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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마탑주-180화 (180/337)

나 혼자만 마탑주 180화

홍율을 위시한 공략조가 대전시 현장으로 이동했다.

현장의 중앙에는 몸길이가 30m가 넘는 거인이 몸을 웅크리고 있었고, 대한민국의 내로라 하는 헌터들이 화력을 퍼부어대고 있었다.

하지만 재앙도 그냥 당하고만 있지 않았다. 웅크리고 있던 괴수가 한쪽팔을 확 뻗었다.

"커헉!"

한쪽에 있던 헌터들이 튕겨 나갔고 임모탈이 순간적으로 열린 포위망으로 도망쳤다.

"이런 미친! 어떤 새끼들이 딜사이클을 넘긴 거야!"

수비조 지휘를 맡고 있던 임남진이 다급히 달려가는 그때, 하늘에서 붉은 섬광 번뜩이며 홍율이 나타났다.

임모탈의 안면과, 공중에서 거꾸로 나타난 홍율의 얼굴이 한 순간 마주했다.

"안뇽."

까드드드드드드득!

30m가 넘는 거체가 도로에 처박히며 엎어졌다. 헌터들의 입이 쩍 벌어졌다.

이건 무슨 주먹을 뻗는 동작도 보이지 않았다.

이 많은 헌터들이 화력을 퍼부으며 임모탈을 붙잡는 광경이 우스워질 지경이었다.

다급히 달려가던 임남진과 집행부요원들이 안도의 웃음을 흘렸다.

"오셨습니까."

"오냐."

뒤이어 프로스트와 유닉스의 정예헌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프로스트가 먼저 묵례했고 임남진이 인사를 받았다.

"협회장님. 결국 마지막 공략조도 유닉스를 보내기로 하신 겁니까?"

임남진이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어, 그렇게 됐다. 네가 밖에 일봐줘."

"저도 동행하겠습니다. 던전 안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아, 됐어. 밖에도 믿을 만한 새끼가 한 명 정도는 있어야 할 거 아냐."

홍율이 자신보다 훨씬 키가 큰 임남진의 어깨를 툭툭 치며 웃었다.

"밖은 맡긴다. 찌질아."

"……예."

다들 임모탈이 또 언제 일어날지 몰라 바짝 긴장하는 가운데, 홍율은 태연하게 쓰러진 임모탈 위로 올라갔다. 그 가슴에는 던전 게이트가 열려 있었다.

"공략조! 다들 따라와라."

"예!"

홍율은 망설임 없이 게이트로 몸을 던졌다. 뒤이어 프로스트와 유닉스의 헌터들도 안으로 들어갔다.

"정말 괜찮을까요?"

임남진에게 다가온 집행부 요원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헌터들은 누구나 던전에 함께 들어가는 사람들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한다. 하지만.

"귀관은 프로스트와 공략조들이 다 덤벼도 협회장님을 어쩔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그, 그런 건 아니지만요."

대한민국의 유일한 공인 1급.

모든 헌터들의 머릿속에 박혀 있는 그녀의 절대적인 힘.

사실 그녀와 같이 싸워본 사람들은 그녀를 같은 인간이라 생각하지도 않을 정도였다.

"언제나 그랬듯 믿고 기다린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정도뿐이야."

* * *

임모탈의 게이트를 넘어 홍율은 재앙의 던전 안으로 들어왔다.

주위에 특별한 건 없었다. 던전에서 흔히 보이는 벌판이었다.

'응?'

그때, 그녀의 눈에 의식을 잃은 한 사람이 보였다.

"이봐, 괜찮아?"

그녀가 다가가서 살펴보았다. 정신은 잃었지만 다행히 숨은 붙어 있었다.

옷차림과 공인 배지를 보니 블랙가드 소속의 공인 4급 헌터였다.

"협회장님. 무슨 일입니까?"

뒤이어 게이트를 타고 온 프로스트와 유닉스 길드원들이 다가왔다. 그녀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야, 힐러!"

눈을 깜빡이던 길드원들 중 한 명이 번쩍 손을 들었다.

"네, 넷! 공인 4급 안연희!"

"이 새끼 치료해 봐. 빨리!"

"넵!"

유닉스의 힐러가 쓰러진 블랙가드의 길드원에게 회복 능력을 사용했다. 여분의 물약도 꺼내서 먹였다.

"끅……."

잠시 후 남자가 정신을 차렸다. 그는 일어나자마자 두통을 호소하며 인상을 찡그렸다.

"아, 협회장님……!"

"그래, 나야.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지?"

블랙가드의 길드원은 기억을 더듬으며 이야기했다.

그들은 유닉스의 선봉 길드가 들어간 후, 구원 요청을 받아 던전에 들어왔다. 단서 타임 이후 수정동굴에 있는 보스존을 발견하는 것까지는 수월했다.

하지만 문제는 보스였다.

"크리스탈 드래곤. 8랭크 이상의 보스 몬스터였습니다."

격이 다른 강함을 가진 보스 몬스터였다고, 그는 설명했다.

파티원들이 하나둘씩 쓰러져 갔고, 덩달아 부상을 당한 그 또한 길드마스터의 명령으로 지원을 요청하러 출구로 뛰어갔다.

