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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마탑주-160화 (160/337)

나 혼자만 마탑주 160화

던전 구조의 탐색을 시작했다.

나는 자리에 쪼그려 앉아 바닥을 짚어가며 수식을 살폈다.

던전을 이루고 있는 마법 수식들이 데바의 눈으로 아주 잘 보인다. 다행히 언어는 미궁던전의 것과 동일했다.

'부탁해, 에아.'

-Yes. 던전 해킹을 위한 동조화를 시작합니다.

내 손바닥에서 흘러나간 마나가 던전 전체로 흘러 나갔다. 이미 한번 해봤던 작업이라 그리 어렵지 않았다. 눈을 감고 던전을 둘러싸고 있는 수식을 느꼈다.

'문자는 의미를 이루고, 의미는 질서를 구성한다.'

던전은 하나의 거대한 마법진. 이것은 처음 보는 마법진을 해석하는 것과 같다.

굳이 해석 불가능한 수식에 붙잡혀 있을 필요가 없다.

어떤 게 변환 수식이고, 어떤 게 저항 수식인지, 포인트만 짚어내면 틀을 바꿔내는 게 가능하다.

나는 수식에 잠수하듯 그대로 '과몰입'했고.

잠시 후.

-동조화 완료. 미궁던전을 장악했습니다.

"어, 벌써?"

-두 시간이나 지났습니다. 탑주.

10분쯤 지난줄 알았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눈을 감았다. 온몸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어떤 명령이든 내려주십시오.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했다. 이거 될 지 모르겠네.

"대상, 본 던전과 연결된 모든 타베스계 몬스터. 액션, 자살."

-해당 트리거를 던전에 입력합니다.

에아는 잠시 조용하다가 말했다.

-엑세스 거부되었습니다.

"응? 왜 거부된 거야?"

-생물적 본능에 따른 거부 반응이 일어났습니다. 생물은 누구나 생존에 대한 욕망이 있습니다. 특별한 환경의 조성 없이 일방적인 자살 액션은, 현 탑주의 권한 단계에서는 불가능합니다.

"흐음. 생물의 본능을 거스를 수는 없다는 거지?"

현재 나는 던전과 동조화된 상태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럼 이건 어때? 대상, 본 던전과 연결된 모든 타베스계 몬스터. 액션, 새로운 식성 추가."

-추가될 식성을 말씀하십시오.

"동족, 타베스 몬스터."

-몬스터들의 식성에 동족 입력이 가능합니다. 이대로 진행하시겠습니까?

이걸로 끝이다. 허기가 넘치는 타베스계 몬스터들은 자기들끼리 서로 잡아먹다가 멸종하게 된다. 이보다 더한 마무리는 없다.

"진행하……"

하지만 스쳐 지나가는 섬광처럼, 한 가지 의문이 머릿속에 인다.

-왜 그러십니까? 탑주. 명령을 더 좋은 결말?

그런 게 있을 리가.

타베스계 몬스터가 아프리카에서 완전히 소멸하는 것보다 더 좋은 마무리는 없다. 자살 액션이 안 된다면 그들의 습성을 이용해 멸종시키는 게 최선이다.

머릿속에 여러 상상들이 떠오른다.

타베스계 몬스터들이 아프리카에서 사라진다. 탄자니아 전선은 물론, 아프리카인들과 전 세계가 환호할 것이다.

나는 당당히 해외파견 커리어를 대성공으로 끝내서 한국으로 돌아가고, 협회장에게 어깨 펴고 큰 소리도 한번 치고, 신나라가 만들고 있을 나만의 길드도 구경한다.

전부 해피엔딩이다. 이거보다 더 좋은 수는 없다.

그런데 왜 자꾸, 더 좋은 결말이 있다는 거지?

'그냥 이대로 다 끝내고 편해지면 안 될까?'

내 의식이 무수한 X자를 그린다.

외면하지 말라고.

똑바로 직시하라고.

이대로 타베스계 몬스터가 사라지면 뭐가 바뀌지?

국토는 리빙필드에 의해 철저히 황폐화됐다. 앞으로 수백 년간은 풀한 포기 자라나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 전쟁이 끝나면 연맹의 인도적 식량 지원도 끝난다. 탄자니아 국민들은 결국 살기 위해 다른 곳으로 떠돌아다닐 수밖에 없다.

