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만 마탑주 190화
프로스트의 김유신 죽이기가 시작됐다.
[알케미아 - 전(前')협회장 홍율과의 뇌물 의혹. "제대로 된 검증 없이 협회 연구 재단에 들어가."]
[알케미아 대표 김유신, 검찰 불구속 수사. 출국 금지 조치.]
[대마도사 김유신, 출국금지 조치에도 야간에 불법 도주.]
[러시아에서 발견된 김유신, 집행부의 소환 요구 불응 및 선제 공격. 부상자 4명.]
[몰락하는 대마도사 김유신, 국민영웅에서 역적으로.]
프로스트가 소스를 흘렸고, 기자들은 유신을 저격하는 기사들을 홍수처럼 쏟아냈다.
알케미아와 정서진이 해당 의견을 조목조목 설명하는 반박 성명을 냈지만, 주요 포털 사이트 기사에 올라오지도 못하고 묻혔다.
-그럼 그렇지. 비전투계 거지 근성 어디 안 가고요.
-미궁던전 이후 가장 응원하는 헌터였는데 실망스럽네요.
-죄 없는 집행부 애들은 왜 공격해? 3급 헌터면 다냐?
-힘내세요 집행부! 지지합니다 프로스트!
-소름 돋지 않음? 대중을 위해 마법을 공개했다느니 아프리카를 해방했다느니 온갖 착한 척은 다 하더니 실체는…….
-내가 저거 쓰레기라고 말했지? 커버치던 애들 다 버로우 탐?
-'그분들'만의 영웅. 비전투계 애들 어쩌냐?
팩트 없는 기사.
논리 없는 비방.
대한민국 굴지의 대기업을 보유한 프로스트가 여론을 조작하는 건 너무나도 쉬운 일이었다. 이제는 검찰이 직접 나서서 유신의 문제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몇몇 언론에서는 아무런 사실 관계없이 김유신에 대한 비난이 도를 지나쳤다는 기사들을 내보냈지만 네티즌들은 '김유신한테 돈 얼마 먹었냐.', '기레기들 또 시작됐네.' 하면서 오히려 비난의 수위를 높였다.
한편, 유신의 대리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정서진은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어제도 기자회견, 오늘도 기자회견이다.
그는 수척해진 얼굴로 기자들 앞에 섰다. 카메라 플래시가 연신 터져나왔다.
"한 말씀만 해주십시오!"
"김유신이 전 협회장에게 뇌물을 바쳤다는 게 사실입니까?"
"포션 능력자는 대체 누구죠?"
"김유신이 포션 능력자를 납치해서 착취하고 있다는 루머가 있다는데 정말 입니까?"
"김유신이 후배 헌터를 구타했다는 의혹이……"
답할 가치조차 없는 쓰레기 같은 질문들뿐이었다.
아무리 목이 쉬어라 논란에 대해 해명해도, 해명에 대한 부분은 몇마디도 기사에 올라오지 않았다.
기자들은 말꼬리를 잡고, 상상력을 덧대어, 하지도 않은 말을 한 것처럼 꾸며 자극적인 제목으로 내보냈다. 언론에서는 어떻게 해서든 김유신을 국민 역적으로 만들 기세였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모든 게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서진은 회견을 그만두기로 했다.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잠시만! 잠시만요!"
기자들이 막무가내로 밀고 들어와 마이크를 들이댔다.
"알케미아가 실은 마인들의 하수인이고, 마인들이 만들던 '사람을 몬스터로 만드는 포션'을 전 세계에 납품하려는 계획을 꾸미고 있다는 의혹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 말을 듣는 순간, 이미 한계 이상으로 스트레스가 쌓여 있던 정서진은 이성을 잃고 말았다. 그가 카메라를 후려치며 기자에게 다가갔다.
니가 뭔데.
니들이 뭔데.
그 사람의 노력을, 그 사람의 분투를, 아무것도 모르는 너희가 그렇게까지 폄하할 수가 있어?
"지, 진정하세요!"
"너무 흥분하셨습니다!"
정서진을 보호하기 위한 경호원들이 정서진을 뜯어말렸다.
하지만 철인 능력을 가진 정서진은 경비원 몇 명을 질질 매달은 채로 다가왔다. 겁에 질린 기자는 뒷걸음질 치다가 그대로 부리나케 도망쳤다.
"이 친구 안 되겠구먼!"
"기사를 폭행하려 하다니!"
"제 발 저린 게지!"
다시 한번 카메라 플래시가 미친 듯이 쏟아졌다.
* * *
"후우우우우."
차 안에서, 정서진은 이마를 부여잡으며 후회했다.
그렇게 감정을 죽이는 것을 연습했는데, 유신이 마인 어쩌고 하는 소리를 듣는 순간 머리가 끝까지 피가 몰려서 욱하고 말했다.
후회하고 후회했지만 이미 늦었다.
그는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포털 사이트를 검색했다.
[알케미아 부회장 정서진, 기자 폭행.]
[마인 접촉설에 아무런 부정도 못해. 막무가내 기자 구타.]
