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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마탑주-199화 (199/337)

나 혼자만 마탑주 199화

"가람을 바로 건드리진 말고, 이 스탠스를 계속 유지해."

프로스트가 말했다.

"지금처럼 숨도 못 쉬게 조여. 알케미아에 전방위 압박 들어가고 유통 루트 싹 다 막아. 김유신의 심복들이랑 마법사 팀, 계속 교육대 집어넣고 던전 뺑뺑이 돌려. 같이 가는 파티원들에게 돈 쥐여주고, 안받으면 압력을 넣어서 놈들을 조지도록 하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알지? 그 친구들한테 세상이 바뀌었다는 걸 깨닫게 해주고 김유신에게 붙은 걸 후회하게 하란 말이야!"

"예, 알겠습니다."

블랙잭이 대답했다.

그때 안 비서가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협회장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말해보세요."

"우리가 비엔그룹과의 계약 해지를 껄끄러워 하는 만큼, 비엔그룹도 우리 와의 관계가 끊어지는 걸 두려워할 겁니다. 신나라 대표를 압박해 김유신의 아이들을 가람에서 나오도록 만들죠."

"음."

프로스트는 고민스러운 얼굴로 팔짱을 꼈다. 안 비서는 이어서 설득했다.

"김유신의 아이들은 열 명도 안 되는 숫자입니다. 김유신이 살아 있다면 모를까, 사실상 그들만으로는 큰가치가 없습니다. 5급 헌터 몇 명과 유닉스 그룹. 어느 쪽이 더 중요할지는 논의할 것도 없지요."

프로스트는 눈을 감고 고민했다.

"……그래. 맞는 말이야. 신 대표에게 한번 연락해 볼게요."

"현명한 판단이십니다."

"집행부도 준비해. 놈들이 가람에서 나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포션의 진실을 알아내. 협조적이지 않을 경우엔 원초적인 설득수단을 이행하는 것까지 허락한다."

"그게 제 전문입죠. 형님."

안 비서와 블랙잭이 밖으로 나가고, 프로스트는 바로 수화기를 들었다.

-네. 가람의 신나라 대표입니다.

"신 대표. 나 협회장이에요."

-아, 협회장님!

프로스트가 비릿한 미소를 흘리며 말했다.

"긴히 신 대표와 할 이야기가 있어서요. 오늘 저녁에 시간 괜찮아요?"

* * *

S호텔의 고급 레스토랑.

프로스트와 신나라는 마주 앉았다.

"와아! 이렇게 개인적으로 협회장님을 뵙는 건 처음이네요! 정말 기뻐요. 협회장님과 단독 대면은 천금을 줘도 얻기 힘든 자리잖아요!"

신나라는 프로스트를 깍듯이 대했다. 그런 그녀의 태도에 프로스트는 내심 흡족했다.

가람이 어떤 매니지먼트인가. 국가급 전력인 3급 헌터를 세 명이나 보유한 내실 있는 기업이다.

Top 10 길드의 하위권은 그냥 찍어누를 수 있는 화력을 보유했으면서, 언제나 한걸음 뒤로 빠져서 방관하는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

아주 현명하다고, 프로스트는 생각했다.

Top 10 길드는 대한민국을 대표한다는 강력한 명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만큼 큰 책임도 갖는다. 연맹이 요청하는 해외 파견이나, 재앙 사태발생 시의 의무적 동원 같은 것들 말이다.

하지만 가람은 길드가 아닌 매니지먼트라는 것만으로도, Top 10의 자리에서 벗어나 다양한 제약들을 회피하고 있었다.

'뭐, 이제 3급 헌터는 두 명이겠지만.'

프로스트는 와인으로 가볍게 목을 축였다.

"여긴 제가 자주 오는 가게입니다. 다른 걸 다 떠나서, 프라이빗이 확실히 보장되거든요."

그들은 커다란 방 하나를 통째로 쓰고 있었다.

천장에는 화려한 샹들리에가 보였다. 고급스러운 가구, 다양한 식기들, 기품있는 동작의 웨이터들. 상류층 레스트랑의 정석이었다.

"어머나, 기대되네요!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시려고?"

프로스트는 서두르지 않고 와인을 천천히 굴리며 말을 골랐다.

"둘러 말하는 거 별로 안 좋아하니,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죠."

"네!"

"가람에서 퇴출해 주셨으면 하는 인원이 있습니다."

신나라는 안색 한 번 바뀌지 않고 말을 받았다.

"그 사람들은 김유신 헌터가 데리고 온 사람들이고요?"

"대화가 빨라서 좋군요."

두 사람은 진지하게 시선을 마주했다.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헌터 퇴출은 저희도 민감한 사안이라서."

"평화를 위해."

프로스트가 입꼬리를 올렸다.

