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만 마탑주 177화
네 발로 뛰는 몬스터들이 제일 먼저 방어선에 접근했다.
은솔은 눈을 감고 고사리 같은 팔을 휘둘렀다. 그녀의 지휘에 맞춰 전면에 배치된 포탑들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
두두두두두두두!
몸통에 총알이 박힌 몬스터들이 픽픽 쓰러져 나간다. 그 위로는 미사일들이 하늘에서 곡선을 그리며 내려온다.
콰콰콰콰쾅!
순식간에 지상이 쑥대밭으로 변했다.
'세상에.'
'저 꼬마 혼자서 몇 사람 역할을 해내는 거야?'
짧은 시간 내에 은솔이 구축한 화력에 모두가 입을 벌리며 놀라고 있었다.
"그럼 저도 갑니다아!"
진보라는 아공간에서 커다란 포션을 하나 꺼냈다. 거의 마법 솥 하나의 분량을 통째로 담은 듯한 크기였다.
그녀가 낑낑거리며 포션을 바닥에 내려놓더니 두 손을 포션 아래에 넣었다.
"보여 드릴게요! 저의 4서클 마법!"
"……몇 서클이요?"
뒤에서 지켜보던 차도연이 눈을 깜빡였다.
"간다! 프로메테우스 엘릭서!"
그녀가 괴상한 기합을 내지르며 포션을 힘껏 내던졌다.
그 대용량 포션은 하늘로 붕 떠올라 수백 미터를 날아가더니 몰려드는 몬스터들 무리의 한복판에 정확히 떨어졌다.
화르르르르륵!
포션병이 깨지고 지글지글 끓는 불꽃이 바닥에 남았다. 그것을 밟는 몬스터들이 괴로움에 발버둥 치며 불타다 쓰러졌다.
"역시 대단하십니다! 진보라 선배!"
나대용이 엄지손가락을 척 올렸다.
진보라는 숨을 헐떡이면서도 엄지를 세우는 것으로 화답했다.
"우리도 선배님들에게 질 수 없죠!"
흥분한 나대용이 주먹을 뻗었다.
"갑시다!"
"네!"
4층팀도 전투를 시작했다.
제일 먼저 뛰쳐나간 사람은 탱커포지션의 소심희였다.
가드레일을 밟고 힘차게 하늘로 뛰어오른 그녀가 두 팔을 벌렸다. 그녀의 몸이 순식간에 근육과 살점으로 뒤덮였다.
<메타모포시스 - 안드라스>
공중에서 나타난 근육질의 몬스터가 깍지 낀 두 팔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려 힘껏 바닥을 내리찍었다.
쿠쿠쿵!
바닥이 들썩거리며 몬스터들의 몸이 터져 나갔다.
이어지는 난전. 우락부락하게 발달한 안드라스의 팔이 휘둘러 질 때마다 저랭크 몬스터들의 몸이 무른 두부처럼 퍽! 퍽! 박살 났다.
-헌터님들! 6시의 방어선이 헐겁습니다!
"맡겨주세요!"
김사랑이 수정구슬을 어루만지는 마녀처럼 팔을 움직였다. 허공의 수 분이 모여 출렁이는 물의 구체를 만들어냈다.
<워터 윕>
2공정 물의 마법이 채찍의 형상이 되어 몬스터들에게 쏟아졌다.
몬스터들이 흠뻑 젖은 채로 뒤로 밀려나고, 뒤이어 하늘로 뛰어오른 나대용이 마법진을 두른 주먹을 뻗었다.
<라이트닝 글레이브>
파지지지지직!
그의 주먹에서 뻗어져 나간 한줄기 전격이 물에 젖은 몬스터들을 감전시켰다.
새까맣게 타버린 몬스터들이 풀썩풀썩 자리에 쓰러졌다.
"으어어어."
조용희는 몬스터들의 진형 한복판에서 뚜벅뚜벅 걷고 있었다.
