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만 마탑주 157화
아프리카 최대 전력이 탄자니아 전선에 내려왔다. 전황은 두말할 것도 없이 통째로 바뀌었다.
"아, 아니. 이게 대체 무슨……"
장웨이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넋을 놓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파라오와 묘지기들은 오로지 이집트의 안위와 이익을 위해서만 움직인다. 실제로 이들은 이집트 전역의 재앙을 막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탄자니아에서 지낸 사람들이라면 다들 파라오의 거만함과 이기적인 성향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들이 직접 도와주러 올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너, 너, 대체……!"
그의 시선이 유신에게로 향했다.
흐뭇하게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던 유신의 시선이 그와 마주했다.
"말도 안돼! 거짓말이야! 설마 파라오조차 네놈이 불렀다고 할 생각이냐!"
"네, 제가 불렀는데요."
그 선례가 바로 김유신에 의해 깨진 것이다.
장웨이는 헛웃음만 나올 뿐이었다.
정말이지 이상했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상식과 잣대가 무의미한 것처럼 느껴졌다.
장웨이는 그냥 생각하는 것을 포기하기로 했다.
"선배!"
묘지기들의 증원으로 전황이 안정되자 홍연은 유신에게 달려오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놀람이 절반, 남은 절반은 환희로 가득 차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에요? 왜 이집트가 우리를……!"
바로 그때. 유신의 주위로 모래의 커튼이 하늘거리며 퍼져 나갔다. 모두가 탄성을 흘리며 고개를 들었다.
하늘에서 황금빛 갑주를 입은 여인이 강림하듯 내려왔다.
"오."
유신이 삐딱하게 웃었다.
"못 본 사이 얼굴 좋아졌네."
그 소리를 들은 주위에서는 경악한 표정들이 튀어나왔다. 무슨 파라오를 친구 대하듯 말한단 말인가.
그때 하늘에서 내려온 파라오가 유신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그러고는.
"……!"
입을 맞추었다.
유신은 물론이고, 그 광경을 목격하는 모두가 얼어붙었다.
"……개새끼."
천천히 입술을 뗀 파라오가 충혈된 눈으로 유신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그에게 들릴 만큼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개새끼! 나쁜 새끼! 치졸한 새끼!"
"……하하하."
퍽!
이제는 아예 유신의 옆구리를 마구 때리기 시작했다. 유신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고, 지켜보는 사람들은 온통 물음표투성이였다. 도대체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하아, 진짜."
파라오가 엎어진 유신의 몸을 다시 한번 꽉 끌어안았다.
내가 왜 이딴 놈을 좋아해서.
"윤정아. 너 많이 과감해졌다?"
"닥쳐."
그녀는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은 듯 으르릉거리고 있었다.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좌표 딸랑 보내놓고 나 여기서 죽을 거라고? 미친 새끼. 니가 사람이냐? 도움을 그딴 식으로 구하고 있어! 미친 놈!"
"맞는 말인데. 니가 안오면 진짜 난 죽……"
"입 닥쳐라."
"네."
그래도 유신이 마냥 억지를 부린건 아니었다.
4층의 필드 마법을 이용했다. 이집트의 젖줄이라고 불리는 나일강 일대가 통제구역화 되어 있어서 다수의 묘지기들이 투입되어 있는 상황.
그래서 유신은 마탑 주위에 두른 것과 같은 한 달 치 통제구역 접근불가 필드 마법을 걸어주었다. 한윤정은 그것을 핑계로 이집트의 다수 병력을 끌고 나왔다.
어떻게 보면 거래다.
물론 한윤정은 그런 걸 해주지 않았어도 당장 튀어나갈 태세 만만이었지만, 유신의 구원에 대한 명목을 제공해 준 셈이다.
"총사령관 홍연입니다. 본군을 대표하여 구원에 감사드립니다. 파라오 메네스."
