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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마탑주-153화 (153/337)

나 혼자만 마탑주 153화

시간은 빠르게 흘러 갔고, 곧 연맹과 계획한 전면전 당일이 됐다.

홍연의 정규군이 점령했던 탄자니아의 핵심구역 '이링가'. 그곳에 탄자니아 전선의 정규군과, 연맹에서 보낸 파견군이 모두 집결했다.

정규군 2만에, 파견군 2만.

도합 4만 병력.

탄자니아의 상황을 고려한다면, 이건 정말 대단한 규모였다. 최소한의 방비를 위한 병력을 남부에 배치하고 그 외의 모든 전력을 끌어모았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 한 방에 탄자니아의 운명, 더 나아가 아프리카 대륙 전체의 운명이 달렸다. 우리가 여기서 실패하면 연맹에서는 정말로 아프리카를 버리는 안건도 고려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아프리카 포기 주의자'들의 뜻대로 되는 거겠지.

진군 루트는 간단하다. 우리는 이곳 이링가에서 출발해 전 수도 '도도마'를 점령한 다음, 군단장 셀레그마가 주둔하고 있는 '카루샤'라는 지역까지 다이렉트로 이동할 것이다.

"빨리 빨리 움직여!"

"서둘러라!"

병사들이 짐을 들고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던 나는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다시 봐도 어마어마하네.'

내 뒤로는 수 많은 병사들과 전차들이 도열해 있다. 반군에서 보유한 전차들이 더해졌고, 파견군의 마력엔진이 탑재된 신식 전차들까지 추가 됐다.

숫자로는 잘 실감이 안 됐는데, 이렇게 현장에 와서 보면 입이 딱 벌어질 만큼 많다. 이 정도면 못 이기는 게 이상하지 않나 하는 생각마저들 정도로 위풍당당한 모습이다.

"연맹의 제안을 승낙한 건 정말 탁월한 선택 같아요."

내 보좌관을 맡은 카림이 다가와서 말했다.

"제가 말했잖아요. 우리는 손해 볼일 없다고."

"후후. 지휘관님 말 들으면 항상 손해 볼 일 없었죠. 여기, 부탁하신 물자 리스트입니다."

"고마워요."

우리가 물자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멀리서 한 남자가 다가왔다.

"여기 계셨군요! 김유신 헌터."

큰 눈에 하얀 피부, 전형적인 유럽계 백인의 외형이지만 콧수염이나 광대뼈 등 간간이 아랍풍 특징이 섞인 남자였다. 연맹군 제복을 차려 입고 그 위에 마력 슈트를 걸친 깔끔한 인상이다.

"파견군 물자 리스트도 확인 부탁드립니다."

"아, 감사합니다."

이 사람이 바로 이번 파견군의 리더인 하칸 압둘라. 공인 3급 헌터다. 그는 내게 파일철을 건네며 빙그레 미소 지었다.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전투입니까! 함께 힘내죠! 셀레그마를 물리치고, 아프리카 해방의 첫발을 우리가 떼는 겁니다!"

"물론 그래야죠."

그렇게 나와 몇 마디 나눈 하칸은 다른 점검 사항을 확인하러 떠났다.

열의도 있어 보이고 성격도 모난데 없이 외향적인 타입이다. 하지만 조금 찜찜한 부분이 있다면, 하칸은 기어이 정규군과 파견군 지휘체계의 분할을 주장했다.

'상부 지침입니다. 모든 정보를 공유하고 같은 목표를 향해 같은 전략을 실행하되, 저희는 연맹 파견군의 독자적인 지휘체계로 움직이겠습니다.'

하칸의 파견군은 우리 탄자니아 전선에 포함되는 게 아니라, 독립 부대 운용을 주장했다. 나와 홍연의 입장에선 난감했다. 하나의 지휘체계로 움직이는 편이 훨씬 효율적인데 굳이 전력을 나눈다고?

이유를 생각해 보자면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하칸은 막 베테랑 헌터까지는 아니더라도 제법 연차가 되는 편이다.

한참 연차가 달리는 3급 후배 밑에서 명령을 받는 게 자존심이 상할수도 있다.

실제로 하칸은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탄자니아 전선의 지휘권을 요구했었고, 홍연은 냉정히 거절했다. 여기서부터 두 사람은 엇나갔다.

또 하나의 이유는 '전공'의 문제.

그가 탄자니아 전선에 속하는 형태를 취하면, 총지휘자이자 책임자는 홍연이다. 모든 공과 스포트라이트는 홍연이 받게 되어 있고 하칸은 그냥 파견군을 이끌고 홍연에게 합류한 부하1이 될 뿐이다.

그런 애매한 포지션보다는 탄자니아 전선과 동등한 관계의 군단 사령관으로서 활동하고 싶다는 거겠지.

아무튼 뭐, 이건 다 내 생각일 뿐이고. 중요한 건 지금 두 개의 군단으로 움직이게 됐다는 사실 그 자체다.

"그게 아니라……"

'음?'

