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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마탑주-175화 (175/337)

나 혼자만 마탑주 175화

살아 움직이는 던전 게이트, 재앙 임모탈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차 부대의 포격은 임모탈의 몸에서 쏟아지는 잡몹들에게 계속 막히고 있다.

-포격은 몬스터들에게 집중해! 헌터들이 임모탈을 맡는다!

-절대 부산으로 가게 두지 마!

헌터들이 서둘러 임모탈을 포위하기 위해 움직였다.

찌익!

임모탈이 팔을 휘두르자 주위에 깔아뒀던 전기망이 스파크를 튀기며 찢어진다. 재앙의 발을 묶을 비장의 신기술이 고작 초 단위의 시간밖에 벌지 못했다. 이제 임모탈이 밖으로 뛰쳐나온다.

"……어?"

"저 방향은!"

임모탈은 아군 진형에서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내달리고 있었다.

"씁! 막아!"

기세 좋게 재앙의 앞을 가로막은 헌터들이 화력을 쏟아부었다. 그들의 손에 화염이 일고, 섬광이 번쩍였으며, 총구가 불을 뿜었지만 임모탈은 상관치 않는다는 듯 그 모든 공세를 몸으로 뚫고 포위망을 돌파했다.

지켜보던 모두가 입을 쩍 벌렸다.

너무나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얼 타지 마! 달려!"

"몬스터를 뱉는 괴물을 내버려 뒀다간 대참사다!"

헌터들이 다급히 추격을 개시했다.

하지만 임모탈은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빨랐다. 허공을 뭉쳐 만든 인간 형상의 그것은 두 팔을 휙휙 흔들며 전력 질주했다.

키가 20m도 넘는 거구의 질주를 인간이 따라잡을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전장은 더 없이 혼란스럽다.

'쫓아!'

'따라잡아!'

거친 굉음이 귓가에 웽웽 울린다.

이어마이크로 통신을 들어봐도 난리였다. 이곳 밀양뿐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지역에서 임모탈의 돌발 행동에 대한 소식이 전해지고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걸까? 에아.'

-이상하군요. 이번 재앙의 기본적인 속성은 모두 멕시코의 임모탈 사태와 동일합니다.

'근데 왜 부산이 아니라 다른 방향으로 가는 거야?'

재앙의 속성이 동일하다면, 그 시절 멕시코와 한국의 차이가 뭘까?

그렇게 고민하던 내 머릿속에 순간 스파크가 튀었다.

'끙, 그렇게 된 거군.'

[재앙 임모탈은 출현과 동시에 인구수가 가장 많은 도시를 우선적으로 공격한다.]

언론 보도를 통해 전 국민이 '임모탈'의 성질에 대해 어느 정도 숙지하고 있었다.

이것은 비단 임모탈뿐만 아니라 여러 재앙에 찾아 볼 수 있는 흔한 특성이라 사람들에게도 익숙하다.

경남 지역에 게이트가 나타난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그 근방에서 인구수가 가장 많은 부산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했겠는가?

서울이야 한국의 온전력이 집중되어 있으니 그냥 서울에 있는 게 안전하다는 것이 통설이지만, 부산 사람들은 경남 측 방어선만 믿고 있기엔 불안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피난을 위해 차를 타고 부산을 빠져나갔다.

결과적으로 재앙이 닥친 현재, 경남 지역의 인구수는 역전됐다.

"탑주! 임모탈의 이동 방향으로 추정할 때, 목적지는 창원으로 사료됩니다!

'야단났네.'

부산에서 창원으로 재앙의 타깃이 바뀐다.

현재 경남 방어선의 병력의 대부분은 게이트 앞 밀양에 배치되어 있다. 실패하는 경우의 수를 대비해 부산에도 방어병력이 있긴 하지만, 창원 쪽은 방어가 몹시 취약하다.

-민간인들도 대비가 안 된 상황이니 대참사가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내가 보고할게.'

나는 빠르게 본부로 연락해 내 생각과 예상 목적지를 보고 했다.

잠시 후.

-여기는 본부! 피난민들의 움직임으로 임모탈의 제1 타격 우선순위가 바뀌었음을 확인했다!

빠르다. 굳이 내 보고가 아니더라도, 본부에서도 나와 같은 결론에 도달한 듯했다.

사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어렵지 않게 추론 가능한 사실이다.

-경기도권의 임모탈은 예상대로 모두 서울로 향한다! 다만 서울 외에 다른 지역에서는 우선순위를 재고하라. 영암 게이트는 목포, 밀양게이트는 창원, 오대산 게이트는 양양으로 추정된다!

-다른 지역의 게이트 담당 헌터들도 신속히 상황을 보고해 주길 바람. 이상!

손 놓고 있을 순 없다. 나 또한 윙골렘을 켜고 최고속도로 임모탈을 쫓아가는 중이었다.

-선배님! 저희는 어떻게 할까요?

