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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마탑주-167화 (167/337)

나 혼자만 마탑주 167화

우당탕탕!

나와 사미아는 서로 뒤엉켜 5층의 워프게이트에서 빠져나왔다. 우리는 거친 숨을 헐떡이며 5층 바닥에 드러누웠다.

"위, 위험할 뻔했다아."

"정말 아슬아슬했군. 기지 안에 미리 워프게이트 퇴로를 만들어놓길 잘했다."

"두 분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허공에서 빛무리와 함께 나타난 에아가 시원한 생수와 수건을 건넸다.

"땡큐 땡큐."

수분을 보충하면서 한숨 돌리고 있는데, 사미아가 말했다.

"김유신 헌터. 샘플은?"

"여기 확보했습니다."

내가 팔을 들어 유리병을 흔들며 말했다. 사미아가 기겁하며 물러났다.

"조, 조심해라! 깨져서 내용물이 몸에 떨어지면 몬스터가 될 지도 모른다!"

"아 참. 그렇죠?"

나는 상체를 일으켜 유리병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사람을 몬스터로 만드는 약물이라…….

"에아."

"부르셨습니까. 탑주."

"이건 2층의 봉인된 서재에 넣어둬. 보안 마법은 그쪽이 최고니까."

"알겠습니다. 다른 관리자들에게도 각별히 주의하도록 알려놓겠습니다."

"그리고……"

나는 혹시나 해서 가져온 USB를 꺼내보았다. 굳이 켜보지 않아도 먹통이겠지만 말이다.

"데이터 업로드 중에, 혹시 네가 직접 기억하고 있는 정보도 있어?"

"긍정. 중요 정보들 몇 가지는 직접 기억해 뒀습니다. 그중에서는 남극 기지 외에 다른 연구 시설의 위치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잘했어!"

역시 에아는 최고라니까. 유능한 비서 덕분에 한숨 돌렸다.

"으흐흐흐, 기다려라, 웨인! 열 배로 갚아주마."

내 혼잣말을 들은 사미아가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원래 마탑은 이런 일을 하는 조직인가? 마치 세계 방위군 같구나."

"꼭 그런 건 아니에요."

내가 옷을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실 이렇게 대규모로 적대 세력을 박멸하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에요. 그냥 제가 마인을 더럽게 싫어해서요."

"……음, 그렇군. 마인은 이 시대의 가장 큰 악이자 재앙이지. 헌터가 재앙을 막는 건 당연한 일. 나도 적극적으로 돕겠다."

"감사합니다. 사미아가 도와주신다면 큰 힘이 될 거예요."

그동안 외부 인원 수혈은 비전투계 인원들 위주로 이루어졌다.

이렇게 바로 공인 3급 같은 거물을 데리고 온 건 처음인데, 확실히 나와 비슷한 실력의 프로 헌터가 동료니까 많은 일들이 편해진다.

앞으로도 어지간한 일은 나와 사미아 단둘이서 움직이는 것만으로 충분히 해결 가능할 것이다.

"탑주. 필드 마법으로 몬스터들을 불러 적의 시선을 끈 사이 남극 시설을 파괴한 건 좋지만, 다음 시설부터는 방비가 상당할 거라고 사료됩니다."

에아의 말에 사미아도 고개를 끄덕였다.

"음. 나도 에아의 말에 동의한다. 이번엔 운이 좋은 편이었지만, 큰 타격을 입은 마인들이 가만 있을 리가 없지."

맞는 말이다. 다음번엔 웨인 존스는 물론, 공인 3급 이상의 실력자들이 시설을 지키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마탑에는 방법이 많죠."

"……음?"

"수 많은 공격수단이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그동안 쌓아온 것들이 적은 게 아니거든요."

나는 주먹을 착 맞부딪치며 말했다.

"일주일 안에 두 기지 모두 박살내겠습니다."

* * *

아이슬란드.

베스트만 제도.

"……."

웨인 존스는 심각한 표정으로 메시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메시지에 첨부된 사진에는 남태평양에 위치한 또 하나의 비밀 기지의 모습이 찍혀 있었다. 마인들이 섬을 사들여 일반인을 쫓아내고 연구기지를 세운 곳이었다.

그러나.

'……화산 분화라니.'

사진에는 아무것도 없이 휑한 바다뿐이었다. 거대한 화산이 일어나 기지는 물론 섬 자체가 흔적도 없이 가라앉혀졌다.

물론 그 섬에도 화산이 있었지만, 아무런 분화의 낌새가 보이지 않는 휴화산이었다. 이를 생각했을 때 웨인은 한 가지 추측할 수 있는 바가 있었다.

'김유신……!'

웨인이 이를 뿌드득 갈았다.

