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만 마탑주 159화
남아프리카 앙골라.
'아이'는 평범한 서민 집안의 일곱째로 태어났다.
부부는 풍족하지 않은 형편에 많은 자식들을 키우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배고프고 굶주린 나날이 이어졌지만, 형제들도 부부를 본받아 한마디의 불평 없이 웃음꽃을 피우곤 했다. 아이도 부부와 형제들의 보살핌속에 행복하게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옆 마을이 내전에 휘말렸다.
마을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면서도 보금자리를 떠나는 것을 망설였다.
하지만 이 부부는 남다른 행동력이 있었다. 곧 아이에게 짐을 싸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그날 밤. 총알이 빗발치고 비명이 쏟아지며 불길이 치솟는 고향에서, 그들은 빠져나오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출발하는 게 늦었더라면 큰일 날 뻔했다. 어머니의 품에 안겨, 아이는 불타는 고향의 모습을 하염없이 지켜보았다.
떠돌이 신세가 된 그들은 마을을 옮겨 다녔다. 하지만 살기 팍팍한 세상에서 아이를 일곱 명이나 데리고 나타난 새로운 피난민을 마을 사람들이 좋게 봐줄 리 만무했다.
마을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판잣집을 만들고, 부부가 잠시 먹을거리를 구걸하러 간 사이에 마을 사람들이 찾아와 집을 부수는 일도 있었다.
결국 그들은 다른 마을을 찾아 헤맸다.
그들은 여섯 군데의 마을을 돌아다녔다. 저번 마을처럼 사람들이 적개심을 드러내기도 했고, 몬스터들이 마을을 공격해 도망치기도 했다.
땡볕에도 묵묵히 걷던 첫째가 쓰러져 죽었다.
부모는 서럽게 울며 땅을 파고 자기 손으로 첫째를 묻었다. 아이는 부모가 우는 모습은 처음 본다고 생각했다.
둘째가 병에 걸려 죽었다.
온몸에 이상한 붉은 반점이 났고 밤 내내 낑낑거리다 결국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부모는 노숙하는 앞마당에 둘째를 묻어주었다.
국경을 넘었다. 군인들이 많았다.
아이는 난민이라는 소리를 귀에 딱지가 생기도록 들었다.
총을 든 군인들이 핍박했다. 부부는 자식들이 보는 앞에서 바닥에 엎드려 굴욕적인 신체검사를 받았다.
셋째가 굶어 죽었다. 부부는 이제 눈물을 흘리지 않게 됐다.
리자드맨이라는 몬스터가 습격했다. 아버지는 죽어가는 넷째를 던졌다. 리자드맨이 넷째를 쩝쩝 먹어치우는 사이 남은 가족들은 도망쳤다.
큰 도시에 도착했다.
터번을 쓴 사람들이 다가와 다섯째의 팔에 사슬을 매달았다. 그 대가로 부부는 지폐 몇 장과 빵 쪼가리를 받았다. 그 이후로 다섯째는 보지 못했다.
이때 부부는 아이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뭐라고 흥정했지만, 터번 쓴 사람들은 왜소한 아이의 몸을 보더니 고개를 내저었다.
여섯째와 아이는 길거리에서 노숙하는 일을 도맡았다. 바닥에 엎드려 동전을 달라고 하루 종일 빌어야 했다.
그러다 이상한 노숙자가 다가왔다.
여섯째와 노숙자가 싸우기 시작했고, 급기야 여섯째가 칼에 찔렸다.
노숙자는 바구니에 담긴 돈을 주머니에 쑤셔 박고 떠났다. 아이는 마지막 형제의 무덤을 만들어주었다.
도시에 큰불이 났다. 반군의 습격이라고 했다. 전차가 들이닥치고 총든 군인들이 사람들을 마구 쏴 죽였다.
어머니는 안전한 마을이 나올 때까지 걸으라고 했다. 아이가 집 밖으로 도망치며 마지막으로 본 광경은, 피를 토하며 쓰러지는 부부의 모습이었다.
아이는 도시에 나와 걸었다. 이제 그는 혼자였다.
하염없이 걷고 또 걸었다.
안전한 마을이 나올 때까지 걸었다.
하지만 안전한 곳은 이 세상에 없다. 아이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배가 고팠다. 뱃가죽이 등에 달라붙는 것 같았다.
볼은 푹 패이고 갈비뼈가 앙상하게 튀어나왔다.
길을 가다가 낙타를 탄 상인들을 만났다.
