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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마탑주-205화 (205/337)

나 혼자만 마탑주 205화

안톤은 나를 저택의 창고로 데리고왔다. 마치 미로와도 같은 곳이었다.

"이 저택은 내 금고 역할을 겸하고 있네. 37중의 보안 마법이 설계되어 있지. 전 세계의 도둑들과 트레져헌터들에게도 기꺼이 개방해 놓고 있다네."

금고를 도둑들에게 개방했다고? 그건 또 무슨 소리야?

"그, 그럼 그 사람들이 여기 왔다가 실패하면 어떻게 되는 건가요?"

"운 좋으면 불구가 되고, 보통은 죽지."

내 멍한 표정을 본 안톤이 껄껄웃었다.

"내 전 재산을 건 게임 같은 거라고 생각하게! 지금은 워낙 악명이 높아져서 사람들이 잘 도전하지도 않지. 그건 아쉬워."

역시 젊을 때의 그 광기가 어디가는 건 아닌 모양이다. 안톤의 일기를 보면 별의별 짓다 한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나는 그가 보안 마법을 해제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진짜 뭔 던전을 만들어놨다. 클래식하게 바닥에서 창이 올라오거나 화살이 발사되는 함정도 있고, 몬스터들이 바글거리는 함정도 있다. 오랜 시간 있어도 굶어 죽지 않는 언데드 몬스터들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목적지까지 도착했다.

"와……!"

사방이 온통 황금으로 번쩍번쩍하다.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금화와 금괴들이 말 그대로 산을 이루고 있었다. 벽에는 값비싼 그림, 유적, 장비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경이로운 광경을 감상하느라 눈 한 번 깜빡이는 순간조차도 아깝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게 다 뭐예요?"

"내가 평생을 세상을 떠돌아오며 구해낸 컬렉션들이지. 사실 젊을 땐 물욕이 좀 있는 편이었거든."

안톤이 끌끌 웃으며 말했다.

"자네도 알다시피 마탑주가 되면 돈 긁어모으긴 좋지 않나."

"먹고사는데 지장은 없죠."

"자네는 겸손한 편이군!"

안톤은 나를 더 깊은 곳으로 안내했다. 짤랑 거리는 금화 언덕을 밟고 올라가 더 안쪽까지 들어갔다.

'여긴……?'

번쩍번쩍한 아까 전 공간과는 달리 단출한 방이었다. 그런데 벽에 걸려 있는 무구들은 평범하지 않았다.

무구나 유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봐도, 천문학적인 가치의 물건이라는 것 정도는 알 것 같았다.

"흔히 마법사가 '장비빨'을 덜 받는 직종이라고는 하지만, 아예 안받는 건 아니지."

"동감합니다."

지금 입고 있는 이 역장 슈트가 없었으면 벌써 외팔이 됐거나, 시체가 되어 나뒹굴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 마탑에도 마법 실력에만 집착해서 장비를 소홀히 여기는 마법사들이 많아. 단색 로브 하나 입고, 지팡이 없이 맨손 마법만으로 적을 다 쓰러뜨리는 게 덕목이라고 보는 게지. 어리석은 이야기일세. 준비 부족이야. 장비처럼 쉽고 빠르게 전력을 올릴 수 있는 수단은 없다네. 좋은 장비를 쓰지 않는 건 가장 좋은 파워업 수단을 스스로 봉인하는 것과 같지."

떠벌떠벌 이야기하던 안톤이 나를 보며 히죽 웃었다.

"여기서 하나 골라 가져가게나."

내 입이 떡 벌어졌다.

"……저, 정말요?"

"내 한 입으로 두말하겠나. 맞후임을 위해 선배가 이 정도는 해줘야지."

나는 그대로 정신을 놓을 것 같았다. 하나같이 SS급 무구다! 지구에서는 이런 장비를 쓰는 사람이 열손가락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제가 이걸 가져가면 안톤님은……."

"내가 애용하는 장비들은 모두 마탑에 있네. 잘 쓰지 않아서 보관하고는 있지만, 하나하나가 작은 왕국 하나를 살 만한 가치의 장비들이지. 자네 눈에도 부족하진 않을 게야."

나는 멍하니 안톤을 바라보았다.

"대선배님."

"왜 그러나?"

"초면이시겠지만 사랑합니다."

안톤이 큰 소리로 껄껄 웃었다.

"내 집사람은 달갑지 않아 할 소식이군. 어서 골라보게나. 내 젊을 때의 물욕이 엄청 나다고 했지? 마음바뀌기 전에 빨리 고르는 게 좋을 걸세."

