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만 마탑주 161화
밖으로 나와보니 난리가 나 있었다.
한윤정은 무전기를 붙잡고 뭐라고 꽥꽥 소리 지르고 있었고, 사미아는 텔레포트를 이용해 게이트에 뭔가 이상한 시도를 하려 했다. 홍연은 팔짱을 끼고 제자리에서 불안하게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어? 야!"
한윤정이 제일 먼저 나를 발견하고 소리쳤다.
"어떻게 된 거야? 갑자기 사라져서 얼마나 걱정했……!"
콩.
뭔가 부딪혀서 고개를 내려보니 홍연이 다가와 머리를 내 가슴에 대고 있었다. 그녀가 붉게 물든 얼굴을 보이며 고개를 들었다.
"……갑자기 사라지셔서 놀랐잖아요."
"응? 아, 놀라게 해서 미안해."
한윤정이 눈을 가늘게 좁히며 다가왔다.
"야. 어떻게 된 거야?"
"그게 말입니다. 실은……"
"형식적인 존대는 됐고, 빨리 설명이나 해."
지가 남들 앞에서는 공적으로 말하자고 해놓고선.
"알았어. 사실 아까 군단장 셀레그마 죽을 때 했던 말이 있었는데……."
나는 그녀들에게 던전에서 있었던 일을 간단히 요약해 이야기했다.
다들 아프리카를 멸망 위기까지 끌고 간 이 타베스계 몬스터들이 기근에 굶주려 죽어가던 아이가 재앙화된 것이라는 사실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결론은.
"핵심 던전이 클리어됐단 거지."
"아."
"밖으로 나가보자. 슬슬 통신망이 복구되지 않았을까?"
우리는 걸어서 동굴 밖으로 나왔다.
"……어?"
"이게 다 뭐야?"
모두들 눈이 휘둥그레져서 밖을 바라보았다.
셀레그마의 주둔지, 몬스터들이 가득했던 곳은 어느새 풀밭과 꽃, 그리고 나무로 뒤덮인 숲이 되어 있었다.
"거기, 설명 좀 해줄 수 있겠나."
사미아의 물음에 멍해 있던 병사들이 경례를 올려붙이며 말했다.
"우릴 공격하던 몬스터들이 갑자기 식물이 됐습니다!"
"야! 그게 뭔 미친 개소리야!"
"저, 정말 입니다! 파라오님!"
나는 그저 빙그레 웃고만 있었다.
-탑주. 아프리카 전역에서 사진과 영상이 빠르게 업로드되고 있습니다.
에아가 데바의 눈으로 아프리카의 모습을 띄워주었다. 생명을 위협하던 몬스터들은 풀과 꽃과 나무가 됐다. 그 속에서 활짝 웃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이 인상적이다.
나는 짙은 여운을 느끼며 푸르른 아프리카를 바라보았다.
'좋구나.'
한때는 저주받은 땅. 죽음의 땅으로 불리던 곳이었지만.
이제는 살아 숨 쉬는 생명의 땅(Living Field)이다.
* * *
우리가 주둔지 밖으로 나와 차를 탈 때쯤, 본부와의 첫 교신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아군 진형으로 돌아올 때쯤에는 완전히 통신이 복구되어 있었다.
본부에서는 경악 반 감격 반의 목소리로 소리치고 있었다.
-여기는 본부! 타베스계 몬스터들이 꽃과 나무 변하고 있습니다!
-탄자니아뿐만이 아닙니다! 케냐, 우간다, 콩고, 잠비아, 모잠비크까지! 타베스에 고통받던 모든 나라에서 동시다발적인 보고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홍연이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선배."
"응?"
나는 싱글벙글 웃으며 그녀를 마주보았다.
"혹시 우리한테 안 한 이야기 있어요?"
"말한 그대로야. 나는 던전을 클리어했을 뿐이야."
차량이 아군 진형에 도착했다. 본군에 있던 병사들의 반응을 보니 모두가 실감이 나지 않는다는 듯 입을 벌리고 있었다. 나는 이어마이크를 작동시켰다.
