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만 마탑주 155화
모두가 입에 단내가 나올 정도로 싸웠다.
처음에 백부장에 난입 이후 진형이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질 것처럼 보였지만, 모두가 철저히 진형을 유지했다. 틈만 나면 스멀스멀 기어오는 리빙필드를 밀어내고, 인간의 영토를 딛고 싸운다.
결국.
"몬스터들이 물러난다!"
"오오오오오!"
저항이 너무 거세자, 결국 군단장 셀레그마는 몬스터들을 뒤로 물렸다. 주위는 몬스터들로 산을 쌓을 정도로 무수한 시체들이 가득했다.
물론 흘러내리는 타베스계 몬스터의 특성상, 시간이 지나면 액체처럼 흐물거리면서 바닥에 가라앉느라 정말로 산이 쌓일 정도는 아니었다.
-여기는 F-4! 10개 중 7개 플랜트 파괴 완료!
물론 나는 큰 산을 넘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남은 플랜트는 세 개, 천부장은 다섯이나 잡았고 백부장은 수도 없이 많이 잡았다.
군단장? 그야 물론 까다롭긴 하겠지만 나나 홍연, 그리고 사미아가 잡지 못할 거라고는 생각 안 한다.
이제 탄자니아가 이길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 아직 전투가 끝난 건 아니지만 다들 얼굴이 눈에 띄게 환해졌다. 특히 탄자니아 정규군은 더더욱 그랬다.
그토록 자신들을 괴롭혔던 그 악명높은 군단장을, 처치하기 일보 직전까지 온 것이다. 딱 한 가지 불안한 점이라면.
치직!
-여기는 S-1! 무트와라 본부와의 교신을 반복 중이나 확인되지 않는다.
-여기는 통신팀, 확인해 보겠다.
무트와라 본부와의 연락이 끊겼다는 점. 갑자기 통신이 끊겼다는 건 무슨 이유일까?
아무리 타베스계 몬스터들의 진화하는 속도가 미친 수준이라고 해도, 인간의 통신을 마비시킬 개체가 나올 정도까지는 아니다.
하지만 모두가 승리감에 심취해 있는 상황이라, 이 부분에 대해선 깊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지휘 수고하셨습니다. 선배."
홍연이 숨을 헐떡이며 내게로 다가왔다.
"그런 인사를 주고 받기엔 아직 일러. 이제부터 시작이야."
그녀가 희미한 미소를 흘렸다.
"방심 없으시네요."
"여기서 딱 숨 돌릴 틈의 휴식만 취하고, 병사들 완전히 퍼지기 전에 군단장을 잡으러 들어가자."
치직!
-여, 여, 여기는 Q-17!
불현듯 들리는 무전. Q-17이라면 최후방 경계 부대다. 홍연이 직접 대답했다.
"보고 바람. Q-17."
-기, 긴급사태! 엄청난 숫자의 타베스 몬스터들이 후방에서 접근 중! 카루샤로 들이닥치고 있다!
"……뭐라고?"
무전을 들은 모든 이들의 표정이 일제히 굳어졌다. 홍연은 손을 달달떨며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통신을 받았다.
"여기는 지휘관. 적의 숫자는?"
-어림잡아도 수만!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결코 셀레그마의 병력이 아니다.
그렇게 가용 병력이 많다면 진작에 우리를 둘러싸고 공격했을 것이다.
아마도 또 다른 타베스계 몬스터.
그렇다는 건.
"다른 지역에 있는 군단장이 셀레그마를 도우러 내려온 모양이야. 그거밖에 없어."
"……아!"
처음 보는 현상이다. 탄자니아 말고 다른 국가에도 군단장이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하지만 군단장들은 자기 영역에 민감해서 일체의 교류도 없다고 들었다.
치직! 칙!
-여기는 Q-H! 구, 구, 군단장 콜로서스가! 끄아아아아악!
Q-17로부터의 교신이 끊겼다.
내 예상이 맞았다. 콜로서스라. 놈이라면 우간다 일대를 장악하고 있는 군단장이다.
"콜로서스? 방금 콜로서스라고 했지?
"뭐가 어떻게 되어가는 거야?"
무전을 들은 병사들이 혼란에 빠져웅성거리기 시작한다.
