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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마탑주-165화 (165/337)

나 혼자만 마탑주 165화

탄자니아 정규군의 주둔지, 무트와라.

"앤더슨 대위님. 이야기 들으셨습니까? 어거스틴 장군이 집무실에서 시체로 발견됐답니다!"

"허이구, 이 좋은 시기에 무슨 뒤숭숭한 일이래냐."

"훌리안 님이 당했던 방식과 똑같이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아마 백익의 짓이겠죠. 다들 쉬쉬하고 있어요."

"반군을 없앤 것에 대한 보복이라고 해석해야 하나? 이것 참."

정규군 간부 두 명이 총기를 닦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옆에는 카림이 탄약통을 옮기고 있었다.

"카림 헌터도 조심해! 아직 백익이 살아서 활동하는 것 같으니까."

"아, 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카림은 군 간부들에게 밝게 웃어보이고는 탄약통을 내려놓았다.

그녀야말로 이 탄자니아 정규군의 분위기 메이커였다. 매사에 활기 넘치는 성격에, 헌터라고 거들먹거리는 일 없이 누구에게나 예의 발랐으며, 꼼꼼한 성격으로 업무에도 빈틈이 없었다.

한때는 탄자니아 전선 전체가 압도적인 존재감을 가진 붉은 머리의 사령관에 푹 꽂혀 있었지만, 그 사령관이 모국으로 돌아가고 나서는 다시 카림의 독무대였다.

그녀를 사모하는 군 간부들이나 병사들이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았다.

"이제 퇴근이야?"

"네! 방금 옮긴 게 마지막이었네요."

"사미아 공주도 떠난 이상 카림 헌터의 역할이 더 막중해졌어."

"그럼, 그럼. 카림 헌터야 말로 차기 흑익이지."

흑익이라는 말에 카림은 얼굴을 붉히며 손사래를 쳤다.

"아뇨, 아뇨! 저 같은 건 사미아님의 발끝도 못 따라가요!"

"하하하! 역시 겸손하다니까."

"너무 겸손한 것도 안 좋습니다, 헌터님! 이번 공로를 인정받으면 공인 4급이라면서요? 힘내십쇼!"

"가, 감사합니다!"

쑥스러워 하는 카림을 보며 너털웃음을 터뜨리던 간부가 뒤늦게 그녀의 손에 들린 꽃을 보았다.

"흰 꽃이군. 묘지에 가려고?"

"네. 훌리안 님 묘지에 찾아 갈 생각이에요."

"……음, 그래. 훌륭한 분이셨지."

"살아 계실 때 절 손녀처럼 대해주셨죠. 이번에 인사라도 드리러 가려고요."

"그래, 그래. 힘내라고."

"두 분도 수고하세요."

살갑게 손까지 흔들면서 간부들과 작별 인사를 나눈 카림은 고개를 되돌렸다. 어느새 그녀의 표정은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일과를 마친 카림은 무트와라의 산길을 올랐다. 길을 지날 때마다 그녀의 손에 들린 꽃의 종류도 점점 다채로워졌다.

'드디어 전쟁이 끝났다.'

그녀는 눈을 감고 이번 탄자니아전을 상기했다.

얼마 전만 해도, 탄자니아 전선의 상황은 답이 보이지 않을 만큼 처참했다.

카림 본인도 헌터였지만, 스스로 이 전황을 바꿀 만큼 강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기다렸다. 탄자니아의 누구나 그랬듯, 이것은 '인내'의 싸움.

버텨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기회가 찾아왔다. 한국의 공인 3급 헌터들이 키소와를 해방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다.

이 기회는 절대로 놓칠 수 없었다.

우선 그 두 사람과 친해지기 우]해, 군 간부에게 부탁해서 직접 두 사람의 무트와라 안내역을 맡아 자연스럽게 접근했다.

두 사람은 첫 지휘부 회의에 참가 한 뒤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김유신은 홍연을 사령관 자리에 올려놓을 계획을 늘어놓았지만…….

