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만 마탑주 150화
에렌델에서도, 적성 의식에서 떨어진 마법사들은 그걸로 운명이 다 한걸까?
아니,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특이 케이스일 뿐. 내가 뭔가 소심희에 대해 놓친게 있을 것이다. 뭔가 다른 방법이…….
-탑주.
'응?'
에아가 머릿속으로 말을 걸어왔다.
-그녀의 고유 능력으로 해법을 찾아 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오, 그거 좋은 발상인데.'
반드시 마법만 고집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나는 소심희를 보며 말했다.
"소심희 씨의 고유 능력, 여기서 한 번 볼 수 있을까요?"
"……네에?"
메타모포시스 (Metamorphosis). 인간이 몬스터화되어 몬스터의 힘을 가지는 능력.
어떻게 보면 마인화와도 비슷하면서도, 큰 핸디캡 없이 몬스터의 힘을 다룰 수 있는 축복과도 같은 능력이다.
나도 아카데미에서 샐러맨더로 변신하는 3학년과 싸워본 적 있다.
그러나 이상한 점은, 소심희는 메타모포시스 능력을 보유했음에도 비전투계 판정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그녀 또한 면접에서 '없는 거나 다름없는 능력'이라고 스스로 인정했다.
"……여, 여기서요?"
그녀는 이런 부탁을 할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는 표정이다.
"안 될까요?"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정말 보잘것 없는 몬스터로 변신하는 거라서……"
"부탁드립니다."
망설이던 소심희는 이내 결심을 굳히고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만에 써서 될 지는 모르겠지만…… 최, 최선을 다할게요."
그녀가 눈을 꾹 감고 주먹을 꽉 쥐었다. 다른 멤버들도 그녀의 능력은 처음 보는 만큼 눈을 크게 뜨고 지켜보고 있었다.
꾸득! 꾸드드드득!
그녀의 메타모포시스는 시작부터가 특이했다. 흔히 몸이 부풀거나, 신체가 변이되는 게 아니었다. 그녀의 몸을 뼈대로, 근육 더미가 온몸을 뒤덮었다.
우드득! 꾸득!
어느새 그녀의 몸은 몬스터의 살점에 파묻혀 보이지 않게 됐다. 이어지는 형태 변형. 머리는 개과의 짐승처럼 변했고 근육 위에 피부가 붙고 털이 뒤덮었다.
까득!
입에서 날카로운 송곳니가 길게 튀어나왔다. 육중한 상체는 보는 이로 하여감 위압감을 느끼게 할 정도로 우람했다.
-크르르르르!
소심희 본래의 연약한 몸과는 180도 다른, 3미터가 넘어가는 덩치를 자랑하는 개과 몬스터였다. 그런데.
'하, 하체가……'
비대한 상체와는 달리 허리부터 급격히 가늘어지기 시작하더니, 하체는 바닥에 끌릴 정도로 작고 볼품없었다. 이래서야 제대로 걸을 수도 없다.
꽈드드드드!
그녀가 힘을 풀었는지 변신 상태가 풀렸다. 살더미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그 안에 있는 소심희가 털썩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누구한테 죄송하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연신 죄송하다는 소리만 반복했다. 나는 그녀를 달래고 자초지종을 들었다.
처음에 소심희는 메타모포시스 고유 능력으로 잠재력을 인정받아, 길드의 스카웃까지 받은 인재였다.
변신 상태에서 걸을 수조차 없는 몬스터지만, 만약에 적절한 트레이닝과 교정으로 걷게 될 수만 있다면 그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판단이었다.
그녀는 총 세 곳의 길드를 거쳤다.
세 길드 모두 그녀를 영입할 때는 자신감에 차 있었지만, 결국 모두 혀를 내두르며 포기했다.
'이건 트레이닝으로 커버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네요.'
변신하는데 시간도 오래 걸리고, 변신해도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메타모포시스 능력자를 누가 데려가려 하겠는가.
계약금 손해만 보게 된 길드들은 협회에 정식으로 항의했고, 결국 협회에서도 그녀를 비전투계로 분류했다.
그래서 소심희는 자신의 능력을 없는 것으로 생각하며 비전투계로서 헌팅 활동을 해나갔던 것이다.
그녀가 마나 컨트롤에 그렇게 능한 것도 이유가 있었다. 어떻게든 안드라스의 몸을 활용해 보려고 피나는 노력을 기울였겠지.