바로 이때를 기다렸던 것처럼, 뒤로 물러났던 셀레그마의 몬스터들이 다시 슬금슬금 이쪽을 포위하듯 다가온다.
심지어 Q-17이면 여기서 얼마 되지 않는 거리다. 만약에 놈들이 내려왔다는 사실을 진작 알았다면 우리는 진군하지 않고 남부로 내려왔올 것이다.
즉.
"본부와 통신 교신이 되지 않는 이유가 설명되네."
"네?"
"우리가 무트와라를 비운 사이 누군가 본부를 점령했다. 그리고 경계병들로부터 올라오는 모든 보고를 차단, 통신을 듣지 못한 우리가 두명의 군단장을 전부 상대하도록 유도한다. 딱딱 맞아떨어지지 않아?"
"하, 하지만 누가 그런 짓을 했다는 거죠?"
"누가 했겠어?"
현재 텅 비어 있는 무트와라를 점령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
무트와라를 정식으로 컨트롤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무트와라에 주둔 병력을 일부 남겨놓고 온 인물.
나는 하칸을 바라보았다.
"……."
내 시선에 모두의 고개가 하칸 쪽으로 돌아간다. 차체에 기대어 쉬고 있던 그는 모두의 시선이 꽂히자 '하하하' 웃으며 손을 휘저어 보였다.
"설마 저를 의심하시는 건가요?"
뜨끔한 기색도, 당황한 표정도, 놀란 반응도 아니다. 그저 웃으면서 하칸은 부정했다.
"그렇다면 너무 억측이 심하신 것 같은데."
그가 느물거리는 투로 말했다. 나는 입술을 살짝 깨물 뿐, 달리 반박하진 않았다. 아직 그를 붙잡을 만한 증거가 없으니까.
지금 에아가 정보를 긁어내고 있다. 그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우리 이러지 맙시다. 연락 좀 안되는 걸 가지고 생 사람을 잡으려 하시다니요. 아무리 공적이 중요하다지만 그건 좀 아니라고 봅니다. 모두가 힘을 합쳐야 할 때잖아요?"
기습으로 일격에 기절시킬 수 있나?
NO. 놈은 우리와 같은 공인 3급이다.
놈을 궁지로 빠뜨릴 수 있나?
NO. 증거 불충분이다.
그래, 아직은 때가 아니다. 여기서 어중간한 논리로 놈을 공격했다간 정규군 측과 파견군 측 간에 전쟁이 일어난다. 그것만큼은 막아야 했다.
나는 등을 돌리며 말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하칸 3급."
"네?"
"무슨 생각이신지는 잘 모르겠는데, 지금 우리는 한배에 올라탔습니다. 모쪼록 그 사실을 잊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하칸은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
그때 홍연의 표정이 굳어졌다. 아직 그를 의심하는 근거를 말해주지 않았지만, 냄새를 맡은 모양이었다.
그녀가 순간적으로 칼자루에 손을 올렸다.
"홍연."
나는 칼자루를 쥔 그녀의 손 위에 내 손을 포갰다.
"아침 식사로 딸기잼 빵. 기억하지?"
"……."
릴렉스 하라는 이야기였다. 그녀는 내 얼굴을 한번 바라보더니 이내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칸은 방금 자기 목숨이 날아갈뻔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옆에 간부랑 떠들며 시시덕거리고 있었다.
"선배. 그럼 이제 어떻게 하죠?"
질문을 던진 홍연은 물론, 주위에 다른 헌터들이나 참모들도 빤히 나를 바라본다.
아니, 이 사람들이…… 내가 무슨 걸어 다니는 아이디어 보따리도 아니고.
"자, 다들 이 지도를 봐주세요."
……그래도 일은 해야지, 일.
내가 작전 지도를 꺼내서 바닥에 펼치자 주위의 사람들이 다가왔다.
지도를 보면, 우리는 산악지형의 길목 중턱에 와 있다. 좌우는 바위산으로 막혀 있다.
"이대로 있으면 앞에선 셀레그마 군단, 뒤에서는 콜로서스 군단에 의해 양동 공격을 받게 됩니다. 진형이 너무 안 좋아요. 양동을 받으면 전멸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나는 고개를 들어 모두와 눈을 한 번 마주쳤다.
