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만 마탑주 206화
나는 눈을 감고 죄대한 집중력을 끌어올려 던전에 몰입했다. 탄자니아에서 미친 경험을 했던 만큼 이제는 익숙해졌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탑주. 동조화가 성공적으로 완료됐습니다.
'수고했어.'
현재 이 던전은 대부분의 기능이 정지해 있는 '수면 상태'다. 나는 손바닥에서 마나를 흘려보내 전원이 꺼져 있는 몇몇 던전의 기능들을 활성화했다.
내가 원하는 건 던전 게이트의 기록.
집중해서 기억들을 읽어 내려가다보니 금방 원하는 데이터를 캐치할수 있었다. 아시아 전역에 열린 98개의 게이트의 흔적들을 확인했다.
'……근데 이 중에서 어디가 협회장이 들어왔던 곳이지?'
당연한 거지만 던전의 기록은 한국의 어디, 러시아의 어디, 뭐 이런 식으로 남아 있지는 않았다. 숫자로 이루어진 좌표뿐이었다.
"에아. 협회장이 통과했던 '대전게이트'의 마나 좌표를 계산해 줘."
-해당 기록 확인. 마나 좌표 계산을 시작합니다.
에아는 좌표를 계산해서 알려줬고 나는 던전에 남은 기록과 대조했다.
그리고 그것과 거의 일치하는, 아주 근접한 위치에 열렸었던 게이트의 흔적을 발견했다.
"오케이! 저기로 가는 게이트를 열어줘."
-알겠습니다. 던전 내게이트 기능을 활성화합니다.
내가 바닥에 손을 떼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에아가 연 던전 게이트가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망설임 없이 그 안으로 걸어갔다.
* * *
다시 주위가 바뀌었다. 특별한 것 없이 황량한 벌판이었고, 고약한 냄새가 냈다.
'시체 썩는 냄새.'
시신 한 구가 벌판에 버려져 있었다. 나는 시신에 다가가 옷을 뒤져 보았다. 신분증이 나왔다.
블랙가드 소속의 공인 4급 헌터 추영훈.
블랙가드라면 NIX와 함께 홍율이 실종된 던전에 들어갔던 그 길드다.
제대로 찾아온 것 같다.
"근데 이 사람은 왜 여기 죽어 있는 거지?"
-사망자의 사인을 분석해 보겠습니다.
"그런 것도 가능해?"
……얼마나 유능한 거냐 넌.
에아가 시체 근처에 여러 개의 마법진을 펼쳐놓고는 분석을 시작했다.
-피부의 괴사 상태 확인. 수분 팽창 및 세포 조직이 철저히 파괴되어 있습니다. 사인은 동사(凍死)로 판단됩니다.
"동사라……"
나는 주위를 한번 둘러보았다.
"여기서 말이지?"
바람이 씽씽 불긴 하지만 사람이 얼어 죽을 정도의 온도는 아니다.
빙계 몬스터들이 나타날 만한 환경도 아니고. 그렇다면 추정할 수 있는 건 하나다.
"프로스트네."
바로 감이 왔다.
"이 사람은 입막음으로 살해당한거야."
-합리적인 추측이라 사료됩니다.
"계속 가보자."
곳곳에 사람들의 흔적이 많아서 굳이 까다로운 단서 타임 같은 걸 할 필요는 없었다.
이 모든 흔적을 따라간 끝에는.
"……와."
무너져 내린 거대한 동굴이 있었다.
-여기서 큰 싸움이 일어난 것 같군요.
협회장은 던전의 보스 몬스터를 사냥하기 위해 이 동굴 안에 들어갔을 테고, 잠복해 있는 헌터들의 공격을 받았을 것이다.
그사이, 프로스트가 동굴을 무너뜨려 홍율을 가뒀다.
대충 그런 시나리오가 머릿속에 그려진다.
"생체 반응 체크해 줘."
-알겠습니다.
에아가 탐지 마법을 쓰는 사이, 나는 무너진 동굴 위를 걸어 다니며 단서를 찾아 보았다. 곳곳에 폭약의 흔적이 보인다.
'이렇게 큰 동굴을 무너뜨리려면 보통 폭탄으로는 안 될…… 응?'
