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만 마탑주 158화
-여기는 C-4! 상위 지시 개체를 잃은 몬스터들이 혼란 상태에 돌입!
-여기는 C-5! 마찬가지로 혼란 상태 확인!
셀레그마가 죽었다.
탄자니아 전선과 이집트 구원군은 이 찬스를 놓치지 않고 더욱 악착같이 혼란에 빠진 몬스터들을 섬멸했다.
나도 가볍게 주위의 잡몹들을 정리하면서 마정석을 회수하러 반으로 갈라진 셀레그마에게 다가갔다. 플랜트에서 만들어진 잡몹들의 마정석은 정말 볼품없는 수준이었지만, 백부장부터는 마정석의 가치가 꽤 높다.
'흠.'
아직 살아 있는 건가. 상체만 남은 셀레그마의 머리는 입만 뻐끔거리고 있다.
마정석은 머리에 있는 것 같으니까 빨리 빼내고 가야겠다. 내가 팔을 뻗어 마법을 일으키려는 그때.
[Zni Na GuozI Nail.]
셀레그마가 말했다. 나는 그대로 얼어붙었고, 셀레그마는 완전히 늘어져 움직이지 않게 됐다.
"……."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선배! 무슨 일 있어요?"
홍연이 달려와 물었다.
"아, 아니. 아무 일도 아니야."
대충 얼버무리고 있는데, 갑자기 주위가 밤이 찾아온 것처럼 어두워졌다. 나는 고개를 들어보았다.
쿠우우웅!
산더미만 한 거인 해골이 우리 앞에 떨어지며 흙먼지를 일으켰다. 모래 양탄자에 타고 있는 한윤정이 씩 웃으며 무전기에 입을 붙이는 모습이 보였다.
-여기는 파라오. 군단장 콜로서스를 제거했다.
다시 한번 곳곳에서 이는 환호성.
뼈만 남은 콜로서스를 보며 나는 혀를 내둘렀다. 역시 공인 2급은 믿기 힘들 만큼 강했다.
이제 두 마리의 군단장이 모두 죽었다. 탄자니아는 물론, 우간다 지역까지 평화를 되찾았다.
"드디어 집에 간다!"
"진짜 죽는 줄 알았어."
"내가 백부장 머리에 칼 쑤셔 박는 거 봤냐?"
병사들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다만, 우리 지휘부는 조금 민감한 주제에 돌입했다.
"그래서, 이놈은 어떻게 할래?"
한윤정이 손가락을 올리며 말했다.
선물을 가져왔다길래 뭔가 했더니, 모래 밧줄에 붙잡힌 하칸이 낑낑거리며 하늘에 떠 있었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내려주십시오!"
하칸이 항의했지만 한윤정은 대수롭지 않게 하품을 하며 내 쪽을 힐긋 바라보았다. 나보고 결정하라는 뜻이었다.
"이건 중대한 모욕 행위요! 연맹에서 공식으로 파견한 사령관에게 이런 짓을 하다니!"
"한심하군. 하칸."
사미아가 냉소했다.
"그대는 탈영병이다. 모두를 버리고 혼자 도망친 탈영병에게 사령관 지휘가 남아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게다가 당신은 의도적인 통신 차단에 대한 의혹도 있네요."
사미아 뒤에 숨어 있던 카림도 얼른 덧붙였다.
그녀들뿐만 아니라 다른 헌터들도 싸한 분위기는 매한가지였다.
"오해입니다! 전 그저 다른 곳에서 몬스터들을 사냥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아무 말도 없이, 일체의 무전 교신도 없이, 7시간 내내 머리카락 한 올도 비추지 않았던 놈이 이제 와서?"
"워낙 전투가 격렬해서 답할 틈이 없었던 겁니다! 몬스터에게 당해 산언덕을 굴러 떨어져서 잠시 기절해 있었을 뿐입니다!"
거, 안 봤다고 계속 발뺌하네.
모두의 앞에서 끝까지 싸운 홍연의 뒷모습은 병사들에게 전설로 남았지만, 코빼기도 내비치지 않은 하칸에 대한 인식은 정규군 파견군 할 것 없이 나쁘기는 마찬가지였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이제 모든 파견군이 홍연을 따른다. 처벌할 분위기는 넘어왔다.
하지만 연맹 파견군 사령관을 확실한 증거 없이 우리 멋대로 처단하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으니까. 이런 부분은 깔끔하게 짚고 넘어가는 게 좋겠지.