"유닉스와 비엔그룹의 충돌을 원하지 않습니다."

상당히 세게 나온다. 신나라는 물을 한 모금 마셨다.

"퇴출된 헌터들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어떻게 되고 뭐고 없습니다. 늘 그랬듯 나라를 위해 몬스터들과 싸우겠죠."

질문을 던져도, 답이 돌아오지 않는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신나라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럼 대답을 드리기 전에, 이것부터 좀 보시겠어요?"

그녀는 가방에서 서류들을 꺼내 테이블 위에 촤르륵 펼쳤다.

무심하게 서류를 훑어보던 프로스트의 눈이 한 순간 부릅떠졌다.

"이건……!"

전 Top10 길드인 블랙가드와 NIX의 본사에서 직접 입수한 자료들.

사전에 유닉스가 이들과 접촉한 증거, 그리고 재고에 ' 몬스터 헌팅용'이 아닌 '대인간용 장비'의 출고 기록까지 있었다.

무엇보다 홍율을 저격하는 용도로 준비한 '메라이스의 포자 가스'의 출고 증명서는 치명적이다. 이건 몬스터 사냥에서는 거의 쓰일 일이 없는 물건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김유신 습격 사건에 대한 러시아 헌터 측 진술서가 있었다.

언론에서 밝힌, 김유신이 집행부를 선제 공격해서 몇몇 요원들에게 큰부상을 입히고 빠져나갔다는 것과는 완전히 상이한 내용.

진술서 아래에는 다름 아닌 러시아의 간판급 헌터, 공인 2급 그리즐리의 서명까지 있었다.

하나하나가 터뜨리면 대단히 시끄러운 논란을 일으킬 만한 내용이었다.

"신 대표! 이건!"

"내 헌터가 그런 일을 당했는데, 그냥 손 놓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신나라가 미소 지었다.

"김유신 죽이기의 배후에 당신이 있다는 건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죠."

비엔그룹의 메인인 IBN은 종편채널이고, 수 많은 구독자들을 거느리고 있는 거대 언론사다.

아무리 프로스트와 유닉스가 날고 기어도 IBN이 IBN에서 방송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성급했다.

상대는 초식동물이 아니라 맹수였다.

"……자아,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신중히 생각해요. 신 대표."

프로스트는 빠르게 온건책으로 돌아섰다.

"피차 본사에서 중대한 비즈니스도 진행 중이잖아요. 애들 싸움에 본진까지 휘둘릴 필요는 없습니다. 비엔 그룹 회장님도 이 사실을 아시면

"당연히 할아버지, 아니, 회장님께 먼저 여쭤봤죠."

그녀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제 꼴리는 대로 하라는데요?"

프로스트가 뿌득! 이를 갈았다.

"그럼 본론으로 돌아와서, 아까 주신 제안에 대한 제 대답은 NO입니다. 대신 제가 협회장님께 새로운 제안을 드릴게요."

그녀가 테이블에 두 팔꿈치를 올리고 깍지를 끼며 말했다.

"이 자료 터지는 꼴 보고 싶지 않으면, 내 헌터들 건들지 마요."

* * *

프로스트는 떠났다.

긴장된 순간이 끝나자 신나라는 길게 한숨을 쉰 다음 전화를 걸었다.

"네. 저예요. 정서진 헌터님. 프로스트랑 이야기 잘 마쳤어요."

-수고하셨습니다.

"정 헌터님의 자료들, 정말 최고였어요! 그 프로스트가 입 한번 뻥긋 못하더라고요."

정서진 기획에 신나라 연출.

두 사람은 지금 이 순간에도 프로스트를 궁지로 몰 수 있는 자료들을 수집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냥 지금 빵 터뜨려서 협회장에 대한 논란을 키우고, 프로스트의 파워를 떨어뜨리는 게 좋지 않을까요?"

-타이밍의 문제입니다. 어차피 저희 대표님이 돌아오시면 상황은 완벽히 반전됩니다. 지금으로 써는 카드로 쥐고 있는 게 모두를 안전하게 보호할 방법입니다.

휴대전화를 든 신나라의 팔이 가늘게 떨렸다.

"김 헌터님이 협회장님을 데리고 던전에서 돌아온다는 이야기…… 정말 그렇게 될까요?"

-물론입니다.

정서진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김 대표님은 언제나 틀을 깨고, 상황 자체를 쥐고 흔드셨죠. 미궁던전의 기적이 다시 한번 일어날 거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도 그렇게 믿고 있을게요."

* * *

드디어 운명의 날, 레지스탕스 작전 당일이 되었다.

나는 트럭 화물칸에 숨어들어와 있다.

으적! 으적!