홍연이 다가와 깊이 고개를 숙였다. 그제야 두 사람은 깜짝 놀라며 서로 떨어졌다. 한윤정은 흠흠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그대가 바로 탄자니아의 사령관이군. 노고가 많구나."
유신은 속으로 웃었다. 쟤가 저런 말투 쓰니 참 적응 안 되네.
"덕분에 살았습니다. 그래도 증원이라면 미리 연락을 하고 오셨으면……"
"이쪽도 돌발적으로 온 거라 어쩔수 없었다."
한윤정이 유신의 팔을 툭 치며 말했다.
"이 새…… 아니, 이 녀석이 갑자기 위험하다고 해서."
"아."
홍연이 눈동자를 굴리며 유신과 한 윤정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외람된 말씀을 드려서 죄송합니다만, 혹시 두 분은 어떤 사이이신지……"
"음?"
유신이 대답하려는 순간, 한윤정이 그의 머리에 팔을 확 두르며 웃었다.
"뭐, 보는 그대로의 사이다."
머리를 붙잡힌 유신이 한윤정을 노려보았다. 내가 왜 네 우월함의 희생양이 되어야 하냐는 불만이었다.
'흥.'
한윤정은 파라오가 된 이후, 단 한 번도 이 힘을 사적인 이익에 쓰지 않았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자신이 쌓은 업이 아니었고, 자신의 노력이 깃든 몸도 아니었으니까.
분에 겨운 행운을 얻었다고 생각하며, 한 사람의 헌터로서 평생 죗값을 치를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딱 이번 한 번 만큼은 예외다.
사실 유신이 아프리카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파라오로서가 아닌, 개인적으로 찾아 갈 생각에 엉덩이가 들썩거리던 그녀였다.
하지만 같이 온 사람이 홍연이라는 사실에 끙끙 앓고 있다가, 어쩌다보니 또 상황이 이렇게 됐다.
지금은 그 홍연이 자신의 앞에서 쩔쩔매고 있지 않은가. 유치하다는 소리를 들을지언정 그녀는 묘한 우월감을 느끼고 있었다.
"우리 아직 싸움 안 끝났습니다."
유신이 한윤정에 팔에서 빠져나오며 말했다.
"군단장 셀레그마와 콜로서스. 둘다 잡을 절호의 찬스입니다. 이런 기회는 절대 놓칠 수 없죠."
그녀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윤…… 아니, 파라오 님은 묘지기들을 이끌고 콜로서스 쪽을 부탁드립니다. 저랑 홍연은 셀레그마를 잡으러 가겠습니다."
홍연이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전술적으로 맞는 판단이었기에 한윤정도 쩝 하고 입맛을 다시며 동의를 표했다.
"알겠어. 너무 무리하지 마."
"파라오 님도 조심하십시오."
한윤정은 빙긋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어 보이며 모래를 타고 날아갔다. 그녀가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던 홍연이 얼떨떨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평소에 들었던 파라오 님의 성격과는 조금 다르네요."
"뭐라고 들었는데?"
"거만하고 무례하며 오만한 사람이라고……"
유신이 킥킥 웃었다.
"원래 언론이 좀 과장이 심하지."
"그건 그래요."
평탄한 어조로 이야기하던 그녀는 갑자기 눈에 힘을 주며 유신을 노려보았다.
"응? 왜 그래?"
"돌아가면 해명할게 많으실 것 같네요. 김유신 3급."
"아, 아니. 파라오가 올 거라는 걸 말 못 해준 건 처음부터 계획된 게 아니라……"
"해명할게 많으실 것 같네요."
그녀는 굳이 똑같이 한 번 더 말하고는 지면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유신은 머리를 긁적이며 그녀를 뒤따랐다.
* * *
난전이 펼쳐져 있었다.
전원이 공인 4급 이상인 묘지기들의 화력은 여전히 압도적이다. 그들의 화살은 한 발에 수십 기의 몬스터를 꿰뚫었고, 그들의 병장기는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자유자재로 움직였다.