"여러분. 재밌는 거 하나 들려 드릴까요?"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서 방금 에아가 보낸 영상을 다운로드받았다. 그리고 스피커 확장 모드로 전환해 볼륨을 최대한으로 높이고 영상을 실행시켰다.
-여기는 HI-157! 콜로서스가 군단을 이끌고 내려오는 움직임이 발견됐다!
-여기는 본부. 수신 양호. 본부에서 현장에 알리겠다. 앞으로도 모든 보고는 본부에 최우선으로 알리도록.
치직. 칙.
-당장 현장에 알려야 합니다! 군단의 양동이라고요! 이대로는 전멸입니다!
-이미 현장에 보고 했으니 더 이상 이 일에 신경 쓰지 마라.
-보고는 무슨! 연락망을 다 끊어놓고 본부에는 들어가지도 못하게 하면서 알렸다고 하면 어떻게 믿습니까!
-군인의 본분은 복종. 명령에 의문을 품지 마라.
치직!
-여기는 파견군 사령관 하칸. 본부의 보고는 잘 들었습니다. 필요한 조처를 했습니다. 아군은 물러나서 도도마로 돌아가고 있으니 안심하세요.
-그렇다면 잠깐이라도 홍연 사령관과 통신하게 해주십시오!
-하하, 참 말길을 못 알아먹으시네.
치직.
그리고 둔탁한 뭔가가 퍽! 하고 부딪히는 음성이 들렸다.
싸늘한 정적이 주위를 휘감았다.
내가 제기한 의혹이 전부 사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역겨운 새끼!"
스릉!
스콜피온이 격분하며 가위검을 뽑아 들었다.
"어, 어째서……"
파견군의 한 장교는 짙은 배신감에 몸서리치며 말했다.
"어째서 우리를……!"
"궁금하신가요?"
나는 그렇게 화두를 던지며 새로운 파일을 실행시켰다.
"하칸 압둘라. 국적 터키. 나이 31세. 헌터 세계 연맹 및 UN 평화유지군 소속의 공인 3급 헌터. 그리고 이건 잘 알려지지 않은 내용이지만……"
스마트폰을 내리고, 하칸과 시선을 맞추며 미소 지었다.
"글로벌 군사기업 PHC의 대주주시더군요."
정확히는 하칸이 컨트롤하는 기업이 PHC의 대주주라는 거지만 말이다. 하칸은 공인으로서 활동하는 데 문제가 없도록, 교묘하게 PHC와 발을 걸치고 있었다.
"그리고 PHC가 바로, 지금 수에즈운하의 땅을 사들이고 무인 무기 체계로 뒤덮고 있는 회삽니다."
"……아!"
아프리카에 들어가는 어마어마한 인적자원과 물적자원을 해소하기 위해, 아프리카에 핵을 떨어뜨리고 수에즈 방어선을 구축해 아프리카와 세계와의 연결을 끊자고 주장하는세력.
그중에서도 PHC는 수에즈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는, 가장 직접적으로 아프리카 포기 주장에 연결된 기업이다.
"저는 그동안 너무 순진하게 산 모양이에요."
내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아프리카 포기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그럭저럭 이해해 줄 수 있어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현장에서 아프리카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는데."
내 시선이 하칸에게 향했다.
"거기다 대놓고 뒤통수를 치는 사람이 나올 줄은 몰랐네요."
저런 악질에 비하면 차라리 마인이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마인은 재앙에 사로잡혀 순수하게 인류의 멸망을 원하게 된 케이스라면, 이런 인간들은 그저 돈에 눈에 멀어 인간이기를 포기한 사람들이다.
아프리카 포기 주장은, 현재 아프리카의 상황이 돌이키기 힘들고 밑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사실을 기반으로 한다.
그러나 탄자니아와 우간다가 해방되면 아프리카 포기 주장에 힘이 떨어지게 되고, 수 많은 이해관계에 문제가 생긴다.
무엇보다 가장 피해를 보는 건 수에즈 방어진 구죽을 주도 하고 있는 PHC. 그들이 한 대규모 공사는 그냥 뻘짓, 어마어마한 돈을 허공에다 날려 버리는 셈이다.
그런 짓은 두 눈 뜨고 못 보겠다는 거겠지.
"뭐라도 말이라도 해보시죠? 탈영병."
"……."