윈슬로가 게걸스럽게 초코바를 씹고 있었다. 겉모습은 늘씬한 미남이라도, 식욕은 어딜 가는 게 아닌 모양이다.

"그렇게 막 시끄럽게 소리 내도 돼요?"

"암, 물론이지! 내 방음 마법은 빈틈이 없거든!"

벨리카도 옆에 앉아서 조용히 샌드위치를 먹고 있었다. 나는 윈슬로가 다음 초코바를 꺼내는 모습을 보며 턱을 괬다.

"다들 별 걱정 없어 보이네요. 이번 작전, 진짜 괜찮을까요?"

"물론!"

윈슬로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가슴을 탕탕쳤다.

"나 윈슬로야! 못 믿어?"

…… 잘못 믿겠으니까 하는 소립니다.

"기계들이 구축한 보안 시스템엔 빈틈이 없어. 하지만 너무 빈틈없고 완벽하다는 게 장점이자 단점이지! 상황이 벌어지면 기계들은 딱 설정된 매뉴얼대로만 움직이거든! 그러니 우리가 그 매뉴얼을 알고 있다면 충분히 모든 상황을 이용할 수 있어!"

……뭐, 논리상 맞는 말이긴 하다.

안드로이드라고 불리는 저 기계들에게는 직감이나 능동적 움직임을 기대할 수 없으니까.

-대장! 작전 준비 끝났습니다.

통신이 왔다. 윈슬로는 사뭇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시작하자!"

* * *

하일드 박사는 안드로이드 연구분야의 선구자다.

지금처럼 완성형에 가까운 안드로이드들이 개발된 것도 그의 공헌이 상당이 컸다. 고고한 지성을 지닌 이브마저도 그의 능력을 귀하게 쓸 정도였다.

-이쪽이다. 인간.

"예, 감사합니다."

물론 아무리 대단한 인물일지라도 인간인 이상, 안드로이드에게는 복종해야 했다.

그것이 룰.

그것이 이 사회.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감회가 새롭군.'

안드로이드의 안내를 받아 남자는 건물에 도착했다.

이브가 거주하는 폴리스의 핵심 건축물, '퀸 오브 빅토리아'.

건물 안에 도시가 있다고 할 정도로 방대한 규모를 자랑했다. 이곳은 총 6개의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고, 이브는 퀸 오브 빅토리아에서 가장 깊은 곳인 6구역에 있다.

하일드는 푸른 막의 문 앞으로 다가갔다.

물처럼 일렁거리는 게이트. 만약 출입 기록에 등록되지 않은 인물이 이 막을 통과해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고 한다면, 그대로 온몸이 녹아내려 뼈도 남지 않고 사라질 것이다.

하일드는 살짝 긴장한 표정으로 막을 통과했다. 끈적한 것이 전신을 훑는 느낌이 드는 것도 잠시, 남자는 무사히 빌딩 안으로 들어왔다.

"아아."

하일드는 회고했다.

정말 긴 시간이었다.

-인간! 뭘 하는가? 서둘러라.

이브에게 협력했다.

인간을 보호하기 위해.

재앙을 막기 위해.

하지만 진짜 재앙은 어느 쪽인가.

이제 와서 그런 건 중요치 않았다.

중요한 것은, 인간은 선택할 자유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인간! 그 이상, 수상한 행동을 하면 발포하겠다!

안드로이드가 총을 겨누며 윽박질렀지만, 하일드는 웃었다.

"너희는 날 쏘지 못해. 이브가 지정한 제1급 보호 인물의 처분명령을 받아내는 데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릴까."

하일드가 입을 찢으며 웃었다.

그리고.

그가 내려놓은 가방이 열리며 폭발을 일으켰다.

이질적인 푸른 전류가 사방으로 퍼져 나간다. 주위에 있는 모든 안드로이드의 기능이 정지하고, 입구를 막고 있던 끔찍한 푸른 막까지 사라진다. 전원이 꺼지고, 조명이 꺼지며, 모든 컴퓨터가 작동을 멈춘다.

최신형 EMP 디바이스가, 퀸 오브 빅토리아 한복판에서 터진 것이다.

"수고했소. 박사"

그리고 그의 뒤에서 백 명이 넘는 무장한 레지스탕스 일원들이 푸른 막이 꺼진 게이트로 들어오고 있었다.

"지금부터는 우리에게 맡기시오."

"부탁합니다. 인류에게 자유를."

남자는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소리쳤다.

"정말 오랜 세월을 참고 기다렸다. 가자, 동지들이여! 우리의 분노를 보여 주자!"

"이브를 파괴해라!"

무력화된 안드로이드의 몸에 총알이 틀어박힌다.

고귀한 관리자인 안드로이드를 관리 대상 인간이 살해했다. 현 사회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일.

이제 세계는 어떤 방식으로든 변할수밖에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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