상인들은 굶주린 아이를 보더니 나무 밑에 박힌 버섯을 뽑아다 물에 씻어 주었다. 아이는 그것을 먹었고 상인들은 킬킬거리며 웃었다.
몸이 부풀기 시작했다. 염증 같은 것이 불룩불룩 올라왔다. 아이는 이제 자신이 사람이 아니라 개구리 알같다고 생각했다.
안전한 마을에 가야 했다. 배도 고팠다. 죽을 만큼 배가 고팠다.
고기가 먹고 싶었다.
고기가.
내리쬐는 태양에 결국 아이가 쓰러졌다. 몸에서 힘이 나지 않았다.
서서히 눈꺼풀이 감긴다.
[배고프니?]
어떤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는 고개를 들었다. 태양이 사라지고 칠흑이 찾아왔다. 울부짖는 악령들이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원망스럽지 않니?]
목소리가 말했다.
[고기를 먹고 싶으면 먹으렴. 안전한 보금자리가 필요하면 손에 넣으렴.]
환각 속에서 무언가가 손을 내미는 모습이 보였다.
[자, 내 손을 잡아.]
* * *
머릿속으로 시냇물처럼 밀려드는 기억을 느끼며, 나는 눈을 떴다.
아무것도 없이 새하얀 공간이었다.
바닥의 개념은 있는지 발을 디딜 수 있다.
'그 기억은 대체……'
고개를 흔들며 두통을 털어냈다.
기억과 더 불어, 그 아이가 느끼는 감정이 여과 없이 전달되어 왔다.
내 심리 상태는 지금, 더 없이 착잡하고 괴롭다.
감정을 추스르고 냉정을 유지했다.
일단 여기가 어딘지 알아야 했다.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철퍽.
'…철퍽?'
새하얀 것밖에 없던 공간인데, 내신발에 핏물이 붉게 튀어 있었다.
그리고 내 발에 있는 '그것'을 인지하는 순간, 배경이 바뀐다.
"우욱!"
구토감이 밀려든다. 주위가 근육과도 같은 선홍색으로 바뀐다. 사방에 있는 것은 '아이의 얼굴'이다.
눈을 감은 아이, 입이 찢어진 아이, 얼굴이 녹아내린 아이, 귀가 비대하게 큰 아이.
이 수 많은 아이의 얼굴들이 근육으로 이루어진 벽에 붙어서 느물거리고 있다.
'에아! 보고 있어? 이건……'
-마탑의 데이터에 등록되지 않은 던전입니다. 흡사한 케이스가 전혀 없습니다. 즉.
'지구 고유의 던전.'
이 공간은, 오버레이 현상과는 관계없이 지구의 불행이 만들어 낸 던전이다. 그때 주위의 얼굴들이 번쩍눈을 뜬다.
[고기. 고기. 고기. 고기. 고기. 고기.]
지독하게 무언가를 갈구하는 목소리들.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깊은 갈증이 목소리를 통해 전해져 온다.
이것은 당장에라도 공격을 감행할 것만 같았지만, 이상하게도 공격은 없다.
"네가 날 불렀구나."
그래. 나는 이 던전에 침입한 게 아니다.
이 아이가 나를 초대한 것이다. 기꺼이 자신의 기억까지 보여주면서.
나는 아이를 바라보았다.
아프리카의 기근이 만들어낸 거대한 재앙. 배고픔에 굶어 죽어가던 아이에게 재앙이 접촉하여 탄생한 생지옥.
'……이제 알겠어.'
재앙이 된 이 아이가 몬스터를 만들어냈다. 군단장도, 천부장도, 백부장도, 작은 몬스터들도 전부.
아이는 몬스터들과 연결되어 있다.
몬스터들 또한 극도의 굶주림을 느끼며 살점을 탐한다.
이들은 인간을 공격해 살점을 먹어치우고, 그것으로 배를 불리기도 전에 점액과 함께 쏟아내어 리빙필드를 만든다. 그리고 다시 무한한 허기를 느끼고, 살점을 탐하기를 반복한다.
몬스터들이 내는 '식욕'은 아이의 성향 그 자체였다.
'리빙필드' 또한 아이가 생전에 집착하던 요소, 즉 '안전한 보금자리' 를 뜻한다. 몬스터들은 자신의 영역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통제구역 몬스터의 법칙이 아닌, 그저 이 아이의 습성이었던 것이다.
