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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마탑주-176화 (176/337)

나 혼자만 마탑주 176화

눈이 내린다.

계속 내린다.

하염없이 내려서, 온통 세상이 새하얗게 됐다.

"……끙."

유신은 지독한 한기와 싸우며 몸을 일으켰다. 어깨와 몸 곳곳에 하얀눈이 서려 있었다.

그런 그의 앞에는 눈에 뒤덮인 투명 거인이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아무런 미동도 없이 우두커니.

투명한 몸이라 마치 허공에 눈이 수북이 쌓여 있는 것만 같다.

임모탈의 주위에는 무수한 몬스터들의 시체가 보인다. 임모탈이 괴로워하며 몸으로 몬스터를 쏟아냈지만, 나오는 족족 죽음의 눈보라에 휘말린 것이다.

'5공정은 하나같이 미쳤어……'

1기절 1마법의 5공정 원소 마법.

위력은 굉장하지만 정신은 아득해진다.

그래도 아프리카 파견으로 조금은 더 성장했다고 생각했는데, 폭주하는 5공정 마법을 쓴 뒤의 반동을 이길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몰입의 격이 올라가 버려서 5공정에 몰입할수록 더 곤욕이었다.

'뇌가 흔들린드아.'

-탑주! 정신 차리셔야 합니다!

'이대로 눈을 감으면 편해질 것 같은데에.'

이 정도 했으면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고, 유신은 생각했다.

임모탈은 데미지를 받으면 움직임이 느려진다. 그리고 지금은 임모탈에 극도의 타격을 가했으니 아예 움직이지를 못하고 있다.

사미아에게 이야기한 20분보다는 더 길게 무력화시켰으리라.

'……그래도 5공정은 너무 오버였어.'

한계에 달한 뇌가 휴식을 부르짖는다. 눈꺼풀이 천근만근 무겁다.

-캬르르륵!

눈보라가 그친 이 타이밍에, 임모탈의 몸에서 몬스터 몇 마리가 튀어나온다.

레드 하운드와 랫맨, 그리고 홉고블린. 3랭크 몬스터들이다.

'망했…'

-탑주!

몬스터들이 뛰어들었고 유신은 비몽사몽 상태였다.

그때, 그의 다리 아래에서 마법진 이 저절로 그려진다.

<리프부츠>

터엉!

무력화된 유신의 몸이 하늘로 날아오른다. 그리고 쿠션 쉴드 몇 개를 깨부수고 내려오다가 공중의 쉴드에 떨어져 멈춘다.

"……으음, 에아. 운전 거칠어어."

-탑주! 제발! 쉬실 때가 아닙니다!

몬스터들이 유신을 따라 우르르 몰려왔다.

에아는 계속 도망치고 싶었지만, 유신이 의식을 잃으면 그녀 또한 유신과의 연결이 끊긴다.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게 된다.

-탑주!

몬스터들이 아가리를 벌리며 불꽃을 머금는 그때.

콰득! 퍽! 으적!

몬스터 세 마리가 동시에 피를 토하며 쓰러진다.

-케룩!

당황해서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는 다른 몬스터들의 위로, 난데 없이 중형차들이 연달아 떨어진다.

살점이 짓이겨지는 소리와 함께 그들의 몸뚱이가 깔아뭉개진다.

-키이이익!

-께엑!

"늦어서 미안하군."

어느새 나타난 사미아가 휠체어에 앉아 몬스터들을 향해 팔을 뻗고 있었다.

"김유신 헌터. 내가 왔으니 이제 편히 쉬어도 좋다."

빙그레 웃으며 말하는 사미아의 모습에, 유신은 더 없는 안도감을 느꼈다.

"……그럼 뒷일은 맡기겠습니다, 사미아."

한계까지 치달은 유신의 눈이 스르륵 감겼다.

허공의 쉴드가 사라지며 유신의 몸이 떨어졌고, 사미아는 텔레포트를 써서 힘들이지 않고 그를 받아냈다.

-캬아아아악!

사방으로 밀려드는 몬스터들을 보며 사미아는 미소 지었다.

그녀가 우아하게 팔을 휘젓자 전면으로 무너진 건물 자재들이 우르르 쏟아져 내린다.

* * *

[헌터 협회에서 알립니다! 현재 창원시는 재앙의 영향권 안에 들어왔습니다! 시민 여러분은 신속히 대피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재앙이 부산으로 갈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던 창원 시민들은 기겁하며 도시를 떠나고 있었다.

