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만 마탑주 168화
"아우섬? 아! 아우섬이라면 그 새로운 골렘 개발터 거기 맞지?"
내 물음에 정서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맞습니다."
"좋아. 한번 가보지 뭐. 모두의 힘을 합친 결과물이니까 다른 관리자들도 같이 불러서 가자."
"좋은 생각입니다."
에아가 관리자들을 호출하러 갔다.
우리는 먼저 5층으로 이동했고, 잠시 후 4층의 나대용과 3층의 은솔이 우리가 있는 층으로 올라왔다.
"부르셨습니까! 스승님!"
"오빠야!"
언제나 처럼 쪼르르 달려온 은솔이 내 다리에 찰싹 붙어서 말했다.
"우리 어디 가는 고야?"
외출이라는 말을 들었는지 은솔이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물었다.
"아우섬에 갈 거야. 솔이는 가봤어?"
"안 가봤어! 아우섬에 맛있는 거 많아?"
"마, 많지 않을까……"
옆에서 진보라가 후후후 의미심장한 미소를 흘리고 있었다.
"선배님도 가보시면 깜짝 놀랄걸요! 진짜 휴양지가 따로 없다니까요? 이번 사업 실패하면 그냥 섬휴양지 코스로 내도 될 듯!"
"그런 좋은 곳을 니들끼리만 다녀왔단 거지?"
"헤헤."
진보라가 민망한 웃음으로 넘어갔다. 내가 탄자니아에서 개고생하는 동안, 이 녀석들은 꿀이란 꿀은 다빨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럼 시작하겠다."
사미아가 휠체어를 움직여 워프게이트에 다가갔다. 그녀가 게이트를 조작하자, 게이트 몸체에 불이 들어오며 시동이 걸렸다.
뒤이어 그녀는 손에 든 마법진 판을 워프게이트의 바닥 아래 빈 공간에 꽂아 넣었다.
판이 공간과 딱 맞아떨어지며 워프게이트와 마법진이 연동됐다.
"좌표 입력 완료. 게이트를 작동하겠다."
확실히 사미아는 워프 마법에 적성이 있었다.
현재 Lv.5의 워프 공학 특성을 받은 내가 가능한 수준은 '연동 마법진'을 그려놓고, 워프게이트와 연결해 왔다 갔다 하는 정도다.
하지만 사미아가 만든 저 마법진을 이용하면, 5층 워프게이트에서 해당 위치 좌표에 직접 게이트 출구를 만들어낼 수 있다.
이걸로 남극에도 다녀오고, 남태평양도 다녀왔다.
우우우우웅!
연동이 끝나고 마침내 워프게이트가 완전히 열렸다.
"내가 먼저 가지."
사미아가 우리를 돌아보며 말했다.
"10분 후에도 내가 들어오지 않는다면 좌표 미스로 공간의 먼지가 됐거나, 바다에 빠졌거나 지하에 처박혀 죽었다고 생각하고 새로운 5층 관리자를 뽑도록."
"사미아 헌터니임!"
진보라가 기겁한 표정으로 소리치자 사미아는 '농담이다'라고 대꾸하며 워프게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에아가 보고 했다.
"차원지기로부터 메시지 확인. 좌표 설정이 안전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좋아. 가자!"
우리는 다 함께 워프게이트로 들어갔다.
좁은 하수도를 타고 나아가는 어지러운 느낌을 받는 것도 잠시, 내 앞에 새로운 시야가 펼쳐졌다.
'오……'
바다다. 드넓은 바다가 보인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에는 바다새가 날아다니고, 고개를 숙여보면 빛나는 백사장이 보인다.
여기가 바로 아우섬.
인도네시아에 있는 작은 섬이다.
이 근방의 섬들이 대부분 그렇듯, 몬스터들이 우글거리는 '오지'지만 우리가 돈을 주고 정식으로 사들였다.
"우왓!"
"꺅!"
뒤이어 워프 마법진에서 나대용과 진보라가 등장했다. 그들은 어지럼증을 호소하며 비틀거렸다.
"재밌어!"
어른들과는 달리 은솔은 방방 뛰면서 나타났다. 간만의 외출이 기분 좋은지 그녀는 꺄르르 웃으며 섬을 뛰어다녔다. 마지막으로 정서진까지 나왔다.
'그런 그렇고……'
보면 볼수록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섬이다. 진보라가 말했던 대로 나중에 마탑 멤버들끼리 여름 피서라도 와도 될 것 같았다.
