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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마탑주-156화 (156/337)

나 혼자만 마탑주 156화

우리는 몬스터들의 끈질긴 추적을 뿌리치며 새로운 포인트, 내가 지도에 가리켰던 바로 그 골짜기 사이로 들어왔다.

직접 와서 보니 좌우의 바위산이 훨씬 더 가파르다. 전차나 차량이 올라가기는 커녕, 어지간한 사람들은 못 올라간다. 헌터들이나 마나를 이용해서 위로 빠르게 치고 올라갈 수 있을 정도다.

"내가 미쳤지."

장웨이가 혀를 내둘렀다.

"이건 1면 방어가 아니라, 그냥 배수진이잖아."

"그렇게 됐네요."

내가 태연하게 대꾸하니, 장웨이가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허이구, 지금 수만 명을 죽음에 몰아놓고 그런 소리가 나오슈?"

"죽을지 아닐지는 싸워봐야 알죠. 그리고 아시지 않습니까? 이 방법이 최선이었습니다."

그나마 긍정적인 부분이라면 아군의 사기가 최대치라는 것 정도다.

사실 홍연이 일으킨 사기가 너무 대단해서, 이대로 병력들을 이끌고 그대로 확 셀레그마 주둔지를 치는 계획까지 생각해 봤다.

하지만 뒤쪽의 몬스터들이 끈질기게 따라와서 계속 병력이 야금야금 끊기고 있었기에 빠르게 미련을 접었다.

"김유신 헌터. 그대는 최선을 다했다."

개조 휠체어를 타고 다가온 사미아가 내 어깨에 손을 툭 올렸다.

"어차피 양동을 당한 시점에서 우리는 다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운명이었다. 이렇게 분발의 상황을 만든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다."

"……감사합니다."

"남은 건 하늘의 뜻에 달렸다."

우리는 정면을 바라보았다.

골짜기로 우리를 몰아넣은 셀레그마계 몬스터들이 으르렁거리며 이쪽을 노려보고 있다. 리빙필드가 닿아 있는데도 공격해 오지 않는다. 그말은 즉, 지원군을 기다리는 거겠지.

연맹에서는 딱 1개 군단을 상대하기 위한 전력을 내려보냈다. 하지만 결국 어떤 모종의 수에 걸려서 2개 군단까지 상대하게 됐다.

우리가 믿을 요소는 병목현상을 일으킬 수 있는 좁은 통로, 병들의 사기, 그리고 홍연의 존재뿐이다.

-여기는 F-4! 스승님! 무슨 일 있으십니까?

"콜로서스와 맞설 겁니다. F-4팀은 계속 포인트에서 대기해 주세요."

-아, 알겠습니다! 꼭 무사하십쇼! 무운을 빕니다!

그때 내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홍연이 질문해 왔다.

"F-4팀? 그런 팀이 있었던가? 누구랑 통신하는 거예요?"

"응? 아하하! 교신 혼란용 코드야! 신경 쓰지 마!"

쿵! 쿠 쿠 쿠

대지가 들썩인다. 언덕 너머로 들리는 수 많은 걸음 소리가 귓가를 가득 메운다.

-코, 콜로서스 군단이 도착했습니다!

뒤로 한 발 크게 물러나 있는 셀레그마 군단의 앞으로, 또한 무리의 끔찍한 몬스터 부대가 나타났다.

무려 우간다 일대를 장악하고 있는 콜로서스의 군단. 역시나 더럽게 많았다. 선두에 헌터들만이 잡을 수 있는 백부장, 천부장들도 많이 보인다.

지금까지 우리가 상대한 것 이상의 숫자를 상대해야 한다. 기껏 올려놨던 병들의 사기가 빠르게 식어버리는 것을 느꼈다.

"어, 어어?"

오른편에서 병사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곧 몬스터들이 밀려들 좁은 통로, 그 절벽의 끝을 거대한 손가락 다섯개가 짚고 있었다.

그드드드드드드드득!

그리고 거대한 무언가가 절벽 너머로 얼굴을 내밀었다.

"코, 콜로서스다!"

병사들이 기겁하며 무기를 쥐었다.

곳곳에서 침 삼키는 소리가 들린다.

거의 산에 닿을 만한 키와 몸집.

저것이 우간다를 지배하는 타베스계의 군단장이다.

콜로서스는 본인의 몸에 비해 한없이 작은 인간들을 관찰하듯 가만히 지켜보더니, 이내 고개를 치우며 사라졌다.

군 곳곳에서 동요가 일어난다. 잊고 있었던 공포가 다시 자라난다.

-전군 전투 준비.

바로 그때, 홍연이 검을 뽑고 앞으로 나아갔다.

스릉!

저 끊임없는 절망을, 홍연의 저 작은 등이 가로막아주고 있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든든하게 느껴진다. 병사들도 다시금 동요하는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그래도 여기서 다 죽겠지."

