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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마탑주-191화 (191/337)

나 혼자만 마탑주 191화

"자네는 왜 마법사가 다음 공정 마법에 도달하는 게 어려운지 알고 있나?"

로이스트가 물음을 던졌다.

"공정 하나가 추가될수록, 마법진의 생태계가 극단적으로 꼬이기 때문입니다."

"잘 알고 있군."

1공정 마법은 그냥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벌판이라면.

3공정 마법은 무수한 동식물들이 모여 사는 울창한 정글.

6공정 마법은 사람들이 사회를 이루고 사는 도시다.

3공정 마법은 철저히 약육강식의 논리로 돌아가게끔 생태계를 운영하는 정도라면.

6공정 마법은 인간이 살아가기 위한 법률, 경제, 국방, 복지, 징수 등등 수 많은 요소들이 필요하고, 이요소들이 충돌하지 않게끔 절묘한 밸런스를 구축해야 한다. 대충 그 정도의 난이도 차이다.

그래도 다행인 건, 나를 비롯한 요즘 마법사들은 자신만의 생태계를 만들겠답시고 맨땅에 헤딩할 필요는 없어졌다.

초대 마법사와 그 제자들이 어지간히 유능했는지, 생태계를 이루는 가장 합리적인 가이드라인이 구축되어 있다. 우리는 그걸 따라 하면서 뼈대를 만들고, 거기에 살점을 붙여서 자신만의 개성을 만들어 나가면 된다.

그래도 뭐, 가이드라인이 있다고 해도 정글 만들며 놀던 사람한테 도시 만들어보라고 하면 지옥 같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지만.

"5공정 마법사가 6공정 마법을 익히는데 걸리는 시간은 최소가 5년이다."

로이스트가 펼친다섯 개의 손가락에 갑자기 정신이 아득해진다.

"그것도 엘리트 중의 엘리트만 모인 마탑의 마법사들 기준이지. 평범한 마법사들은 30년, 40년도 더 걸리거나 6공정을 포기하는 게 태반이다."

"아……"

"물론 자네는 그런 표정 짓지 않아도 된다. 마탑주는 특별하니까."

로이스트가 후드 안에 감춰진 얼굴없는 얼굴로 나를 응시했다.

"6층 시련이 왜 있겠나. 남은 시간 동안 신입 마탑주가 6공정 마법을 익히도록 만드는 것이 이번 시련의 의의 중 하나다."

"자, 잘 부탁드립니다."

시간이 없다. 밖에서 프로스트가 무슨 짓을 하고 있을지 알 수 없다.

최대한 빨리 6공정에 도달해서 홍율을 구해야 한다.

"그럼 시작하지."

나와 로이스트는 자리에 마주 섰다.

"6공정에 대한 이론은 숙지하고 있나?"

"물론이죠."

마법의 정석을 봐서 알고 있다. 6공정의 핵심은 '접합법'이다. 3개의 공정을 하나로 묶어, 마치 2공정 마법처럼 빠르게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기술.

그러니까 6공정 마법의 가장 큰장점은 '가장 빠른 시전 속도', 그리고 '즉발 효과'다.

"저도 개인적으로 몇 번 시도해 봤는데, 책으로 보는 거로는 도저히 감이 안 잡히더라고요."

"그렇겠지. 지금부터 알려주마."

로이스트가 팔을 벌리자 마법진들이 무수히 펼쳐졌다.

"네 마법진을 꺼내라. 김유신."

* * *

"허억! 헉!"

나는 무릎에 손을 올린 채 연신 거친 숨을 헐떡였다. 허공에 마법진들을 띄운 채 서 있던 로이스트가 장벽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수고했네. 딱 시간에 맞췄군."

내가 무너뜨린 몬스터들의 산은 12시간 정도 만에 복구됐다. 동시에 내가 로이스트의 수업을 받는데 걸린 시간이기도 하다.

"이제 6공정의 기본인 '접합법'에 대해 감이 오나?"

"네!"

이 사람의 수업은 보기보다 빡센감이 있었다.

그는 내 발밑으로 감각 증폭 마법진을 수십 겹으로 깔아놓은 다음, 1공정 마법진을 펼치게 했다. 그러곤 다짜고짜 자신의 마법진들을 연결해 접합시켰다.

'감을 익혀라.'