진보라의 통신이 들렸다. 나는 이어마이크에 손을 올리고 마탑 채널에 접속해 말했다.

"사미아. 계십니까?"

-듣고 있다. 김유신 헌터.

"마탑 멤버 전원을 옮기는 워프 마법진을 설치하려면 얼마나 걸립니까?"

-9명 옮기는 인스턴스 마법진이라면…… 20분 정도 소요된다.

"그럼 부탁드립니다! 20분 동안은 제가 막겠습니다."

-혼자서 말인가?

"해봐야죠."

나는 윙골렘으로 비행하면서 두 무릎을 가슴까지 끌어올리고 데바스타를 양발에 켰다. 그리고 오른발 쪽의 마법을 먼저 발동한다.

<데바스타>

내 몸이 검은 연기를 이끌며 눈깜짝할 사이에 수백 미터를 날아간다.

속도가 줄어들자 다음 발 데바스타를 사용했다. 뒤따르는 헌터들도 각자의 고유 능력이나 부스터 장비로 달려오고는 있었지만, 누구도 내 속도를 따라오지는 못한다.

'암흑 친화 특성으로 부작용은 조금 나아졌지만, 신경 써서……!'

그렇게 몇 번 반복하니 어렵지 않게 임모탈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

투명괴물이 두 팔을 휘적휘적 움직이며 나무 따위를 박살 내며 달리고 있다.

'이 녀석, 진짜 사람처럼 뛰네.'

나는 윙 골렘의 속도를 더더욱 높이는 동시에, 아공간 주머니에서 마인 체포용 사슬을 꺼냈다. 아프리카에서 홍연을 옮길 때 쓰던 그 물건이다. 요긴할 것 같아서 하나 구매해 뒀다.

일단은 놈의 움직임을 붙잡고, 창원에 마탑 멤버들과 헌터들이 방어진을 갖추기까지 시간을 벌어야 한다.

'해보자!'

나는 데바스타를 박차고 임모탈의 머리 앞으로 날아왔다. 놈이 고개를 움직여 나를 인지하는 것보다 빠르게, 왼발에 맺혀 있는 최대출력의 데바스타로 임모탈의 머리를 걷어찼다.

쩌어어어엉!

굉음과 함께 시커먼 거체의 고개가 크게 젖혀지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날아가길 기대했지만 덩치가 워낙 커서 그러지는 않았다.

'아무튼 지금!'

에아가 준비해둔 <윈드 포트>로 사슬의 반대쪽을 붙잡도록 하고, 임모탈에게 날아간다. 그리고 놈이 몸을 일으키려는 타이밍에 맞춰 빠르게 목을 사슬로 휘감는다.

-탑주! 임모탈이 반격합니다!

허공으로 이루어진 손이 날아든다.

거의 투명 상태라 피하기가 까다롭지만, 나는 데바의 눈으로 마나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

내 눈에는 그냥 사람처럼 생긴 마나 덩어리가 팔을 휘두르는 것처럼 보인다.

'이 정도면 됐어!'

목을 두 번 정도 감은 상태에서 물러난다.

임모탈이 다시 자리에서 일어서려 하는 사이, 나는 가까운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 사슬 끝부분을 놓고 마법진을 일으킨다.

<글루(Glue)>×3

스티킹 건틀릿의 응용 버전이다.

'부착의 룬'의 효과를 극도로 발휘시킨 보조계 3공정 마법.

나는 세 개의 마법진을 사슬에 박아둔 다음, 반대쪽 건물에도 데바스타로 박차고 날아가 글루를 시전했다.

[우우우우우우!]

임모탈이 완전히 몸을 일으켜 다시 앞으로 내달린다. 동시에 사슬이 팽팽하게 당겨진다.

임모탈이 앞으로 나아가려 했지만 당연히 실패다. 몇 번 헛발질하던 괴수가 균형을 잃고 쓰러진다.

쿠우우웅!

20m의 괴수가 주저앉을 때마다 건물들이 과자처럼 부서진다. 그래도 밀양 근처 구역은 사람들이 모두 도망친 뒤라서 다행이었다.

'이걸로는 얼마 못 버티겠는데.'

-5분 정도가 한계라고 사료됩니다.

임모탈은 미친 소처럼 날뛰었다.

건물이 통째로 뒤흔들리며 콘크리트잔해가 후두둑 떨어진다. 이대로는 건물을 뜯어내고서라도 빠져나가고 말 것이다.

'5공정으로 가자. 에아.'

-괜찮으시겠습니까?

'응. 이젠 이 방법밖에 없어.'

나는 마나를 일제히 개방했다. 주위로 네 개의 마법진이 떠올랐다.

* * *

두두두두두두두!

헌터들을 태우고 창원시를 향해 일직선으로 내달리는 마력 헬기들과는 달리, 한 헬기는 상공을 유유히 떠돌며 카메라로 상황을 담고 있었다.