"후회 없는 삶이었다."

"누가 살아가면 고향에 있는 에이 미에게 전해줘. 널 사랑했다고."

"재수 없는 소리 한다 또."

병사들은 농담을 주고 받으며 긴장을 풀었다. 희망적인 농담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절망에 빠져 낙관하는 이야기도 아니었다.

아직 다들 싸울 의지는 남아 있다.

이번에도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라며 모두는 무기를 든다.

[그오오오오오오오!]

골짜기 너머로 콜로서스가 울부짖는 것으로, 그의 군단 몬스터들이 일제히 달려든다. 기다렸다는 듯 하늘에서는 리빙필드 덩어리가 떨어져길을 형성한다.

두 번째 전쟁이 시작됐다.

"모두, 죽지 마라."

사미아가 텔레포트했다.

"일하러 가자."

"저도 가보겠습니다. 지휘관님."

다른 헌터들도 자리로 돌아가 몬스터들을 맞을 준비를 했다.

"옵니다!"

이어서 몬스터들의 새까만 파도가 좁은 통로를 통과하여, 우리 선두부대와 부딪힌다. 굉음이 터지며 대기가 떨린다.

* * *

장장 7시간이다.

정규군은 악착같이 버텼다. 포탄, 총알, 마나액도 다 떨어졌다. 이제는 접근전뿐, 다들 악착같이 무기를 휘두르며 버틴다.

하지만 이들이 기계가 아닌 지치는 인간인 이상, 뒤로 밀리는 건 어쩔수 없었다.

처음엔 몬스터들이 들어올 좁은 통로를 꽉 막고 있어서 안정적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뒤로 밀려났고 몬스터들이 아군을 공격할 공간만 점점 늘어났다.

"앞으로! 어떻게든 앞으로 가!"

"다시 입구를 탈환해!"

다들 입구를 틀어막는 것의 중요성을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힘에 부쳤다. 선두에 방패 디바이스를 든 병력은 벌써 스무 번째 로테이션을 돌리고 있다. 포탄과 기름이 다 떨어진 전차는 앞으로 끌고 가서 벽으로 세웠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헌터들은 몬스터의 목에 검을 박아넣으며 앞을 바라보았다. 이 녀석이 마지막이겠지. 이놈이 마지막이겠지.

그런 절실한 생각으로 싸우고 있었지만 통로로 들어오는 몬스터들은 좀 처럼 끝이 보이질 않았다.

"크으으으윽!"

몬스터의 공격에 몸에 구멍이 여럿 뚫린 장웨이는 포션을 부으며 이를 악물었다. 이제 다 신물이 났다.

마나는 진작에 다 떨어졌고, 체력도 고갈됐다. 그가 이를 악물며 옆을 바라보았다.

"김유시이이이이인!"

유신은 제자리에서 파이어 캐논을 떨어뜨리며 몬스터들의 접근을 막고 있었다. 그 또한 고개를 돌려 장웨이를 바라보았다.

장웨이는 그의 무표정한 얼굴을 보는 순간 이성이 뚝 하고 끊기는 것을 느꼈다.

"너 이 새끼!"

그가 뛰어들어 와 유신의 멱살을 붙잡았다.

"네놈! 네놈이 다 죽였어! 허억! 도망칠 곳도 뭣도 없는 여기 들어오는 게 아니었어! 차라리 셀레그마를 치는 게 답이었다고! 쿨럭! 셀레그마를 치지 않더라도 도망칠 곳 어딘가는 있었겠지!"

"……."

쿨럭! 쿨럭! 그가 재채기할 때마다 무표정한 유신의 얼굴에 피가 튀었다. 비틀거리며 피 섞인 긴 침을 줄줄 흘려대던 장웨이가 바짝 얼굴을 들이밀었다.

"단 한 명도 빠짐없이 죽음으로 몰아놓고 뭐가 그리 뻔뻔한 표정이냐!"

퉷!

유신의 얼굴에 피 묻은 침이 주르륵 흘렸다.

"넌 죽어도 곱게 뒈지지 못해! 몬스터에게 먹혀 점액에 뒤섞여 내장에서 리빙필드가 만들어지는 그 순간까지 이성을 유지하면서 괴로움에 발버둥 쳐라! 버러지 같은 새끼!"

그때 무표정하던 유신의 얼굴이, 처음으로 웃는 낯이 되었다.

꾸우우욱.

유신이 장웨이의 얼굴을 붙잡고는 그대로 몸을 굽히며 지면에 처박았다.

"쿠훕!"

장웨이의 얼굴이 바닥을 파고 들어갔다.

흙맛이 났다. 흙이 입과 코로 파고 들어가자 숨이 쉬기 힘들어진 그가 캑캑대며 발버둥쳤다.

