙판이 용암에 녹아 사라진다. 서 늘했던 주위의 온도가 급격히 다시 올라가고 용암에 닿지 않았던 빙판까지 물처럼 변해 녹는다.

"이런 미친 놈이! 이러면 너도 무사하지 못해!"

"그건 니가 신경 쓸 바 아니고."

프로스트에게도 약점은 있다. 수비력은 막강하지만, 지금까지 저 자리에서 거의 벗어난 적이 없다.

100% 컨디션을 내기 위해선 제자리에 멈춰 있어야 한다.

쿠르르르르릉!

하늘로 비산한 용암 덩어리가 프로스트에게 떨어진다. 저 무거운 얼음코트를 입고 회피할 수 있을 리 없다.

프로스트가 얼음코트 속에 손을 넣고 기지개 켜듯 두 팔을 뻗자, 올라온 얼음 코트가 방패의 형상으로 변한다. 그 위에 용암이 떨어진다.

치이이이 이이이이!

"크윽!"

프로스트가 방패에서 손을 떼며 물러나는 사이, 유신이 검은 연기와 함께 그의 뒤에서 나타났다.

빠아악!

프로스트가 다급히 팔을 들어 발차기를 가드했지만, 그 충격으로 몸이 붕 떠올라 용암이 흐르는 산으로 날아갔다.

프로스트는 다급히 손바닥에서 대량의 얼음을 뽑아내 속도를 줄이고는, 용암이 닿지 않은 바위에 얼음사슬을 부착해 멈춰섰다.

"쉴 틈 있어?"

유신이 검지를 치켜세웠다.

<어스 클레이모어>

화산 한쪽의 바닥이 불쑥 튀어나오며 용암이 튀어 오른다. 프로스트가 기겁하며 허공에 얼음벽을 펼쳤지만, 용암이 닿자마자 얼음벽이 순식간에 쪼그라든다.

<어스 클레이모어>

<어스 클레이모어>

<어스 클레이모어>

유신은 계속해서 마법을 시전했다.

손가락이 올라올 때마다 용암도 튀어 올랐다.

프로스트가 전력을 다해 펼치는 고강도의 장벽이 너무나도 간단히 녹아내리고 있다. 강도와 녹는 점은 별개의 이야기였다.

"빌어먹을!"

프로스트가 오른팔을 뻗어 반격의 빙룡을 쏘아 보내자, 유신은 제자리에서 바닥을 짚었다.

용암이 흐르는 지형의 땅을 솟구치게 해서 용암 벽을 만들었고, 이에 부딪힌 빙룡의 머리가 흔적도 없이 녹아내렸다.

'크으, 이런 게 바로 난전이지.'

두 사람이 함께 있는 섬에 화산을 폭발시킨 건 언뜻 같이 죽자는 자살행위로 보이지만, 사실은 다르다.

유신의 진가는 난전일 때 발휘된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무수한 용암들은 '데바의 눈'과 '예측 회피' 특성으로 어렵지 않게 피해낼 수 있다.

도약 마법인 데바스타와 리프부츠도 있고, 용암 위도 쉴드를 깔아 건너가면 그만이다.

그러나 언제나 제자리에서 멈춰 방어 일색으로 싸워온 프로스트는 당연히 회피에 익숙할 리가 없다.

거기에 얼음벽도, 코트도, 빙판도, 빙룡도 전부 초고열의 용암에 무력화된다.

자신에게 웨이브 마스터를 보낸 프로스트에게, 유신은 제대로 앙갚음하고 있었다.

"크으으!"

프로스트가 날아오는 쇄설물들을 피해 용암이 아직 오지 않은 평야 지대로 내달렸다.

유신이 빠르게 그를 따라잡았다.

프로스트가 얼음을 발사하지만 유신은 4공정의 '아이올로스'를 사용했다. 하늘에 날아다니는 화산 쇄설물을 컨트롤해 앞에 떨어뜨렸다.

치이이이익!

얼음이 전부 마그마에 부딪혀 녹았다. 그사이 데바스타를 시전한 유신의 몸이 프로스트의 측면까지 도달했다.

"뻔한 수작을!"

프로스트도 물러서지 않고 주먹을 내지르려 했지만, 그의 어깨에 마법진이 한 장이 펼쳐진다.

<윈드 사지타리우스>

텅!

어깨에 충격파가 들어가며 주먹이 허공을 헛돈다. 그대로 뻗어진 유신의 주먹이 방해 없이 프로스트의 안면에 꽂힌다.

으적! 소리와 함께 고개가 옆으로 젖혀진다.

"큭!"

프로스트가 뒷걸음질 치고, 유신은 바짝 다가오며 오른발을 깊숙하게 내디딘다.

두 사람이 다시 주먹을 불끈 쥐고 뻗으려는 순간, 이번에는 프로스트의 다리 쪽에 마법진이 펼쳐져 충격파가 나간다. 무릎이 꺾인 프로스트의 턱을 유신이 걷어찬다.

쩍! 소리와 함께 프로스트의 고개가 뒤로 젖혀진다.

"크아아아악!"

<윈드 사지타리우스>

<윈드 사지타리우스>

<윈드 사지타리우스>

6공정과 체술의 조합.

상대방의 흐름은 깨고, 자신의 움직임은 유지한다.

허우적거리며 팔을 휘두르는 프로스트의 모습에 처음 같은 포스는 온데간데 없었다.

유신은 다시 한 번 프로스트의 머리에 스트레이트를 날렸다. 슈트 역장이 부셔지고, 주먹에 맨살의 감촉이 확실히 와닿는다.

"커흐윽!"

천하의 프로스트사 볼썽사나운 모습으로 쓰러졌다.

"자, 다시 한번 말해봐."

유신이 입가에 묻은 피를 닦으며 씩 웃었다.

"2급이 뭐 어쩌고 저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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