하칸이 체념한 듯 미소를 그리며 입을 열었다.
"나는……"
뻐억!
둔탁한 소리가 나며 하칸의 얼굴이 옆으로 젖혀졌다. 눈이 시뻘겋게 충혈된 스콜피온이 검의 손잡이로 후려친 것이다.
이제는 아예 검을 치켜들고 말했다.
"죽어라."
매서운 궤적을 그리며 내려오는 가위검을 모래가 방패처럼 펼쳐지며 막아냈다.
"패는 건 놔뒀지만, 죽이는 건 안돼."
검지를 치켜세운 한윤정이 엄중하게 말했다. 스콜피온은 입술을 으득 깨물며 물러났다.
하지만 스콜피온뿐만이 아니었다.
몇몇이 심각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저놈 때문에 데이브가……!"
"돈 때문에 4만 명을 다 죽이려 했어? 니가 그러고도 사람이야?"
감정이 격해지고 있다. 무엇보다 이번 전투로 소중한 사람을 잃었거나, 탄자니아에 오래 있었던 사람일수록 그 분노는 대단했다.
"그만!"
"이것들이 다 미쳤나? 왜 이래!"
참모들이 얼굴이 시뻘게져서 다가 오려는 사람들을 필사적으로 막아세웠다.
"여러분."
내가 입을 열었다.
"여기서 우리끼리 하칸을 죽이면 잠깐의 분노는 가실지 몰라도, 딱거기서 끝입니다. 그냥 공허한 복수일 뿐이에요."
"……."
"저를 믿어주시면, 책임지고 이 건을 크게 발전시켜 놓겠습니다."
내가 모두를 돌아보며 말했다.
"아프리카 전체의 공익을 위해서."
"……."
다행히도 흥분한 분위기가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나는 탄자니아 헌터들에게 턱짓 했고, 그들은 하칸을 단단히 결박해 수송 차량에 태웠다.
그때 통신이 왔다.
-여기는 수색3팀! 셀레그마의 주둔지를 탐색하던 도중, 이상한 걸 발견했습니다! 직접 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 * *
일단 부대 수습은 군 간부들에게 맡겨놓고 나와 홍연, 한윤정, 사미아. 이렇게 네 사람이 주둔지로 이동했다.
잔당 몬스터들이 돌아다니고 있었지만, 지휘체계가 사라진 놈들은 제자리 멍하니 있거나 이상한 행동을 반복해서 할 뿐 위협적이지는 않았다. 굳이 싸울 것도 없이 걸어서 놈들을 통과했다.
주둔지는 널찍한 동굴처럼 되어 있었다. 안으로 들어오자 수색대원들이 일제히 경례를 해왔다. 그중에서 가장 계급이 높아 보이는 군인이 우리를 안내했다.
동굴 안의 악취는 대단히 지독했다. 두말할 것 없이 리빙필드가 동굴 구석구석 빈틈없이 깔려 있었다.
우리는 코를 막고 앞으로 나갔다.
"바로 여깁니다."
수색팀장이 팔을 뻗어 가리켰다.
모두가 눈을 크게 떴다.
"……던전 게이트!"
틀림없다. 동굴의 끝에 보이는 건 분명히 던전 게이트였다.
홍연이 고민스러운 얼굴로 턱을 짚었다.
"이상하네요. 타베스계 몬스터들은 통제구역 몬스터의 발전형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던전 게이트라니……"
사미아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의외로군. 어쩌면 우리가 알고 있던 상식이 잘못된 걸 수도 있겠지."
한윤정은 게이트 바로 앞까지 다가가 팔짱을 끼고 섰다.
"던전을 내버려 뒀다간 다른 문제가 생길지도 모르니까, 클리어해 두는 게 좋겠지?"
조금 고민하던 그녀가 게이트를 슬쩍 만져 보았다.
파직!
마나 스파크가 일어났다. 그녀가 인상을 찡그리며 손을 뗐다.
"쩝, 이대로는 못 들어가겠는데?"
"내가 살펴볼게요."
내가 다가가서 손바닥을 대보았지만 역시나 파직 거리며 출입을 거절하는 느낌이 난다. 홍연이 허리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평범한 방식으로는 출입이 안 되는 것 같군요. 일단 헌터 연맹에 보고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Zni Na GuozI Nail."
나는 던전 게이트 손바닥을 대고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러자.
"우왁!"
내 몸이 게이트 안으로 확 빨려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