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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마탑주-172화 (172/337)

나 혼자만 마탑주 172화

"그걸 왜 니가 정해?"

협회장의 반발에, 프로스트는 고개를 숙였다.

"아닙니다. 제가 어찌 감히. 단지 공략조는 가장 빠르게 던전을 클리어할 수 있는 상위 길드가 맡는 게 좋다고 판단했을 뿐입니다."

"공략조보다는 수비조가 더 중요하지, 븅딱아."

홍율의 반응은 삐딱했다.

"미리 말해두는데, 니들 또 같잖은 대가리 굴려서 중소애들 찍 누르고 공략조 독점할 생각하지 마라?"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협회장님."

"야, 정하진."

그녀의 황금빛 눈동자가 번뜩였다.

"미궁 던전 때는 그렇게 구질구질하게 몸 사리더니, 이럴 때만 꼭 열정적이지?"

프로스트가 헛기침을 했다.

"협회장님, 공적인 자리에서는……"

"응, X까세요. 씨바라마야. 얘만 그런 줄 알아? 니들도 다 똑같아 새끼들아! 이건 비즈니스가 아니라 인류를 멸하기 위해 만들어진 재앙이라고 재앙!"

홍율의 일갈에 주위가 정적에 휩싸였다. 그녀는 턱을 괴고 음침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니들 자꾸 날 핫바지 취급하는데. 임모탈 던전에서 대량의 유물 아이템이 쏟아져 나왔다는 거, 내가 모를 줄 알아?"

프로스트의 눈썹이 꿈틀했다.

"……그건!"

"자, 자, 다들 진정하세요."

박정양이 직접 중재하자 프로스트는 깍듯이 고개를 숙이며 자리에 앉았다. 박정양이 홍율을 바라보았다.

"이보시오 협회장."

"뭐요."

말투부터 띠꺼운 여자다. 그렇지만 박정양은 인내심을 가지고 말했다.

"유닉스는 그동안 대한민국에 기여한 바가 큰 기업이오. 미궁 던전 때도 그랬고, 이번 재앙을 위해서도 많은 돈을 투자하고 있어요. 아, 물론 여기 있는 다른 길드와 매니지먼트도 마찬가지지. 그러니 보장 던전 정도는……."

"한국이 아니라 당신네들 뒷주머니에 투자되는 거겠지."

그 말에 박정양의 얼굴이 더 없이 시뻘게 졌다.

"그, 그런 발언은 중대한 모욕이오!"

"네에, 네에. 뒷돈 때문에 커버쳐 주는 거 그만하고, 우리 상식적으로 생각해봐요. 여기 이 새끼들 다 유물 먹으러 가면 국민들은 누가 지킬건데? 또 중소길드 4~5급 애들이나 가면허들 불러다 쓰려고?"

"협회장님! 저희는 당연히 방어 대책을 먼저 마련한 다음에……"

"야, 니들."

길드 마스터의 말을 자른 홍율이 차갑게 내뱉었다.

"미리 못 박아둔다. 보장 던전 같은 건 없다."

"……."

"각 길드마다 딱 1개 공략 파티만 준비해서 보고 해. 그것도 내가 파티구성보고 아니다 싶으면 튕길 줄 알어. 나머지는 도시 방어다."

그 말에 잠자코 있던 길드 마스터들까지 즉각 들고일어나 반발했다.

"재고해 주십시오! 다른 이해관계를 모두 떠나서 공략조에 더 힘을 주는 게 현명한 판단이라고 생각합니다!"

"도시 방어만으로는 이 재앙은 끝도 없어요! 방어 포인트만 무려 14개입니다. 10위 길드 전원이 모든 힘을 쏟아붓는다면 단시간 내에 10개 던전을 클리어할 수 있어요! 남은 4개는 우리가 수비에 가담하고 중견길드에게 공략을 맡기면 형평성 부분에서도 문제없습니다!"

"공략조가 키이자 핵심입니다! 최고 전력을 공략조에 투자하는 건 당연한 선택입니다!"

길드 마스터들이 이런 저런 미사여구로 상위 길드들이 공략조에 들어가야만 하는 이유를 서술하고 있었지만, 홍율의 귀에는 그저 배부른 돼지들이 혓바닥을 나불거리는 것처럼 들렸다.

가증스럽다.

한국 땅에서 꿀이란 꿀은 다 빤 주제에.

"조금 직설적으로 말해서, 한국을 위해 가장 많은 전력과 예산을 투입하는 Top 10 길드에 독점 던전도 보장해주지 않는다면 수지타산이 안맞는다고 생각합니다!"

이 나라의 인재를 빨아들여 길드를 만들고.

이 나라가 내는 세금을 하마처럼 받아먹으며 덩치를 부풀리고.

이 나라에 나오는 던전과 사냥터를 독차지하면서.