"소심희 씨."
"……네, 대표님."
"저를 믿고 딱 한 번만 더 능력을 써보시겠어요? 이번엔 다를 거예요."
그래도 그녀의 능력을 직접 보니까 힌트를 얻었다. 그녀는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메타모포시스 상태에 들어갔다.
다시 한번 언밸런스한 몸집을 자랑하는 안드라스가 나타났고, 나는 마법을 사용했다.
<거대화>
<스트렝스>
그녀의 다리에 마법진을 통과시킨다. 육체계 마법사들이 사용하는 신체 일부를 비대화시키는 마법, 거기에 근력 강화 마법을 걸자 그녀의 다리가 점점 부풀어 올라 바닥에 닿는다.
<세포 증강>
<고정화>
꾸드드득! 꾸득!
몬스터의 몸이라 그런지 살점이 마법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몽땅한 다리가 점점 더 커지더니 그럴듯한 다리가 된다.
"소심희 씨! 다리 상태 괜찮아요?"
안드라스가 된 그녀는 자신의 다리를 신기한 듯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녀의 몸에 온갖 신체 강화마법을 다 걸었다. 안드라스의 몸곳곳이 번쩍번쩍 빛나며 강화 효과가 적용된다.
에렌델에서도 체술계 마법사 부대, 마법으로 신체 능력을 극단적으로 강화시켜 싸우는 배틀 메이지들의 이야기는 유명하다.
그리고 소심희의 재능이라면 이 마법들을 충분히 익힐 수 있다.
"자, 와봐요!"
나는 마지막으로 쉴드를 중첩으로 촤르르륵 깔았다.
"그동안의 울분을 쏟아붓는 거예요! 뛰어와서 힘껏 쳐봐요!"
-크르르르릉!
내 외침에 안드라스가 다리를 내디딘다. 제대로 걷는다. 아니, 뛰어온다. 바닥을 박차고 힘껏 내달린 그녀가 내 쉴드에 거대한 주먹을 내질렀다.
쿠아아아앙!
주위에 맹렬한 후폭풍이 몰아쳤다.
4층 멤버들이 몸을 움츠리며 버텼다. 날아가는 쉴드의 파편들을 보며, 나는 씩 웃으며 물러났다.
어느새 힘이 다한 듯 소심희가 원래의 몸으로 돌아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온몸에 땀이 범벅인 채로 숨을 헐떡였다.
"거봐요."
내가 웃으며 말했다.
"내가 된다고 했죠?"
찾고자 한다면 길은 어디에든 있다.
고유 능력과 마법의 동시 활용. 물론 이 두 가지를 병행하는 건 쉽지 않을 것이다.
남들보다 두 배는 더 노력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남들보다 두 배 가까이 뛰어난 컨트롤을 보유한 그녀라면, 틀림없이 해낼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축하드립니다."
나는 소심희에게도, 다른 멤버들에게 해주었던 축하 인사를 이어서 했다.
"세계 최초의 변신 마법사 소심희씨."
그녀는 바닥에 엎드리며 통곡과도 같은 울음을 쏟아냈다.
* * *
그렇게 적성 의식을 마치고, 4층팀은 다시 필드 마법 작업으로 4층에 올라갔다.
정서진은 지방출장, 진보라는 포션 작업, 은솔은 헌터 교육 센터에갔다.
나는 9층으로 와서 노트로 4층팀의 포지션을 끄적거리고 있었다.
-탱커 : 소심희 (안드라스 변신)
-메인 딜러 : 나대용 (전격마법)
-보조 딜러 : 김사랑 (물의마법)
-버프 지원 : 차도연 (빛의마법)
-디버프 지원 : 조용희 (독성마법)
'흐흐, 덕질하는 기분이네.'
이걸로 어느 정도 포지션이 맞아떨어졌다. 일단은 각자의 적성에 맞는 2서클 마법을 한 가지 씩만 가르쳐 주었다.
이들이 전공 마법에 익숙해지면 바로 던전에서의 포지션 역할 수행으로 넘어갈 예정이다.
이 다섯 명의 마법사 파티를 본격적으로 운용할 수 있게 되면, 마탑은 대단한 전력이 추가되는 셈이다.
당장 이번 탄자니아 전장만 해도 얼마나 요긴하게 쓸 수 있었겠는가?