"서진아. 진짜 여기 우리가 써도 돼? 섬 엄청 좋은데?"
"물론입니다. 덧붙이자면 몬스터들이 끊임없이 나타나는 통제구역이라 헐값에 사들였습니다. 예산을 상당히 절약했죠."
당국에서는 이 섬이 통제구역이라는 사실을 필사적으로 숨겼을 것이다.
구매가 확정되고 '바보들, 삽질했네.' 하는 분위기였겠지만, 전부 정서진에게 놀아났을 뿐인 이야기다.
"그럼 이 섬의 통제구역은 필드 마법으로 막아둔 거야?"
"바로 그렇습니다, 스승님!"
어필 찬스를 기다리고 있던 나대용이 빠르게 끼어들었다.
"몬스터들이 나오는 리젠 구역은 섬의 북부에 있습니다! 북부에 생성된 몬스터들이 남부로 내려오는 식이죠! 그래서 저희 4층은 통제구역을 부분적으로 무력화시키는 '신성화' 필드 마법을 사용! 몬스터들의 통제구역을 반으로 갈라서 놈들을 북부에 가두어 버린 겁니다! 몬스터가 나올리가 없죠!"
"아, 그렇구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손가락을 움직였다.
"그럼 쟤는 뭐예요?"
-키르륵!
웬 바닥을 기어 다니는 도마뱀 같은 몬스터가 우리를 보며 혓바닥을 날름거렸다. 은솔이 눈을 반짝이며 소리쳤다.
"공룡이다!"
"공룡이 아니라 도마뱀이야."
진보라가 정정했다. 태연한 반응인다른 관리자들과는 달리, 나대용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워했다.
"그, 그럴 리가! 분명히 리젠 구역을 정밀하게 측정해서 필드 마법을 깔았는데!"
"살짝 삐져나온 공간이 있는 거 아니에요?"
내 말에 표정이 흙빛이 된 나대용이 즉시 머리를 바닥에 처박았다.
"죄송합니다! 전부 제 불찰입니다! 4층 관리자 사퇴하겠습니다!"
……이게 뭐라고 사퇴까지.
그때 정서진이 입을 열었다.
"2랭크 몬스터 갈리안. 열대 지방에 주로 보이는 비선공 몬스터입니다. 먼저 공격하지 않는 이상 해를 끼치진 않겠죠."
실제로 갈리안은 우리를 보더니 빠르게 숲으로 도망쳐 버렸다.
'에아. 탐지 마법으로 남부에 다른 몬스터가 있는지 확인해 줄 수 있어?'
-방금 확인했습니다. 갈리안 세 마리 탐지 완료. 그 외에는 생체 반응이 없습니다.
나는 모두를 돌아보며 말했다.
"에아가 별문제 없다네요. 다음 달에 4층에서 필드 마법 설치할 때 위치를 수정하는 걸로 하죠."
"소, 송구합니다. 스승님."
나대용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차라리 지금 실수해서 다행이네요. 아직은 아우섬이 시범단계라 괜찮지만, 나중에 이 섬에 사람들이 들어오면 인명과 직결되는 문제에요. 대용 씨가 각별히 신경 써주세요."
"며, 명심하겠습니다!"
탄자니아 전투를 준비할 때는 워낙 험하게 굴리고 그랬으니까. 가끔은 실수해도 너그러이 넘어가는 것도 좋겠지.
"그럼 이제 사업장으로 모시겠습니다."
정서진이 앞장서서 걸어갔고, 우리는 잡담을 나누면서 그의 뒤를 따랐다. 섬 중앙으로 들어서니 멀리서 몬스터들의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오, 진짜다.'
데바의 눈으로 확대해서 보니, 북부의 몬스터들이 인간 냄새를 맡고 우르르 몰려와 있었다.
그러나 통제구역의 경계에서 노려보기만 할 뿐이지 이쪽으로 내려오지는 못했다. 필드마법이 제대로 적용되고 있다는 증거다.
그렇게 10분 정도를 더 걸어가니 널찍한 벌판이 나왔다.
여기에는 한때 공장으로 쓴듯한 폐건물이 있었는데, 그 안에 포션 조제 골렘들이 열을 지어서 있었고 간이용 포션 솥도 배치되어 있었다.
"오! 공장 외견은 제법 그럴듯한데?"
"그쵸 그쵸?"
신이 난 진보라가 뛰어가서 팔을 휘저으며 설명했다.