아이는 고향의 보금자리에서 벗어났을 때, 그 모든 불행이 시작되어 버렸다. 몬스터들도 본능적으로 자신의 영역에서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렇다. 바로 이것이 현재 아프리카를 수렁으로 몰아넣은 타베스의 정체였다.
"후우우."
나는 길게 한숨을 쉬며 아이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고기. 고기. 고기. 고기. 고기. 고기.]
얼굴들은 배고픔에 울부짖고 있었다. 피눈물을 흘리며 입을 뻐끔거린다. 차마 똑바로 보기 힘들 정도로 참혹한 광경이다.
아이는 이 아프리카에 존재하는 수 천만 마리 몫의 굶주림을 느끼고 있다. 존재 자체가 너무나도 큰 슬픔덩어리다.
대체 뭐냐. 대체 무슨 권리로, 우리의 세계에 이런 끔찍한 생지옥을 만들어냈는가.
"……."
그때 내가 밟았던 핏물과 살점들이 빠르게 말라가기 시작했다. 다리를 들어 평평한 곳을 딛자, 아까 처음에 발을 디디면서 밟았던 얼굴이 초재생으로 복구됐다.
크고 거대한 끔찍한 얼굴들 사이에서, 이 얼굴은 유난히 작고 볼품없어 보였다. 모든 얼굴들이 고기를 외치는 가운데 그 얼굴만은 달랐다.
[Zni Na(배고파).]
셀레그마가 죽기 직전에 남겼던 한마디. 그리고 내가 던전에 들어왔을 때 했던 그 말.
미궁던전에서 봤던 그 언어다. 발음기호를 통해 어떤 소리가 나오는 지도 나는 알고 있다.
[GuozI Nail(죽여줘).]
내 눈이 시뻘게 졌다.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다.
'간다, 에아.'
-네, 탑주.
던전의 몸통 중앙에 마법진을 깔고, 네 개의 서브 마법진을 꺼내 수식을 처리한다.
처리 수식이 쭉쭉 진행된다. 집중이 더럽게 잘 된다.
내가 처음으로 익힌 5공정 마법.
<데스로즈>
마법이 발현되며, 끔찍한 살점 한복판에 피와도 같은 붉은 장미 한 송이가 올라온다. 생체 에너지를 직접 흡수해 커지는 장미다.
장미는 발현되자마자 엄청난 속도로 비대해져 갔다. 그와 동시에 울부짖으며 고기를 외치던 아이들의 목소리가 조금씩 줄어 들어간다.
장미는 점점 더 커진다. 한 송이로도 부족했는지 마법진이 스스로 확장되며 사방에 장미밭이 펼쳐진다.
아이들의 얼굴이 하나둘씩, 눈을 감는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과 절규를 빨아들이며 붉은 장미는 성장한다.
끔찍하고 추했던 이 던전을 새빨간 장미들이 뒤덮는다.
대체 이 던전에 얼마만큼의 생명 에너지가 있는 걸까.
몸집이 비대해질 만큼 비대해진 장미들은 끝내 그 넘쳐흐르는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사방으로 꽃잎을 터뜨린다.
'와.'
그저, 전율할 수밖에 없는 광경이다.
붉은 장미잎이 폭죽처럼 터져 허공에 휘날린다. 세상이 붉은 물결로 뒤덮인다. 그 끔찍하기 그지없던 재앙이라는 양분을 빨아들인 장미의 개화한 모습에, 나는 좀 처럼 눈을 뗄 수가 없다.
이제 고기라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모든 얼굴들은 눈을 감았고, 형체도 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내 아래에 있는 마지막, 작고 볼품없는 얼굴만이 남아 있었다.
[Joail La(고마워).]
그 얼굴은 웃고 있었다.
[재앙을 클리어했습니다.]
[분석 특성이 Lv.7에 도달했습니다.]
[마력이 10 올랐습니다.]
[지능이 10 올랐습니다.]
[집중이 5 올랐습니다.]
…….
플레이어 메시지가 연이어 떠올랐지만, 오늘은 좀 처럼 눈이 가지 않았다.
아이의 웃는 얼굴이 계속 머릿속에 아른거렸다.
-탑주. 괜찮으십니까?
'응.'
재앙이 모두 사라졌다. 살점들도, 얼굴들도.
남은 것은 이 공간이다.
던전의 핵심체.
나는 이미 비슷한 곳에 한 번 갔던 경험이 있다.
바로 미궁 던전. 거기서는 내가 던전을 장악하고 보스 몬스터가 된 마인을 배제했었다.
'좋아. 이제 모든 걸 끝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