한심했다. 카림이 보기엔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파격적인 공헌을 쌓고 모두의 인정을 받아 훌리안에게 정식으로 총사령관 자리를 받아내겠다고?

안타깝지만 그 늙은 쥐는 절대 그럴 위인이 아니다. 과거의 그가 이룩한 전설에 누구나 감화되어 있지만, 훌리안 카바예로야 말로 이 탄자니아를 좀 먹는 악성 종양이다.

움직일 기회는 생각보다 빠르게 찾아왔다.

그날 밤, 반군이 무트와라에 기습을 감행했고, 카림은 곧장 늙은 쥐가 있는 지휘부 막사로 달려갔다.

물을 찾는 그에게 약을 탄 물을 넘겨 죽이고, 백익이 한 짓으로 꾸몄다.

이렇게까지 해줬는데 받아먹지 못하면 실망이었겠지만, 김유신은 영리하게 이 기회를 살렸다.

홍연을 사령관 자리에 앉혀 탄자니아 지휘부를 손에 넣었고, 한술 더 떠서 반군까지 제압했다.

그녀는 김유신에 대해 철저히 공부했다. 한국에서의 일화와 커리어까지 샅샅이 조사했다. 쓸만한 인물인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은 경험이 적고 무엇보다 잔혹함이 부족하다.

그런 부족한 점을 채우는 것은 순전히 카림 본인의 몫이었다.

눈여겨보고 있던 웨인 존스가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며 다르에스살람에 간다고 했을 때, 유신에게 지나가는 대화로 자이언트에 대한 정보를 흘린 것도 그녀였다.

김유신이 관심을 가지는 듯한 사미아를 이용해, 그녀의 입으로 'PHC'와 '아프리카 포기 주의자'들에 대한 정보를 김유신에게 제공했다.

그 외에도 수 많은 요소요소마다 카림의 어시스트가 적용됐다. 강경파인 스콜피온을 설득한 것도 그녀였고, 두 젊은 외국인 사령관에 반감을 가졌던 군 간부들을 영원히 침묵시킨 것도 그녀였다.

백익이 배후에서 탄자니아의 멸망을 조종했다면, 카림은 배후에서 자신의 방식으로 탄자니아를 지켰다.

탄자니아라는 무대 위.

한쪽에는 타베스, 다른 한쪽에는 김유신과 홍연을 놓고, 백익과 카림은 한 수씩을 주고 받았다.

그녀가 생각하기엔 대단한 일은 아니었다.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두 3급 헌터들과 같은 힘과 영향력은 없지만, 감정을 죽이고 한없이 잔혹해질 수는 있다. 강자들이 손대기 꺼려 하는 끔찍한 일과 추접스러운 일도 기꺼이 도맡을 수 있다.

그것이 내려온 기적을 붙잡는 잡초의 방식.

그녀는 산을 모두 올라와 무덤가에 도착했다.

[탄자니아 사령관 훌리안 카바예로. 여기에 잠들다.]

아르헨티나 정부에서는 레전드 헌터의 시신을 요구했지만, 탄자니아에 묻히고 싶다는 훌리안의 유언장이 발견되면서 이곳으로 옮겨왔다.

그는 죽을 때까지 자신을 버린 조국을 원망했다.

카림은 묘비 앞에 무릎을 꿇고, 산에 올라오면서 딴 꽃들을 묘비에 내려 놓았다.

"거긴 있을 만해요? 훌리안."

그녀는 허리춤의 단검 케이스를 빼내서 양손으로 천천히 열었다. 시뻘겋게 피가 말라붙은 단검이 뽑혀 나왔다.

어거스틴 장군을 죽인 그 단검이다.

"맛 좀 볼래요? 당신이 그토록 원했던 앙숙의 피예요."

그녀는 단검을 묘비 앞에 꾸욱 박아놓고는 그 위로 아르헨티나산 와인을 흩뿌렸다. 피 묻은 단검에 적포도주가 주르륵 흘러내려 풀밭과 묘비를 적셨다.