화산 분화라면 키소와의 기적으로 알려진 김유신의 그 대마법일 가능성이 높았다. 아니, 김유신의 소행이 확실했다.

그때 무전기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웨인 존스. 우리는 이 일련의 사태가 자네와 무관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

-자네가 PHC의 시설로 대마도사를 공격한 이후, 대마도사는 그 보복으로 남극 기지와 남태평양 기지까지 파괴했다. 내부에서는 자네의 섣부른 행동이 자초한 일이라고 지적하는 자들도 적지 않다.

"쓰레기들이."

웨인은 분노를 숨기지 않았다.

"탄자니아를 멸망시키고, 그에 방해되는 모든 인간들을 절멸하라는 게 너희들의 명령이었다! 나는 그 명령을 충실히 이행했을 뿐이다. 이제 와서 그 꼬맹이 하나의 움직임에 겁먹어 꼬리를 말 생각이냐!"

-흥분을 가라앉혀라, 웨인 존스. 우리는 아직 그대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접은 게 아니다. 이번 아이슬란드 기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사수하도록.

"나도 알아!"

웨인은 자기 쪽에서 통신을 끊고는 새로운 시가를 꺼내 입에 물었다.

좀 처럼 분노가 가라앉지 않았다.

'김유신은 한국에서 기자회견까지 했어. 놈이 한국에 있는 건 확실해. 그런데 남극 찍고 바로 남태평양? 상식적으로 이런 움직임이 가능할리 없어. 사미아를 영입했다더니 혹시 텔레포트를 쓴 건가? 아니야, 그녀는 망가졌다. 전성기 시절이라고 해도 이런 대륙 간 거리를 텔레포트로 이동하는 건 그녀로선 불가능해.'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 없었다. 그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무슨 수를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김유신이 이 시설을 노리러 올 거라는 건 확실하다. 어떻게든 이 기지 만큼은 지킨다.'

저벅.

발 소리가 들렸다. 웨인은 인간의 발걸음 소리가 이렇게 크고 선명히 들릴 수도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저벅.

두 번째 발소리 만에, 웨인은 고개를 들어 상대를 보았다.

새하얀 정장에 순백의 목도리를 두른 조각 같은 외모의 남자가 지나가고 있었다.

저벅.

그가 누군지, 웨인은 깨닫고 말았다. 온몸이 딱딱하게 얼어붙는 게 느껴진다.

저벅.

걸어가던 남자의 시선이 웨인 쪽을 바라본다. 그와 시선이 마주한 순간, 웨인은 자신도 모르게 생각했다.

'……죽는다!'

저벅.

웨인을 보던 남자의 시선이 다시 앞으로 향했다. 웨인은 안도하면서도 온몸이 땀범벅이 되는 것을 느꼈다.

'큭!'

남자가 사라지자 웨인은 전속력으로 내달렸다. 미친 사람처럼, 평소처럼 의수를 돌릴 때마다 더 광기에 빠진 얼굴로.

치직!

-여기는 지휘실! 현장의 전 헌터들은 응답하라!

웨인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여기는 지휘실! 웨인 존스! 어디있나!

그는 무전기를 던져 버렸다. 그러곤 이 섬에 올 때 탔던 마력 엔진 보트 위에 올라탔다. 보트가 급발진하며 물살을 갈랐다.

-여, 여기는 지휘실! 침입자가 나타났다! 사, 사, 상대는……! 크아아아아악!

치직! 칙!

"허억! 허어억! 허억!"

웨인은 얼굴에 땀이 범벅된 채로 뒤를 돌아보았다.

하늘에 마나로 이루어진 거대한 성이 떠 있었다.

저런 게 대체 어디서 갑자기 툭 튀어나왔단 말인가. 그저 그 자리에 원래부터 있었다는 듯 떡하니 존재하고 있었다.

'……천공성주! 공인 1급이 대체 왜 여길!'

웨인은 이마를 감싸 쥐었다. 이 기지의 위치를 아는 외부인은, 단언컨대 김유신밖에 없었다.

'설마.'

설마 또 김유신이 부른 건가.

천공성주에 닿아 있는 인물은 연맹 최상층부와 프랑스 헌터 협회장 정도뿐이라고 들었다.

'대체!'

빠드득.

웨인이 이를 갈았다. 자이언트에, 파라오에, 이번에는 천공성주라니.

'대체 어디까지 연결되어 있는 거냐 네놈은……!'

* * *

"정말 큰일을 해주셨습니다! 성주!"

프랑스군 간부가 경례를 올려붙이며 말했다.

천공성주라는 이명을 가진 알베르 클로스테르망은 현장에서 호화스러운 의자에 앉아 차를 즐기고 있었다.

