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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마탑주-201화 (201/337)

나 혼자만 마탑주 201화

"하지만 쉽게 들여 보내주진 않을 것 같네요."

벨리카가 고개를 들며 말했다. 이 6구역에는 외형부터가 특별한, 50기의 안드로이드들이 있었다.

안드로이드가 인간과 기계를 반 섞어놓은 형태라면, 이것들은 얼굴부터 시작해 거의 인간이나 다름이 없는 외형이었다.

이들은 '친위대'라고 불린다.

들고 있는 무장들만 봐도 압도적, 아래층에서 뚫고 온 놈들과는 격이 다른 이브의 주전력이다.

"역시 이상하군."

윈슬로가 팔짱을 꼈다.

"뭐가요?"

"너무 쉬워."

……지금 나 죽을 뻔한 것만 세어도 열 손가락이 넘는데요?

"퀸 오브 빅토리아에는 비행형 안드로이드 20만 대, 그리고 이브를 지키는 '친위대'가 1, 000기가 있다고 들었다. 그런데 방금 밑에서 본 비행형은 고작 수 천이고, 가장 중요한 친위대조차 50기가 전부군."

세상에…… 날 그런 곳으로 떠밀었던 거야? 딱 보니까 이 아저씨도 감당 안 되는 숫자였구만!

나는 한숨을 쉬면서도 머리를 굴렸다.

"방비가 약해졌다면 이브가 거주지를 옮겼을 가능성이 크죠. 여기는 페이크였다거나."

"그런 경우의 수는 없어."

이번엔 벨리카가 말했다.

"이브의 본체인 메인 컴퓨터는 대체 불가능이야. 방대한 데이터들과 지능의 원천이 모두 거기에 담겨있어. 만약 옮길 수 있다 해도 그 거대한 설비를 다른 곳에서 운용하는 건 불가능해."

"음."

그때 윈슬로가 엄지를 척 세웠다.

"잘 풀리면 만사 오케이! 경비가 적어졌다면 우리에겐 호재지. 50기야 가뿐히 쓸어버리고 이브에게 가자고!"

"알겠습니다."

희생을 발판으로 여기까지 왔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앞으로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

우리가 움직이자 친위대라 불리는 50기의 안드로이드들도 날개를 펼치며 전투 준비를 했다.

당장에라도 전투가 벌어지려는 그때.

우웅!

콜로세움 경기장을 연상케 하는 이넓은 공간에 무수히 많은 화면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벨리카가 깜짝 놀라 말했다.

"이, 이건 실시간 중계 채널이에요! 마키나티오의 모든 도시들과 연결되어 있어요!"

"오호."

윈슬로가 턱을 슥슥 쓰다듬었다.

"이브가 재미있는 짓을 하는군. 전세계에 우리의 전투를 중계할 생각인가?"

그의 입꼬리가 귀 끝까지 올라갔다.

"그거 좋구나! 바라던 바다!"

"……대선배님?"

윈슬로가 두 팔을 벌리며 앞으로 나왔다.

"나는 윈슬로다!"

그가 쩌렁쩌렁하게 외쳤다.

"듣고 있나 이브! 마지막 남은 인류의 저항세력을 모두가 보는 앞에서 철저하게 말살하고 인류의 반란에 방점을 찍겠다는 게 네 의도겠지! 하지만 우리가 이긴다면 어떨까!"

"인간은 자유로울 권리가 있다! 복종하려는 인간도, 스스로 주인을 고를 권리가 있다! 네 잘난 지성도 여기까지! 인류는 지금 이 순간 기계로부터의 완전한 자유를 선포한다!"

"숨도 쉬지 못하고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아! 낳아준 어미 아비도 모른 채 데이터를 머릿속에 박아 넣고 가축처럼 기계 부품처럼 살아가는 인간들아! 전산에 누락되는 것으로 총살당해야 하는 파리만도 못한 목숨들아! 잘 봐라! 이게 바로 자유의 의지다!"

쿠구구구구구구!