홀로, 그것도 맨손으로 적진에 들어가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는 짓이었지만, 이상하게도 몬스터들은 그에게 접근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의 몸에서 튀는 녹색 액체에 고통스럽게 울부짖거나 쓰러지고 있었다.
"……비켜어."
조용희가 앞을 막고 있는 홉고블린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포이즌 너클>
끔찍한 소리가 나며 홉고블린의 머리가 통째로 녹아내렸다.
"더워어어어어."
조용희가 땀을 흘릴수록, 그의 몸에서 쏟아져 나오는 독의 반경은 더 커져만 갔다.
"대장! 이제 그만 빠져나와요!"
<스트렝스>
<라이트 블레스>
그리고 후방에서는, 차도연이 전투를 지휘하며 '원격 시전'의 범위가 가장 넓은 빛으로 버프 마법진을 엮어 아군을 지원해 주고 있었다.
무리하는 나대용을 뒤로 물리고, 다리에 건 강화 마법의 지속시간이 다 된 안드라스에 다시 강화 마법을 걸어주고 있었다.
뒤에서 지켜보던 신원중 소령은 입을 벌렸다.
'쟤들 미궁 세대라며? 진짜 신인맞아?'
다섯 명의 팀워크가 장난이 아니었다. 사용하는 능력은 각기 달랐지만, 하나의 유기체처럼 능동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잠시 신원중이 한눈을 팔고 있는 그때.
후웅!
두 발로 달리는 몬스터 한 마리가 가드레일을 통과하려 하고 있었다.
5랭크 탄탈루스. 저렇게 빠른 놈이 시가지로 들어가면 곤란했다.
"여기는 지휘관! 방금 5랭크 몬스터가 통과했……!"
무전기를 든 신원중 소령의 눈이 급격히 커졌다.
가드레일을 밟고 도약한 탄탈루스보다, 더 높이 뛰어오른 인간이 있었다.
"탄탈루스의 약점."
허리까지 당긴 정서진의 주먹에 푸른 마력이 맺혔다.
"왼쪽 갈비뼈 아래."
섬광처럼 뻗어 나간 주먹이 그대로 탄탈루스의 머리통을 으깨고 지나갔다.
머리 잃은 탄탈루스의 몸뚱이가 신원중 소령의 옆에 쿵! 소리를 내며 떨어졌고, 뒤이어 정서진이 바닥에 가뿐히 착지했다.
"……저, 정서진 헌터."
"왜 그러시죠? 소령님."
"방금 왼쪽 갈비뼈 아래가 약점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정서진은 말없이 안경을 고쳐 쓰더니, 죽은 탄탈루스의 갈비뼈 아래를 발로 밟아 으깨고 돌아갔다.
'……헌터들은 정상이 없어 진짜.'
신원중 소령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우우웅."
신원중 소령이 고개를 돌렸다. 이번엔 전방의 골렘 부대와 포탑들을 지휘하던 은솔이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존다고? 이 상황에?'
포탑과 골렘들을 총괄하는 것으로 보이는 저 소녀가 이 전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엄청나다.
절대로 졸아서는 안 됐다.
"드디어 솔이 존다!"
"힘내 솔아!"
그런데 옆에 있던 진보라와 차도연은 작은 목소리로 응원하기 시작했다.
"움냐 움냐."
은솔이 마침내 픽 쓰러졌다.
진보라가 얼른 그녀를 안아 들었고 차도연은 눈을 반짝이며 앞으로 일어날 일을 기대했다. 신원중 소령은 그저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대체 무슨…….'
퍼엉
부유선 몸체가 열리더니 갑자기 동시다발적으로 골렘볼들이 폭죽처럼 터져 나왔다.
겉으로 보기엔 그냥 막 날아가는 것 같지만 골렘볼 하나하나가 모두 은솔의 '원격 조종' 통제에 들어와 있었다.
골렘볼들은 흙바닥, 바위, 나무 위, 건물 등으로 날아갔다.
쿠구구구구!
근처의 산 언덕에서 얼굴과 두 개의 팔이 불쑥 솟아나더니 이내 완전한 골렘의 형상이 되어 걸어 나왔다.