"최악의 재앙 발현지라고 해서 왔는데."

그가 고개를 돌려 마인들의 지하기지를 보았다.

바닥에 숨겨져 있던 지하기지의 위로는 직경 30m가 넘는 거대한 빛의 기둥들이 박혀 있었다.

"싱겁군."

"……하, 하하! 그래도 헛걸음을 하신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안에 뭐가 있었지? 정말로 9랭크급 재앙인가?"

"9랭크급은 아니지만, 충분히 대재앙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 문제였습니다."

간부는 새삼 진지한 표정으로 데이터들을 보여주었다.

"마인들과 그 추종자들이 인간을 몬스터로 만드는 약품을 개발하고 있었습니다."

"……흠."

"이 연구가 계속 진행됐다면 큰일이었겠지요. 놈들이 메인 컴퓨터는 EMP 디바이스로 망가뜨리고 갔지만, 상당한 양의 샘플과 연구자료를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모두 천공성주의 덕분입니다!"

차를 한 모금 맛본 천공성주는 눈을 게슴츠레 뜨고 말했다.

"세계 정부에 재앙을 예고하는 자. '오라클'이라고 했었나?"

"아, 넵!"

"마음에 안 드는군."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돌아가겠다. 자료가 정리되면 보고하도록."

"아, 알겠습니다!"

* * *

"놀랐다."

나는 1층 로비에서 사미아와 함께 에아의 보고를 듣고 있었다.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오라클이라는 예언 능력자가 있고, 사실 그 정체가 마탑이었다니……"

"저도 제 의도를 가지고 오라클을 움직인 건 처음이네요."

"문제는 없겠는가?"

"없을 거예요. 제가 뭐 거짓말을 한 것도 아니고, 대재앙급 사태는 맞으니까요."

나는 세계 뉴스를 검색해 보았다.

[충격! 인간을 몬스터로 감염시키는 약품 발견! 마인들이 비밀 기지에서 자체 개발.]

[천궁 성주 대활약! 마인 기지 완전 박멸, 중요 데이터 확보.]

[프랑스 정부, 17시 기자회견.]

[전 세계를 충격으로 몰아넣은 감염 약품 사태! 한국도 안전지대 아니다.]

"호오, 천공성주라면 프랑스의 공인 1급이군. 오라클은 이런 거물까지 움직일 수 있단 건가."

"천공성주가 직접 나선 건 저도 의외네요."

내가 사과 한 조각을 입에 넣으며 말했다.

"그래도 1급 헌터가 나서준 덕분에 자료들을 문제없이 회수한 모양입니다. 저희들과는 달리 기지 자폭도 막은 것 같아요."

"그렇군."

"이걸로 그동안 잠잠하던 마인들이 다시 한번 세계에 노출됩니다. 게다가 최악의 재앙으로 발전할 뻔한 이번 일을 전 세계가 알게 됐으니, 다시 한번 세계적인 차원에서 마인 수색과 소탕이 이뤄지겠죠."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최대의 성과를 냈다. 나로서는 상당히 만족스러운 결과다.

웨인 존스가 천공성주에게 죽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정도면 궤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혔다.

"선배니임! 출근했습니다!"

진보라가 마탑 정문으로 들어왔다.

"아, 사미아 씨도 계셨네요!"

"어서 와라. 진보라 헌터."

"아 참! 두 분 들었어요? 글쎄 마인이 인간을 몬스터로 만드는 약물을 만들었대요!"

"……."

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듣다가, 뒤늦게 깜짝 놀란 반응을 취했다.

"와, 진짜?"

"선배님 설마……"

진보라가 수상쩍어하는 눈으로 나를 보았다.

"이번 일도 선배님이 배후에 있는 거예요?"

"흠흠."

"아, 못 살아 정말! 워프 마법이 생기자마자 어쩜 이렇게 날뛸 수가 있어요?"

"마탑은 세계적으로 놀아야지."

진보라에 이어서 정서진도 마탑에 출근했다. 그가 웃는 낯으로 말했다.

"아이슬란드 소식 잘 들었습니다. 탑주님."

……얘는 뭐 척하면 척이네.

"그보다 탑주님."

"왜 그래?"

"마탑의 비지니스에 대해 면담 요청을 드리고 싶습니다."

"해, 해. 부담 없이 해."

우리 둘이 힘을 합쳐서 처리해야 할 부분을 정서진에게 다 맡겨놓고 있는 것도 미안하던 참이었다.

정서진은 기다렸다는 듯 서류가방에서 문서들을 꺼냈다.

"가장 중요한 것부터 하죠. 마탑의 새로운 영지인 아우섬을 확보했습니다. 한번 가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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