해방한 윈슬로의 마력이 폭발적으로 끓어오른다.

그가 마법을 일으킨다.

<윈슬로 오리지널-락 그라비티>

전방위 금속계 마법이 작렬한다.

"내 본래 전공은 99% 적성률의 독성계다! 하지만 버렸다! 몬스터가 아닌 너희 안드로이드들을 상대하기위해!"

공중에 있던 친위대들의 몸이 끼긱거리며 아래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내 각오를 맛봐라!"

콰앙! 쿠우웅!

친위대들의 몸이 바닥에 처박히거나 벽에 떨어져 그대로 압력에 박살난다. 그 모습을 본 다른 친위대들은 대처를 시작한다.

-제49번 변수에 대응하기 위한 오버 부스트 발동. 화력 200% 증강.

-공격개시.

친위대의 몸통이 열을 끌어올린 것처럼 시뻘겋게 물들었다. 그들이 락그라비티의 압력을 버티며 달려온다.

"큭!"

벨리카가 품에서 총을 꺼내자 나는 그녀를 말리며 앞으로 나왔다.

"내가 나설게. 넌 대선배님을 보호하는데 집중해 줘."

"잰스!"

나는 가뿐히 오른발을 들어 데바스타를 착용하고는 강하게 바닥을 디뎠다.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사라진 내 몸이 달려드는 친위대의 머리를 찌그러뜨리며 나타났다. 나는 발차기로 틈이 생긴 부분에 마법진을 새겼다.

<플레임 타우로스>

내가 점프하는 것과 동시에 폭발이 일어난다. 친위대 하나가 바닥으로 떨어진다.

-탑주. 친위대의 장갑 방호력이 예상 이상입니다. 플레임 타우로스로 가격할 경우, 같은 부위에 5발을 때려 넣어야 뚫릴 것으로 사료됩니다.

'역시 아직 6공정은 숙련도가 부족해.'

이제 막 6층 시련에 와서 배우고 있는 마법일 뿐이다. 실전에서 바로 쓰기엔 애로사항이 많다.

'그럼 평소 하던 대로 물량전으로 가자!'

-탑주의 명령에 따릅니다.

<파이어 캐논>× 100

사방팔방에서 화염구가 쏟아져 내린다.

락 그라비티로 움직임이 느려진 친위대들이 화염구에 얻어맞자 그러잖아도 시뻘겋던 몸체가 달아오르고, 이내 한계열 수치를 넘어 몸체가 찢어지며 폭발한다.

'먹힌다!'

-효과적입니다. 고열을 이용한 공략이 주요합니다.

나는 계속해서 데바스타로 날아다니면서 놈들의 머리를 꺾고 파이어캐논을 흩뿌렸다.

레이저를 발사하는 공격은 위험하지만, 슬슬 움직임에 적응이 된다.

나쁘지 않다.

힐긋 벽면의 화면을 보니까 나를 향한 응원의 메시지가 가득하다.

'힘내라!'

'이겨라!'

등등.

괜찮은 건가? 다들 금지어나 검열은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다.

"하하하하! 훌륭하다, 김유신! 역시 이 윈슬로의 후배야!"

락 그라비티를 유지하고 있는 윈슬로가 큰 소리로 웃었다.

-탑주! 12시 방향에 탄환입니다!

'큭!'

나는 고개를 꺾어 간발의 차이로 날아오는 탄환을 피해냈다.

'갑자기 어디서 날아온 거야?'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특이하게 생긴 저 금빛 탄환은 나를 지나쳐 수백 미터를 더 날아가다가 허공에서 스스로 터졌다.

'…?!'

탄환에서 나온 파장이 퍼지자 갑자기 허공에 깔아뒀던 파이어 캐논들이 대기 중 마나 상태로 돌아간다.

5층의 비행 시련에서 경험해 본적 있는 '캔슬레이션' 효과.

마법이 아닌 과학 파트의 전술 병기 버전이다.