동굴의 잔해 속에서 폭약의 껍데기를 찾아냈다.
모래를 털어내고 살펴보니 폭발물 겉면에 'PHC'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한숨 섞인 탄성을 흘렸다.
"이제야 어떻게 된 건지 감이 오네."
이게 전부 우연일까? 아니,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 추측으로는 백익, 웨인 존스는 아직 살아 있다. 그리고 놈은 내게 보복하기 위해 프로스트와 손을 잡았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동안 의문이었던 모든 수수께끼들이 풀린다. 프로스트가 보인 이상한 움직임도 이해가 된다.
프로스트는 생환 확률이 1% 미만이었던 내 러시아 던전행을 병적으로 집착하며 막았다.
그냥 내가 던전에 들어가도록 내버려 두는 게 나를 제거할 가장 좋은 방법이었음에도 말이다.
특히 나를 출국금지조치로 막아놓고, 러시아에 미리 집행부를 파견해놓는 그런 용의주도한 움직임은 나를 잘 알고 있지 않은 이상 불가능한 일이다.
안일했다. 마인들의 연구기지를 다 부순 건 좋지만, 그 이후로는 웨인의 생사에 대해 별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결국 내게 원한을 가지고 있던 적이 또 다른 적에게 붙었고 사태가 이 지경까지 이른 것이다.
밖에 나가면 여러모로 할 일이 많을 것 같다.
-탑주.
"응. 뭔가 찾아냈어?"
-이곳에서 생체 반응은 전무합니다. 동굴에 깔린 모두가 죽었습니다.
"……."
잠깐 심장이 철렁했지만, 빠르게 평정을 되찾았다.
그 사람이 고작 이 정도에 죽었을리 없다.
"다른 흔적들을 계속 살펴보자."
-네. 탑주.
* * *
동굴 주위를 돌아다니며 협회장에 대한 단서를 찾으려 했지만,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이렇게 일일이 수색해서는 끝이 없겠다는 생각에, 나는 다시 게이트를 타고 던전의 핵심체로 돌아왔다.
-탑주. 그동안 아무것도 드시지 못했습니다.
"조금만, 조금만 더 찾아 볼게."
-그녀가 살아 있다는 확증도 없습니다.
"틀림없이 살아 있을 거야."
내가 홍율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스스로 목숨을 끊을 생각이 아니었다면, 어떻게든 다른 게이트를 찾아 나섰을 것이다. 꽤 거리가 벌어졌을 수도 있으니 수색 방법을 바꿔야 한다.
"한 번만 더 일체화할게."
-……탑주.
"이럴 때 나 고집 죽어도 안 꺾는 거 알지?"
내가 애써 웃으며 말했다. 그녀의 작은 한숨 소리가 들렸다.
-탑주의 명을 따릅니다.
던전 동조화를 시작했다. 다시 한 번 머릿속이 넓어지며 감각이 극대화된다.
'나 혼자 어떻게든 될 거라고 생각했어.'
마탑에 틀어박혀서, 내 마음대로 세계를 주무르며 놀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프로스트가 협회장 자리에 앉아 있는 한, 우리에게 자유는 없다.
그녀가 필요하다.
그녀의 힘. 그녀의 영향력. 그녀가 쌓아온 업적들이 필요하다.
'자, 집중.'
탄자니아에서 그랬던 것처럼, 나는 다시 한번 나 자신을 버렸다.
감각이 멀어지며 던전에 강한 일체화 상태가 유지된다. 던전 안의 만물이 내 육체처럼 느껴진다.
다음으로는 수정동굴 좌표를 기준으로 잡고, 그 지역에 있는 모든 몬스터들에게 접촉했다.
몬스터들의 감정이 느껴진다. 허기, 분노, 허무 등 무수히 많은 감정들이 내게 공유된다.
나는 이 상태를 유지한 채 필사적으로 버텼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갑자기 극렬한 통증이 몰아친다.
'……허억!'
누군가 나를 죽였다.
정확히는 나와 연결된 몬스터가 목숨을 잃었고, 그로 인해 통증도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죽음은 몇 번을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뒤이어 몬스터들과의 연결이 하나둘씩 끊겨 나간다. 그때마다 미칠듯한 고통이 몰아치는 건 덤이다.
