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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마탑주-194화 (194/337)

나 혼자만 마탑주 194화

[김유신 실망입니다.]

[그렇게 잘난 척은 다 하더니.]

[김유신 커버쳐 주는 놈 아직도 있냐.]

유신의 실종은 연이은 화젯거리였다. 진보라는 마탑의 황금 소파에 앉아 시뻘게진 눈으로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다.

"진보라 씨."

그때 두꺼운 손이 그녀의 스마트폰 액정을 덮었다. 소리 없이 다가온 정서진이 고개를 가로젓고 있었다.

"아, 언제 왔어요?"

"방금 왔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악플 찾아 보는 거, 멘탈 관리에 안 좋습니다."

"……."

그녀는 스마트폰의 전원을 꾹 눌러끄고는 테이블에 던져놓았다.

"다들 정말 너무해요. 아무것도 모르는 생판 남이 선배님에 대해 뭘 안다고 저렇게 비난하는 거예요?"

"……."

"한번 생각해 봐요! 선배님은 미궁던전으로부터 한국을 구했고! 클래식 게이트 때는 한 명의 피해자 없이 아시아를 구했고! 대재앙에 될 뻔한 마인 기지를 박살 냈고, 심지어는 아프리카까지 해방한 사람이에요! 선배님은 언제나 모두를 위해 필사적으로 싸워왔어요. 그런 선배님을 사람들은 뭐가 그리 잘 나서 미친 듯이 깎아내리는 거죠? 왜 못잡아먹어서 안달이냐고!"

정서진은 아무 말 없이 소파에 털썩 앉았다. 그녀는 여전히 화가 풀리지 않는 듯 팔을 부르르 떨며 말했다.

"근데 제일 웃기는 게 뭔지 알아요? 정작 사람들한테 김유신이 뭘 잘못했냐고 물어보면 다들 어버버하면서 잘 대답도 못 해요! 잘못이라고 해봐야 알케미아의 연구 재단 검증 문제 정도? 그것도 그냥 의혹일뿐인데! 집행부를 선제 공격한 것도 프로스트의 일방적인 의견일 뿐이고요! 수 많은 사람들을 구해낸 헌터를 고작 의혹 따위로 이렇게까지 비난해? 말이 안 된다고요!"

"진정하십시오. 진보라 씨. 너무 흥분했습니다."

진보라는 눈물을 슥슥 닦았다. 자신의 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억울했다. 눈물이 찔끔 날 만큼 분했다.

"우리가, 그리고 선배님이 목숨 걸고 한 일들이 사실 다 무슨 소용이었던 거죠? 사실 이런 나라 따위는 그냥 망해도 싼 게 아니었을까요?"

"……진보라 씨."

잠시 못 본 사이, 그녀는 무척 예민해져 있었다. 스트레스가 적지 않게 쌓여 있는 모양이었다.

진보라는 SNS를 즐겨하는 만큼 네티즌 반응에 민감하다. 그녀 개인적으로 유신을 감싸려다가 집중포화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머리를 식혀요. 진보라 씨."

정서진이 말했다.

"그게 대중의 잘못은 아닙니다. 대중들은 들리는 대로 듣고, 그에 따라 반응했을 뿐이죠. 그리고 그 들리는 내용들은 프로스트에 의해 철저히 컨트롤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

"진짜 악의는 대중이 아니라, 대중을 뜻대로 조종하는 프로스트에게 있겠죠."

"알아요. 저도 안다고요. 옛날엔 저도 연예인 불화설 뜨면 괜히 지레짐작하고 남들 따라 나쁜 말하고 그랬었어요! 그런데……"

그녀가 결국 손바닥에 얼굴을 묻었다.

"선배님이 비난받는 거, 견디기 힘들어요."

"……."

"그런 사람이 욕먹는 건 진짜 좀 아니잖아."

정서진은 길게 한숨을 쉬었다.

"조금만 더 견디십시오. 탑주님이 홍율 협회장을 데리고 돌아오면 상황은 완전히 반전됩니다."

"…… 어떻게요?"