"저희는 지금 재앙 현장에 나와 있습니다! 지금 임모탈이 게이트 방어선을 뚫고 창원시로 이동 중이라고 하는데요! 창원시민 분들께서는 신속히 안전한 곳으로 대피해 주시길 바랍니다!"

여성 캐스터가 열심히 설명하고, 그 옆에서는 카메라맨이 지상을 촬영하고 있었다.

"민지 씨! 저기 봐!"

카메라맨이 캐스터의 팔을 툭툭 치더니 옆을 가리켰다. 캐스터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마이크를 들었다.

"말씀드리는 순간! 저기 임모탈이 보입니다! 그리고…… 아! 누군가 임모탈을 막고 있습니다!"

그녀가 눈을 깜빡였다.

"여기서는 잘 보이지 않네요! 화면을 확대할 수 있을까요?"

쿠쿵!

갑작스러운 돌풍에 기체가 급격히 흔들렸다. 헬기 운전사가 소리쳤다.

"돌풍이 심해서 더 이상 가까이 갈수 없습니다! 물러서겠습니다!"

"아, 알겠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려는 걸까요? 아, 말씀드린 순간 화면에 임모탈과 맞서고 있는 헌터의 모습이 보입니다!"

카메라의 배율을 최대로 늘리자, 임모탈을 사슬로 붙잡아둔 헌터가 보인다. 남색 로브를 걸치고 후드를 눌러쓰고 있었다.

"으음, 글쎄요. 아직 이 화면만으로는 누구인지 모습을 추정하기가…… 아, 김유신! 시청자 참여 댓글난에서 '대마도사'라는 이름이 연신 튀어나오고 있습니다! 정말 일까요?"

그때였다.

유신이 화면에도 보일 만큼 거대하게 넘실거리는 마력을 이끌고 지휘자처럼 두 팔을 휘두르는 모습이 보였다. 마나의 파장이 밀양시 전체로 흩어졌다.

"어머?"

전황을 중계하던 캐스터가 헬기 밖으로 손을 뻗었다. 손가락에 눈송이가 앉았다.

"눈이…… 오네요?"

흰 눈이 내리고 있었다. 보통 그대로의 차가운 눈이었다. 방송사뿐만 아니라 헬기로 이동하고 있는 헌터들, 고속도로에 막혀 있는 운전자들, 피난 중인 모든 사람들이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 하늘에는 초대형 마법진이 떠있었다.

<블리자드 에리어>

밀양 하늘 전체에 하얀 눈을 뿌리는 이 대마법의 범위는 상당히 넓어보였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이눈보라는 유신과 임모탈이 있는 곳에 집중되고 있었다.

선선히 눈이 내리는 지역과, 돌풍을 동반한 혹한과 폭설이 집중적으로 불어닥치는 그곳은 완전히 다른 세계 같았다.

휘오오오오오오!

돌풍 때문에 헬기는 더 멀리 물러났다. 빈 허공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빽빽하게 퍼부어지는 눈보라 때문에 카메라 줌인 기능을 써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

공백없이 멘트를 쳐야 하는 캐스터도 할 말을 잊고 바라볼 정도로 전위적인 광경이었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곳은 지상에서 구름이 닿는 하늘까지, 마치 기둥처럼 형성되어 있었다.

주위의 도시나 건물들도 죽음의 눈에 파묻힌다. 나무들은 얼어 죽고, 건물들은 무너져 내린다.

"우, 우리는 대체 뭘 보고 있는 걸까요? CG가 아닌 실제 상황입니다! 아니, 어떤 CG가 지금 이런 엄숙한 장면을 연출할 수 있을까요! 저것도 대마법사의 마법이라면 인간을 뛰어넘은 무언가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눈에 안 닿게 조심해."

카메라맨이 캐스터를 헬기 안으로 끌어들이며 말했다.

"이거 그냥 눈이 아니야."

가면허 플레이어 출신인 카메라맨은 알 수 있었다.

이 눈은 생명체의 체온을 직접 빼앗는 데다가 마나를 증발시킨다. 캐스터는 아까 눈이 닿은 손가락을 팔에 대보았다. 정말로 온기가 날아간 것처럼 차가웠다.

[우우우우우우우우우!]

눈보라 속에서 고통스러운 임모탈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움찔 움찔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감각에 모두가 얼어붙었다.

"믿을 수 없는 광경입니다! 공인 3급 대마도사 김유신이 단신으로 눈보라를 소환해 재앙과 맞서고 있습니다!"

입으로는 쉴 새 없이 말하며, 눈으로는 힐긋 시청률을 살폈다.

세상에! 실시간 시청률이 미친 듯 이 폭등하고 있다. 해외 중계도 마찬가지였다.

캐스터는 입꼬리가 승천할 것만 같았다.

"여러분! 계속 지켜봐 주십시오! 이게 바로 마법사가 도달할 수 있는 궁극의 경지입니다!"

물들어올 때 노 저어야 살아남는 법! 그녀도 텐션을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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