로이스트는 그렇게 말했다.

내 마법진이 로이스트의 마법진과 접합되면, 99%의 경우 마법진의 소유권이 로이스트 쪽으로 넘어갔다.

그는 내게 계속해서 그 묘한 이탈감을 느끼게 했다. 그러곤 차근차근 2공정끼리의 접합, 3공정끼리의 접합으로 진도를 나갔다.

나는 타의에 의해 생태계의 융합을 경험했다. 그 후에 로이스트는 내 마법진만으로 접합법을 시도하는 것을 허락했다.

'그때 느낀 감이 올 때까지 반복해라.'

나는 다양한 방법으로 접합법을 시도했다.

이런 수업은 처음이었다. 아무런 이론도, 설명도 없다. 그저 감이 오는 걸 찾으란다.

자물쇠 하나를 두고 수천 개의 열쇠를 일일이 꽂아서 돌려보는 느낌이다.

그러다 보니 문득 촉이 오는 게 있긴 했다. 로이스트가 이야기했던, 묘하게 내 것을 빼앗기는 듯한 그 상실감 비슷한 것을 느꼈다.

'바로 그 감각이다. 익숙해져라.'

나는 이 감이 확실히 몸에 익을 때까지 접합법을 반복했다.

'자네는 생태계를 너무 완벽하게 만들려하고, 일일이 간섭하려 하고 있어. 생태계 두 개가 만나 융합되는 순간, 내 손을 떠난다고 생각해라. 그 융합 과정에 바뀌는 이질적이고 불편한 것들을 굳이 바꾸려 하지 마라. 인내를 가지고 관조해라.'

그렇게 시간을 들여 훈련하다 보니 10번 중의 8번 성공. 비로소 접합법을 익히는데 성공했다.

"믿을 수가 없군."

로이스트가 말했다.

"시련의 혜택을 받고 있다고는 하나, 자네의 재능은 확실히 특출난 점이 있다."

나는 숨을 헐떡이며 고개를 들었다.

"어떤 재능인데요?"

"이미 있는 무언가를 베끼고, 카피하는 재능."

……이게 칭찬이야 욕이야.

"특히 한번 놓친 감을 놓치려 하지 않고 물고 늘어지는 집념은 훌륭했다."

"가, 감사합니다."

"이리로 와라. 이제 마법을 전수해주지."

나는 로이스트의 앞으로 다가갔고, 그는 내 이마에 손을 올렸다. 그가 조용히 주문을 읊조리자 그의 발밑으로 독특한 형태의 마법진이 나타났다.

"그대의 전공 마법은 무슨 속성이지?"

"전공이랄 것까지는 없는데요. 불, 얼음, 바람, 대지. 4속성 모두를 사용하는 엘리멘탈 마스터입니다."

"호오, 특이 케이스군."

"그리고 한 가지 더 있다면……"

나는 그의 눈을 마주하며 대답했다.

"암흑 마법입니다."

"……."

갑자기 로이스트는 할 말을 잃은 듯 조용해졌다.

후드 너머로 보이는 까만 어둠, 그의 얼굴 표정을 읽을 수 없다는 게 처음으로 아쉬워졌다. 그는 내 이마에서 손을 뗐다.

"암흑 마법은 어떻게 손에 넣었나."

"3층 시련을 클리어하는 도중 자연스럽게 배우게 됐습니다."

"3층 시련…… 내게 3층 시련에 도전할 때는 암흑 마법 같은 건 없었지."

그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마탑의 시련은 세대가 지날수록 각 마탑주들의 의지가 반영되어 변형, 개선된다. 누가 심어놓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의도가 다분히 나쁘군."

"……네?"

로이스트가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이건 선배로서 하는 충고다. 암흑마법은 봉인하는 것을 권한다."

갑자기 이건 또 무슨 소리야?

"그 말씀은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암흑 마법은 이제 제게는 없어서는 안 될 주력기술입니다. 덕분에 수 많은 위기를 넘기기도 했고요."

로이스트는 비틀거리며 걷다가 반대쪽 도시를 응시했다. 그러곤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내 전공도 암흑이다."

그의 목소리는 한없이 공허했다.

"암흑 마법을 쓸지 말지는 자네가 판단할 문제지. 하지만 조심하는 게 좋다."