"탑주님을 둘러싼 모든 의혹은 프로스트에게서 나왔습니다. 협회장이 돌아와 진실을 이야기하면, 프로스트는 단번에 역적이 됩니다. 그가 꾸민 짓들에 대해서도 진상 규명이 이루어지겠죠."

사실 근래 누구보다 가장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건 정서진이었다.

그런데 진보라와 이야기를 하다 보니, 생각이 조금 더 명료해지는 느낌이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간단해. 탑주님이 돌아올 때까지 버티는 거다. 그렇다면…….'

정서진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가요?"

그녀가 물었다.

정서진이 계단을 오르며 짤막하게 대답했다.

"자료 조사."

* * *

이 물의 세상이 언제까지고 지속되면 어쩌나 하고 생각했다.

그래도 다행히, 몇 시간쯤 지나 자리를 통과하던 바다가 사라지고 화창한 하늘이 드리워졌다.

"와……"

나는 안도 반, 감탄 반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우리 뒤로 직사각형의 물의 층이 지나가는 모습이 보인다. 저기에 있는 물고기들과 각종 해양 생물들은 아무렇지 않은 듯 헤엄치고 있었다.

"미네르바 님! 괜찮아요?"

그녀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 가녀린 어깨를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눈 밑이 시꺼멓게 된 게 전형적인 마력 고갈 증상이다. 탈진, 탈수 증상도 보였다.

나는 슈트에서 주섬주섬 마나 엘릭서를 꺼냈다.

"이거 좀 마실래요?"

"응?"

그녀의 눈이 큼지막하게 떠졌다.

왜 이렇게 감격한 표정이지?

"……마, 마셔도 돼?"

"그럼요."

"고마워! 정말 고마워!"

그녀는 사양치 않고 덥석 엘릭서를 집고는 그대로 고개를 젖혀 목으로 직행했다.

저 터프하게 마시는 모습조차 아름답다.

잠시 후.

"아으! 살 것 같다!"

그녀가 빈 병을 내려놓으며 소리쳤다.

"이게 얼마 만에 맛보는 포션인지 모르겠어!"

"미네르바 님도 마탑 1층에서 포션만들 수 있지 않아요?"

"포션은 식물형 몬스터 부산물이 재료잖아. 침수된 우리 세계에는 식물형 몬스터가 없거든."

"아…… 그러네요."

여러모로 암담한 세계다. 그럼에도 미네르바는 미소를 잃지 않는다.

언제나 사람들에게 힘을 주는 빛과 같은 존재. 세계는 멸망의 위기지만 이상적인 마탑주라는 생각이 든다.

"나 봤어."

그녀가 말했다.

"산소 탱크 밖에서 6공정으로 몬스터들을 격추하는 거 말이야. 실력도 점점 좋아 지던데?"

"보, 보셨어요?"

아, 이거 어쩐지 부끄럽네. 미흡해서 미스도 엄청 났는데.

"응. 그 모습을 보고 널 어떻게 가르칠지 감이 왔어."

그녀가 '읏차'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좀 더 느긋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너도 많이 바쁘겠지?"

아쉬움이 묻어나오는 그녀의 목소리에 침이 꼴깍 넘어간다. 솔직히 나도 많이 아쉽다.

"그럼, 약속한 대로 마법을 가르쳐줄게! 그래야 네가 다음 세계로 갈수 있을 테니까."

그녀가 주위를 휘휘둘러 보았다.

"슬슬 실습 자료가 나타날 때가 됐는데."

"실습 자료요?"

-키시시시식!

-키식!

날카로운 웃음 소리가 들리자 나는 마나를 끌어올리며 주위를 경계했다. 우리가 있는 섬 곳곳으로 몬스터들이 팔을 짚고 올라온다.

한두 마리가 아니다. 어느새 여기 섬 주위의 바다만 새까맣다. 놈들이 섬 위로 올라오고, 바다 아래에도 수백 마리의 몬스터들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해양에서 생활하는 나가족 몬스터들입니다. 탑주.

손과 발에 물갈퀴가 달려 있고 몸은 비늘로 덮인, 전형적인 괴물 인어 형상의 몬스터였다.