날붙이 따위에 찔려 죽는 게 아니다. 그냥 머리가 터지며 즉사다.
나는 고통에 울부짖으면서도 웃었다.
찾았다.
[일체화 특성이 Lv.5에 도달했습니다.]
이제 던전과의 모든 연결을 끓고 다시 '나'로 돌아왔다.
-탑주!
애타게 외치는 에아의 목소리를 따라서 말이다.
서서히 몸의 감각에 돌아오자 나는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켰다.
"돌아왔어. 에어."
몸 상태를 점검했다.
아직 일체화의 반동이 남아 있어서 헛구역질이 났지만, 이 정도는 버틸수 있다.
내가 다시 바닥에 손을 짚었다.
-……이래서야 몸이 아니라 정신이 먼저 나가겠습니다. 왜 그렇게 필사적이신 건가요?
"다시는 후회하고 싶지 않거든."
내가 던전에 마나를 흘려보내며 말했다.
"세상의 멸망을 목격하니까, 적어도 살아 숨 쉬는 동안에는 매사에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화아아아아아악!
내가, 아니, 몬스터들이 죽은 위치로 이동하는 던전 게이트를 열었다.
"자, 협회장을 만나러 가자."
* * *
게이트를 통과해 나왔다. 이번에도 황량한 벌판이 펼쳐져 있었다.
바닥에 핏물이 말라붙은 흔적이 보이기에, 나는 천천히 그 흔적을 따라 걸었다.
그녀가 아닌 다른 생존자가 몬스터를 죽였을 가능성? 물론 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묘한 확신에 차있었다.
던전에서도 밤이 찾아왔다. 온도가 내려가며 찬 바람이 분다. 나는 옷깃을 여미며 계속 걸었다.
타닥. 타닥.
숲 아래에 환한 불빛이 보인다. 모닥불이 타들어가는 소리가 귓가를 간질인다.
그곳으로 걸어갔다. 나뭇가지에 꽂힌 몬스터의 살점이 기름을 떨어뜨리며 모닥불에 익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으로.
바위에 걸터앉은 여인의 모습이 보인다.
선명하게 붉은 머리카락, 어깨에 무심하게 올려둔 정장 자켓, 몸 곳곳에 보이는 수 많은 전투의 흔적과 단련된 근육이 차근차근 눈에 들어온다.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지독한 고독과 절망감 속에서 사람은 망가지게 마련. 내가 알던 그녀가 아닐 수도 있었다.
하지만 모닥불 앞에 눈을 감고 명상하는 그녀의 모습엔 흐트러짐이라곤 없었다.
"협회장님."
나는 고개를 숙였다.
"모시러 왔습니다."
그녀의 눈이 천천히 떠졌다. 신비로운 황금빛 눈동자가 가만히 나를 응시한다.
"……."
"……."
정적이 길어지는 가운데, 그녀의 입꼬리가 부드러운 호선을 그렸다.
"왔냐?"
"네."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평소처럼 그렇게 대면했다.
협회장이 자신의 옆자리를 손바닥으로 툭툭 쳤다.
"……현지인 다 되셨네요."
내가 옆 자리에 앉으며 농담을 던지자, 그녀가 피식 웃었다.
"맞아. 몬스터 고기도 슬슬 먹을 만해지던 참이야. 먹어볼래?"
그녀가 나뭇가지에 꽂은 고기를 내밀었다. 몬스터의 살점이라고는 하지만 불에 익히니 생각보다 외형은 괜찮았다.
배도 꽤 고팠기에 받아들였다.
그리고 가볍게 한입.
"우욱!"
입에 머금고 씹는 순간부터 육즙이 아닌 구린물이 쏟아져 나온다.
나는 땅바닥에 씹던 고기를 퉤퉤뱉어 냈다.
"야, 뭐야? 아깝게씨리!"
"……굶어 죽어도 이건 못 먹겠습니다."
그녀는 큰 소리로 웃더니, 손에 쥔고기를 한입 크게 물어뜯었다.
으적! 으적!
진짜 저걸 어떻게 먹나 싶다. 그녀가 고기를 씹어먹는 모습에는 광기마저 느껴져서, 지켜보는 입장에선 조금 무서웠다.