폭행은 무슨, 카메라 친 것 가지고 거의 기자가 반죽음 될 때까지 맞은 것처럼 기사가 나왔다. 그 한 대도 맞지 않은 기자는 현재 병원에 입원중이었다.
SNS에서는 환자복을 입고 얼굴에면 반창고를 덕지덕지 붙인 기자의 셀카가 올라와 있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많은 분들이 응원의 메시지들을 남겨주셨습니다. 동시에 걱정도 해주셨는데요, 고작 이런 일로 제 의지는 꺾이지 않습니다! 앞으로도 진실된 기사들로 찾아 뵙겠습니다!]
-대마도사도 다짜고짜 집행부 공격하더니 하는 짓이 똑같네.
-그 대표에 그 부하.
-힘내세요 기자님!
-아직도 이런 참기자가 있구나. 대한민국은 아직 살 만합니다.
-기자님, 대한민국의 적폐를 모조리 뿌리 뽑아주세요! 그 사명감을 존경합니다.
-알케미아가 몬스터로 변하는 포션을 국민들에게 먹이려 한다는데, 정부는 뭘 하는 거야? 알케미아 돈받아먹었냐?
정서진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을 구한 유신 같은 사람이 역적이 되고, 저런 쓰레기 기자가 진정한 기자인 것처럼 영웅 취급을 받고 있다니.
갑자기 이 사회에 신물이 났다.
"부사장님. 알케미아에 도착했습니다."
'정신 차리자.'
정서진은 차에서 내려 알케미아 본사로 들어갔다.
"……아."
그는 걸음을 멈췄다.
알케미아 직원들이 모두 밖에 나와 있었다.
접근금지 테이핑이 곳곳에 처져 있었고, 모자를 쓴 남자들이 사무실 자료를 박스에 담아 옮기고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정서진이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려 하자 경비들이 가로막았다.
"알케미아 의혹 관련 압수 수색 지시가 떨어졌습니다."
정서진이 이빨을 빠드득 갈았다.
프로스트는 기다렸다는 듯 모든 걸 행동으로 착착 옮기고 있었다.
모든 게 잘 짜인 각본대로 흘러가고 있다. 알면서도 당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분했다.
그때 정서진의 귓가에 프로스트의 목소리가 울렸다.
-네가 멍청한 건 둘째치고, 네 존재가 김유신에게도 마이너스란 거 알아?
-김유신은 널 품은 대가로 유닉스그룹이라는 최대의 적이 생기는 거야.
-김유신이 대체 무슨 죄를 지었길래? 친구 잘못 사귄 죄?
"부, 부사장님!"
근처에 있던 여직원이 기겁하며 소리쳤다.
"피, 피나요!"
"닦을 것 좀 가져와!"
정서진은 입술을 꾹 깨물고 있었다. 철철 흘러나온 핏물이 그의 셔츠를 새빨갛게 적셨다.
* * *
끊임없이 몰려드는 몬스터들을 내려다보며, 나는 생각을 정리했다.
'세 개의 산을 무너뜨려라.'
어중간한 광역 마법으로 타격해 봐야 몬스터들의 산은 무너져 내리는 게 아니라 윗부분이 조금 떨어져 나갈 뿐이다.
압도적인 한 방으로 쾅! 하고 산을 통째로 무너뜨릴 필요가 있다.
내가 보유한 가장 강력한 화력의 마법은 5공정의 '볼케이노 그라운드'. 작은 섬 정도는 우습게 가라앉힐 화력을 가졌지만 범위가 아쉽다.
산 하나는 확실히 무너뜨릴 수 있어도 나머지 두 개의 산은 대책이 없다.
그렇다고 한번 쓰면 기절해 버리는 5공정 마법을 세 번 연속 사용할수 있을까? 그건 절대 불가능하다.
'고민되네.'
그렇게 내가 고민하는 사이에도 몬스터들의 산은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금방이라도 괴물들이 장벽 위로 올라와 버릴 것만 같은 기세다.
"시련 도중 몬스터가 하나라도 장벽에 올라오면 실패다."
그런 말은 처음에 없었잖아요!
그렇게 몇 분 정도를 더 고민한 끝에, 나는 결정을 내리고 앞으로 나왔다.
"어떤 마법을 쓸지 정했나?"
"네."
그동안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마법이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케르륵!
-샤아아아아!
일단 몬스터를 올라오지 못하게 막는 게 급선무다. 나는 두 팔을 펼쳤다.
퉁! 퉁! 퉁! 퉁!
소매 안에서 두 개씩의 골렘볼이, 좌우의 몬스터 산을 향해 날아간다.
먼 거리를 비행하던 그것들은 정확히 몬스터들이 올라오려는 장벽 위에 부착된다.
'발동.'
부착된 골렘볼들을 중심으로 성벽이 기이하게 일그러진다. 두 팔이 튀어나오고 머리가 올라온다.
하체는 장벽에 고정되고 상체만 일어난 형태의 대형 골렘이 그 웅장한 모습을 드러낸다.
-캐슬 골렘 온라인. 컨트롤을 시작합니다.