그러나 결국 몬스터들의 공격을 받아 상처가 덧나서 게이트 앞에서 정신을 잃고 말았다는 것이다.

"크리스탈 드래곤이라면, 용족형 몬스터야?"

"예! 틀림없습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어중간한 공략조 파티로는 무리다. 3급 여러 명이나 2급이 포함된 파티여야 클리어할수 있었다.

"보스존의 위치는?"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위치를 전해 들은 홍율은 프로스트를 보며 말했다.

"먼저 간다. 아직 생존자가 있을지도 몰라."

"잠시만요 협회장님! 이럴 때일수록 신중하게……!"

그녀는 이미 붉은 스파크를 튀기며 저 멀리 날아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멍하니 보던 프로스트는 작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우리도 가자."

* * *

홍율은 블랙가드 길드원이 이야기 했던 바로 그 수정동굴에 도착했다.

주위에 몬스터들의 시신이 널려 있는 걸 보니 한참 전에 이곳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는 사실을 알수 있었다.

동굴은 벽, 천장, 바닥 모두 투명하고 반짝거리는 수정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확실히 보스 몬스터가 있을 만한 장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몬스터들의 시체를 지나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동굴의 끝자락 부근에 도착했을 때.

"……뭐야?"

거대한 용의 시체를 발견했다. 그녀는 다리를 굽히고 시체를 살폈다.

가슴 한쪽이 뜯겨 나간 듯했고, 그안은 텅 비어 있었다. 마정석, 혹은 뭔가를 몬스터의 체내에서 가져간 흔적이다.

이게 바로 블랙가드 길드원이 이야기한 그 크리스탈 드래곤이 확실해보였다.

전멸 위기라고 했었는데 이건 누가 죽였을까? 그리고 던전의 보스가 죽었는데 왜 던전이 클리어되지 않은걸까?

"나, 참."

그리고 여러 상황을 조합해 보던 그녀가 싱거운 웃음을 흘리며 몸을 일으켰다.

"뭔가 했더니, 고작 이런 거였어?"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저벅.

동굴의 곳곳에서 헌터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제1위 길드 유닉스 3파티.

제4위 길드 블랙가드 2파티.

제8위 길드 NIX 2파티.

50명이 넘는 인원의 헌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포위당한 격이었지만, 홍율은 여유 있는 태도로 콧방귀를 뀌었다.

"은폐장 뒤에 숨으면 모를 줄 알아? 다 나와."

그녀가 말하고 잠시 후, 허공이 스르륵 벗겨지며 한 무리의 궁수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들의 뒤에는 포박당해 눈과 입이 가려진 사람들이 보였다.

아마도 1차 공략 때 유닉스와 함께 갔던 중소길드의 길드원들인 것 같았다.

홍율은 혀를 쯧 찼다.

"협회장님."

그리고 그녀가 들어온 동굴의 입구로 프로스트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바닥과 벽에 차가운 서리가 꼈다.

"당신은 너무 엇나갔습니다."

"재밌네. 전부 네가 꾸민 서프라이즈야?"

"예."

프로스트가 빙그레 웃으며 두 팔을 벌렸다.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당신의 독선에 질려 있습니다."

"에휴, 븅신 새끼들."

그녀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레전드 선배님이시니 웬만하면 살려 두고 싶었지만…… 당신은 지나치게 선을 넘었어요. 모두가 하나로 똘똘 뭉쳐야 하는 위기의 시대에, 당신같이 힘만 믿고 홀로 폭주하는 독선가는 이제 필요 없어."

유닉스, 블랙가드, NIX의 길드원들이 일제히 헌팅 디바이스를 겨누며 전투자세를 취했다.

전원이 공인 헌터다. 2급인 프로스트와 길드 마스터급의 3급들은 물론, 4급이나 5급들도 대인전에 특화된 인물들이다.

"……."

그때 홍율이 인상을 굳혔다. 자욱한 가스가 동굴 안으로 들어왔다.

홍율이 질색하는, 메라이스의 포자로 만들어진 화학 가스가 동굴에 퍼지고 있었다.

중독효과와 강한 마비효과, 무엇보다 마나 민감도를 극도로 떨어뜨려 홍율 같은 타입에게는 치명적인 디버프. 물론 여기 있는 길드원들은 모두 항생제를 맞고 와서 멀쩡했다.

"이건 또 어떻게 알고. 준비 많이했네?"

"이 정도는 당연합니다. 지금부터 우리는 헌터로서, 당신을 사냥할 겁니다."

프로스트가 입꼬리를 올렸다. 이 동굴의 주인공은, 크리스탈 드래곤이 아닌 한국의 협회장 홍율이었다.

"재밌다니까."

그녀가 소리 내어 웃었다.

"분위기 파악 못하고 득의양양한 표정 쳐 짓고 있네? 병신들이."

"……."

"이런 개 짓거리가 니들이 처음이었을 것 같아? 전 1위였던 하운드 길드 기억나?"

그녀가 혓바닥으로 입술을 적셨다.