이미 도로는 온통 차량으로 막혀 있고, 몇몇 사람들은 안 되겠다 싶었는지 도로에서 무책임하게 차를 버리고 도망쳤다. 시간이 흐를수록 도로는 심각한 정체 현상을 빚고 있었다.

마탑 멤버들은 사미아가 만든 워프를 타고 제일 먼저 창원에 도착했다.

사미아는 에아의 SOS 메시지를 전해 듣고 창원에 멤버들을 데려놓자 마자 바로 유신이 있는 좌표로 달려갔다.

다들 안절부절못하며 유신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는데.

-여기는 사미아. 김유신 헌터를 데리고 현장에서 무사히 빠져나왔다.

"……하아아."

"다행입니다!"

통신을 들은 모두가 안도했다.

-나도 김유신 헌터를 안전한 곳에 데려다 놓고 합류하겠다.

"수고하셨습니다! 사미아 헌터님!"

통신을 마친 나대용이 두 주먹을 팍! 맞부딪쳤다.

"스승님께서 부재중이십니다. 스승님은 바로 이런 상황을 대비해 우리 4층팀을 마탑의 전력으로 키워두신겁니다!"

그가 뒤를 돌아보았다. 차도연, 소심희, 김사랑, 조용희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기회가 왔습니다! 스승님께 우리 팀의 가치를 보여 드립시다!"

"네!"

4층팀이 으쌰으쌰 기합을 넣고 있는 한편, 정서진은 협회 본부의 전달 사항을 숙지하고 있었다.

"잠깐 주목해 주십시오."

상황을 파악한 그가 모두에게 지시를 내렸다.

"탑주님이 벌어준 시간이 조금 있습니다. 임모탈이 도착하려면 시간이 걸리니, 우선은 민간인들의 피난을 유도합시다."

"예!"

모두가 흩어져서 민간인들의 피난을 유도 했다.

협회에서 대대적으로 경고 방송을 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상황파악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무엇보다 무질서에서 비롯되는 사태들을 헌터가 통제해야 했다.

"재앙이 옵니다! 지금 도로는 혼잡하니 도보로 이동해 주십쇼!"

"이쪽이에요! 짐은 저한테 주세요!"

"부상자 있으신가요?"

피난 유도 지침은 다들 공인 5급시험 때 실기시험으로 공부한 적이 있었다.

모두가 막힘없이 착착 움직였다.

공인 배지를 가슴에 붙이고 피난을 유도하니 따르지 않는 사람이 없었

"자, 자, 이쪽이에요!"

특히 이런 활동적인 일을 좋아하는 진보라는 제일 열정적으로 뛰어다니며 피난을 유도하고 있었다.

그녀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생각했다.

'정말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네.'

생이별하듯 울고불고 난리인 커플, 사각팬티만 입은 채로 급하게 뛰쳐 나오는 아저씨, 금고가 집에 있다며 옮겨달라는 요청을 하는 아줌마도 있었다.

그리고 또 한 명.

"형님들 대박! 지금 재앙이 창원으로 오고 있대요! 보이시죠? 다들 난리도 아닙니다, 진짜!"

'이 와중에 인터넷 방송……'

캠코더를 들고 시시덕거리는 꼬마아이의 모습에, 진보라는 동정심과 동질감을 동시에 느꼈다.

"너 지금 뭐 하니? 긴급 상황이니까 빨리 대피하렴."

"대박!"

아이가 대뜸 캠코더를 들이대자 진보라가 움찔한 표정을 지었다.

"누나 공인 헌터죠? 너무 예뻐요! 중계 컨텐츠 진행 중인데 구독자님들한테 인사 한 말씀 부탁드릴게요!"

"너어! 장난치지 말고 빨리 가! 누나한테 혼난다?"

"장난치는 거 아닌데요? 저 구독자 수 20만인데."

"20만?!"

카메라 화면에 떠오르는 무수히 많은 채팅을 본 진보라는, 자신도 모르게 상큼한 목소리로 말했다.

"신인 헌터 공인 5급 진보라라고 해요! 잘 부탁드려요!"

쿠웅!

근처에서 도로를 막고 있던 차량을 옮겨놓은 정서진이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진보라 씨."

그녀가 움찔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이, 이건 그런 게 아니라! 헌터가 여유 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시민들이 안심하잖아요? 그런 느낌이에요! 자, 자, 빨리 가렴!"