"그러니까 병력의 우위를 발휘하지 못하도록, 일면만 싸울 수 있는 환경으로 들어가죠."
"어떻게 그게 가능하죠?"
나는 손가락으로 지도를 찍으며, 아군 진형의 이동 방향을 표시했다.
"지금 당장, 앞에 있는 셀레그마의 병력을 뚫고 들어가서 이쪽."
나는 삼면이 절벽으로 막혀 있는 골짜기를 가리켰다.
"이 골짜기 안으로 들어가서 방어를 견고히 하고 장기전, 버티기 태세로 들어갑니다."
몇몇 헌터들이 헛웃음을 흘렸다.
스콜피온이 말했다.
"언제나 김유신 3급의 전술은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군."
"저도 극단적인 작전을 선호하는 건 아니에요. 다만 상황이 이러니까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할 뿐입니다. 이대로 양동을 당할 바에는, 지금 지쳐 있는 셀레그마 군단 쪽으로 밀고 들어가서 새로 자리를 잡는 게 낫습니다."
어차피 양동을 당했을 때의 전술도 비슷하다. 수비측 병력이 우위가 아니라면, 어느 한쪽을 뚫고 들어가는 게 옳은 지침이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뚫고 들어가는 편이 낫다.
아군도 지쳐 있지만, 지금 셀레그마 측 몬스터들도 지쳐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에겐 비장의 무기도 있다.
"다른 의견 있습니까?"
의수 팔을 딸깍거리며 돌리고 있던 웨인이 말했다.
"브라더. 그건 어때? 쟤들을 뚫고 골짜기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그냥 그대로 셀레그마의 주둔지를 치는 건?"
"사실 그게 가장 이상적인 전술이긴 하죠. 하지만 뚫는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저 병력들을 계속 꼬리에 달고 가야 해요. 가는 내내 후방병력이 야금야금 갉아 먹힐 겁니다. 주둔지를 칠 거면 그냥 쟤네 다 잡고 가는 게 맞죠."
이번에는 뱀을 목에 휘감은 마르타가 말했다.
"셀레그마 말고 콜로서스 쪽을 뚫고 가는 건 어때요?"
"군단장이 직접 이끄는 쌩쌩한 수만 병력을 힘으로 뚫고 가는 건 역시 무리가 있다고 봅니다. 절반쯤뚫고 들어갈 즈음에는 기동성이 떨어지고, 결국 몬스터에게 둘러싸여 최후를 맞겠죠. 뚫고 들어가는 게 가능한 건 천부장과 백부장을 대다수 잃고 잔챙이들밖에 없는 셀레그마 군단 쪽뿐입니다."
모두가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홍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휘관의 전술대로 가겠습니다. 지금 바로 출전할 테니 준비해 주십시오."
그녀의 명령에 다들 빠르게 자기 위치로 흩어졌다.
"홍연."
"네. 선배."
"너 지금 체력은 얼마나 남았어? 퍼센티지로 100%가 최대라고 쳤을때."
그녀는 입술에 검지를 올리며 생각에 빠졌다. 50% 정도만 남아 있으면 좋을 텐…….
"97% 정도?"
아니! 뭐 이런 게 다 있어?
"왜 그런 눈으로 봐요?"
"……아무것도 아니야."
이쯤 되면 어느 쪽이 몬스터인지 모르겠네.
"이번에 좀 무리시킬 것 같은데. 괜찮지?"
그녀는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괜찮아요. 선배가 원하는 때에, 얼마든지 절 써주세요."
"고맙다."
나는 그녀의 등을 툭툭 두드리며 작전을 이야기했다.
"알겠습니다."
스릉.
그녀가 검을 뽑아 들었다.
"살아서 보자."
"네."
그녀는 천천히 앞으로, 앞으로 걸어갔다.
아군 진형을 빠져나왔음에도 전진은 멈추지 않았다.
그렇다. 그녀는 무수히 많은 몬스터들을 향해 홀로 걷고 있었다.
"사, 사령관님?"
카림이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홍연을 불렀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당황한 얼굴이다.
홍연은 홀로 앞으로 나아가며 이어마이크를 작동시켰다.
치직!
-지금부터 전군, 셀레그마 군단을 뚫고 들어가 새로운 포인트로 이동합니다. 제가 선두에 서겠습니다.