그 말에 나는 다급히 무구 앞으로 뛰어나갔다.

'으아아, 뭘 고르지?'

13개의 SS급 무구들. 나는 빠르게 스캔을 마쳤다.

철퇴, 풀 플레이트 아머, 커다란 투구도 보인다. 마법사 쓰기엔 적잖게 부담스럽거나 비효율적인 것들이다. 안톤도 그런 이유에서 이 금고에 봉인한 걸 테고, 일단 죽어도 못쓸만한 것들은 좀 접어두자.

그리고 마법사가 쓸만한 것들.

두 자루의 지팡이, 완드, 로브, 망토, 날개 달린 신발.

"그 완드는 메모라이즈 마법이 걸려 있지. 한번 써보겠나?"

"넵!"

안톤에게 사용법을 들은 나는 레피드 에로우를 캐스팅했다. 그러자 완드의 끝에서 불빛이 떠올라 레피드에로우 마법진을 흡수했다.

"이제 저장된 마법을 발동해 보게나."

내가 완드를 겨누자 레피드 에로우가 아무런 작업 없이 바로 발사되어 벽에 부딪혔다.

"오오오오!"

"어떤가?"

"정말 좋은데요? 다른 것들도 보고 싶습니다!"

"천천히 고르게."

내 인생에 단 한 번 뿐인 기회다.

나는 꼼꼼히 무구들을 살피고 직접 시착도 해보았다.

SS급이라는 명성이 아깝지 않게 하나같이 좋은 무구들뿐이다. 뭘 써도 당장 내 전력이 크게 오를 것은 확실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어떻게든 대체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메모라이즈 기능이야 나중에 메모라이즈 마법을 배우면 된다. 마력증폭이나 수식 자체 계산도 에아가 있으니 큰 문제가 없다.

안톤 정도의 대마법사가 현장에서 쓰지 않는 건 이유가 있으리라.

하지만 나는 내가 할 수 없는 일들을 대신해 줄, 그런 무구를 원한

'이 목걸이처럼.'

나는 물의 장막이 담긴 안톤의 목걸이를 가볍게 쥐고는 주위를 걸어다녔다.

"……음."

검도 있었다. 폭이 넓은 대검류인데, 길이가 대검치고는 또 짧은 편이라 휘두르는 용도가 아닌 것 같다. 나는 그 검을 꺼내보았다.

"으윽!"

엄청 무겁다. 들자마자 바닥에 쿵! 소리를 내미 떨어뜨렸다.

"그 검의 이름은 '스펙터'라고 하네. 개인 경량화 마법이 걸려 있어. 자네의 마나를 불어넣어 보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검에 마나를 불어넣은 다음 들어 올렸다. 한 손으로 들 정도로 가벼워졌다.

"검술은 좀 하는 편인가?"

"아뇨. 젬병입니다."

나는 허우적거리며 검을 몇 번 휘둘러 보았다. 머릿속에 남아 있는 홍연의 동작을 따라 하듯 사선으로 검을 내리그어 봤지만, 역시나 형편없다.

나는 검술과 영 안 맞았다. 소질 자체가 전무하다.

"이 검의 능력은 뭡니까?"

안톤이 훗 하고 웃었다.

"자네가 보는 눈이 있군. 두 번째 기능은 '전이'. 자네의 시야가 닿는 곳으로 검을 순간 이동시킬 수 있지."

나는 설명을 듣고 검에서 느껴지는 순간 이동 트리거를 작동시켜 보았다. 검이 내 손을 떠나 저 멀리 떨어진 벽 끝에서 나타났다.

"오!"

"그리고 세 번째 기능은 '안테나'. 자네가 시전한 마법을 저 검에서 바로 발현시킬 수 있네."

나는 바로 레피드 에로우를 사용해보았다. 묘한 감각이었다. 도장법으로 손바닥에서 만든 고속 마법진이 멀리 떨어져 있는 검에 새겨졌다.

나는 텔레포트로 검을 손 안으로 되돌리고는 다시 반대쪽 벽 끝으로 보냈다. 동시에 레피드 에로우를 발동하자 검에서 황금빛 화살들이 연달아 날아갔다.

"좋은데!"

-꽤 괜찮군요. 탑주.

원격 시전은 거리가 벌어질수록 위력과 시전 속도, 안전성이 떨어진다.