"지휘관입니다."
탄자니아 전선의 모든 병사들이 나를 바라보았다.
"타베스계 몬스터들의 정체는 '기아'라는 지구의 재앙에서 일어난 개체들이었습니다. 저는 주둔지에서 재앙의 주체를 쓰러뜨렸고, 핵심 던전을 클리어했습니다. 오늘부로 타베스계 몬스터들의 위협은 아프리카에서 사라질 것입니다."
나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갑자기 왜 이렇게 긴장되냐. 수 많은 시선들이 내게 꽂힌다. 통신기에서도 간혹침 삼키는 소리가 들린다.
그때 옆에서 홍연이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마무리했다.
"현 시간부로 탄자니아 전선 지휘부는 대재앙 타베스로부터."
그제야 모든 병사들이 눈을 빛내며 나를 바라본다.
"아프리카의 완전 해방을 선언합니다!"
그 한마디에.
이 자리에 있는 4만 명의 응어리져 있던 모든 감정이 폭발했다.
전율.
함성.
환호.
울음.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한 시간 뒤에는 탄자니아 3천만이 환호할 테고, 반나절 뒤에는 아프리카 12억 인구가 환호할 것이다.
하루 뒤에는, 전 세계가 들끓을 것이다.
이것은 위대한 승리다.
* * *
[재앙 타베스의 완전 소멸 확인! 아프리카 해방!]
[세계 연맹의 주옥같은 판단과 지원이 이끌어낸 금세기 최고의 성과! 최고 공로자는 한국의 공인 3급 헌터.]
[탄자니아 스토리. 타베스계 몬스터들은 어떻게 아프리카를 푸르게 물들였나.]
[전 세계에 마법을 알린 대마도사 김유신, 이번에도 일냈다!]
현지 언론은 물론, 전 세계의 언론들이 앞다투어 아프리카 해방을 1면으로 보도 했다.
특히나 몬스터에 의해 저주받은 땅이 비옥한 토지가 되고, 몬스터들이 영양소가 풍부한 열매를 맺는 나무로 바뀌었다는 사실에 모두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프리카 주민들은 눈물을 흘리며 기적을 찬양했다.
당초 우려 했던 리빙필드의 다툼 같은 것도 이상할 정도로 없었다. 자신들의 목숨줄을 틀어쥐며 대륙의 멸망을 앞당기던 괴물들이, 빛의 은혜로 바뀐이 놀라운 기적에 다들 마음 깊은 곳까지 감화된 모습이었다.
아프리카는 연신 경건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이걸로 해피엔딩. 최선의 결말이다.
다만 내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이 하나 남아 있다면 하칸 압둘라의 처벌 부분이다.
우리가 하칸을 압류했다는 사실을 최대한 숨겼지만, 연맹에서는 또 어떻게 알았는지 그의 신병을 요구했다. 그것도 지금 당장 말이다.
그래. 너희들의 생각이나 의도가 뭔진 알겠다. 전 세계가 연맹의 판단을 칭송하고 있는 가운데, 괜히 하칸 때문에 긁어 부스럼 내기 싫겠지.
연맹에서는 하칸 건은 철저히 묻으려고 할 테고, 최악의 경우, 하칸은 말없이 현장으로 복귀해 버릴 염려도 있다.
무려 4만 명을 죽음으로 몰아간자가 평화유지군이랍시고 활동하는 꼴은 못 보겠다. 하칸을 죽이려고 했던 사람들에게 약속했던 것도 있으니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다.
나는 빠르게 움직였다. 에아에게 부탁해서 각국 주요 언론에 메시지를 보내놓았다.
[저는 탄자니아 전선의 지휘관, 공인 3급 헌터 김유신이라고 합니다. 내일 15시에 무트와라에서 기자회견을 열 생각입니다. 중대한 이슈를 다룰 예정이오니 꼭 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언제나 새로운 뉴스에 목말라 있는 언론사들이 가만 있을 리 없다. 심지어 요즘 가장 핫한 탄자니아 전선의 이슈다.