-자, 잠깐만요 사령관! 혼자서 가는 건 너무 무모합니다! 게다가 아군 사격에 휘말릴 가능성이!
-저는 포격에 피해를 받지 않으니 신경 쓰지 말고 공격해 주십시오. 명령입니다.
그녀는 그 한마디로 통신을 종료하고는, 정말로 홀로 검을 들고 달려나갔다.
"……지, 진짜 혼자 가는 거야?"
"빠, 빨리 움직여! 출진한다! 사령관님을 지켜라!"
전 병력이 애를 태우며 진군을 준비한다.
'힘내라.'
나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보았다.
최고속도로 달리는 홍연의 몸에 붉은 마력이 휘감겼다.
이제 그녀는 일직선으로 내달리는 붉은 기둥이 되어 새까만 몬스터들의 파도를 향해 돌진한다. 그리고 붉은 기둥과 검은 파도가 충돌하는 순간.
콰아아아아악!
만화의 한 장면처럼, 파도의 한 귀퉁이가 무너져 내리며 몬스터들의 몸이 사방팔방으로 튀어 나간다. 그녀는 순식간에 전장 한복판을 뚫고 안으로 파고들었다.
그녀가 지나간 자리를 몬스터들이 메꾼다. 그녀의 몸은 흔적도 보이지 않게 되었고, 검은 바다는 잠잠해졌다.
"어, 어떻게 된 거지?"
"설마……"
그리고.
처음보다 훨씬 먼 거리에서 적색의 기둥이 봉화를 피어 올리듯 하늘로 솟구친다. 몬스터들의 몸이 물살에 떠밀리듯 밀려난다.
"하아아아아앗!"
그녀가 기합을 내지르며 몬스터의 무리를 가로지른다.
검은 바다에 연신 펑! 펑! 소리가 울려 퍼지며 파문이 인다. 단 하나의 개체가 이 넓은 파도에 거대한 파문을 연달아 일으키고 있다.
압도적인 화력에 모두가 입을 벌리고 바라본다.
홍연은 영웅의 자질을 타고났다.
그동안 그녀와 함께 싸웠던 모든 사람들이 그녀에게 매료됐고, 그것은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는 이어마이크를 작동시켰다.
"여기는 지휘관. 전군 최고속도로 진군한다."
내 지시가 떨어지기 무섭게, 전 병력이 홍연이 싸우고 있는 전장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나는 그녀의 모습을 눈에 담는다.
그리고 다음은 병사들을 바라본다.
너무나도 압도적인 힘에 대한 경악과 당혹, 그리고 선망과 동경이 자리하고 있다.
나는 깊게 한숨을 쉬며 말한다.
"쪽팔리네."
한숨 섞인 목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갑자기 내게로 향한다. 옆에 있던 카림이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이어마이크가 켜져 있다고 손짓 했다.
"대영웅의 여동생? 세계의 축복을 받은 존재? 그러니 이런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나? 천만에, 그녀도 우리와 같은 인간이다. 바퀴벌레에 겁먹고, 아이들에게 빙수 나눠주면서 행복해하고, 주민들이 손 흔들어주면 천진난만하게 달려와서 손 흔들어줬다고 자랑하는, 지극히 평범한 20대 새내기. 우리랑 똑같은 사람이다."
나는 그녀와 같은 타고난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녀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우리를 위해 싸운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녀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는가? 없다. 아무것도. 그녀는 강하고, 그래서 고독하다."
나는 사람을 쥐고 흔드는 리더쉽을 가진 것도 아니다.
"하지만 웃기지 않은가? 그녀의 분투가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는 처지가."
그러니 이게 최선이다.
"니들이 일말의 찔리는 구석이라도 남아 있다면. 헌터에게 보호받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저런 아이에게 지켜지는 처지에 대한 울림, 분한 마음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뒤처지지 마라."
어느새 홍연을 지켜보는 시선에서 느껴지는 선망과 두려움에서, 독기와 의지가 서린다.
"도움은 못 줄망정, 적어도 사령관의 발목은 잡지 마라."
"오오오오오!"
"적진으로 진입한다. 뒤처지는 자는 버린다. 우리 군은 한 사람의 낙오자도 없이, 전력을 다해 사령관의 바짓자락을 붙잡는다."