하칸은 나와 이야기 한 후 홍연에게 가 있었다. 이번에도 물자에 대한 부분을 걸고 넘어지고 있었다.

"우리 지원이 아니었으면 다들 굶어 죽었겠는데요. 넉 달 치 보급 물자를 탄자니아 전선과 나누어 가지니 보유량이 절반 이하로 떨어졌습니다. 장기전이 아예 불가능해졌어요!"

"……같은 연맹 소속이고 현지 조달을 위한 물자라고 들었는데, 뭔가 문제 있습니까?"

"남의 부대 물자를 아무렇지도 않게 가져간 것치고는 태도가 뻔뻔하신데."

하칸은 내겐 상냥하게 구는 편이었지만, 홍연에겐 유난히 뺀질거렸다.

그녀가 우물쭈물하고 있자, 내가 다가가서 홍연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아, 선배."

그녀가 나를 돌아보았다.

"우리 물자 가지고 쩨쩨하게 그러지 맙시다. 남의 부대가 아니라 같은 탄자니아 전선이잖아요?"

"……."

내가 홍연 편을 들어준 게 서운했는지 하칸은 인상을 굳히고 헛기침했다.

"흠흠, 이건 김유신 헌터가 낄 문제가 아닌……"

치직!

그때 통신기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는 본부! 포션 구호품이 지금 막 도착했습니다!

고개를 돌려보니 포션을 잔뜩 실은 차량들이 이링가로 들어오고 있었다. 보급부대원들이 신속하게 움직이며 차량을 유도했다. 병사들의 눈은 하나같이 큼지막하게 커져 있었다.

"와, 진짜 왔어!"

"한 병당 거의 50만 실링이라는데……"

"어떤 돈 썩어나는 부자가 후원한거야?"

사방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포션을 가득 실은 차량들이 끊임없이 진형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웃으며 이어마이크를 작동시켰다.

"여기는 지휘관. 알케미아에서 제공되는 포션은 제가 공문으로 올린 지침대로 제공하십시오."

그러고는 하칸을 보며 이어서 말했다.

"정규군 파견군 가리지 말고 공평하게 말입니다."

-수신 양호.

-알겠습니다.

하칸의 표정이 보기 좋게 구겨졌고, 홍연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는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겨 주고는 카림에게로 돌아갔다.

그녀는 새삼 나를 다시 보는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김유신 헌터님. 말도 안 되는 부자셨네요."

"하하."

그때 내 옆으로 마력 반응이 번뜩이며 일어났다. 이 현상을 일으키는 사람은 내가 알기론 한 명 밖에 없다.

"김유신 헌터."

사미아였다.

"탄자니아 왕실을 대표해, 그대의 도움에 진심으로 감사를 표한다. 설마 사비까지 털어서 포션을 무상 제공할 줄은……"

"중요한 싸움이니까요. 힘들 땐 서로 돕고 살아야죠."

"이 은혜는 언젠가 반드시 갚겠다."

그렇게 보급 물자를 관리하다 보니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다. 파견군의 추가 전력이 들어왔고, 포션 분배도 모두 끝났다.

연설이나 출정식 같은 번거로운 절차도 어제 다 마쳐두었으니 이제는 진군만 남았다.

"그럼."

총사령관 홍연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사미아, 스콜피온, 마르타, 장웨이, 찰리, 웨인 등 이제는 익숙한 얼굴의 4급들이 보였다. 나와 카림도 앞으로 나왔다.

"출발하겠습니다."

탄자니아 정규군과 파견군, 모든 병력이 군단장의 주둔지를 향해 진군을 시작했다.

* * *

드디어 안전한 남부를 넘어 북부경계로 들어왔다. 드문드문 흩어져서 돌아다니던 몬스터들이 요란한 전차 소리를 듣고 몰려들기 시작했다.

리빙필드의 경계에서 으르렁거리며 이빨을 들이미는 녀석들의 모습은 퍽 위협적이다. 나는 지휘관 차량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힘으로 밀고 가겠습니다."

내 옆 자리에 앉은 홍연이 이어마이크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포격 개시."

-여기는 하칸, 파견군도 포격 개시합니다.

양측 군단의 포신이 불을 뿜었다.

거친 포성과 함께 몬스터들이 갈가리 찢겨나갔고, 선두의 전차부대가 몬스터의 시체를 짓밟으며 전진했다. 뒤이어 본부대도 함께 이동했다.

"화약이나 날붙이로 찔러도 안 터진다! 불을 붙이거나 화학제를 뿌려!"

"예!"

선두 부대와 본대가 지나가면 후방부대가 리빙필드 제거를 맡았다. 퇴로를 만들고 몬스터들의 포위를 막기 위함이었다.

-17시 몬스터 발견!

-타겟 확인.

거리에 굴러다니는 몬스터들은 상대가 되지 않았다. 선두 부대의 화력으로도 차고 넘칠 지경이었다.

"중부의 핵심구역인데, 몬스터가 없어도 너무 없군."