썰려나간다는 표현이 적절했다.
인간들을 한계까지 몰아붙이던 몬스터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무엇보다.
휘오오오오오오오오!
직경 10미터의 모래바람이 수십개씩 사방에서 피어올라 몬스터들을 갈아버리는 모습은 전위적이었다.
이것이 이집트를 이끄는 파라오의 힘.
한윤정은 몬스터들을 정리한 다음 모래 양탄자를 타고 콜로서스에게 날아갔다.
잠시 후 가시거리 밖에서 연신 지진이 일어나며 대형 몬스터의 고통스러운 울음 소리가 울려 퍼진다.
"선배. 우리도 가죠!"
"그래."
셀레그마는 너무 많은 병력을 소모했다. 군단장 주둔지에 가봐도 셀레그마를 지키는 병력은 거의 없을 것이다.
셀레그마의 패배는 확정적이다. 하지만 이번 콜로서스의 이동으로 미루어보아, 군단장급도 주둔지에서 벗어나 먼 거리를 이동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셀레그마도 원래 있던 장소에서 도망칠 가능성이 크다. 그렇기에 유신은 군단장이 다른 곳으로 숨어버리기 전에 먼저 달려가 잡을 생각이었다.
"지도에 따르면 이쪽이야. 북쪽으로 몇 킬로미터만 가면 주둔지 가……."
[고오오오오오오오오!]
갑작스러운 굉음에 두 사람은 고개를 돌렸다. 주위에 싸우고 있던 다른 헌터들도 움찔하며 시선을 움직였다.
-탑주! 아래에서 옵니다!
유신은 홍연의 뒷덜미를 붙잡고 날아올랐다. 그들이 있던 자리에서 큼지막한 곤충의 팔 같은 게 솟구친다.
조금 떨어진 지점에서는 기둥만 한 가시가 삐쭉삐쭉 돌출되었다.
뒤이어 바닥이 터져 나오더니, 초대형 몬스터가 튀어나왔다.
"저게 셀레그마……!"
홍연은 각오를 다잡으며 검을 붙잡았고, 유신은 허리에 손을 올리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도망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호전적인 녀석이었다. 설마 먼저 덤벼올줄이야.
[고오오오오오!]
찢어지는 목소리를 길게 내뱉은 거대한 괴수가 눈을 부리라며 이쪽을 바라본다.
육중한 덩치의 살점 괴물. 아마도 창조주가 이걸 봤다면 땅을 치고 격분하지 않았을까. 마땅히 생명체가 가져야 할 기본적인 생리를 깡그리 무시하는 몸이었다.
바닥을 딛고 있는 것은 오른 다리와 두 개의 팔. 팔이 달려 있어야 할 곳에는 기이한 척추뼈가 덜렁거리며 삐져나와 있었고, 아무런 규칙성 없이 몸통 곳곳에 달려 있는 팔다리들이 걸음마다 흐느적거린다.
홍연은 침을 꿀꺽 삼키며 이어마이크에 손을 올렸다.
"여기는 사령관. 군단장 셀레그마를 발견했습니다. 김유신 3급과 교전을 시작합니다."
유신은 상급 블루 엘릭서 한 병을 꺼내 입에 물었다. 홍연은 검을 붙잡고 앞으로 나왔다.
"제가 전면에 나서겠습니다. 선배는 보조를……"
"아니."
쨍.
유신은 빈 병을 내팽개치며 마력을 끌어올렸다.
"이번엔 나도 싸울 거야. 뒤가 아니라 네 옆에서."
그녀가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온다."
"네!"
셀레그마는 걷지 않았다. 둥근 몸곳곳에 나와 있는 팔다리가 지면을 딛고 데굴데굴 굴러왔다. 이상한 이동이었지만 속도는 무척 빠르다.