"미네르바 님! 싸울 수 있겠어요?"

그녀는 웃는 얼굴로 팔을 뻗었다.

퍽!

아무런 낌새도 없이, 나가의 머리가 떨어져 바닥을 굴렀다.

"지금 나한테 한 말이니?"

"……괜한 소리 해서 죄송합니다."

그녀가 대기 마법을 펼쳤다. 아까처럼 우리의 주위로 공기막이 펼쳐지고 몬스터들이 다가와 발톱을 휘둘렀다. 하지만 공기막을 찢지 못하고 연이어 튕겨 나간다.

"자! 그러면 수업 시작! 6공정 마법을 뭐라고 생각하니?"

"시전 속도에 강점이 있는 쾌속 마법입니다!"

"맞아."

그녀가 팔을 가슴에 X자로 교차했다. 젓가락 같은 손가락들이 피아노를 치듯 흔들렸다.

퍼억! 퍽! 퍼벅!

그러자 주위에 있던 나가들의 머리가 수박통 터지듯 연달아 박살 났다.

"이게 바로 네게 전수해 줄 6공정 바람계 마법. '윈드 사지타리우스'

야."

"와! 마법진이 보이지도 않네요!"

"후후, 마법사는 6공정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신속하고 범용성이 높은 계통이지."

그녀가 손가락을 권총처럼 말아쥐고는 나를 겨누었다. 내가 움찔하며 굳어지자 그녀가 비키라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나는 슬금슬금 옆으로 물러났다.

"BANG!"

그녀의 손가락이 반동을 받은 것처럼 위로 쳐 올라갔다.

퍼버버버버버버벅!

정확히 16기나 되는 몬스터들의 머리통이 한꺼번에 터져서 박살 났다. 그녀는 검지 끝을 '후'하고 불면서 웃었다.

"어때?"

반할 것 같습니다!

"물론 대형 몬스터나 장갑으로 무장한 몬스터들을 상대하는 데에는 다소 화력이 부족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야. 그것도 다수 시전과 약점을 노린 핀포인트 공략으로 대응이 가능해. 하지만 6공정 마법의 진가는 그게 전부가 아니야."

"그럼요?"

"6공정은 기존 마법들과 조합되는 것으로 큰 시너지를 내. 워낙 빠르니까 4공정, 5공정 마법을 사용하는데 시간을 벌어줄 수도 있고, 무엇보다 6공정에는 효율 좋고 빠른 보조 마법들이 많거든. 사실상 가장 급한 건 공격 마법 쪽보다 보조 마법이지."

"좋은 팁 감사합니다! 보조 마법들을 먼저 익혀야겠네요."

"응. 6공정에 대해서는 하루 종일 설명해도 모자라지만…… 부족한 부분들은 대서재에서 보충할 수 있을거야. 그럼 바로 전수로 넘어 가 볼까?"

그녀가 다가와 내 이마에 손을 짚었다. 그때처럼, 각종 지식과 정보들이 내 머릿속으로 밀려들어 왔다.

이물감 때문에 썩 좋은 기분은 아니다만, 이런 걸로 새로운 마법을 배울 수 있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10분 정도가 지나자 그녀가 내 이마에서 손을 뗐다.

"자, 그럼 바로 실습이야. 준비됐니?"

"넵!"

"침착하게 해. 지금 네 머릿속에 들어 있는 건 지식뿐이니까 바로 적용하는 덴 시간이 걸릴 거야. 일단은 감각을 익히는데 주력하자."

"알겠습니다."

미네르바가 보여준 커맨드 액션이 워낙 인상적이어서, 나도 그녀처럼 손을 권총처럼 말아쥐는 포즈를 취했다.

목표는 가장 앞에서 정신없이 공기 막을 두드리고 있는 나가 한 마리.

검지의 끝에 수렴하는 위치, 나가의 이마에 원격 시전으로 마법진을 그린다. 복잡한 여섯 공정을 두 개의 공정으로 한 방에 처리해서.

출력한다!

<윈드 사지타리우스>

펑!

나가의 이마 마법진에 바람이 터져나온다. 나가의 몸이 뒤로 밀려나 바다에 풍덩 빠진다.