그녀가 진땀을 뻘뻘 흘리며 꼬마BJ를 내보냈다. 정서진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역시 인간의 본성은 쉽게 바뀌지 않는군요."

"내가 잘못했으니까 그만 해요!"

치직!

-여기는 차도연! 몬스터들이 오고 있습니다!

"벌써?"

피난 유도는 여기까지다. 관리자들과 4층팀 모두 도시 외곽의 방어포인트로 복귀했다.

"……어, 엄청나게 많네요."

자욱한 흙먼지를 일으키며 몬스터의 무리들이 도시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정서진이 안경을 추켜올렸다.

"예상 대롭니다. 역시 에아 님의 예상 루트가 정확하군요."

창원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도시고, 북쪽에서 도시로 들어올 수 있는 길목은 한정되어 있다.

다른 터널 루트도 나대용과 소심희가 협회의 허락을 받아 마나폭탄으로 터널을 무너뜨리고 오는 길이다.

그렇다면 최단거리로 창원으로 들어올 수 있는 구역은 바로 이 길목.

여기를 지켜내야 했다.

은솔이 골렘들을 조종해 도로의 가드레일을 뜯어와 앞에 세우는 등 간이 방어책을 마련하고 있었다.

'다행히 임모탈은 보이지 않는군.'

임모탈은 유신에게 당한 피해를 아직 회복하지 못한 듯,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어딘가에서 몬스터만 꾸역꾸역 내보내고 있으리라.

정서진이 이어마이크를 작동시켰다.

"여기는 정서진 5급. 창원 방어 책임자는 응답 바랍니다."

치직!

-예. 창원시 방위 책임자 신원중 소령입니다.

"다수의 몬스터들이 접근하고 있습니다. 해당 위치 좌표로 병력 지원을 요청합니다."

-바로 증원을 보내겠습니다! 헌터 여러분의 신속한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책임자와 통신을 마친 정서진은 뒤를 돌아보았다.

"그럼 부탁드립니다. 은솔 양."

"응!"

"시작할게, 솔아!"

진보라가 기다렸다는 듯 1층 창고의 아공간을 열었다. 그 안에서 은솔이 만든 부유선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와!"

4층 팀원들 모두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그것을 보았다.

은솔이 집중력을 끌어올리며 '원격조종' 능력을 발동시켰다.

달칵! 달칵!

부유선의 몸체가 열리며 골렘볼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이어서 바닥의 골렘볼들이 작동하며 무수히 많은 머드 골렘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쿵! 쿵! 쿵 쿵! 쿵!

거의 100기 가까이 되는 골렘 군단이 눈 깜빡할 사이에 만들어졌다.

부유선들이 골렘볼을 뿌리며 날아다니는 와중에도, 진보라의 아공간에서는 다양한 기계들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었다.

네 다리로 움직이는 포탑이 가드레일 뒤에 설치되었고, 미사일 포대까지 후방에 자리를 잡았다.

전부 골렘과 헌터 디바이스가 합쳐진 특수장비들. 예전에 은솔이 할렘가를 지킬 때 사용하던 포탑의 개조형이었다.

"대단해 솔아!"

"이게 3층 관리자의 저력이군요!"

그녀의 능력을 처음 보는 4층팀은 눈이 휘둥그레져 있었다.

은솔은 거의 홀로 방어선을 구축해냈다.

뒤늦게 도착한 창원시 주둔 병력들과 신원중 소령도 그 짧은 시간에 무장된 현장을 보고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게 다 무슨……"

신원중 소령은 장비의 물량과 수준을 보고 길드 단위의 커버가 들어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리에 있는 건 열 명도 되지 않는 인원들뿐이었다.

-몬스터들이 바로 앞까지 왔습니다!

탐색 마법을 시전 중인 차도연이 통신으로 소리쳤다. 신원중 소령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병사들을 배치시켰다.

그렇게 전방에는 골렘들, 중앙에는 가드레일을 방호벽 삼아 마력 소총을 든 병사들, 그리고 후방에는 은솔의 미사일 포대와 육군의 자주포들이 배치됐다.

-크르륵!

-캬아아아악!

몬스터들의 울음 소리에 모두가 긴장한 표정으로 마력을 끌어올렸다.

당초 계획에 없었던, 창원시 사수전투가 시작되었다.

"하하하! 얼마든지 와라!"

나대용이 주먹을 불끈 쥐고 소리쳤다. 그의 손에서 지직거리는 전기 스파크가 튀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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