"독점 던전 정도의 메리트도 없다면 저희 길드가 굳이 이번 재앙에 나서야 할 필요성을 못 느끼겠네요. 저는 지금 재앙 철수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왜 이 나라를 지키려 싸우지 않지?

"야, 니들."

홍율이 싱긋 웃었다.

"오늘 쫌 많이 깝친다?"

쿠구구구구!

홍율의 몸에서 어마어마한 위압감이 흘러나왔다. 회의장에 있는 전원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렸다.

"길드 마스터 달고 대가리에 똥만 차더니 개념까지 출타했냐? 내가 요즘 너무 많이 풀어줬지?"

그녀가 히죽 웃었다.

"오랜만에 옛날처럼 한번 해봐?"

지독한 살기에 그 대단하다는 Top 10 길드 마스터들마저도 뱀 앞에 선 생쥐처럼 꼼짝하지 못했다.

몇몇은 대단한 공포를 느끼는지 식은 땀까지 줄줄 흘리고 있었다. 그냥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칼이 목젖에 닿아 있는 것만 같았다.

"이보시오! 협회장! 여기가 어떤 자린지 몰라? 진정해!"

합참의장이 다급히 외쳤다. 옆에 앉은 박정양 대통령의 표정도 말이 아니었다. 그제야 그녀는 살기와 위압감을 거두었다.

"이건 명령이다. 쓰레기들아."

그녀가 길드 마스터들을 보며 이를 갈았다.

"여기 있는 대표들 전원, 도시 방어에 투입될 병력 규모 우선적으로 짜서 내 얼굴 보고 직접 보고 해. 그규모에 따라서 니들 공략조 규모가 정해질 거야. 그리고 미리 말해두는데, 니들 티오는 딱 정해져 있어. 못 들어가는 새끼들도 틀림없이 나온다."

그 말에 길드 마스터들의 표정이 더 없이 굳어졌다.

"간다 새끼들아."

홍율은 그 말만 남기고 떠났다.

다들 당혹스러운 얼굴로 웅성거렸다. 정하진은 무표정한 얼굴로, 박정양은 자신이 철저히 무시당했다는 사실에 얼굴이 한계치까지 붉어져 있었다.

"후우우."

그리고 오늘도 집행부 수장 임남진의 이맛살은 늘어만 갔다.

* * *

"그래서 우리 가람은 경남 지역 방어를 담당하게 됐답니다!"

나는 카페에서 신나라 대표의 이야기를 들었다. 엄청 살벌한 회의였다는 생각이 든다.

"고, 고생 많으셨겠네요."

신나라는 딸기 스무디를 스푼으로 떠서 한입에 쏙 넣었다.'으음-' 그녀가 한 차례 감탄성을 흘렸다.

"저는 그냥 회의장에서 얌전히 입다물고 있었어요. 협회장님이 갑자기 막 살기 뿌릴 때는 거품 물 뻔했지만요."

"……하하."

이야기를 들어보니 협회장도, 길드마스터들도, 각자의 입장은 명확했다.

협회장은 대한민국 헌터들을 총괄하는 직책. 국민들의 보호가 최우선이다. 인명에 대한 개인적인 사명감도 있는 것 같고.

반면 길드의 본질은 기업이고, 기업의 최대 목표는 이윤추구다. 그들이 왜 비싼 영입금을 주면서 헌터들을 데려와 던전을 굴리겠는가. 모두 돈을 벌기 위함이다.

이런 두 세력의 이해관계가 상충되는 건 당연했다.

뭐, 그래도 사람 목숨이 걸린 재앙사태에서 자꾸 유물만 밝힌 길드들도 좀 선을 넘었고, 의견들을 그냥 다 묵살하고 힘으로 찍어누른 홍율도 현명하지는 못했다.

두 세력의 갈등을 봉합하는 건 쉽지 않아 보인다.

"김유신 헌터님!"

"아, 넵!"

신나라의 목소리에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헌터님도 이번 재앙에도 참가해주실 거죠?"

"아, 물론이죠. 이번에는 제가 데리고 있는 헌터들 전부 다 데리고 가겠습니다."

"오! 풀멤버인가요? 기대되네요!"

내부의 상황이 불안하긴 하지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역할만 수행하면 된다.

드디어 그동안 키워온 마탑의 전력을 보여줄 때가 왔다.

* * *

유닉스 길드. 강남 신사옥.

프로스트가 와인이 담긴 유리잔을 바닥에 깨뜨렸다. 찢어진 커튼, 엎질러진 음료, 방은 온통 그가 난리를 피운 흔적들로 가득했다.

"허억! 후우! 허억!"

그는 유리창에 머리를 처박고 끌어오른 혈압을 진정시키고 있었다.

"괜찮으십니까? 대표님."

