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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마탑주-179화 (179/337)

나 혼자만 마탑주 179화

유신은 뒤를 돌아보았다.

아이를 끌어안고 있는 차도연, 막 정신을 차린 나대용, 그리고 김사랑과 조용희까지.

다들 슈트가 찢어지고 흙을 뒤집어쓰는 등 성한 곳이 없어 보인다.

유신은 이어마이크를 누르고 마탑채널로 들어왔다.

"다들 고생했어요."

4층 팀원들이 깜짝 놀라며 유신을 바라본다.

"에아에게 들었습니다. 정말 잘 해줬어요. 여러분을 훈련시킨 보람이 있네요."

모두가 입술을 깨물거나 고개를 숙였다. 차도연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럼 이제 집중할게요."

유신은 고개를 들어 임모탈을 바라보았다.

당분간 5공정 마법은 죽어도 쓰기 싫다. 속박계 기술은 안 통한다. 길고 오래갈 수 있는 화력이 필요했다.

'그럼 그거밖에 없지.'

유신은 준비를 마치고 입을 열었다.

"사미아!"

광채가 번쩍이더니, 허공에서 무수히 많은 건물 잔해더미들이 우르르르 쏟아져 내려왔다.

쿠쿠쿠쿠쿵!

몸을 일으키려 하던 임모탈은 건물몇 채 분량의 잔해와 철근 더 미에 부딪혀 다시 자리에 쓰러졌다. 그틈을 타서 유신은 마법을 시전했다.

마법사의 가장 기본인 1공정.

지금의 유신은 무리하면 한 번에 최대 100개까지의 2공정 마법을 시전할 수 있었다.

연사에 특화된 1공정 레피드 에로우의 경우야 두말하면 입 아프다.

<레피드 에로우>×500

창원 하늘을 무수히 많은 마법진이 뒤덮는다. 모두가 경악하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거 오랜만이네.'

용암굴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며 유신이 팔을 내리그었다.

하늘을 뒤덮은 모든 마법진에서 각기 다섯 발의 황금 화살을 일직선으로 쏟아붓는다.

콰콰콰콰콰콰콰콰!

황금빛 폭우가 투명 괴수를 두들긴다. 임모탈의 몸이 지면을 뚫고 깊은 곳까지 들어갔지만 레피드 에로우는 멈추지 않는다.

전과는 다르다. 과몰입이 아닌 일체화의 경지를 가진 유신에게 물량전은 간단한 일이다.

목적은 파괴가 아닌 상대를 지속적으로 무력화시키는 것.

그렇다면 레피드 에로우의 물량만큼 적합한 기술이 없다.

-이제 페이스를 조절할 차례입니다. 탑주.

'오케이.'

유신은 화력을 조금 줄였다가, 임모탈이 회복되고 다시 몸을 일으키려 할 때마다 다시 화력을 원상복구시켰다.

"……미쳤다."

근처에 있던 나대용은 눈을 빛내며 유신의 전투를 지켜보고 있었다.

욕심 많은 그는 벌써 다음 단계의 3서클 마법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유신은 5공정 마법사임에도 여전히 1공정의 마법을 쓴다. 마법은 위 단계의 마법이 아래 단계의 마법보다 무조건 우월하지 않다. 단지 쓰임새가 달라질 뿐.

유신은 그것을 몸소 보여주고 있었다.

"선배님!"

진보라의 목소리가 들리자 유신은 팔을 들었다.

하늘에서 최상급 블루 엘릭서가 날아와 손에 착잡혔다. 지체 없이 목구멍으로 직행해 마력을 회복시켰다.

그러기를 10분째.

유신은 10분 동안 이 미친 짓을 유지하고 있었다. 지켜보던 경력 많은 헌터들마저도 혀를 내둘렀다.

'이 인원이 그렇게 낑낑대면서 막아냈던 괴물을……'

'3급은 격이 다르군. 아니, 이 정도면 3급 평균을 넘어서는 화력이야.'

감탄하고 있는 것도 잠시, 유신이 시간을 벌어준 시간 동안 헌터들도 움직였다.

-여기는 U-7! 민간인 세 명을 구조했다!

-여기는 1-1. 몬스터가 많다. 지원을 요청한다!

다른 헌터들도 구조 작업이나 잡몹처치 등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

유신이 다음 블루 엘릭서를 들고 뚜껑을 따려는 그때였다.

-탑주. 임모탈의 몸에 균열을 확인했습니다.

'음? 파괴 불가능한 몬스터인데 균열?'

유신은 레피드 에로우의 기세를 줄이고 살펴보았다. 이제는 공격하지 않은 부분의 재앙의 몸에 서서히 금이 가고 있었다.