머드 골렘의 상위 개체인 스톤 골렘이다.
콘크리트 건축물에 달라붙은 골렘볼들도 작동을 개시한다. 집 한 채가 구부러지듯 마정석을 중심으로 모여들더니 팔다리를 형성했다.
이내 그 안에서 콘크리트 골렘이 기지개를 켜듯 일어났다.
"허, 허억!"
쿵! 쿵! 쿵! 쿵!
일반 골렘의 몇 배가 넘어가는 중형 골렘들이 전장을 향해 걸어갔다.
신원중 소령은 지나가는 골렘들을 이리저리 피하기 바빴다.
그리고.
골렘볼 하나가 은솔의 부유선 한 채의 몸에 찰칵! 달라붙었다. 마정석을 중심으로 부유선의 몸체가 기다렸다는 듯 벌어진다.
신원중 소령이 기겁했다.
'무슨 로봇 영화냐!'
영화에서나 보던 기믹.
부유선의 날개가 철컥거리며 팔이 되고, 부스터 쪽은 다리로 바뀐다.
널찍하던 몸체가 순식간에 긴 척추의 형태로 재구성되며 중앙의 머리도 솟아오른다.
부유선의 자재를 바탕으로 은솔의 주력 골렘, '아이언 골렘'이 완성됐다.
전체적으로 뚱뚱한 골렘들의 외형과는 달리, 늘씬하고 고급스러운 디자인에 몸 전체가 무기화되어 있었으며 두 눈구덩이에서는 푸른빛이 뿜어져 나왔다.
입을 벌리고 지켜보던 신원중 소령의 뺨이 살짝 붉어졌다.
'크, 크흠. 멋지긴 하군.'
사실 그는 슈퍼로봇 매니아였다.
아이언 골렘이 진보라로부터 건네 받은 은솔의 몸을 자신의 열려 있는 가슴 안에 넣었다.
이내 가슴 부근이 닫히는 순간, 아이언 골렘의 눈이 한층 더 밝게 빛나며 몸체 곳곳에 푸른 불이 들어왔다.
"다 혼내줘! 솔아!"
진보라가 방방 뛰며 말했다. 아이 언 골렘은 척! 척! 사뿐한 걸음 소리를 내며 전장으로 뛰어들었다.
부우웅!
다리에서 나온 부스터로 공중에 날아오른 아이언 골렘이 팔을 뻗었다.
팔의 금속 케이스가 열리며 그 안에서 나온 수십 개의 총구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불을 뿜었다.
팔이 지나가는 곳마다 총탄들이 폭우처럼 쏟아진다.
까득!
공중에서 내려온 아이언 골렘이 멋들어진 발차기로 몬스터 하나의 몸뚱이를 찍어 누르며 내려왔다.
-끼리리리릭!
-캬악!
주위의 몬스터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꽂았지만, 튼튼한 합금 장갑에는 흠집도 내지 못했다.
이번에는 아이언 골렘의 팔목 아래에서 소드 디바이스가 뽑혀 나왔다.
으적!
가장 앞에 있던 몬스터의 몸이 깔끔하고도 이상적인 단면을 그리며 갈라졌다.
스릉! 스릉!
아이언 골렘은 현란한 움직임으로 다가오는 몬스터들을 단어 그대로 썰어버렸다.
한참 전장에서 싸우고 있던 4층 팀원들도 휘파람 소리를 내며 아이언골렘이 나가는 길을 비켜주었다.
치직!
-은솔 양. 전방 200m 앞에 까다로운 5랭크 몬스터가 있습니다. 처치해 줄 수 있겠습니까?
무전을 들은 아이언 골렘이 돌진을 멈추고 한쪽 무릎을 꿇었다.
철컥! 컬컥! 컬컥!
등 뒤의 금속 케이스가 열리더니 수 많은 포대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내 포대에서 미사일들이 연이어 파바바박 하늘로 솟구쳤다.