에아가 직접 골렘들을 조종해서 다가오는 몬스터들을 거대한 팔로 쳐내고 무너뜨린다. 이걸로 당분간은 안심이다.
"재미있군!"
로이스트가 말했다.
"그 작은 공 안에 골렘 마법이 응축되어 있는 건가?"
"네! 골렘볼이라고 합니다."
"몇 세대쯤 지나니 신기한 기술들이 나오는구나."
골렘볼은 6대인 로이스트의 시절에는 없는 기술인 모양이다. 게다가 저렇게 골렘볼을 날리자마자 알아서 완성되는 스타일은 은솔은 관리자로 보유한 나만이 가능하다.
'그럼 이제 내 차례.'
눈을 감고 두 팔을 들었다.
몬스터들의 산 아래로 메인 마법진을 깔고, 내 주위에 네 개의 서브마법진을 깔았다. 서브 마법진에는 다시 4개의 계기판 보조 마법진들을 깔아서 리스크를 분산시켰다.
지켜보던 로이스트가 놀란 반응을 보였다.
"자네는 이제 5공정 마법사일 텐데, 무리해서 5공정을 쓸 생각인가?"
"예."
물론 자신 있어서 하는 일이다. 만만의 준비를 한 다음, 메인 마법진의 폭주 단계로 넘어간다. 흔들림이 심해지고 눈앞이 팽팽 돈다.
'죽어도 버틴다.'
그동안 놀고 있던 게 아니다. 폭주내성 특성은 Lv.4까지 끌어올렸고, 5공정들의 수식도 크게 개선했다.
이제는 버틸 수 있다. 아마 최초로 시도해 보는 5공정 대지계 마법.
<크레바스>
쿠르르르르르릉!
거대한 진동이 울린다. 지면에서부터, 우리가 딛고 있는 장벽의 꼭대기까지 진동이 올라와 다리를 타고 뇌에 전달된다.
-케르르르륵!
-캬아악!
산처럼 쌓인 몬스터들이 진동을 이기지 못하고 와르르 떨어져 내린다.
비탈길에서 쏟아지는 무수한 모래알들을 보는 것 같다.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니다.
하나둘씩 떨어져 나가던 몬스터들의 산이 갑자기 움푹 내려앉는다.
아니, 움푹 정도가 아니라 아래로 그냥 쑥 꺼져 버린다.
-케에에에에에엑!
몬스터들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멀어진다. 무수히 높은 몬스터들의 산은 줄어들어 못해 그대로 우리의 시야 앞에서 사라져 버린다.
"하하하하! "
지켜보던 로이스트가 소리 내어 웃었다.
"신세대의 마법사는 무모함이 미덕인가!"
5공정 대지계, 크레바스는 강제 지각변동을 일으키는 대마법이다.
장벽 앞을 기준으로, 지면과 지면의 사이를 벌려서 그 구덩이로 몬스터들을 떨어뜨렸다. 시간이 지나면 균열이 다시 아물어 들기에, 떨어진 몬스터들은 살아남지 못한다.
지각변동을 일으키는 '크레바스'의 범위는 다른 5공정 중에 가장 방대하다.
내 앞에 보이는 몬스터들의 산뿐만 아니라, 좌우에 있는 다른 두 개의 산까지 동시에 무너져 내렸다.
"후우우."
나는 마법을 멈췄다. 정신이 오락가락하고, 온몸에서 땀이 줄줄 쏟아진다. 그래도.
'나 아직 깨어 있는 거 맞지?'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참을 수 없다.
성공이다. 드디어 기절 안 하고 버텼다! 사용하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이라던 그 흉악한 5공정을 확실히 정복해 냈다.
"어때요?"
장벽 아래를 굽어보던 로이스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하군. 합격이다."
[폭주 내성 특성이 Lv.5에 도달했습니다.]
[마력이 10 올랐습니다.]
[집중이 5 올랐습니다.]
[인내가 5 올랐습니다.]
…….
나는 그제야 자리에 무너지듯 앉아서 블루 엘릭서를 꺼냈다. 그러곤 바로 뚜껑을 따고 벌컥벌컥 들이켰다.
"우리 시대엔 5공정 원소계를 쓰는 마법사들은 거의 남아 있지 않지. 하지만 자네 시대는 다른가 보군."
"저희도 똑같아요. 대체 가능한 새로운 마법들이 많이 나왔으니 5공정 원소계는 거의 버려지는 신세죠. 그래도 가끔은 무식하게 클래식한 것도 좋잖아요."
"동감이다."
나는 블루 엘릭서를 세 병째 비웠다. 일단 기절 안 하는 건 성공하긴 했는데, 사람이 그냥 무기력해진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고, 마나에로우 한 발만 날려도 구토감이 몰아칠 것 같다.
-탑주.
'왜?'
-이래서야 기절하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는 게 아닐까요?
'흠흠.'
가끔 에아는 정곡을 찌르는 구석이 있다니까.
"약속은 약속이지."
로이스트가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직접 6공정 마법을 전수해주겠다."
드디어 다음 레벨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