언론사들은 사비행기까지 동원해서 기자들을 무트와라에 파견했다.
그리고 기자회견 당일인 오늘.
밖에는 가국의 기자들이 우글거리며 기다리고 있다. 내가 거울 앞에서 넥타이를 매고 있는데.
"선배!"
홍연이 문을 열고 나타났다.
"방금 연맹 본부의 헬기가 도착했어요! 공인 2급 헌터가 와서 당장 하칸을 데려가겠대요!"
"알았어."
고작 죄수 수송에 2급을 보내는 것 봐라. 어지간히 몸이 달아 있는 모양이다. 나는 슈트 자락을 탁탁 털고는 그녀를 보았다.
"바로 기자들한테 가자."
"네!"
우리는 야외 기자회견장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이동했다.
"근데 말이야."
내가 입을 열었다.
"원래 이런 회견은 총사령관의 몫아닌가? 전 세계에서 기사화될 텐데 네가 가는 게 유리하잖아. 1등. 선두. 최고가 아니면 의미 없다며?"
그녀는 그저 웃었다.
"저번 미궁던전에서는 저만 이슈화됐잖아요. 한번 양보해 드리는 거예요."
"……그거 고맙네."
우리가 열려 있는 문밖으로 나가려는 찰나, 검은 액체같은 것이 촤르르륵!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올라왔다.
"어딜 가나. 대마도사."
검은 액체는 사람의 형상으로 변했다. 드라큘라를 연상케 하는 검은 망토로 몸을 가리고, 얼굴은 가면을 쓰고 있다.
"나이트 워커……!"
홍연이 바짝 긴장한 표정을 지으며 자세를 낮추었다. 나는 태연하게 미소 지었다.
"와아- 유명하신 분을 이렇게 실물로 보네요."
"대답해라. 밖에 있는 기자들은 뭐지?"
연맹의 공인 2급 헌터, 나이트 워커가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저도 몰라요. 이슈다 보니까 촬영하러 왔겠죠."
"……하칸은 어디 있나?"
"몰라요."
나이트 워커가 망토 속에서 팔을 뒤로 뻗었다. 검은 액체가 파도치듯 올라오며 길이 2미터가 넘는 검은색 장창으로 모습을 바꾸었다.
"마지막 경고다. 하칸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라."
"쩝, 알았어요. 홍연, 네가 안내해드릴래?"
"수작 부리지 말고 너희 둘 다 따라와."
그의 목소리가 더 없이 위협적으로 변했다.
홍연이 이를 악물고 칼자루를 손을 올리자, 나는 그녀의 어깨를 두들기며 진정시켰다. 그러고는 빙그레 웃었다.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
촤르륵!
내 몸이 물로 변해서 내려앉았다.
"대마도사!"
나이트 워커는 다급히 등을 돌려문밖의 기자회견장을 바라본다. 바로 이때를 기다렸다.
<데바스타>
내 몸이 물의 장막을 깨고 문밖으로 쇄도했다.
페이크 플레이. 물의 장막을 두 장 준비했다. 한 장으로는 분신을 물로 바꾸고, 다른 한 장으로는 진짜 내 모습을 가린다.
나이트 워커가 나를 찾으러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순간, 데바스타로 물의 장막을 찢고 나와 기자회견장에 도착한 것이다.
"오오오오!"
"왔다!"
사방에서 기자들의 카메라 셔터가 쏟아졌다. 나는 계획된 연출인 것처럼 두 팔을 짠 벌리며 여유로운 반응을 보였다.
이거 재밌네. 뒤에서 이를 갈고 있을 나이트 워커를 생각하니 웃음이 나왔다.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탄자니아 전선 지휘관 김유신이라고 합니다."
나는 먼저 우리 전선이 이룩한 성과와, 현재 경과에 대해 간단히 설명했다. 그리고 본론으로 넘어갔다.