"와아아아아아아아!"
전 병력이 목이 터져라 함성을 내지르며, 홍연의 뒤를 따라 검은 파도에 부딪힌다.
전차의 차체가 몬스터들을 짓밟으며 전진한다. 병사들은 악착같이 날달린 무기를 휘두르며 몬스터들의 숨통을 끊어놓는다.
콰르르르르르르릉!
바로 앞에서 산더미만 한 참격이 일어나 타베스계 몬스터들의 진형을 반으로 갈라놓는다. 병사들이 울부짖으며 그녀의 이름을 연호한다.
"홍연!"
"홍연!"
"홍연!"
모두의 전장이되, 하나의 전장이다.
"사령관의 뒤를 따르라!"
"뒤처지지 마!"
전군이 무아지경의 황홀경에서 무기를 휘두르고 악착같이 발을 맞춘다.
낙오자는 없다. 약한 소리 내는 사람도 없다.
그 기세에 오히려 몬스터들이 질렸다는 듯 주춤한다. 저 흉악한 몬스터들이 연약한 직립보행의 동물에 위협을 느끼고 있다.
"전진!"
"전진!"
광기의 현장이다.
내가 불을 붙였고, 이제는 나도 말릴 수도 없을 만큼 미쳐 날뛴다. 여전히 혼자 무쌍을 찍고 있는 홍연은 모두의 기대에 부응하다 못해 넘치는 화력을 선보인다.
수차례의 검격 줄기가 몬스터들의 진형을 갈기갈기 찢는다. 그때마다 병사들은 신을 찬양하듯 함성을 부르짖는다.
"사령관을 위해!"
격정에 휘말린 서양인 파견군이 팔을 번쩍 들며 소리 지른다.
지금 순간에는 국적도, 피부색도, 언어도, 사상도 의미 없다.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그의 말에 호응하듯외친다.
"사령관을 위해!"
계획은 성공적이다. 나는 고개를 돌려 썩어들어가는 한 사람의 얼굴을 바라본다.
어떠냐? 하칸.
이제 네놈의 파견군은 없다. 오로지 홍연의 군단이 있을 뿐이다.
"밖이 보인다!"
아군은 믿기 어려울 만큼 쉽게 셀레그마 군단을 뚫고 나왔다.
전방으로 나온 헌터들은 다시 후방으로 뛰어가 다른 병사들을 지원했다.
이제 내 차례다. 뚫는 게 그녀라면 수습 정도는 내 몫이다.
'가자, 에아.'
"네!
<파이어 캐논>× 100
하늘에서 눈부신 파문이 수없이 일어나더니 불의 비가 지상으로 쏟아져 내린다. 몬스터들이 기겁하며 걸음을 멈춘다.
-캬아아악!
-캬륵!
<파이어 게이트>× 10
후방 부대의 뒤에는 3공정의 파이어 게이트를 깔아서 보조한다. 화염방사가 지속적으로 방사되어 몬스터의 접근을 막는다.
하지만 당연히 목표는 몬스터가 아니라 리빙필드.
후방 부대가 도망치는 측면과 뒤로 연이어 리빙필드를 불태워 공간을 만든다.
몬스터들이 드러난 맨땅에 걸음을 멈추고, 이 틈에 안전하게 최후의 한 명까지 악취 나는 검은 바다를 빠져나왔다.
나는 리빙필드를 계속 제거하며 퇴로를 형성한다.
"사, 살았다!"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건지도 모르겠어!"
"하하하하!"
믿기 힘든 경험을 공유하게 된 병사들이 환하게 웃으며 감격을 만끽했다.
-다들 수고했습니다.
홍연의 목소리였다.
-이제 새로운 포인트로 이동하죠.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천지를 진동시킬 만한 쩌렁쩌렁한 환호성이 병사들에게서 터져 나온다.
무전을 하던 홍연이 깜짝 놀라서 몸을 파르르 떤다. 그러곤 멀리서 나를 바라보았다.
-선배. 아까 무슨 말한 거예요?
그녀가 1:1 채널로 들어와서 어리둥절한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낄낄웃으며 답했다.
"아무 말도 안 했어. 그냥 네가 일으킨 기적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