어느 것이 피고, 어느 것이 포도주인지 모르게 되었다.

"사실 당신에게 원한은 없어요. 당신은 좋은 사람이고, 유배지인 이나라를 누구보다 사랑해줬으니까요."

그녀가 빈 포도주병을 내려놓았다.

"하지만 당신은 몸도 마음도 병들고 노쇠했어. 그 병적인 우유부단함때문에 목숨을 잃은 군인들이 한둘이 아니었죠. 사령관으로서는 최악."

카림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미안하지만, 살 사람들은 살아야 하지 않겠어요?"

어거스트 장군도 마찬가지.

연맹이 이 나라에서 물러나면 그의 권력이 너무 강해진다. 어거스트 장군은 독단적이고 욕심이 많아 전형적인 폭군의 기질을 가졌다.

브레이크가 사라지고 억누른 본성이 튀어나오기 전에 지금 처리하는 게 맞다.

"쓰레기 같은 년이라고요? 네, 부정하진 않을게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사람 사는 게 다 이런데."

"카림!"

등 뒤로 들리는 목소리에, 그녀가 검은 머리를 휘날리며 돌아보았다.

연맹군 군복을 입은 젊은 장교가 숨을 헐떡이며 나타났다. 숨이 차보였지만 카림을 본 얼굴에는 미소가 만연했다.

"어머, 그렉 대령님! 여긴 어떻게……?"

"앤더슨 대위에게 듣고 왔어요. 훌리안님의 묘지에 들린다고 해서."

"기다리시면 제가 금방 갈 텐데."

"정말 너무하군."

그렉이 성큼성큼 그녀에게 다가왔다.

"당신과 함께하는 1분 1초가 소중해요. 그 잠깐도 참을 수 없어."

그러곤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그녀 또한 그렉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이번 파견군의 물자 담당으로 참가 한 이 연맹군 장교는 카림에게 푹빠져 있었다.

'당신 말이 맞아요. 훌리안. 난 쓰레기 같은 여자예요.'

그렉 대령은 무려 연맹군 본부에 소속되어 있는 끗발 있는 장교다.

무엇보다 부친이 연맹의 중요 간부인지라, 연맹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이제 연맹의 파견군은 물러나겠지만 탄자니아에 대한 물자 지원과 추가 파병은 계속 유지된다. 여전히 연맹이 실권을 쥐게 되고, 이어질 이권 분쟁과 내분으로 탄자니아가 무너질 가능성도 사라진다.

바로 내가, 그렇게 만들 것이다.

"그렉 대령님. 여기서 이러시면 곤란해요."

그렉의 가슴을 밀어낸 그녀는 홍조를 띄운 채 힐끔 훌리안의 묘비를 돌아보았다. 그렉은 깜짝 놀라며 헛기침을 했다.

"아, 흠흠! 이거 실례를 저질렀군."

"돌아가요, 그렉. 우리의 집으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렉은 시뻘게진 얼굴로 콧김을 뿜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쩜 이렇게 사랑스러운 사람이 실존할 수 있을까.

정신을 차리니 몸도 마음도 그녀의 노예가 되어 있었다. 그 사실을 그렉 본인도 알고 있었지만,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노예를 자처하리라.

"내 목숨을 걸고, 평생을 지켜주겠소. 약속할게요."

"행복해요. 그멕."

두 사람은 손을 잡고 산을 내려갔다.

"……."

그녀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훌리안의 무덤을 돌아보았다. 그런 그녀의 얼굴에는 예의 그 무표정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오늘도 이렇게, 잡초는 살아간다.

* * *

드디어 파견 생활을 다 끝내고 한국에 돌아왔다!

비행기에서 홍연이 미리 각오하라고 했던 만큼, 공항에는 어마어마한 취재진이 대기하고 있었다.