유신은 즉각 화력을 중지시켰다.

쩡!

마침내 재앙이 파괴되며, 그 안에서 안세현과 유하영이 이끄는 길드원들의 모습이 드러났다.

이 모습이 뜻하는 바는 하나.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경남 지역 재앙 완전 클리어입니다!"

협회 직원의 외침에 모두의 떠들썩한 환호성이 한차례 일었다. 유신은 마나를 갈무리하며 팔을 내렸다.

"김 대표님!"

그제야 4층 팀원들이 유신에게 우르르 몰려왔다.

'……이게 다 무슨 일이야?'

반면 공략조들은 다들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분명히 밀양의 시골에서 던전 게이트에 들어갔는데, 던전을 클리어하고 밖으로 나오니 도심지 한복판이었다.

수비조 헌터들은 며칠 밤낮을 전쟁이라도 치른 듯 멍한 얼굴로 자리에 주저앉아 있었다.

건물이나 차량의 유리창이란 유리창은 다 깨져 있고, 도로는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갈라짐 현상 투성이였으며, 삐걱거리는 신호등은 위태롭게 덜렁대고 있었다.

"공략조 여러분도 수고하셨습니다!"

협회 직원이 공략조를 향해 다가왔다.

"던전 공략은 어땠습니까?"

"그리 어렵지는 않았네요."

"유물은 회수하셨습니까?"

안세현이 고리 같은 아이템을 흔들어 보였다.

"C급 유물. 꽝에 가까웠습니다."

C급이라면 헌팅 디바이스로도 충분히 대체가 가능한 아이템이었다.

그런 사실 때문인지 유물을 놓친가람 쪽도 그다지 아쉬워 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그보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아, 그게……"

협회 직원은 상황을 설명했고 안세현은 입을 벌렸다. 그러다 깊게 한숨을 쉬었다.

"협회장님의 판단이 맞았군요. 공략조보다는 수비조에 더 전력이 편중되어야 했습니다. 속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던전 자체의 난이도는 공인 4급 파티 정도라면 누가 가든 클리어가 가능한 수준이었습니다."

"그, 그랬군요."

그때 안세현이 유신 쪽으로 다가왔다.

5위 길드 마스터의 등장에 4층 팀원들은 화들짝 놀라 인사했고, 힘이 떨어진 유신은 다른 헌터들처럼 자리에 퍼질러 앉은 채로 힘겹게 고개만 까닥했다.

"감사합니다. 김유신 헌터. 덕분에 많은 인명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안세현이 일부러 감사 인사를 하러 찾아온 이유가 있었다.

이쪽 밀양과 경남 근방은 아일라의 구역이다. 여기서 큰 인명피해가 나면 아일라도 책임을 피할 수가 없었다.

"제가 밖에 남았어야 했는데, 도움을 드리지 못해 면목이 없습니다."

"아닙니다. 빨리 클리어해 주셔서 제가 더 감사하죠. 더 끌면 위험할뻔했네요."

그때, 누군가 유신의 앞으로 손을 내밀었다. 가람의 공인 3급, 유하영이 무릎을 굽히고 손을 내밀고 있었다.

"설 수 있겠어요?"

"네. 고맙습니다."

유신이 그녀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가람의 에이스는 나라고 생각했는데, 진짜는 따로 있었네!"

"에이, 무슨 말씀을. 선배 따라가려면 멀었죠."

예전에 유신도 힐러 협회랑 싸울때 그녀의 협력을 받아서 알고 있었지만, 이 사람도 대단한 괴물이다.

안세현이 협회 직원 쪽을 돌아보았다.

"바로 다음 전장에 투입하고 싶습니다. 이번에는 수비조로서 움직이겠습니다. 급한 곳부터 알려주십시오."

"아, 알겠습니다!"

"저도 갈게요."

"저도 가겠습니다."

유하영과 유신도 대답했다.

"헌터 여러분의 적극적인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협회직원이 반색하며 본부로 무전을 걸었다.

무려 세 명의 공인 3급 헌터다. 어디로 가든 전황 자체를 완전히 뒤바꾸어 놓을 수 있을 것이다.

* * *

[파괴된 임모탈 : 13/14]

이제 국내에 남은 임모탈은 단 하나였다. 14개 중에서 11개는 멕시코와 비슷한 평이적인 난이도의 임모탈이었다면, 밀양, 부천, 홍천 게이트의 세 임모탈은 유난히 강하다고 평가받고 있었다.

임모탈 자체의 화력도 그렇고, 몬스터들을 내뿜는 게이트 특유의 속성도 그렇다.