"분노하면, 복잡한 생각이 사라지고 머릿속이 명쾌해져."
그녀가 말했다.
"누구한테 분노하셨는데요?"
"내게 이런 걸 먹게 한 새끼들."
으적으적 소리 내어 고기를 씹던 그녀가 텅 빈 나뭇가지를 등 뒤로 던졌다.
"후우."
그녀는 두 손을 등 뒤로 쭉 빼서 바위를 짚고는 몸을 기울였다.
"여긴 왜 왔어?"
'어떻게'가 아니라, '왜'라는 질문이라…….
타닥거리는 모닥불을 바라보던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호랑이 없는 굴에 토끼가 왕 노릇하고 있어요. 협회장님의 유지를 잇는 유일한 헌터는 본인이라나 뭐라나. 그 꼴을 어떻게 눈 뜨고 봐요?"
"……."
그녀는 말없이 타들어가는 모닥불을 보았다. 나는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정권이 바뀌고 홍연은 남극에, 임남진 선배는 미얀마에가 있어요. 홍연이랑 약속도 했어요. 협회장님을 원래의 자리로 데려오기로."
"……."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는 그녀를 보며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보고 싶었습니다. 협회장님."
무감정하던 그녀의 표정에 처음으로 균열이 일어났다.
한동안 말문이 막힌 것처럼 조용히 있던 그녀는, 이내 알 수 없는 의미의 한숨을 토해냈다.
"……병신."
조그맣게 중얼거리던 그녀가 몸을 기울였다.
"그래도 역시 내 새끼야."
그녀가 팔을 뻗었다. 그러곤 천천히 내 얼굴을 쓸었다.
내 턱과, 입술, 그리고 코를. 그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실체를 확인하듯, 만져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 몇번이고 다시 쓸었다.
그제야 문득 나는 깨달았다.
그녀는 환상에 시달리고 있었음을.
그녀는 고독에 짓눌려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녀의 상상 속에서는 내가 이미 나타났던 걸까? 이번에도 내가 환상인지 진짜 인지 의심하고 있는 걸까?
"정말 저예요."
내가 웃는 얼굴로 말하며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그러곤 소중한 물건을 다루듯 매만지며 내 실체를 확인시켜 주었다.
"저 어디 안 가요. 그러니 그렇게 두려워하실 필요 없어요."
"……."
그녀의 표정이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것처럼 된다. 무표정이 녹아내리고, 감정이 드러난다.
나로서는 처음 보는 표정.
그러나 그녀는 완전히 녹아내리기 직전에, 내 몸을 와락 끌어안는다.
그리고 내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드러나 버린 표정을 숨긴다.
나는 그대로 뻣뻣해졌다.
"혀, 협회장님."
"잠깐만."
그녀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잠깐만이러고 있을게."
나는 몸에 힘을 풀었다. 평소와 같은 통증은 없다. 그녀의 품은 더 없이 포근했다.
맞닿은 피부에서 따스한 체온이 전해진다. 숨결이 느껴진다. 더불어 그녀가 이곳에서 겪어야 했던 지독한 고독도 전해지는 것 같다.
그래, 강한 척하지만 그녀 또한 우리 같은 사람이었다.
그렇게 그녀는 오랫동안 나를 끌어안은 채 있었다.
"미안."
잠시 후 그녀가 내게서 멀어져 자세를 바로 했다. 흔들리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평소의 당차고 자신감 넘치는 바로 그 인류의 영웅으로 돌아와 있었다.
"이제 복수해야지? 프로스트 그 새끼한테."
히죽 입꼬리를 올리는 그녀의 미소는 장난끼 넘치는 소년과도 같았다.
"돌아갈 방법은 있는 거야?"
"물론입니다. 다 준비해 놨죠."
나는 아까 먹다 말고 떨어뜨렸던 흙 묻은 몬스터 고기를 들었다. 그리곤 한입 크게 물어뜯었다.
역겹다. 맛과 냄새 모두 최악이다.
하지만 이젠 뱉어낼 정도는 아니다.
"가시죠. 한국으로."
"역시 내 새끼라니까."
우리는 힘차게 하이파이브하며 큰 소리로 마주 웃었다.
이제 모든 걸 되돌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