이미 들어오면서 국내 반응이 어땠는지 기사를 몇 개 봐서 알고 있었다.

[또 해냈다! 마도사 김유신!]

[기적의 커리어를 써 내려 가는 대한민국의 미래들!]

[두 명의 한국인이 아프리카를 구원해 내기까지.]

공항에 오니 그 열기를 확실히 실감할 수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사미아를 먼저 보내고(그녀는 취재진이 오기 전에 텔레포트로 도망쳤다) 공항에서 간단히 취재에 응했다.

아프리카 전선은 어땠고,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는지.

타베스는 어떤 재앙이었고 이제 아프리카는 정말로 안전한지.

앞으로 마법사들이 나아갈 방향과 해외파견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 등.

전부 어렵지 않게 답할 수 있는 질문이었다.

반면 내 옆에서 인터뷰를 하던 홍연은 조금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던전 관련된 질문도 있었지만 '김유신과 어떤 관계냐.' '같은 방을 썼느냐.' '배우 연애설에 대해 한 말씀해달라.' 등등 저질적인 질문도 많았다.

그래도 이런 상황마저 익숙한 듯 그녀는 척척 대처했다. 홍연은 외모나 스타성 때문에 오히려 저 압도적인 실력이 묻히는 케이스였다.

저렇게 고생하는 걸 보니 차라리 언니인 홍율처럼 막 나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렇게 우리는 취재를 마치고 공항밖으로 나왔다.

"고생하셨습니다. 선배."

"에이, 고생은 네가 다 했지."

파견 내내 서로 의지하면서 정이 들긴 든 모양인지 헤어지기가 아쉬웠다. 그래도 같은 한국의 헌터계에서 일하는 이상, 앞으로도 그녀와 마주칠 일도 많을 것이다.

그녀는 가슴에 손을 올리고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이번 파견은 제 인생 최고의 순간 들이었어요. 절대 잊지 못할 거예요."

"바퀴벌레만 아니라면 그렇겠지."

"하, 하지 마요! 좋은 기억만 가져가고 싶으니까!"

나는 소리 내어 웃었다.

"다음 주에 사미아 님과 한강 공원약속, 잊지 말아요?"

"알았어."

"파견 내내 고마웠어요."

홍연은 예의 바르게 인사하고는, 기다리고 있는 승합차에 탑승했다.

나는 제자리에서 그녀가 떠나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작별 인사는 했나."

어느새 휠체어를 탄 사미아가 텔레포트로 나타났다.

"네. 사미아 헌터는 홍연이랑 작별인사 안 해도 돼요?"

"작별 인사야 나중에 통화로 하면 된다."

그녀가 묘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도 눈치는 있다. 분위기 좋아 보이더군."

"……하하."

우리도 가람 매니지먼트의 차량이 대기하고 있었다.

안 그래도 신나라의 메시지가 왔었다. 급한 용무 때문에 직접 데리러 가지 못해서 죄송하다는 메시지가 수십 통 쌓여 있었다.

내 스마트폰을 힐긋 본 사미아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게 다 미안하다는 내용인가."

"네. 좀 유별스럽나요?"

"정성이 느껴지는구나. 이런 사람이 내가 들어갈 회사의 대표라면 안심이다."

"사람이 워낙 좋거든요. 공주님도 만나보면 좋아하실 거예요."

"공주님이란 소린 이제 됐다!"

공주님이라고 할 때마다 일일이 발끈하며 얼굴을 붉히는 모습이 재미있다.

"죄송합니다. 사미아 헌터."

"흠흠, 그 호칭도 이제 됐다. 그냥 친근하게 사미아라고 불러줬으면 좋겠군."

"네? 그래도 헌터계에선 저보다 훨씬 선배이신데."

"그런 건 상관없다. 이제는 내가 그대의 휘하로 들어가는 것이니 그게 자연스럽다."

"……아, 알겠습니다. 사미아."

그 말을 들은 사미아가 싱그러운 미소를 지었다.

"훨씬 좋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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