"지금 1층에 있는 설비들로는 국내의 포션 수요를 충족하는 것도 벅차요. 그렇다고 골렘들을 더 늘리면 1층이 너무 비좁아지고요! 그래서 이렇게 새로운 터를 찾아서 작업장을 만든 거예요!"
"그럼 여기가 해외 작업장인 거네."
"네! 해외의 알케미아 사업장에서는 모두 아우섬에서 만들어진 포션들이 출고될 거예요!"
그녀는 포션 조제 계획에 대해 설명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은솔의 골렘들이 포션을 더 빠르게 만들 수 있도록 '골렘 엘릭서'라는 신작 양산품을 개발했다고 한다.
골렘의 동작과 호환이 완벽하게 이루어지는 제품이지만, 일반 엘릭서와 큰 회복량 차이는 나지 않는다.
이것으로 포션의 양산 속도를 파격적으로 높일 수 있다.
"오빠야! 포션 골렘들한테도 새로운 기능이 추가 됐어!"
이번엔 은솔이 설명을 이어서 했다.
은솔이 업데이트한 골렘들은 이제 포션 조제뿐만 아니라 포장 작업까지 가능해졌다. 골렘들은 완성된 포션을 병에 담아서, 컨베이어 벨트에 올린다.
포션은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가다가 도착점에서 플라스틱 파레트에 차곡차곡 쌓인다. 파레트에 포션이 다 차면 기다리고 있던 작업용 골렘이 꽉 찬 것을 인지하고 파레트를 워프게이트로 옮긴다.
"런던, 파리, 뉴욕, 도쿄 등 알케미아 지점 7개국으로 포션을 운반할 독자적인 워프게이트를 개발 중이다."
바로 사미아가 이어서 설명했다.
목표한 물량이 확보되면, 그녀가 워프게이트를 작동시켜서 7개국의 더미 공장으로 포션들을 옮길 것이다.
"그리고 바로 4층 관리자인 제가!"
나대용이 팔을 척 뻗었다.
"필드마법 신성화로 섬의 '통제구역 영역'을 제거해 이 섬을 안전한 영역으로 만들었습니다! 아직 지속시간은 '달' 단위밖에 안 되지만 빠짐없이 갱신하겠습니다!"
"좋네요! 참, 서진아. 그런데 포션재료는 어떻게 조달할 거야? 필요한 물량이 장난 아닐 것 같은데."
정서진이 입꼬리를 올리며 안경을 치켜세웠다.
"알고 계십니까? 엘릭서의 주재료인 흑산, 호송, 할리는 인도네시아의 주요 수출품입니다."
"오오, 그래?"
"열대 지방은 식물형 몬스터들의 천국이니까요. 값싸고 저렴한 부산물들이 끊임없이 쏟아집니다. 플레이어가 아닌 일반인들도 전통적인 방식으로 식물 몬스터를 사냥할 정도라고 하더군요. 이미 현지 물류업체와 비밀 계약을 체결해 둔 상태입니다. 탑주님의 허가가 떨어지는 즉시, 배를 타고 포션 재료들을 이섬에 실어 날라줄 겁니다."
"크으, 역시 빈틈이 없구나."
완벽하다. 멋지다.
특히 내가 이상적이라고 느끼는 점은, 이번 해외진출 프로젝트는 모든 관리자들의 노력이 들어갔다는 사실이다.
진보라의 포션.
정서진의 기획.
은솔의 포션 조제 골렘.
나대용의 필드마법.
사미아의 워프게이트까지.
"유일한 변수는 내 워프게이트로군."
사미아가 말했다.
"한 달 안에 정상적인 성능을 내는 워프게이트를 제작하는 게 목표다. 실망시키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지."
"물론 사미아를 믿습니다."
"그리고 정서진 헌터. 워프게이트는 마정석 먹는 괴물이다. 많은 마정석을 이 섬에 확보해줬으면 좋겠군."
"예. 방법을 강구해 보겠습니다. 다른 관리자분들도 요구할 내용이 있다면 지금 말씀해 주십시오."
모두가 모여 머리를 맞대고 아우섬의 운용에 대해 고민했다.
"섬에 관리 인력을 뽑긴 뽑아야겠네요."
"선배님! 다음 마법사들은 1층 멤버들로 충원해 주세요!"
"인도네시아 현지인으로 고용하는 건 어떻슴까!"
"괜찮은데. 관리자 일이야 보라가 해주면 되고."
아이디어가 폭발했다. 다들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좋아. 오늘 회의는 여기까지!"
"수고하셨습니다!"
분위기가 좋다.
아무래도 우리는 떼부자가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