"시간이 없으니 중요한 것부터 할까요?"
나는 회견장 강단을 걸어서 손가락으로 허공을 콕 찔렀다.
4중으로 깔아둔 물이 주르륵 쏟아지며, 하칸이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가 경악의 탄성을 내지르며 셔터를 눌러 댔다.
죄수복 차림의 그는 목소리를 차단하는 금속 마스크를 꼈고, 온몸이 단단히 결박당한 채로 무릎을 꿇고 있었다.
"이번 연맹의 파견군을 지휘한 하칸 압둘라 3급입니다. 현재는 탈영죄 및 반역죄 혐의를 적용받고 있죠."
"……!"
"제가 준비한 녹음 영상부터 들려드리겠습니다."
나는 차례대로 에아가 준비한 녹음영상을 스피커로 들려준 다음, 콜로서스가 뒤를 치려 할 때 하칸이 본부를 장악하고 통신을 차단해 4만 병력 모두를 위기에 빠뜨렸다는 이야기를 했다.
기자들 모두 눈이 시뻘개져서 내 이야기를 수첩에 받아 적었다.
"질문 있습니다! 대체 어째서 하칸3급이 그런 짓을……!"
"왜일까요?"
내가 반문했다.
"사실 하칸 3급은 아프리카 포기 주의자였습니다. 그가 컨트롤하는 회사 중 하나가 PHC의 대주주거든요. 네, 바로 그 수에즈 운하에 방어진을 설치한 그 회삽니다."
웅성웅성!
"이게 아프리카 포기 주의자의 민낯입니다. 저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그들의 주장도 나름의 타당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무릎 꿇고 있는 하칸을 경멸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결국 이게 현실이죠.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4만 명을 기꺼이 생매장할 수 있는 악마들이 바로 이들입니다."
관중석에 앉아 있던 카림과 사미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2만의 증원군을 보내주는 연맹의 결단력 덕분에 아프리카는 해방됐습니다. 그건 엄중한 팩트죠. 하지만 연맹 같은 탄탄한 조직에도 '아프리카 포기 주의자' 같은 극단적인 성향의 인물들이 섞여 있다는 점은 유감이네요. 이런 소수자의 악의 때문에, 다수의 순수한 선의가 더럽혀지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이건 내 나름대로 연맹을 위한 배려다.
꼬리 자를 여지를 줬다.
해석하자면 이런 메시지다. 내가 조질 대상은 아프리카 포기 주의자 뿐이니까, 알아서 대처해라.
나는 강단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병사들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병사들이 축 늘어져 있는 하칸을 데리고 떠났다. 그들이 은밀하게 하칸을 연맹에 인도해 줄 것이다.
사실 여기서 그냥 연맹에게 빅엿을 먹일 수도 있었다.
바로 뒤를 돌아보면서 '나이트 워커 씨. 이제 하칸 씨를 데려가셔도 좋습니다. 협박까지 하시면서 하칸씨를 데려가려 하시던데 많이 급했나 보네요-!' 한마디만 해주고 기자들에게 연맹군의 헬기와 나이트 워커를 보여주면 그걸로 끝.
모든 비난의 화살이 연맹에게 쏠릴 것이다.
하지만 뭐, 연맹에 그렇게까지 밉보일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될 수 있으면 적은 좋은 게 좋으니까.
이번 기자회견으로 연맹의 결단력을 높이 사면서 어그로는 내부 불순자에 실어주었다.
연맹이 내 말귀를 알아듣는다면, 빠르게 하칸의 처분을 결정해 발표하고 그 위에 하칸을 올린 아프리카 포기 주의자까지 잘라내리라.
신속한 일 처리를 보인다면 피해를 최소화할 여지는 충분히 있다.
"자, 그럼."
나는 기자들을 돌아보았다.
"이제 질문 딱 열 분만 받을게요."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방에서 손들이 번쩍번쩍 올라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