난민 신세가 된다. 그래, 그 아이 처럼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겠지. 황폐화된 아프리카에서 뭘 할 수 있는데?

누군가는 병에 걸리고, 누군가는 노예가 되며, 누군가는 굶어 죽을 것이다.

그러다 이 불행을 견디지 못하고 정신이 취약해진 인간에게 재앙이 접촉하면? 모든 건 반복되는 악순환일 뿐이다.

-탑주!

에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던전과의 동조화 중 탑주의 과몰입 상태가 점점 더 깊어지고 있습니다! 이 이상의 몰입은 상당한 위험성을 동반할 염려가 있습니다!

"잠시만, 에아. 잠시만."

타베스계 몬스터들을 세상에서 없애는 게 최선의 결말이 아니라면…….

내 머릿속은 말하고 있다. 너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더 좋은 결말을. 더 좋은 이야기의 끝을.

나는 탄자니아 파견의 기억을 천천히 되새겨 보았다.

그러다 어떤 과거가 영상처럼 떠오른다.

눈에 익은 회의실이다.

홍연이 상석에 앉아 있다. 스콜피온도, 장웨이도, 다른 동료 헌터들도 모두 보인다. 그리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열변을 토하고 있다.

'타베스계 몬스터들에겐 세 가지 강점이 있습니다. 플랜트에서 찍어내듯 만들어지는 몬스터들의 물량공세, 군단장을 중심으로 혼선이 없는 지휘체계, 그리고 인간의 무기에 대응하여 이루어지는 끊임없는 진화 이 세 가지죠. 그리고 그 외에 나머지는 전부 약점투성입니다.'

이게 왜?

아!

설마…….

"흐, 흐흐."

-탑주?

"흐흐흐흐흐흐! 끄흑! 으흐흑! 크크크큭! 키킥!"

미친 놈처럼, 웃음이 멈추질 않는다.

-탑주! 던전과의 과몰입 상태를 해제하십시오! 위험합니다!

"……아니, 미안해. 에아. 지금부터 나는 조금 어려운 길을 고를 거야."

던전과 과몰입해서가 아니다. 던전에 휘둘리고 있는 게 아니다.

이건 그저, 순수한 내 판단이다.

타베스계 몬스터들의 세 가지 특징.

-물량.

-지휘체계.

-진화.

이 중에서 내가 써먹을 소스는 단 하나. 나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던전과의 동화율을 높인다.

"지금부터 나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타베스계 몬스터를 진화시킨다."

-탑주!

내 두뇌가 새로운 난관에 기쁨을 터뜨리듯 미친 듯이 돌아간다. 던전을 이루는 방대한 수식들이 머릿속으로 돌아온다.

나는 던전과 연결된 기능들 중, 타베스계 몬스터의 진화파트로 넘어갔다.

갑자기 문득 파견 첫날, 헬기에서 스콜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린다.

'뭐어? 저것들은 허구한 날 진화하고 지랄이야!'

그래, 이것들은 허구한 날 진화한다.

카모플라쥬 모드의 헬기를 감지하려 진화하고.

인간의 폭격기를 막으러 진화하며.

리빙필드의 우선 제거를 막기 위해 진화한다.

타베스계의 본질은 진화다. 실제로 나는 놈들을 그냥 내버려 뒀다간 인류 최대의 적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진화 카테고리 접속. ……탑주, 정말하실 겁니까?

"응."

한번 결정을 내린 이상 물리지 않는다. 이것은 옳은 일이고, 충분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무엇을 더 고민하겠는가.

"시작한다. 대상, 본 던전과 연결된 모든 타베스계 몬스터. 액션, 진화."

-해당 트리거를 던전에 입력합니다.

머릿속으로 어마어마한 데이터의 바다가 밀려 들어온다.

"우욱!"

나는 바닥에 엎드려 헛구역질했다.

머리가, 머리가 터질 것만 같다.

'괴리감이 너무 심해!'

종(種)의 진화. 나는 그것을 인위적으로 끌어내려 하고 있다.

그것은 이미 인간의 영역이 아니다.

그렇다면 나는 기꺼이 잠시 인간이기를 포기한다.