조수석에 탑승한 사미아가 중얼거렸다.

"셀레그마가 우리의 집결 소식을 들은 것 같네요. 그쪽도 어느 포인트에 우리 대군을 막기 위한 병력을 집결시켰을 가능성이 높아요."

"확실히 그렇군."

선두의 기갑부대 화력으로만 충분히 전진할 수 있었다.

가끔씩 후방군의 옆구리 쪽을 공략해 오는 몬스터들도 있었지만, 그래봐야 소수. 모두 포격이나 마력 소총으로 대처가 가능했다. 나와 홍연을 비롯한 헌터들은 체력을 온존했다.

그렇게 시간을 들여, 오늘 목표 포인트인 도도마까지 이동했다. 바닥은 리빙필드였지만, 시가지 건물들은 아직 멀쩡히 남아 있다.

보병들은 주요 건물들을 점령해 은엄폐하고, 후방 부대는 도시의 리빙필드를 제거하며 철조망을 쳤다. 수색대들은 도시를 뒤지고 있었다.

-여기는 A-17. 근방의 마트 모두 몬스터들에게 모두 털렸다고 알림.

-여기는 A-18. 곡물 창고는 멀쩡하다! 살점이 아니라서 그대로 남아 있다!

식량이나 자재를 확보하고 하룻밤만 여기서 쉬어간다.

이제 바로 내일, 셀레그마가 주둔하고 있는 카루샤를 공략할 것이다.

그토록 염원하던 탄자니아의 수도, '도도가'의 탈환이었지만 아무도 웃지 못했다. 여기까지 오는 게 너무 쉬웠다. 말하지 않아도 병사들 모두가 폭풍전야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우리는 빈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전투는 없었지만 하루 종일 차 안에서 긴장하며 부대를 통솔해서 그런지 피로는 적지 않게 쌓여 있었다.

"지휘부 여러분도 식사하시죠!"

군 간부들이 음식을 가져다주었다.

식사는 따뜻한 콘 수프와 빵이었다.

"오, 먹을 만 하네."

맛을 보니 퍽 괜찮았다. 홍연도 내 옆에서 홀짝홀짝 잘도 먹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그녀가 말했다.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선배."

"너도 고생했어."

"내일이 결전이겠죠."

"응."

우리가 말없이 식사를 하고 있는데 사미아와 카림도 자기들 몫의 콘 수프를 들고 나타났다.

"우리도 합석해도 되겠나?"

"얼마든지요."

우리는 그녀들과 식사를 함께하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으, 도도마에 들어왔는데 불안하네요. 혹시 몬스터들이 야습을 해오는 건 아니겠죠?"

"그럴 가능성이 다분하다."

홍연도, 사미아나 카림도 헌터 슈트를 벗고 있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뛰쳐나갈 태세 만만이었다.

"아, 잠시만요."

나는 잠시 모두에게 양해를 구하고 일어났다. 그러곤 이어마이크의 채널을 돌렸다.

"네, 말씀하세요."

-여기는 4-F! 상황 종료했습니다! 방금 에아 님에게 결과 전송하였습니다!

"수고했어요."

마침 에아가 내 데바의 눈에 화면 하나를 띄워주었다. 불에 탄 몬스터들의 무수한 시체 더미가 보였고, 그 옆으로 나대용과 4층팀 멤버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튀어나왔다.

-도도마에 잠입하려는 몬스터들 모두 저희가 처치했으니 안심하십시오!

"나이스, 정말 수고했어요."

-앞으로도 맡겨주십시오!

나는 통신을 종료하고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읏차차, 다들 슈트 벗고 잠 좀 푹자두세요."

"?"

침낭 속에 들어가 도롱이처럼 얼굴만 쏙 내민 홍연이 눈을 깜빡거리며 나를 보았다.

……얘는 뜬금없이 귀엽네. 몬스터랑 싸울 때는 그렇게 내가 선봉이다! 하면서 미친 듯이 검을 휘두르는 광전사지만, 조금 졸릴 때는 이렇게 얌전하고 텐션이 낮다.

"선배. 언제 나설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틀림없이 야습이……"

"그러면 병사들이 알려주겠지. 그때 출동하면 돼."

나는 슈트를 훌러덩 벗어 던졌다.

윗옷에 반바지만 걸친 채로 침낭 속으로 들어갔다.

"잘 자!"

"선배……"

"푹 자둬. 진짜 몬스터들이 온다고 해도 뭐, 넌 그냥 푹 자고 다른 사람들이 가서 상대하는 게 전력상 이득이야. 넌 내일 최상의 컨디션으로 군단장을 잡아야 하니까."

사미아와 카림도 고개를 끄덕였다.

"야습이 오면 내가 텔레포트로 달려갈 테니 걱정 마라. 사령관."

"맞아요! 야습은 저희들이 막을 테니까요."

"……."

결국 그녀도 갑주를 벗고는 편한 상태에서 침낭 안에 들어가 잠이 들었다.

물론, 몬스터들의 야습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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