'조금만 더 버텨라. 내 몸.'
전투에 앞서 부담스러운 건 역시 암흑 마법의 리스크. 데바스타를 연달아 계속 난사하면 부작용이 올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이전 전투에서 한 번도 데바스타를 쓰지 않았다.
바로 지금, 군단장 전에서 폭발시키기 위해.
유신은 천천히 무릎을 굽히고 앉은 채로 뒷발을 세웠다. 그의 양손이 신발 밑창을 훑자 검은 연기가 풀풀 흘러나온다.
-탑주! 옵니다!
바닥을 굴러온 셀레그마의 둥글둥글한 몸에서 몸집보다 더 거대한, 빌딩만 한 다리가 터져 나왔다. 그것으로 유신의 몸을 짓밟으려는 순간.
유신의 몸이 검은 연기를 두르고 소리 없이 셀레그마의 측면으로 이동했다. 그의 오른 다리가 이상적인 원을 그리며 셀레그마의 몸에 닿았다.
<데바스타>
충격으로 복부 지방이 움푹 들어간 셀레그마가 수백 미터를 공중에서 날아가다가 절벽에 처박혔다.
"나이스!"
마력을 끌어올리며 대기하고 있던 홍연이 힘껏 검을 휘둘렀다. 산더미만 한 다섯 갈래의 붉은 참격이 지면을 타고 셀레그마의 몸으로 직행했다.
이번에 셀레그마의 몸통 왼쪽에서 커다란 팔이 터져 나왔다. 그것으로 절벽을 짚고는 하늘로 붕 떠올랐다.
슈우우우우우.
셀레그마의 눈동자가 돌아간다. 검은 연기와 함께 그보다 더 높은 곳에서 나타난 유신이 오른발과 오른손을 맞닿게 하고 있었다.
기가 막힌 속도의 재장전. 제자리에서 한 바퀴 회전하며 다시 한번 그림 같은 발차기가 작렬한다.
투콰아아아악!
수백 미터 상중에 떠 있던 셀레그마의 몸뚱이가 그대로 지면에 처박히고는, 지면에 긴 상처를 그리며 밀려나간다. 바위만 한 파편들이 덩어리째로 비산해 주위의 몬스터들을 짓뭉갠다.
"오오오오오!"
지상에서 몇몇 헌터들이 환호했지만 유신은 죽을 맛이었다.
'초 단위로 4연속 데바스타라니, 죽겠다아.'
부작용이 살짝 왔다.
역시 암흑 마법의 리스크는 많이 쓰는 것도 그렇지만, 짧을 시간 여러 번 쓰는 게 가장 문제다.
그의 몸이 지상으로 떨어지고 있는데 바닥에 처박힌 셀레그마의 몸이 통! 하고 유신에게 날아왔다.
이번에는 몸에서 수백 개의 무수히 많은 팔다리가 튀어나와 유신을 붙잡으려 다가왔다. 데바스타를 켜고 달아나야 했지만 몸의 반동이 아직 회복되지 않았다.
"……!"
그때 유신의 앞으로, 빨간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여인이 소리 없이 나타났다. 입술을 살짝 깨문 그녀의 몸이 팽이처럼 회전했다.
스릉! 스릉! 스릉! 스릉!
수백 개의 팔들이 밀려오는 족족 붉은 선이 그어지며 떨어져 나간다.
유신은 전율했다. 잘려나간 팔들이 비가 되어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괜찮아요?"
"어? 어. 커버 고맙다."
두 사람이 바닥에 내려왔고, 셀레그마도 내려왔다.
'후우.'
유신은 호흡을 가라앉히며 조금씩 변질되어 가는 암흑 마력을 체외로 방출했다.
발동이 덜 걸린 상태에서 데바스타를 급하게 난사한 건 무리했지만, 그래도 덕분에 더 몰입할 수 있었다.
세상이 조금씩 몽롱하게 보인다.