내 정신을 내어놓고 한 차원 더 던전에 몰입한다.

-탑주!

나를 부르는 에아의 목소리가 멀어진다.

그래 이거다.

이 감각.

예전에 용암굴에서 한번 느꼈던 그때의 경지.

[과몰입 특성이 Lv.10에 도달했습니다.]

과몰입이 최대 레벨에 도달하는 순간, 나는 완벽히 던전과 하나가 된 것을 느꼈다.

'……크!'

나는 지금 아프리카에 남아 있는 수천만 마리의 몬스터들과 연결되어 있다. 그들의 모든 것이 느껴진다.

그들의 배고픔, 그들의 절규, 그들의 고통.

허겁지겁 살점을 입에 쳐넣고 포만감을 채 느끼기도 전에 리빙필드로 토해내는 상실감.

심지어는 탄자니아의 헌터들과 묘지기들이 나를 사냥하고 있다.

내 목을 베고.

내 심장을 꿰뚫는다.

그만 해. 그만해 줘.

모든 감각이 생생하게 전달된다.

이런 끔찍한 지옥을, 그 어린아이는 수년 동안 견디고 있었다.

……실시간으로 정신이 붕괴된다.

이대론 인간으로 돌아가도 병신이 될 지도 모른다.

나는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좀 더 나 자신을 잊기로 했다.

[특성과몰입이 다음 수준의 특성으로 성장했습니다. 과몰입 Lv.10-> 일체화Lv.1]

신기하다. 나 자신을 놓을수록 고통이 조금씩 멀어져 간다.

고통이 멎은 틈에 다시 던전의 조작 작업을 개시한다. 내 머릿속에 타베스계 몬스터의 진화한 모습이 지나간다.

파충류형 타베스 감지형 타베스.

수륙양용 타베스.

냉기를 뿜는 타베스.

거인 타베스.

날개 달린 타베스.

던전과 동화되며 점점 더 진화 가능한 몬스터의 모습이 바뀐다.

[경고! 당신은 권한 이상의 힘에 도달했습니다.]

[경고! '운명의 신 모로스'가 당신의 접근을 꺼립니다.]

[경고! '운명의 신 라케노'가 당신의 접근을 꺼립니다.]

[경고! '운명의 신 아트로테스'가 당신의 접근을 꺼립니다.]

니들이 뭔데.

나는 닥치고 진화 카테고리를 훑는다. 내 머릿속으로 처음 보는 타베스계 몬스터들의 형태가 주르륵 지나간다.

[일체화 특성이 Lv.2에 도달했습니다.]

타베스계 몬스터의 모습이 점점 더 흉악해지거나 비대해진다.

바실리스크 형 타베스.

성채형 타베스.

심지어는 인간형 타베스까지 보인다.

이것이 극단적 진화형인가. 만약 이놈들을 아프리카에 방치해 뒀으면이 정도까지 가는 건가.

[경고! 당신은 권한 이상의 힘에 도달했습니다.]

[일체화 특성이 Lv.3에 도달했습니다.]

[메샤라. 메샤라.]

[경고! '운명의 신 모로스'가 당신의 접근을 꺼립니다.]

[경고! '운명의 신 라케노'가 당신의 접근을 꺼립니다.]

[경고! '운명의 신 아트로테스'가 당신의 접근을 꺼립니다.]

[메샤라. 메샤라.]

다들 좀 닥쳐줬으면 좋겠다.

이 플레이어 메시지는 왜 안 꺼지는 거야?

나는 이를 악물고 앞으로 타베스계의 진화 단계를 점점 더 올린다.

환수형 타베스.

요새형 타베스.

드래곤형 타베스.

나는 최대의 단계까지 나아간다.

이제 마지막 단계.

생물의 극의.

그것은.

[…….]

화면이 바뀌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녹색의 나뭇잎이 보인다.

튼튼한 뿌리에 달린 커다란 이계수에는 싱그러운 과일이 보인다. 새들이 날아다니며 나무줄기에 앉는다.

이것이, 진화의 정점.

세상의 일부로서 존속하며 그저 관조하고 수용하는, 존재가 다다를 수 있는 최대의 경지.

[대상 - 본 던전과 연결된 모든 몬스터.]