하지만 이 대검을 활용하면 장거리에서도 즉시 시전이 가능하다. 검면에 마법을 부착해 일종의 메모라이 즈 효과까지 가진다.

마법을 강화하는 게 아니라, 마법이 전개되는 시점이 두 개가 되는 효과. 어떻게 보면 나 자신을 두 명 쓰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마지막 기능은 '영겁'. 파괴 불가능한 장비라네."

"이거 좋네요."

마지막 옵션까지 마음에 들었다.

나는 스펙터를 다시 내 손으로 불러들였다.

"허락해 주신다면 이 검을 가져가고 싶습니다."

안톤이 껄껄 웃었다.

"정말 그걸로 괜찮겠나? 자네도 느꼈다시피 활용 난이도는 최상위야."

"대신 범용성도 최상이고요. 그래서 제 스타일이네요."

나는 변수를 만드는 싸움을 하니까 무구의 활용에는 자신 있었다. 나는 검을 등 뒤에 메어보았다.

"호오."

지켜보던 안톤이 감탄을 홀렸다.

"원래 자네 물건이었던 것처럼 잘 어울리는군!"

잿빛의 칼날과 남색의 로브. 정말로 한 세트처럼 잘 어울렸다.

기분이 좋아진 나는 제자리에서 한 바퀴 돌아보았다.

"이러면 좀 검사 같나요? 페이크플레이하게."

"그런 페이크를 주기엔 자네 체격은 영락없는 마법사로군."

"하하하!"

그때 웃고 있는 내 몸이 이번에도 예고 없이 흐릿해졌다.

미션도 클리어하고 보상도 받았겠다. 이제 더 이 세계에 머무를 이유가 사라진 것이다.

6층 시련도 전부 끝이 났다.

"이제 돌아가는군."

"네, 정말로 감사합니다. 대선배님은 제 은인이십니다."

내가 다시 한번 허리 숙여 감사를 표하자 안톤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자네 세계로 돌아가도, 부디 이번 6층 시련에서의 교훈을 잊지 말게나."

"물론입니다."

나는 꾹 주먹을 쥐었다.

"아, 그러고 보니 딱 한 가지 못들은게 있습니다."

"뭐가 말인가?"

"에렌델에 대해서요."

안톤의 이야기만 들어보면, 에렌델은 이상적이었다.

마키나티오가 과학이라면 에렌델은 마법이 극도로 발달한 세계. 무려 3명의 마탑주를 배출했다.

11대, 12대, 13대가 모두 에렌델의 마탑주고, 그 역사만큼 방대한 정보들과 체계적인 마법 프로세스를 갖추었다.

마법사들이 가장 많은 세계이자, 마탑의 힘이 가장 강력한 세계. 그런 곳이 왜 멸망했을까? 나로서는 짐작이 가지 않았다.

안톤은 눈을 감았다.

"지금 자네에게 말해주기엔 너무 이르군. 그건 자네가 탑의 마지막 시련까지 도달했을 때, 저절로 알게 될 걸세."

"…… 알겠습니다."

캐묻지는 않기로 했다. 안톤 같은 대현자가 굳이 지금 말해주지 않겠다고 한 걸 보면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충고 정도는 해둘 수 있겠군."

안톤이 눈을 뜨고 말했다.

"너무 많은 정을 주면, 나중에 고생할 걸세."

"네?"

전혀 무슨 말인지 모를 말을 끝으로, 내 시야가 검게 물들었다.

붕 떠오르는 부유감과 함께 내 몸이 다시 검은 소용돌이 안으로 빨려들어왔다.

[축하합니다! 시련을 클리어했습니다.]

[마탑 제6층 '마나 광산'이 해금됩니다.]

['광산지기'의 일부 특성을 획득합니다.]

떠오르는 플레이어 메시지들을 보며, 내 몸은 계속해서 위로 올라간다. 어둠밖에 없는 공간에서 한 점빛이 보인다.

그곳을 돌파하는 순간.

파아아아아앗!

세계가 급변했다.

나는 다시 던전에 돌아와 있었다.

"……정말이구나."

정확히는 던전의 핵심체에 도달해 있다. 이미 보스 몬스터는 누가 처치했는지 보이지 않았고, 나 혼자 덩그러니 여기 떨어져 있다. 안톤의 일기에서 봤던 상황 그대로였다.

시간이 꽤 걸리긴 했지만 결국 작전대로 됐다. 나는 가볍게 심호흡하고 바닥에 손을 댔다.

"바로 시작하자. 에아."

-Yes. 던전 장악을 위한 동조화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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