부천은 서울의 정예 길드 연합이 막아냈다. 밀양은 유신과 마탑 멤버들의 분전이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홍천 게이트에서 발현된 임모탈이었다.

이 문제의 임모탈은 현재, 세종시를 통과해 대전을 직접 공격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빠르게 대피해서 큰 인명피해는 면했지만 재앙이 광역시 하나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는 것을 가만히 놔둘 수는 없었다.

두두두두두두두두!

새벽녘이 밝아오는 밤하늘을 배경으로, 세 기의 마력헬기가 대전으로 비행하고 있었다.

임모탈을 막기 위해 한국의 주요전력이 내려온 것이다.

곧이어 헬기가 착륙하고 헌터들이 빠르게 앞으로 달려가는 가운데, 정장 슈트를 어깨에 짊어지고 느긋한 얼굴로 걸어가는 여자가 있었다.

"협회장님께 경례!"

군 장교들이 경례를 올려붙이며 소리쳤다. 홍율은 휘휘 손목을 휘저으며 지나갔다.

"오셨습니까."

프로스트가 꾸벅 허리를 숙이며 홍율을 맞이했다.

그녀는 싱긋 웃더니 대뜸 다리를 들어 올려 그의 가슴을 찼다.

"……컥!"

프로스트가 볼품없이 나가떨어지며 흙바닥을 굴렀다.

"프로스트 님!"

헌터들과 군간부들이 기겁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아무리 전시라지만 모두가 보고 있는 앞에서 헌터 협회장이 제1위 길드 마스터를 폭행한 것이다.

프로스트는 주저앉아 고통스럽게 가슴을 쥐고 있었고, 홍율은 근처에 있는 플라스틱 간이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았다.

"머저리 같은 새끼."

"……."

"보고 해."

프로스트는 벌떡 일어나 대답했다.

"처음 던전에 들어간 공략조, 유닉스 세 팀과 루비스트 한 팀이 통신두절 상태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게이트 공략이 끝난 블랙가드와 NIX에 협력을 요청했고, 두 길드는 각각 두 팀씩을 공략조로 보냈습니다. 그들도 연락 두절. 총 8팀이 던전에서 행방불명 됐습니다."

"잘한다, 잘해."

홍율이 턱을 괬다.

"박정양한테 압박 넣어서 기어코 던전 독점 공략권을 따내더니, 일을 이 사달로 만들어? 니들이 그러고도 1위 길드야?"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하지만 부디 저희가 책임을 질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프로스트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다음 공략조는 저와 유닉스의 최정예가 투입합니다. 안에 어떤 보스가 있던 반드시 클리어해서……"

"X 까시고요."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니들한테 맡겼다간 화병 나서 돌아가시겠다. 내가 간다."

"협회장님!"

그녀의 몸에서 위협적인 붉은 마력이 터져 나왔다. 자리에 있는 모두가 전율하며 뒷걸음질쳤다.

"오늘 여러 번 빡치게 하네."

그녀의 황금빛 눈동자가 살벌하게 번뜩였다.

"두 번 말 안 한다. 밖에서 처벌을 기다려라, 정하진."

"부탁드립니다."

프로스트는 그렇게 말하며 그녀 앞에 무릎을 꿇었다.

주위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한층 더 커졌다.

"식구들이 던전에서 생사불명입니다. 모두 유닉스에서 동고동락한 제 소중한 가족들인데 어떻게 손 놓고 있겠습니까! 저희가 못 미더우시다면 적어도 협회장님과 함께 들어가는 것 정도는 허락해 주십시오!"

그녀의 눈썹이 꿈틀했다.

"야, 너 진짜 뒈지고 싶……"

그때 그녀의 시선이 주위에 가득한 헌터들과 군 관계자들에게로 향했다.

보는 눈이 너무 많다. 프로스트는 길드원들의 구출을 위한 정당한 요청을 했고, 그녀가 이것을 대놓고 거절하면 엄청난 반발에 휩싸이게 될 것은 자명했다.

그녀는 프로스트의 본질을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프로스트가 판을 너무 잘 깔았고, 여기서는 한발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다.

그녀는 짜증스럽게 빨간 머리카락을 벅벅 긁었다.

"마음대로 해."

"……감사합니다!"

프로스트가 고개를 꾸벅 숙였고, 협회장은 차갑게 등을 돌려 현장으로 향했다.

제1위 길드 마스터가 어떤 자리인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헌터 협회를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 그런 그가 협회장에게 불합리한 폭행을 당했음에도 무릎을 꿇고 길드원들의 목숨을 간청했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닐 터, 모든 사람들의 동정이 프로스트에게로 향하는 순간이었다.

"……갑시다."

프로스트가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유닉스 길드원들이 벌게진 눈으로 그의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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