"거, 선배 대우해 주려 했더니 자꾸 선을 넘으시네."

유신이 그의 뒤통수를 꾹꾹 눌렀다. 담뱃재를 바닥에 비벼 끄듯 좌우로 힘주어 돌리기도 했다.

"네 말마따나 4급 따리가 3급한테 개기게 되어 있냐? 헌터는 등급제야 새끼야."

"커흡! 컥! 그, 그만!"

유신은 그제야 그의 머리채를 잡아세웠다. 장웨이의 얼굴은 땀과 흙과 피로 범벅이 된 채 엉망이 되어 있었다. 그가 "푸후우!"하고 숨을 내뱉자 입과 코가 드러났다.

"괴롭죠?"

"……."

"그 사실에 고마워해요. 당신 아직 안 뒈졌으니까. 징징거리면서 저주 퍼붓지 말고 정신 차리라고."

유신은 머리채를 강하게 잡아당겨 장웨이의 입을 벌리게 한 다음, 포션 뚜껑을 따서 처박아 넣었다. 반쯤 넋을 놓은 그는 골골거리면서도 꼴딱꼴딱 포션을 받아먹었다.

"이제 정신이 들어요?"

"콜록! 콜록! 콜록! 크윽!"

쿵!

유신은 그를 내팽개치고 몸을 일으켰다. 바닥에 엉망으로 엎어진 장웨이가 으르릉거리며 유신을 노려보았다.

"네놈이 다 죽인 거야……. 네놈이……"

"끈질기시네."

유신은 킬킬 웃으며 밀려드는 몬스터들에게 파이어 캐논을 마저 몇 발 떨어뜨렸다.

"장웨이 헌터. 기적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뭐?"

숨을 헐떡이던 장웨이의 눈이 시뻘게지며, 경멸에 찬 표정을 짓는다.

"이런 정신병자 같은 새끼가! 전장에서 기적 운운하는 망상꾼이 군을 이끌었다니! 어떻게든 내가 막았어야 했어!"

"무슨 말씀을, 진정한 현실주의자가 되기 위해서는 기적을 믿을 수 있어야 합니다. 장웨이 헌터."

유신이 말했다.

"기적은 거창한 게 아닙니다. 종교계나 이야기에서 자주 등장하는 초자연적 현상만이 기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유신은 힐긋 홍연 쪽을 보았다가 말을 이었다.

"제가 생각하는 기적은 그런 게 아닙니다. 지독한 노력과 착실한 계획의 연속."

"대체 무슨 소리를……!"

순간 장웨이의 눈이 부릅떠졌다.

이야기를 하고 있는 유신의 하늘위로, 세상을 뒤덮는 모래의 쓰나미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런 요소들이 모여 결정적일 때에 작동해 주는 게 기적이죠."

쏴아아아아아아아!

드높은 절벽 위에서 모래가 양탄자 처럼 펼쳐지며 전장의 하늘을 뒤덮는다. 그곳에서 모래로 이루어진 화살이 비처럼 쏟아진다.

모래 화살은 몬스터들을 뚫고도 헤엄치는 생선처럼 전장을 휘저으며 계속해서 몬스터들을 갈기갈기 찢어놓는다.

쿠웅! 쿠웅!

방패 디바이스로 악착같이 버티고 있는 병사들의 앞으로, 모래의 장벽이 펼쳐지며 거대한 성벽을 만든다.

"대, 대체!"

"무슨 일이……!"

하늘을 올려다보던 몇몇 병사들은 갑자기 입을 벌리며 그대로 굳어졌다.

"아……!"

드넓은 하늘의 벌판 위에서, 모래옥좌에 앉아 지상을 굽어보는 여인이 있었다. 인간도 몬스터도, 모두 그 압도적인 힘에 전율한다.

"이, 이집트의 묘지기들이다아아!"

여인이 손짓한다.

하늘을 뒤덮은 모래가 물처럼 주르륵 쏟아져 내린다. 그 대량의 모래들이 나선형의 창으로 모습을 바꾸어 지상을 대폭격한다.

쿠콰콰콰콰콰콰콰!

몬스터들이 모래에 찢어져 사라졌고, 그 위로 낙하 디바이스를 키고 내려오는 수백 명의 묘지기와 헌터들이 화력을 퍼붓기 시작한다.

-공인 4급 사예드, 전선에 합류한다.

-공인 4급 모하메드, 전선에 합류한다.

-공인 4급 호스니, 전선에 합류한다.

-공인 4급 안와르, 전선에 합류한다.

무전으로 합류를 알리는 수 많은 헌터들의 목소리들.

그리고.

-공인 2급 파라오 메네스, 합류한다.

"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주먹을 쥐고 부르르 몸을 떨던 병사들이 일제히 울분과 탄성을 내뱉으며 두 팔을 번쩍 치켜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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