이 다섯 명을 워프게이트로 이동시켜서 플랜트 같은 주요 포인트에 보내 치고 빠지는 식으로 운영하기만 해도, 전술의 폭은 크게 넓어진다.
이런 식으로 5~6개의 마법사 파티를 굴리면 어떤 재앙이든, 어떤 전선이든 마탑이 주도권을 잡고 휘어잡을 수 있게 된다.
앞으로 마법사 길드를 만들게 되면 4층팀이 핵심 중의 핵심. 길드의 간판 파티로서 활동하게 될 것이다.
이들을 가장 성공한 마법사 파티로 육성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자, 그럼 미래 투자는 이 정도면 됐고. 다음은……'
띠링!
메시지 수신음이 들렸다. 홍연이었다.
[선배. 방에 안 계세요? 정규 회의 오셔야죠.]
벌써 나를 찾는구나.
"에아. 애들이 찾으면 나 탄자니아 돌아갔다고 전해줘."
-알겠습니다. 탑주.
나는 바로 5층 포탈을 타고 탄자 니아로 넘어와서 홍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지금 간다. 얼마나 남았어?]
[바로 회의실로 오시면 넉넉하겠네요.]
딱 시간에 맞춰왔다. 내가 회의실에 도착하자 이제는 익숙한 얼굴의 헌터들이 반겨주었다.
애꾸눈의 스콜피온, 뱀을 목에 두른 마르타, 언제나 처럼 신경질적으로 의수를 돌리고 있는 웨인, 얼굴에 징그러운 피어싱을 박은 찰리, 그리고 장웨이와 카림까지.
"어서 오세요, 김유신 3급."
마지막으로 자애로운 미소와 함께 반겨주는 빨간 머리의 사령관까지.
"그럼 이제 지휘부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아, 시작에 앞서서……."
그녀가 턱짓하자 세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처음 보는 얼굴이다.
"이번 탄자니아 파견에 자원해 준 다니엘 4급, 스미스 5급, 마거릿 5급, 메리 5급입니다."
새로운 식구들을 환영하는 박수 세례가 쏟아졌다. 나와 홍연도 박수를 쳤다.
와, 후임 생겼다.
그건 그렇고 4명이나 파견 자원하다니. 탄자니아 전선의 인식이 많이 바뀌긴 한 모양이다.
"그럼 이제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연이은 승리 덕분에 긍정적인 부분들이 상당히 많아졌다.
우선은 연맹군에서 제시한 목표 그이상을 달성한 것으로 연맹군의 지원 폭 자체가 크게 늘어났다.
(프레드릭 대령이 행복에 겨운 얼굴로 우리에게 영상 통화를 걸어왔었다.) 또한 앞서 말했듯 유럽과 아시아, 그리고 가끔 아메리카 쪽에서도 물자 지원이 이어졌고, 헌터들의 자원파견도 늘어났다.
무엇보다 병력이 충원된 덕분에 무트와라, 키소와, 다르에스살람 등 해방된 남부의 주요 포인트에도 주둔군과 헌터들을 파견할 여유가 생겼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남부의 타베스계 몬스터 잔당 사냥과, 리빙필드 제거도 이루어지고 있다.
탄자니아 전선은 훨씬 안정되어 가고 있다. 아니, 이제는 규모 자체가 달라졌다. 몇 번의 중요한 움직임 덕분에 스노우볼이 빠르게 굴러 가고 있었다.
"자, 세계 연맹에서 다음 지시가 떨어졌습니다."
홍연의 말에 자리에 있는 모두가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연맹의 다음 지시는 탄자니아의 군단장, '셀레그마'의 제거입니다."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방에서 험악한 목소리와 격분에 찬 불만들이 튀어나왔다.
"거 너무 한 거 아니오! 이다음 바로 군단장을 잡으라고?"
"대체 몇 단계를 건너뛰는 거야!"
"안전한 곳에 있는 놈들이 현장을 뭘 안다고!"
홍연은 사람들을 한 차례 조용히 시키고는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렇게 허무맹랑 한 지시는 아닙니다. 연맹은 우리가 이 임무를 받아들일 경우, 파격적인 지원을 약속했습니다."
홍연이 손짓하자, 참모들이 인쇄한 자료를 모든 헌터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장웨이가 투덜거리며 그것을 빼앗듯 받아보았다.
"헹, 뻔하지. 말은 파격적인 지원이라 해놓고 생색만…… 응?"
"세상에……!"
자료를 받아 본 모두가 하나같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