마나의 나이테도 확연히 드러난다.
유신은 마력을 끌어모으며 자세를 낮췄다.
<프로메테우스>×4
쿠구구구구구구!
유신의 주위로 네 개의 대형 마법진이 펼쳐지며 그 안에서 이글거리는 화염의 거인들이 마법진을 붙들고 몸을 끄집어낸다.
-표적 설정 완료. 발사합니다.
에아의 유도에 따라 네 개의 화염거인이 서로 다른 방향에서 셀레그마에게 날아갔다.
그 모습을 본 셀레그마는 신속히 대처했다. 살점이 순간 액체처럼 홀쭉해지더니, 그 탄력으로 터엉 날아갔다.
프로메테우스들은 허공을 갈랐고, 셀레그마는 홀로 달리고 있는 홍연을 다이렉트로 덮쳤다.
쿠우우우웅!
셀레그마가 그녀의 위로 떨어지며 뿌연 연기가 솟구쳤다.
유신은 그녀의 걱정은 하지 않았다. 대신 두 팔을 앞으로 펼치고 날아가는 프로메테우스들을 포착했다.
그러고는 서서히 팔을 끌어당겼다.
카가가가가각!
화염계는 위력에 몰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지금 사용한 건 컨트롤에 특화된 4공정 마법.
프로테메우스의 머리가 돌아가며 방향을 선회하기 시작한다.
'홍연은?'
유신은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홍연은 셀레그마의 몸에 올라타 검을 박고 번개처럼 내달리고 있었다.
"하아아아앗!"
그녀의 검이 지나가는 곳마다 피가 솟구치며 내장과 살점이 흘러나왔다.
몸에서 튀어나온 팔들이 그녀를 잡으려고 했지만 검 한 번 휘두르지 않고 그저 순수한 몸놀림으로 피해다녔다.
마침내 다리에서 시작해 어깨까지 일직선으로 내달린 그녀의 몸이 하늘로 번쩍 솟구쳤다.
태양광에 반사되는 그녀의 검이 붉게 물들었다. 그녀를 휘감고 있던 붉은 마력이 세상을 뒤덮을 정도의 거대한 날개로 변했다. 지켜보던 모두가 입을 벌렸다.
<적무>
그리고 날개의 중앙에 있던 홍연의 몸이 순식간에 지상으로 내려왔다.
한쪽 무릎을 꿇고 숨을 깊게 내쉰 그녀가 검을 찰칵 닫았다.
쩌어어어어어어어어억!
셀레그마의 상체에 거대한 흉터가 그어지며 핏물이 솟구쳤다.
[구룩! 구르르르륵!]
셀레그마가 고통에 뒤뚱거리며 홍연에게 달려들려는 그때, 이번에는 유신의 몸이 괴수의 앞으로 나타났다.
<데바스타>
쩌어어어어엉!
암흑 마법에 걷어차인 거대한 셀레그마의 몸통이 나아가는 곳은, 네개의 프로메테우스가 날아오는 한복판이었다.
꽈아아아아아아아앙!
네 개의 프로메테우스가 셀레그마를 이끌고 바닥에 처박으며 불타올랐다. 셀레그마가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질렀다.
유신은 숨을 헐떡이고 있는 홍연의 옆에 가뿐히 착지했다.
'역시 무리하고 있었군.'
유신이야 의도적으로 체력을 안배하고 있었지만, 홍연은 거의 휴식없이 최전방에서 미친 듯이 싸웠다.
그것이 1~4랭크의 잔챙이 몬스터일지라도 검을 휘두르는 행위 자체가 상당한 스테미너가 소비되는 일이었다.
"설 수 있겠어?"
"예."
쿠구구구구구국!
유신은 앞을 바라보았다.
저 괴물도 가공할 만한 완력의 소유자였다. 네 개의 프로메테우스가 붙어 있는 데도, 놈은 그것을 힘으로 빠져나오려 하고 있었다.