그래도 경험해 본 적이 있어서 다행이다. 조금 당황했지만, 바로 마법진을 복구하고 데바스타를 새로 켰다.

파이어 캐논을 날려 달려드는 친위대들을 견제하고 연기로 시야를 가리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둘 다 괜찮아요?"

다행히 두 사람 모두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그런데.

"아…… 아……"

윈슬로가 몸을 떨었다.

통통한 다리, 사라진 턱, 몇 겹으로 뒤룩뒤룩하게 튀어나온 뱃살.

부담스럽게 잘 생긴 그 미남 윈슬로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살찐 남자 한 명이 떡하니 나타나 있었다.

"어, 아아아. 어어?"

윈슬로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자신의 몸을 만졌다.

"타, 탑주님?"

당황한 벨리카가 다가오자 윈슬로는 경직된 얼굴로 물러섰다.

"아니야!"

그가 비명처럼 소리 질렀다.

"내가 무슨! 아니야! 내내, 내내가 그런 잘 생기고 멋진 사람일 리가 없잖아! 그렇지 응? 맞지?"

"이게 대체 어떻게……"

그때 윈슬로의 시선이 주위의 화면 들로 향한다.

하필이면 내 데바의 눈처럼 발달한 그의 오른쪽 눈은 화면에 나와 있는 글자들을 모조리 다 읽을 수 있었다.

[저 돼지는 누구야?]

[윈슬로는 어딨어?]

[살 뒤룩뒤룩 찐 것 좀 봐. 역겹게 생겼네.]

[설마 저 돼지가 윈슬로는 아니겠지?]

"아니야!"

쏟아지는 메시지들을 보며 그가 비명을 질렀다.

"내가 아니야! 난 윈슬로가 아니야아아!"

그가 머리를 붙잡고 울부짖으며 바닥에 엎드렸다. 두 팔로 머리를 감싸고 줄줄 눈물을 흘렸다.

…… 역시 나. 윈슬로는 외모에 심각한 트라우마가 있었던 것 같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윈슬로는 병적일 정도로 자신의 외모를 숨겼다.

그 실체를 알고 있는 건 호문쿨루스 엔릴과, 다른 세계에서 넘어온 완전한 외부인인 나뿐이다.

내가 계속 의문을 표시한 게, 다이어트 마법은 유지하는데 상당한 마력 부담을 가진다. 지나칠 정도로 비효율적이다.

심지어 윈슬로는 전투 중에도 계속 다이어트 마법을 유지하느라 100% 실력을 내지 못했다. 마나 소모량이 적거나, 벨리카가 꺼낸 미사일을 날리는 것처럼 빠르게 쓸 수 있는 마법만 썼다. 윈슬로는 자신의 실체가 드러나는 게 죽기보다 더 두려웠던 모양이다.

결국, 사람의 감정을 읽을 수 있다는 이브는 윈슬로가 느끼고 있는 두려움을 감지했고 그의 약점을 제대로 후벼 파고 있다.

이브가 전 도시에 이 상황을 중계하고, 채팅까지 열어놓은 이유가 있었다.

레지스탕스의 대장이자 마탑주인 윈슬로는 유명인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의 실체를 본 사람들의 비웃음이 쏟아지고 있다.

"일어나세요! 탑주님!"

벨리카가 외쳤다.

락 그라비티로부터 해방되어 한숨돌린 친위대들이 공격을 시작한다.

레이저들이 마구 쏟아지자, 벨리카는 다급히 아공간을 열고 전면에 코팅된 특수 차단막을 꺼내 앞에 세웠다.

레이저들을 약간 빗나가게 하는 효과는 있었지만, 차단막이 빠르게 망가지고 있었다.

"탑주님!"

"아니라고! 나 아니야! 나는 그 사람이 아니야!"

친위대들이 소드 디바이스를 꺼내 그들에게 뛰어든다.

벨리카가 다급히 권총을 꺼내 쐈지만 그 정도는 가뿐히 피해낸다.

"제발! 피해요!"