꼬리처럼 긴 연기를 그리며 순식간에 상공 수백 미터까지 치달은 미사일들의 궤적이 갑자기 급격히 기울어졌다. 이내 지상으로 방향을 바꾸어 매서운 속도로 떨어져 내렸다.
꽈아아아아아앙!
쿠우우우웅!
연이어 일어나는 폭발. 정서진이 주문한 5랭크 몬스터는 물론, 그 주변 일대를 전부 초토화해 버렸다.
아이언 골렘은 폭발 구름을 등지고 다시 소드 블레이드로 몬스터들을 썰기 시작했다.
'가, 가슴이 뛴다.'
군에 뜻을 두고 복무한 지 어언11년, 신원중 소령은 처음으로 팬으로서 입문하고 싶은 헌터가 생겼다고 생각했다.
치직!
-여기는 에이나인. 우리도 합류한다.
-팀 K-32도 합류합니다.
마탑 멤버들이 분투하고 있는 가운데, 다른 경남 전선 헌터들도 속속 창원으로 집결했다.
마탑 멤버들의 방어라인으로 바로 합류하는 헌터들도 있었고, 다른 구역을 커버하러 가는 헌터들도 있었다.
"도와 드리러 왔습니다!"
"언제 왔어요? 빠르네!"
아일라와 가람의 공인 헌터들이 가담하며 전황은 더욱 유리해졌다.
마탑 멤버들과 공인 헌터들이 뒤섞여 전투를 치렀다.
"허억! 후우!"
한바탕 마나를 쏟아부은 나대용은 자리에 앉아 마나 엘릭서를 들이켜며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때 그의 시야에 검을 휘두르는 한 헌터의 모습이 보였다.
단출한 무장이다. 들고 있는 건 소드 디바이스 한 자루.
하지만 최소한의 동작, 최소한의 걸음으로 기계처럼 척척 몬스터들을 쓰러뜨린다.
대면하는 몬스터마다 노리는 부위가 달랐고, 전술이 달랐다. 가끔은 총도 쓰고, 슈트의 역장을 믿고 몬스터의 공격을 받아낸 뒤에 카운터를 치기도 했다.
무표정하게 무수히 많은 몬스터를 베어 넘기는 모습에 나대용은 침을 꼴깍 삼켰다.
'진짜로 몬스터 잡는 기계 같다.'
자신이 강력한 한 방 광역 마법으로 다수를 잡을 때, 이 헌터는 한마리 한 마리를 효율적으로 쓰러뜨리며 자신의 숫자 이상을 채워 나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베테랑 프로들과 비교해서는 자신도 많이 멀었다고 생각했다.
질 수 없다.
나대용은 다 마신 포션 병을 휙던진 다음, 번개를 일으켜 몬스터한 무리를 쓸어버렸다.
그 모습을 본 헌터가 검을 멈추더니 나대용을 돌아보았다.
"그거 무슨 능력이에요?"
나대용은 꾸벅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저는 비전투계 능력자라서 고유 능력은 없습니다!"
"음?"
"고유 능력이 아니라 마법입니다!"
그 말을 들은 헌터의 표정이 묘하게 굳어졌다.
"아- 그러셨구나. 요즘 핫하다는 김유신의 제자들?"
"예! 맞습니다!"
헌터는 더 말하지 않고 앞의 몬스터들을 쓸어넘기며 걸어나갔다. 나대용은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수가 없었다.
치직!
-여기는 본부! 밀양 게이트의 모든 팀에게 알립니다!
본부에서의 통신에 모두가 귀를 기울였다.
-임모탈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헌터들은 대비해 주시길 바랍니다!
이제 막 통로로 넘어오려는 몬스터들을 대부분 정리한 참이다. 다들 여유가 있었다.
"자, 임모탈도 여기서 막고 보너스 제대로 챙겨갑시다!"
"준비해. 준비."
게이트의 헌터들도, 마탑 멤버들도 방어준 비로 바쁘게 움직였다.
잠시 후.
-2시 방향 임모탈 발견! 옵니다!
거대한 허공으로 이루어진 듯한 투명 거인이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