"어, 어라?"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내 손을 바라보았다.

"아직은 위력이 약하네요. 밀려나는 정도가 전부……"

나는 말을 멈췄다.

미네르바가 당황하다 못해 얼빠진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너 어떻게……"

"네?"

멍해 있던 그녀의 입꼬리가 조금씩 올라가더니 이내 참을 수 없는 기쁨이 만면에 드러난다.

"굉장해! 그걸 한 번에 성공한 거야?"

"자, 잘한 거예요?"

"당연하지! 쫌 부끄럽지만 나도 감잡는데 일주일은 걸렸단 말이야! 너는 그걸 한 번에 해낸 거니까!"

오히려 나보다 더 흥분한 듯한 미네르바는 몇 번이고 사지타리우스를 반복시켰다. 내가 나가들을 밀어서 바다에 빠트릴 때마다 그녀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응! 좋아 좋아!"

미네르바가 손뼉을 쳤다.

"첫 시도치곤 대단해! 하지만 실전에서 쓰려면 캐스팅 속도를 더 높일 필요가 있어. 결합법 과정을 머리로 일일이 떠올리지 말고, 바로 습관처럼 스킵해서 쓸 수 있도록 하렴."

"알겠습니다. 그런데 화력이 생각보다 잘 안 나오네요."

"호호호! 원래 윈드 사지타리우스의 스펙은 살상 마법이 아니거든. 나처럼 되려면 꽤 시간이 걸릴 거야."

"아! 그럼 저도 노력하면 대선배님처럼 될 수 있는 건가요?"

"그러엄! 자, 다음은 6공정으로 대형 몬스터 잡기야."

그녀가 시선을 돌렸다. 우리를 둘러싼 나가들 중에서 유난히 덩치가 크고.

튼튼해 보이는 괴물이 보였다.

그녀는 한쪽 눈을 감고 오른손을 총처럼 말아쥐어 검지를 겨누었다.

왼손은 오른손을 받치는 조준 사격자세다.

"6공정은 대형 몬스터를 사냥하기엔 다소 화력이 부족하다고 했지?"

"네."

"잘 봐."

나는 시키는 대로 데바의 눈을 부릅뜨고 나가를 보았다. 나가의 이마에 작은 마법진이 그려진다.

'응? 마법진이 잔상처럼 흔들리는데.'

자세히 보니 잔상이 아니었다. 미네르바가 마법진 위에 마법진을 몇장이나 겹쳐 깔고 있었다.

저런 짓을 하면 수식이 엄청나게 꼬일 텐데.

"BANG!!"

그녀가 반동처럼 손을 쳐올렸다.

그러자.

콰아아아아아아아악!

수 미터가 넘는 대형 몬스터의 머리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목이 날아간 몬스터의 몸뚱이가 기이익뒤로 물러나 바다로 빠졌다.

그녀가 이번에도 후, 하고 검지를 부는 시늉을 하고는 나를 보며 싱긋 웃었다.

"잘 봤지?"

아아, 너무 멋지다.

소장하고 싶다. 사진 찍어서 화보처럼 벽에 붙여놓고 싶다.

"이건 어떻게 한 거예요?"

"결합법의 응용으로 한 점에 마법진을 연달아 겹쳐서 한 번에 펑! 한거야. 빠른 캐스팅이 가능한 6공정의 비기지. 지금 보여준 건 48공정쯤 되려나?"

"……대단함을 떠나 미쳤네요."

그녀가 다가와 내 어깨를 두드렸다.

"너무 상위기술을 보여줬으려나? 그냥 6공정의 단련에는 한계가 없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 너는 아직 초심자니까, 지금은 6공정의 캐스트속도를 높이는 기술을 집중적으로 훈련하자."

"알겠습니다!"

실습체야 무수히 많다. 시련 안이라서 웬만한 인던보다 능력치도 잘 오른다.

나는 입꼬리를 올리며 팔을 뻗었다.

'이렇게 성장하기 좋은 기회가 없지.'

시련 전과 시련 후, 완전히 달라지는 게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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