벨리카가 총을 버리고 윈슬로의 몸을 끌어안았다. 윈슬로는 여전히 얼굴을 가린 채 움직이지 않았다.

차단막을 찢어버리고 다가온 친위대들이 검을 들어 올리려는 찰나.

쩌억!

친위대의 얼굴이 발길질에 찌그러지며 내가 나타났다.

나가떨어지는 친위대를 보면서 바로 다리를 접고 새로운 데바스타를 신발 밑창에 켠다.

<데바스타>

그대로 회전하며 돌려차기.

옆으로 들어오던 친위대 또 한 명의 친위대가 수백 미터 넘게 날아가 바닥에 처박힌다.

"아……!"

"다친 곳은 없나?"

눈에 눈물이 잔뜩 고인 벨리카가 나를 바라본다.

"……탑주… 님?"

그 말에 머리를 바닥에 박고 엎드려 있던 윈슬로가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나는 그를 향해 씨익 웃어주며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였다.

"다행이군. 괜찮아 보여서!"

"너……!"

나는 물의 장막으로 윈슬로의 모습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뭐가 두렵나. 뭐가 불안한가. 후배."

윈슬로의 동공이 흔들렸다.

"생판 남의 시선이 뭐가 그리 중요한가? 옆을 봐라."

윈슬로가 고개를 돌린다. 눈물을 줄줄 흘리며 걱정 가득한 벨리카의 얼굴이 보인다.

"그녀가 혐오스러워 하는가?"

"……."

"껍데기는 중요하지 않다. 껍데기에 휘둘려 네 진가를 보지 못하는 자들은 네 쪽에서 믿고 걸러라!"

나는 척 세운 엄지손가락을 내 가슴으로 향했다.

"나를 믿어라. 나 자신의 진가를 믿어라!"

"……."

"탑주님! 놈들이 와요!"

나는 등을 돌렸다.

"소용없다!"

오른팔을 뻗었다. 아무런 마법 동작 없이, 그냥 팔을 뻗었을 뿐이다.

그러자.

<락 그라비티>

달려들던 친위대들이 일제히 바닥에 나자빠진다.

"누가 나를 비웃는가!"

전면으로 날아오는 레이저를 향해 팔을 휘두르자 미러 쉴드들이 연이어 펼쳐지며 레이저들을 굴절시킨다.

"나는 이 세계의 최강이다! 나는 윈슬로다!"

내가 손으로 가리키는 방향마다 락 그라비티가 작렬하고, 팔을 휘두르는 방향마다 빈틈없이 미러 쉴드가 펼쳐진다.

처음에 윈슬로가 썼던 것과는 마법의 화력이 차원이 다르다.

쨍!

와장창창!

그때 5구역의 천장에서 유리창을 부수고 친위대 증원군들이 들이닥친다. 벨리카가 입을 쩍 벌렸다.

처음보다 4배는 많은 숫자. 200명이 넘는 친위대들이 등장했다.

"가소롭다! 고작 이 숫자로 나를 막으려 하는가!"

나는 두 팔을 하늘을 향해 번쩍 들어 올렸다.

"내가 바로……! 응?"

바닥에 엎드려 있던 윈슬로가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그가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하늘로 팔을 치켜들며 소리쳤다.

"내가 바로!"

온몸에 전율이 흘러넘친다. 이런 방대한 양의 마력의 흐름은 처음 느껴본다.

"윈슬로다!"

쩌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엉!

하늘이 찢어진다.

200기의 친위대들의 팔, 다리, 목이 능지처참처럼 좌우로 찢어지며 박살난다.

벨리카가 경악의 비명을 지르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후두두두둑.

비처럼 떨어지는 안드로이드들의 잔해를 보며 나는 미소를 머금고 물의 장막을 해제했다.

"존경합니다. 대선배님."

코와 입에 피를 줄줄 흘리며, 눈이 시커멓게 변한 윈슬로가 히죽 웃는다.

"그럼, 나 윈슬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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