집사복을 차려 입은 남자가 정중히 물었다. 익숙한 일인 듯, 프로스트가 무슨 짓을 해도 그는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내가 이런 꼴 보기 싫어서 이쪽 일 안 하려고 했는데!"

유리창에 머리를 박은 채로, 프로스트가 눈을 치켜떴다.

"왜 별것도 없는 집안의 여자한테 모욕을 쳐 들으면서 허리 꾸벅꾸벅 숙여야 해? 내가 왜? 뭐가 꿀려서?"

그는 화가 풀리지 않는지 바닥에 굴러다니는 값비싼 시계를 걷어찼다. 수억을 호가하는 명품이 유리창을 깨고 날아갔다.

그는 거칠게 숨을 헐떡이다가 고개를 홱 돌리며 말했다.

"안 비서님."

"예. 대표님."

"블랙가드, 타르타노스, NIX 길드마스터에 면담 요청해요. 잠시 얼굴 좀 보자고."

"알겠습니다."

안 비서는 셔츠의 메모장을 꺼내빠르게 스케쥴을 써넣었다.

"그리고 방금 손님이 저택에 도착했는데 어떻게 할까요?"

"손님? 누구?"

"막내 도련님입니다."

"아하. 내 정신 좀 봐. 들어오라고 해요."

"방을 옮기겠습니다."

"아, 괜찮아요. 괜찮아. 그냥 오라고 해요."

안 비서가 문을 닫고 나간 뒤 잠시 후, 정중한 노크 소리가 들렸다.

"막내 도련님이십니다."

"들여보내요."

문이 열리고, 뿔테 안경을 쓴 말끔한 인상의 남자가 들어왔다. 소파에 앉아 와인잔을 쥐고 있던 프로스트가 히죽 웃었다.

"오랜만이다. 서진아."

방에 들어온 정서진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유리잔의 잔해와 찢어진 커튼으로 엉망이었지만, 그는 별 신경을 두지 않고는 입을 열었다.

"무슨 일로 부르셨습니까. 정 대표님."

"에헤이, 가족끼리 너무 삭막한 거 아냐? 예전처럼 친근하게 둘째 형으로 불러줬으면 좋겠는데."

"용무 없으시면 가보겠습니다."

"알았다, 알았어. 재미없는 건 여전하네."

프로스트는 손가락을 까닥하며 앉으라는 손짓을 했다. 정서진은 맞은 편 의자에 앉았다.

"한잔할래?"

"부른 용건이나 말씀하시죠."

"그래, 그래. 음."

프로스트는 손에 쥔 와인잔을 살살굴리다가 말했다.

"일단은 공인 헌터가 된 거 축하한다. 동생아."

"……."

"집안에서 아무 말도 안 했던 이유는, 드디어 네가 분수를 깨달았구나 하고 생각했기 때문이야."

그가 어깨를 으쓱했다.

"이제 사업욕심은 다 접은 거지 응?"

"……."

"그래. 헌터 일 좋지. 몬스터 때려잡고 그 시체를 팔아서 먹고사는 천한 백정 짓. 힘든 일이지만 이 변질 된 세계에선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지. 그래도 요즘은 헌터가 되면 스타 대접도 받고, 수입도 짭짤하니까 헌터 직종에 거부감이 없어서 다행이야."

줄줄 이야기를 늘어놓던 프로스트가 느물거리며 웃었다.

"이제야 좀 개가 될 각오가 생겼어?"

"그건 정 대표님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나? 아, 나는 헌터가 아니야. 장사꾼이지."

프로스트가 정정했다.

"공인 2급이 된 건 필요에 의해서야. 길드 마스터라는 직책은 어느 정도 힘이 필요한 게 흐름이니까. 전문 경영인 출신이 길드 마스터면이 업계에서 싹 무시당하더라고. 좀 속된말로 하면…… 그래, 개장수쯤 되겠다. 형이나 누님들이 하는 일에 비해선 썩 명예로운 일은 아니지. 흐흐, 그건 인정해."

정서진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냥 한번 씨불여 보라는 듯 가만히 있었다.

"네가 개가 되겠다는 각오를 한 것도 기특한데…… 최근 우리 집안을 위해 선물을 하나 준비하고 있더라?"

"……선물?"

"에헤이, 왜 또 모르는 척하실까. 너 요즘 김유신이랑 붙어 다니던데."

정서진의 눈에 한 순간 동요가 일어났다.

"이번에도 비밀 선물을 준비하고 있는 거 맞지? 햐, 우리 집안이 포션에 눈독 들이고 있다는 건 또 어떻게 알고! 언제쯤 줄 거야? IT업계는 첫째 누나한테 바쳤으니까 이번 거는 형한테 줄 거지? 그치?"

정서진은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미소를 보였다.

"미친 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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