"어느 날 갑자기 종적을 감췄잖아. 그거 나한테 덤비다 그렇게 된 거야. 이클립스, 아이젠, 메트리아. 걔들도 마찬가지."

뚜둑. 뚝.

그녀가 주먹 관절을 풀었다.

"분위기 파악 좀 해라. 사냥당하는 건 너희 쪽이야."

"전원 전투 준비!"

헌터들이 살기를 뿜어대며 자세를 낮추었다. 사방에서 헌팅 디바이스와 흉흉한 화력 기기들이 홍율을 향해 겨누어졌다.

"다 뒈졌어."

붉은 마력을 몸에 두른 홍율이 눈을 부릅뜨고 뛰어들었다. 화력 기기들이 불을 뿜으며 전투는 시작됐다.

* * *

자리에 털썩 엉덩방아를 찧은 헌터가 입을 벌렸다.

"괴, 괴물!"

촤아악!

그런 말을 지껄이던 헌터의 목이 쇄도해 온 날카로운 붉은 선에 날아갔다.

여기 있는 모두가 똑같았다. 하나같이 공포에 질린 표정이었다.

인류의 최정점이라는 경지에 다다른 공인 1급 헌터. 그 힘은 모두가 생각했던 것 이상이었다.

"꺄하하하하하!"

붉은 마력을 옷처럼 두른 홍율이 미쳐 날뛰었다. 그녀의 손이 허공을 긋는 족족 헌터들의 몸이 두부처럼 쩍쩍 갈라졌다.

홍율의 고유 능력 '적광기'.

적을 찢고 가르는데 특화된 마력계 능력.

그녀가 한 번 팔을 휘두를 때마다 천지가 다섯 갈래로 찢어지고, 발을 내리그을 때마다 헌터들의 몸이 슈트째 떨어져 나간다.

적광기를 몸에 두르는 것으로 총탄, 포탄, 초 능력, 심지어는 저주계 능력까지 갈라져 사라진다.

'끔찍한 괴물 같으니!'

블랙가드의 길드 마스터, 공인 3급 박성진은 이를 악물었다.

처음 프로스트의 계획을 들었을 때는 완벽했다고 생각했다.

홍율은 아프리카의 9랭크 던전에서 입은 부상이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 이번 재앙 던전도 여러번 돌면서 체력이 극도로 떨어져 있는 상황이다.

거기에 홍율이 극도로 싫어하는 3중의 화학 가스까지 살포했다. 두시간짜리 항생제를 맞은 그들도 너무 독해서 비틀거릴 정도다.

이렇게까지 컨디션을 망가뜨렸으면 아무리 공인 1급이라도 인간인 이상 틈을 보여야 했다.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50명의 레이드 파티를 상대로도 그녀는 압도하고 있었다.

'……9랭크 몬스터도 이 정도는 아니었어! 저게 정녕 사람인가?'

"대표님! 회복 끝났습니다!"

힐러의 회복 능력을 받은 박성진은 쉄호흡을 하며 침착하게 전황을 살폈다.

그리고 뒤늦게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전장은 완전한 난전. 온통 폭발 구름과 가스가 퍼져 있는 가운데, 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가장 활약해야 할 공인 2급 프로스트와, 유닉스의 주요 길드원들이.

'……설마.'

이 상황에 그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건 무엇을 뜻하는가. 박성진이 다급히 목소리를 높였다.

"잠깐! 홍율 협회장! 할 말이 있소!"

그가 소리치기 무섭게 폭발 구름을 일직선으로 가르며 적색의 검기가 박성진의 방패 디바이스에 부딪쳐왔다.

꾸우우 우우우우웅!

"크으!"

한 번 홍율의 공격을 막을 때마다 그의 자랑인 S급 방패형 유물, '블랙 아이기스'가 걸레짝이 되어가고 있었다.

자욱한 폭발연기 속에서 흉흉하게 빛나는 황금빛 눈동자가 박성진을 응시했다. 뒷골에 소름이 끼쳤다.

"잠깐! 잠깐만! 프로스트와 유닉스놈들이 사라졌소!"

홍율의 발걸음이 우뚝 멈췄다.

"우리 모두가 놈의 함정에 빠진 거요! 일단은 전투를 중지하고 함께 던전을 빠져나가야……!"

그때 홍율의 몸이 붉은 잔상을 그리며 박성진의 뒤로 돌아왔다. 그녀가 주먹을 당겼고 박성진은 대경실색하며 블랙 아이기스를 세웠다.

쩌어어어어어어엉!

동굴 전체가 들썩이는 굉음이 일었다. 박성진은 방패를 든 팔은 물론, 온몸이 경련하는 듯한 충격을 받고 피를 왈칵 토했다.

"그래서-"

방패 너머로, 소름 끼치는 황금빛 눈동자가 직시해 온다.

"니들이 날 죽이려 했다는 사실이 바뀌진 않잖아?"

"혀, 협회장!"

"아, 너무 걱정 마. 니들도 다 쳐죽이고 프로스트도 길동무로 보내줄게."

정말로 질 나쁜 악몽이라고, 박성진은 생각했다.

건드리지 말아야 할 사람을 건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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