[액션 - 해당 단계로 진화]

[동의하십니까?]

나는 씩 웃으며 말했다.

"동의한다."

[해당 액션을 수행하기 위한 처리작업 시작.]

세부 조정 사항과 리스트가 수식의 상태로 무한히 머릿속에 떠오른다.

타베스계 몬스터를 통째로 진화시킨다.

이미 죽음에 이르러 내가 원하는 작업을 못 해내는 개체들은 꽃과 풀같은 더 쉬운 형태로.

리빙필드도 엄연히 살아 있는 몬스터. 이들도 진화의 대상이다.

수백 년 치 지력을 빨아들여 기본적으로 양질의 토양. 이계수가 자라기 위한 거름으로 진화해 이계수를 더 빠르게 자라게 한다.

몬스터를 이계수로.

모든 단편모생물역의 동물계를 쌍편모생물역의 식물계로.

전부 다 바꿔낸다.

[일체화 특성이 Lv.4에 도달했습니다.]

그러자 어느 순간.

'나'가 사라졌다.

[…….]

전지적 시점이 된다. 나는 탄자니아를 굽어보고 있다.

꾸드득! 꾸득!

타베스계 몬스터들의 다리가 뿌리로 변해 지면에 단단히 박히고 생명활동을 위한 장기들이 모두 광합성에 필요한 색소기관으로 변한다.

팔이나 꼬리 같이 에너지를 지나치게 크게 소모하는 기관들은 퇴화된다.

줄기가 자라나고 가지가 커진다.

이어서 나뭇가지에 푸르른 잎이 달린다.

죽은 몬스터들은 꽃과 풀이되고, 리빙필드는 이계수들이 자라기에 비옥한 거름이 되어 다시 죽음의 땅을 생명의 땅으로 맞바꾼다.

황량한 벌판에 나무가 자라고, 꽃과 풀이 자란다. 이 아프리카가 초록빛으로 뒤덮인다.

[아.]

울 수 있었다면, 울었을 것 같다.

너무나 경이로워서.

나무에 열린 열매에 수분과 영양소가 풍부히 맺힌다.

이걸로 아프리카가 '기아'에서 완전히 해방되리라고는 못 말하겠다.

그래도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결 말이다.

'돌아간다.'

이렇게 되어버렸는데 어떻게 돌아갈 수 있냐고?

돌아갈 수 있다. 당연히 나는 내 목숨이 제일 소중하고, 목숨을 버리는 도박은 하지 않는다.

일체화된 상태에서 집중력을 끌어올린다. 하나의 뚜렷한 감각을 느낀다.

배고픔.

아직 식물화가 진행 중인 타베스계 몬스터들은 여전히 굶주림을 느끼고 있다. 그 감각에 일체화하여 극대화한다.

……배고파졌다.

미쳐 버릴 정도로.

이 감각을 기반으로 내 몸을 찾아낸다. 배고픔을 느끼는 것은 분명 내 뇌고, 내 몸이다.

완전히 식물화되어 버리기 전에, 이 배고픔에 더 강하게 몰입한다.

그러자 서서히 다른 감각들도 돌아온다.

-탑주! 정신 차리세요! 탑주!

머릿속에서 내 파트너의 목소리가 들린다.

역시 에아. 내 이름을 계속 불러주고 있었구나.

목소리에 집중해 '나'를 붙잡는다.

그리고.

"……."

돌아왔다.

나는 바닥에 누워 있다. 천천히 손가락의 감각을 느끼며 손을 움직인다. 처음엔 움찔 움찔했지만 감각에 생동감이 달라붙으며 팔이 움직여진다.

그리고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탑주! 탑주! 괜찮으십니까?

'응, 난 멀쩡해. 걱정시켜서 미안해.'

-……아! 무사하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팔로 눈가를 비벼보니 온통 눈물투성이다. 흐릿한 시야를 밝히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돌아가자, 에아."

-네!

에아가 던전을 조작해 출구 게이트를 열었다.

몸을 일으킨 나는 붉은 장미잎으로 가득한 던전을 한번 돌아보았다가, 출구로 걸음을 옮겼다.

'이건 진짜 미친 경험이었어.'

나가는 걸음걸음마다 짜릿함이 밀려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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