로이스트는 어둠에 잠긴 마을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이 도시의 사람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네? 아, 뭔가 좀 이상하긴 하더라고요."

처음엔 그냥 재앙에 패배하고 절망에 빠져 살 의욕이 떨어진 그런 사람들처럼 보였다.

그러다 내가 마나를 일으키는 모습을 보자, 도시 전체의 사람들이 미친 듯이 달려 들었다. 내가 공격용으로 사용한 마법을 핥아 먹기도 했다.

자기 몸에서 계속 피가 흐르는데도.

"저는 이쪽 세계는 처음이니까 뭐, 그냥 여기 사는 사람들은 원래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죠."

"흐흐, 그럴 리가. 저들도 원래는 활기 넘치고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어쩌다 저렇게…… 설마 재앙에 당한 겁니까?"

"맞다. 재앙에 당했지. 저들은 이미 인간이 아니다."

어깨가 흠칫 떨렸다.

"인간이 아니란 말씀은……"

"언데드와 몬스터, 그 사이에 있는 무언가라고 하는 게 좋겠군."

"……세상에. 대체 무슨 재앙에 당한 겁니까?"

"재앙 로이스트."

그가 덤덤하게 말했다.

"바로 내가 저들을 저렇게 만들었다."

"……!"

로이스트는 차분한 어조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안코르 드 안티르스' 행성은 대재앙의 공격을 받아 위기에 빠졌다고 한다.

인류는 연전연패했다. 이름 높은 왕국들이 눈 깜짝할 사이에 함락당하고, 세계는 믿기 힘들 만큼 빠르게 도미노처럼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그래서 로이스트는 마탑이 있는 이도시만큼은 지키기로 결단했다. 로이스트와 관리자들은 힘을 합쳐 도시를 보호하는 거대한 장벽을 쌓았고, 그들만이 유일하게 이 북부 지역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하지만 잠시 유예시간을 벌었을 뿐, 결국은 모두 죽음에 이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로이스트는 두 번째 결단을 내렸다.

현재 도시에 있는 마나를 느끼지 못하는 자들, 즉 비각성자들을 각성자로 만드는 마법을 개발하기로 한 것이다.

이 마법은 이론상 오로지 암흑 마법만이 가능했다.

암흑 마법은 인간이 아닌, 암흑시대에 존재했던 고대 종족이 사용한 힘. 문헌에 따르면 고대 종족은 전부 마법사였다고 전해진다.

로이스트는 인간의 몸에 암흑 마력을 주입시켜 신체를 '고대 종족화'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실험은 성공적이었다.

평범한 인간들이 인공적으로 각성했다. 그들은 마나를 느낄 수 있게 됐고 몬스터와 싸울 수 있는 전력이 됐다. 로이스트는 도시의 인구 전체를 마법사로 만들어서 몬스터들에게 크게 한 방 먹일 생각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꽤 지난 뒤, 시술에 심각한 부작용이 발견됐다.

검은 마력에 심취한 사람들은 서서히 정신이 붕괴했고 신체가 변이했다. 마나를 느끼지 못하면서도 병적인 마나 고갈을 느꼈다. 이성이 완전히 붕괴된 그들은 어느새 몬스터와 다름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이 끔찍한 재앙은 바이러스가 되어 전염병처럼 세계로 퍼져나갔고, 그나마 몬스터 전선을 상대로 잘 버티고 있던 남대륙까지 바이러스에 직격탄을 맞아 몬스터들에게 무너지는 계기가 되었다.

그렇다. 이 세계를 멸망시킨 건.

마탑주 로이스트 본인이었다.

'그렇다는 말은……'

로이스트는 여기서 11년간 인류를 지키고 있는 게 아니었다. 그저 실패한 자기 실험체를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조금은 안쓰럽기도 하다.

본인 스스로를 재앙이라고 칭할 정도로 그 괴로움과 죄책감이 대단했을 것이다.

"암흑 마법을 계속 사용하는 건 자네의 판단이겠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명심해라. 어떤 종류의 암흑 마법이든 틀림없이 부작용과 리스크가 존재하고, 그것을 완벽하게 파악하기 전에는 사용을 경계하도록."

"명심하겠습니다."

로이스트가 나를 바라보았다.

"엘리멘탈 마스터라고 했으니, 자네에겐 화염계 마법을 부여하도록 하지."