셀레그마가 두 사람이 있는 곳으로 거대한 두 팔을 이용해 기어오고 있었다.
척!
그녀는 물결처럼 찰랑 거리는 머리카락을 흔들며 한 손으로 검을 들었다. 그러곤 세검사의 찌르기 자세같은 묘한 자세를 취했다.
'뭘 하는 거지?'
유신이 지켜보고 있는 그때, 그녀의 검 끝이 태양광에 반사되어 붉은 점 하나를 셀레그마의 이마에 그렸다.
<적련>
그녀의 검이 보이지 않는 속도로 뻗어 나갔다. 그 타격 임팩트는 이마에서 터져 나왔다. 시뻘건 마력이 폭발하며 셀레그마의 고개가 크게 뒤로 젖혀졌다.
<적련>×6
이번엔 셀레그마의 몸 여섯 군데에 붉은 점이 생겼다.
한 손으로 가볍게 쥔 그녀의 검이 장창부대의 창격처럼 잔상을 그리며 뻗어 나갔고, 붉은 임팩트가 6연타로 터져 나온다.
'지금!'
유신이 팔을 치켜세웠다. 프로메테우스들은 힘이 빠진 셀레그마의 몸을 완전히 집어삼켜 바닥에 끌고 가산채로 놈을 불태우기 시작한다.
"허억."
"하아."
유신과 홍연은 비틀거리며 셀레그마에게로 다가갔다.
잠시 후 프로메테우스의 지속시간이 다했다. 셀레그마는 숯덩이가 된 몸을 일으켜 세우고 있었다. 초재생이 적용되는 신체였지만 데미지는 상당히 커 보였다.
두 사람은 셀레그마를 몇백 미터남겨둔 상태에서 걸음을 멈췄다.
유신은 오른발과 지면에 두 개의 암흑 마법진을 그렸다. 뒤이어 오른발이 마법진을 딛는 순간 찰칵! 소리와 함께 마법진이 맞물리며 검은 연기를 뿌려 댔다.
<데바스타 - 커터>
홍연은 양손으로 검을 잡고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
하늘에서 붉은 마력이 모여들어 그녀의 검 끝에 회오리처럼 휘몰아쳤다. 그러다 회오리가 사라지고 직경10미터가 넘는 거대한 붉은 검신의 형태로 변했다.
<월하홍앵>
유신과 홍연은 준비를 마치고 시선을 한 번 마주했다.
셀레그마가 뒤뚱거리며 다가와 거대한 손바닥을 펼쳤다.
유신은 다리를 접었고.
홍연은 검을 쥔 팔을 당겼다.
스릉!
두 사람의 다리와 검이 동시에 허공을 그었다.
[…….]
셀레그마의 움직임이 멎었다. 그리고.
쩌어어어어어어어억!
거구의 몸뚱이가 상체와 하체가 반으로 갈라졌다. 그 안에서 다량의 피 웅덩이가 폭포처럼 쏟아져 나오며 장기들이 출렁거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지켜보고 있던 모두가 그 압도적인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반으로 갈라져 하늘로 떠오른 셀레그마의 상체는 이내 바닥을 뒹굴었고, 하체는 털썩 무릎을 꿇고 쓰러졌다.
"나이스."
유신이 주먹을 들어 올렸다. 그녀도 숨을 헐떡이는 와중에 활짝 웃으며 주먹을 맞부딪쳤다.
[암흑 친화 특성을 얻었습니다.]
[마력이 15층가했습니다.]
[암흑이 10 증가했습니다.]
[순발이 5층가했습니다.]
[체력이 2층가했습니다.]
[집중이 2층가했습니다.]
…….
유신은 이어마이크에 손을 올렸다.
"여기는 지휘관, 셀레그마를 제거했다."
폭발과 같은 환호성이 온 전장에 울려 퍼졌다.
탄자니아가 해방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