그가 다시 내 이마에 손을 올렸다.

그의 아래에 있던 마법진이 빛을 발했다.

우우우우우우웅!

형언할 수 없는 방대한 양의 지식과 정보들이 머릿속으로 밀려 들어온다. 처음 마탑주가 됐을 때처럼 막 고통스러운 건 아니었지만 기분이 이상한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정보 이전이 끝나고, 로이 스트는 내 이마에서 손을 뗐다. 나는 비틀거리며 벽에 기댔다.

"자네는 새로운 경지에 다다랐네. 이제 이론상으로는 6공정 화염계 마법 '플레임 타우로스'를 사용할 수 있을 거야. 남은 건 모두 자네 하기에 따라 달렸지."

"……오오."

내가 안톤의 목걸이로 물의 장막을 쓸 수 있는 것처럼, 마법을 직접 머릿속에 때려 박아준 것 같았다.

"그, 그런데…… 이렇게 해주실 거면 굳이 그런 교육을 할 필요가 없지 않나요?"

"감을 잡는 건 훈련이 필요하지. 머릿속의 지식으로는 제공하지 못하는 것들이다."

"아! 그렇군요."

내가 전수해 주기로 한 6공정 화염계 외에도, 몇 가지 특이한 마법이론도 머릿속에 들어 있었다. 아직은 이게 뭔지 잘 모르겠다.

아무튼 마탑주의 시련을 클리어했고 새로운 마법도 전수받았다. 이제 이 세계에서 내 모든 용무가 끝이 났다.

"응?"

내 몸이 흐릿하게 변했다. 안톤의 일기에서 본 대로, 서서히 이 세계에서 사라지려 하는 것이다.

"이제 가는군."

로이스트가 나를 바라보았다.

그는 가슴을 부여잡고 있었다. 뭔가 불편해 보이는데.

"내가 무엇보다 해주고 싶은 말은…… 마탑주라고 해서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할 필요는 없다는 거다. 그런 걸 자만이라고 하지. 분에 넘치는 자만을 부렸다간 자네의 세계에도 나와 같은 사태가 일어날지도 모르네."

"예."

"……하지만 뭐."

"……?"

갑자기 섬찟한 느낌이 목덜미를 타고 흘렀다.

"꼭 하겠다면 어쩔 수 없지."

후드 안의 암흑 속에서, 광기 어린 붉은 눈구덩이가 번뜩인다.

그가 손가락을 튕긴다. 내 머릿속에 스위치가 켜지는 느낌이 들며 암흑 마법들이 주르륵 펼쳐진다.

"당신……!"

그중에서는 이 행성을 멸망시킨 바로 '그 마법'도 있다.

로이스트가 들썩거리며 웃는다. 내 몸은 점점 더 흐려지면서 세상에서 사라지려 하고 있다. 그때 그의 후드가 뒤로 젖혀진다.

후드 안의 얼굴은, 눈도 코도 입도 없는 다져진 고깃덩이다. 입에 붙어 있는 마법진에서 말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내가 사라지더라도, 내 연구는 영원하다."

목소리가 차갑다. 억양도 빨라졌다.

완전히 다른 사람 같다.

"그래, 사실 3층 시련에 암흑 마법을 박아놓은 건 나야. 자네가 계속 내 광기를 이어갔으면 좋겠어. 자네라면 세상의 모든 인간들을 각성자로 만들 수 있겠지. 아니, 정확히는 각성자를 뛰어넘어선 고대 종족, 타이탄으로."

"……!"

"나는 자네를 도우려는 것뿐이야. 잘 생각하게."

그가 손가락을 흔들었다. 어느새 살이 사라지고 해골처럼 뼈만 남아 있었다.

"인류가 타이탄이 되는 것이 아니면 재앙을 막을 방법이 없어. 자네가 그런 생각이 들었을 때, 내가 전수해 준 그 마법을 쓰게."

로이스트의 살덩이에 구멍이 생기며 옆으로 길게 찢어졌다.

마치 사람이 히죽 웃는 것 같다.

"자네라면 내 연구를 완성할 수 있을 게야."

"당신! 왜 이런 짓을……!"

하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 로이스트의 마지막 말과 함께, 시야가 점멸했다.

[첫 번째 시련을 클리어했습니다.]

[다음 세계로 이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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